작성자 : 최미정 공인노무사
1. 들어가며
취업규칙이나 상벌규정에서 징계사유를 정하면서 동일한 사유에 대해 여러 등급의 징계가 가능한 것으로 정한 경우에 그 중 근로자에게 어떤 징계처분을 선택할 것인지는 징계권자인 사용자의 재량에 속합니다(대법원 2018. 5. 30. 선고 2014다9632 판결 참조). 이러한 재량은 징계권자의 자의적이고 편의적인 재량이 아니고 징계사유와 징계처분 사이에 적정한 균형이 이루어져야 하므로, 징계처분이 사회통념상 현저하게 타당성을 잃어 징계권자에 맡겨진 재량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위법합니다(대법원 2015. 7. 9. 선고 2014다76434 판결 등 참조).
한편, 징계양정이란 '사실조사를 통해 확인된 피징계자의 징계사유에 대해 관련 제반 사정을 고려해 징계의 종류와 수위를 정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근로자에게 여러 가지 징계혐의 사실이 있는 경우에는 그 징계사유 하나씩 또는 그 중 일부의 사유만을 가지고 판단할 것이 아니고 전체의 사유에 비춰 판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징계처분에서 징계사유로 삼지 않은 비위행위라도 징계 종류 선택의 자료로서 피징계자의 평소 소행과 근무성적, 당해 징계처분 사유 전후에 저지른 비위행위 사실 등은 징계양정을 하면서 참작자료로 삼을 수 있습니다(대법원 2011. 3. 24. 선고 2010다21962 판결 참조).
그렇다면, 취업규칙에서 정하고 있는 징계 종류 외의 종류로 징계가 가능할까요.
2. 취업규칙에서 정하고 있는 징계 종류 외의 종류로 징계가 가능한지
가. 취업규칙에 징계 종류를 규정하지 않은 경우
취업규칙에 징계의 종류가 명시돼 있지 않고, 인사위원회에서 징계 여부 및 수위를 결정하도록 규정한 경우가 있습니다. 예컨대, 당연퇴직, 직권면직, 휴직, 직위해제, 강임 등의 사유만이 규정돼 있고, 구체적인 징계 종류는 명시돼 있지 않은 경우입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징계에 관한 구체적 규정이 없더라도 근로기준법 제23조에 위반되지 않는 한 해당 징계가 당연히 무효라고 볼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근기68207-691, 2002. 2. 21.). 다만, 징계는 근로조건의 중요한 사항이므로 원칙적으로 취업규칙에 명확히 규정돼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 이유는 근로기준법 제93조 제12호는 '징계에 관한 사항'을 취업규칙의 필요기재사항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징계사항이 누락된 경우 노동부의 변경명령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고용노동부예규 제48호, 취업규칙 심사요령 참조).
결국, 징계 종류를 규정하고 있지 않은 경우에는 해당 징계처분의 유효성은 ▲근로기준법 제23조 위반 여부 ▲그동안의 징계처분 사례 및 형평성 ▲절차적 정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나. 취업규칙에 징계 종류를 제한적으로 규정한 경우
취업규칙에서 특정 징계 종류(예 : 견책, 감급, 해고)만을 규정하고 있는 경우, 그 외의 징계 종류(예 : 정직)를 사용할 수 있을지 문제가 됩니다.
이와 관련해 청주지방법원은 취업규칙이나 징계규정에 명시되지 않은 정직처분을 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단했습니다(청주지방법원 2017. 8. 31. 선고 2016가합22452 판결, 대전고등법원 2018. 5. 15. 선고 2017나6246 판결). 해당 판결은 "징계는 근로자에게 불이익한 처분이므로 엄격하게 해석되어야 하며, 취업규칙에 규정된 징계 종류 외의 징계처분은 예측 가능성을 해쳐 인사위원회의 자의적 판단을 허용하는 결과가 되므로 허용될 수 없다"는 논리를 취합니다.
또한 창원지방법원은 지방공기업이 징계규정 개정 이전의 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새로 신설된 '강등' 징계를 소급 적용한 사안에서 징계규정 적용의 위법성을 근거로 징계처분을 무효로 판단했습니다(창원지방법원 2020. 5. 28. 선고 2019나55245, 2019나55252 판결).
이러한 판례들은 공통적으로 징계의 종류는 예측 가능해야 하며 그 근거가 취업규칙이나 관련 규정에 명확히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와 같은 취지를 고려해 봤을 때, 취업규칙에서 징계의 종류를 규정하고 있을 경우에는 취업규칙에서 제한한 징계의 종류 외에는 다른 징계의 종류로는 징계처분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참고로 노동부는 "나중의 징계처분이 취업규칙 등에 정해진 징계의 종류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로 인해 사용자의 자의적인 처분이나 근로자에 대한 예기치 못한 불이익이라는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보기는 어려우므로 이를 무효라고 할 수는 없다"는 해석을 한 바 있습니다(근로기준과-5273, 2004. 10. 4.). 그러나 해당 행정해석에 대한 질의 회사의 사실관계를 살펴보면 ① 취업규칙에 '정상을 참작할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에는 인사위원회 의결에 따라 그 처분을 경감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었고, ② 피징계자의 징계사유만을 볼 때 사실상 권고사직에 해당될 정도임에도 취업규칙상의 정상참작 규정에 의거 당초의 징계처분보다 명백히 근로자에게 유리하게 감경된 경우에 해당합니다. 결국 취업규칙에 감경할 수 있다는 취지의 규정이 없는 한 취업규칙에 규정되지 않은 종류의 징계로 감경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 취업규칙에 징계 종류를 제한했으나 관행적으로 기타 징계 종류로 징계를 해 온 경우
취업규칙에서 일부 징계 종류(예 : 감급, 강등, 해고)만 명시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명시되지 않은 징계 종류(예 : 정직)를 오랜 기간 관행적으로 사용해 온 경우엔 그러한 징계처분이 유효할 수 있을까요.
취업규칙에서 일부의 징계 종류만 명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명시되지 않은 다른 징계 종류의 처분이 오랜 기간 규범적 노동관행으로 정착된 경우에는 그 처분이 인정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노동관행이란 근로조건이나 직장규율 등에 관해 단체협약, 취업규칙, 근로계약 등의 명시적인 규정에 의하지 않고, 어떤 사실이나 행위가 노사 간에 상당 기간 이의 없이 반복해 계속 행해지고, 그것이 사실상 상당한 정도의 구속력을 가지게 된 경우를 말합니다. 대법원은 노동관행의 인정 요건과 관련해 "기업의 내부에 존재하는 특정의 관행이 근로계약의 내용을 이루고 있다고 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관행이 기업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근로관계를 규율하는 규범적인 사실로서 명확히 승인되거나 기업의 구성원에 의해 일반적으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한 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서 기업 내에서 사실상의 제도로서 확립돼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규범의식에 의해 지지되고 있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02. 4. 23. 선고 2000다50701 판결 등).
실무상 노동관행이 법적 효력을 인정받은 사례는 매우 드물고 인정되기 위해서는 ▲수년(통상 10년 이상)간 이의 없이 지속됐는지 ▲규범적 수용이 있었는지 등을 입증해야 합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는 노동관행을 근거로 취업규칙 외의 징계 종류 사용을 정당화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라. 소결
정리하면 ① 징계 종류를 규정하고 있지 않은 경우라도 징계처분이 근로기준법 제23조 위반이 아니고, 사회통념상 상당성을 갖췄다면 징계의 정당성이 인정될 수 있으며, ② 취업규칙이 징계 종류를 제한적으로 열거하고 있는 경우, 그 외의 징계 종류로의 처분은 무효입니다. 다만, 그 징계가 오랜 기간 규범적 노동관행으로 정착된 경우엔 예외적으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3. 나오며
징계처분은 사용자의 인사재량 중 중대한 권한으로, 그 근거와 절차, 예측 가능성, 형평성 등을 모두 충족해야 법적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법원은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 등에서 근로자에 대한 징계사유가 제한적으로 열거돼 있는 경우에는 열거돼 있는 사유 이외의 사유로는 징계할 수 없다는 것이 기본적인 원칙입니다(대법원 1994. 12. 27. 선고 93다52525 판결 참조).
징계사유와 더불어 징계 종류 또한 단순한 행정적 분류가 아니라, 근로자에게 직접적으로 불이익을 부과하는 구체적 근로조건의 일환입니다. 따라서 취업규칙을 통해 명확히 규정돼야 하며, 규정되지 않은 징계 종류를 임의로 사용하는 경우 위법성 판단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노사 간 예측 가능성과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징계 종류와 양정 기준을 명확히 취업규칙에 반영하고 그 변경이 있을 경우에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