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이비드 브룩스 저서 ‘사람을 안다는 것’을 읽고 나서

작성자 : 박상융 변호사

문답식 조서작성 관련해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그것도 경찰서 등 수사관서 출석조사가 대부분이다. 킥스(형사사법정보망 입력) 때문에 출장조사를 하지 않는다. 고소, 고발 신고사건의 경우 충분히 자술서를 통해 경찰서 출석 없이 조사받을 수 있는데도 말이다.

인터넷, 이메일, 화상조사 등을 통해서도 조사할 수 있다. 오히려 그것이 더 조서작성의 임의성을 보장할 수 있다. 법원 민사재판도 화상재판을 통해 하는데도 말이다. 출석조사의 경우 문답식 조사라는 것이다. 수사관의 질문과 답변 작성, 정리를 통해 조사가 이루어진다. 불필요한 수사관의 질문도 많다.

재산정도, 병역, 종교, 학력, 심지어 발달장애도 묻는다. 사건내용과 전혀 관련도 없다. 질문도 답변하는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는 질문이 많다. 선입견을 가지고 장황하게 질문을 한다. 수사관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법적 의견을 묻는 경우도 많다. 사건내용을 파악하지도 않고 계속 진술하라는 식의 질문도 있다.

조사는 경청이다. 들어야 한다. 그런데 실제 조사현장은 그것이 아니다. 수사관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강요성 의혹의 질문이 많다. 변호사가 이에 관해 이의을 제기하면 수사방해라고 다그친다. 그러면 변호사는 그런 내용을 조서에 기재하라고 한다.

필자는 최근 데이비드 브룩스 저서 ‘사람을 안다는 것’(웅진지식하우스 출판)이라는 책을 감명깊게 읽었다. 서로를 깊이 알면 우리의 세계는 어떻게 넓어지는가. 조사는 내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경청하는 것이다.
한 사람을 진심으로 바라보는 일이다. 수사관 이전에 조사받는 사람과 대화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공감대를 형성하는 질문도 하여야 한다. 필자는 때로는 수사관이 변호사 입장에서 조사받는 사람이 하고 싶은 질문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조서의 임의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

조사를 받은 후 죽겠다라고 호소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암환자로 암수술을 받았다. 조사과정에서 수사관의 엄벌을 암시하는 말을 듣고 죽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도 조사관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조사가 끝난 후 돌려보낸다.

거기에 더해 또 조사를 받으라고 다그친다. 조사를 받는 사람의 심정을 헤아리지 않는다.
총, 칼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다. 펜, 말로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조사를 받고나서 심적 부담으로 자살을 하는 사람의 심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좋은 질문이란 무엇인가. 닫힌 질문이 아닌 열린 질문을 하여야 한다. 겸손하여야 한다.

외롭게 지내면서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은 적이 있는가. 듣고 듣고 듣고 또 들어라 당신이 이렇게만 하면 사람들은 기꺼이 자기 말을 할 것이다. 왜냐하면 평생 그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수사받는 사람들은 외롭고 불안하다. 특히 조사 도중, 조사 후 불안한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그리고 배려하여야 한다. 필자가 본 수사관 중에 조사 후 옥상에 가서 같이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았다. 조사과정에서 서로 오고 간 감정에 대해 서로 회복하려고 했다. 조사 전에 차 한잔을 준 사람도 있었다.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조사에 임하여야 한다. 흉악범이라도 그가 가족이 보고 싶다면 통화도 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범행동기에 대해 속시원하게 말한다. 수사관에게 조사받고 수갑에 채워져 체포되면서도 고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인간적인 수사관이기 때문이란다. 구속 송치 후, 재판, 수감 후에도 수사관이 면회를 간다. 그리고 다시 재범을 저지르지 않도록 인간적으로 대화를 한다. 수사관 자신만의 이야기만 해서는 안 된다. 조사를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 대화에 참여하고 수사에 협조를 한다.

데이비드 브룩스는 자신의 책에서 더 깊은 이해와 연결로 나아가는 관계의 기술로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관계의 기술을 말한다. 다른 사람, 즉 조사받는 사람이 지금 겪고 있는 것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다른 사람을 깊이 바라봄으로써 그 사람이 누군가가 자기를 바라보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능력, 즉 누군가를 정확하게 앎으로써 그 사람이 자신을 소중한 존재라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수사관은 말, 글로써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 법지식 이전에 사람을 알고 사람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경청하고 관찰하여야 한다. 인내심이 필요하고 공감능력이 필요하다.

데이비드 브룩스의 저서 ‘사람을 안다는 것’ 일독을 권한다. 문답식 조사, 8시간 넘는 조사, 휴식시간도 없는 조사, 수사관이 일방적으로 조사일정을 정하는 조사. 조사받는 사람이 수사관의 지시에 응하지 않으면 수사관이 수사보고서를 통해 악의적으로 자신을 나쁘게 기재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수사관, 재판관도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다. 나아가 문답식 조서작성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 대화와 소통의 조사로 바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