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KYUL newsletter_지식재산권_창간준비호_업무사례]

 

‘Be the Reds!’ 사용금지 가처분

 

 

 

문건영 변호사

 

1. 들어가며

 

국가 대항 축구경기가 있을 때면 붉은 티셔츠에 두건을 쓴 응원단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들의 모습 어디에선가, 우리는 2002년 월드컵의 응원 문화와 열기를 발견하곤 한다. 그런데 나는 이들이 입은 티셔츠에 자꾸만 눈이 간다. 2002년 월드컵 당시에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새겨져 있던 ‘Be the Reds!’라는 문구는 찾아보기 힘들고, 다른 여러 가지 문양과 글자들이 새겨져 있다. 위 문구가 사용되지 않게 된 내막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저작권자의 과도한 권리 주장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하고 짐작해 본다.

 

이런 짐작의 이유는 내가 진행했던 사건 때문이다. 2002년 월드컵으로부터 거의10년이 지난 2011, ‘Be the Reds!’라는 글자를 디자인 한 사람으로부터 그 저작권을 양수한 사람이 월드컵 응원 사진의 사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왔다. 그는 인터넷 사진판매 업체에 대해 사용금지 가처분을 신청하면서, 그 디자인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응원하는 장면을 촬영한 사진을 DB에 저장해서 유료로 사용허락 하는 것이 저작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대로라면, 저작물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사진을 촬영해서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리면 모두 저작권 침해가 되는 것이었다. 사진 중에는 티셔츠를 입은 모델을 정면에서 촬영한 것도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응원하는 사진도 있었는데, 그들 가슴의 ‘Be the Reds!’라는 글자는 읽을 수는 있었지만, 디자인은 명확히 보이지 않았다.

 

사건은 상식에는 반하는 듯했지만, 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받기는 쉽지 않았다. 내가 사건을 접했을 때, 이미 저작권자의 사진 DB 업체에 대한 가처분이 인용된 상태였다. 그 후 가처분이의가 받아들여졌고, 서울고등법원에서 저작권자의 항고도 기각되어 확정되었다. 하지만, 관련된 형사사건에서 저작권법 위반으로 기소된 세 개의 인터넷 사진판매 업체 중 한 곳은 1심의 무죄가 파기되어 2심에서 저작권법 위반에 대해 유죄가 선고되었다. 세 개의 사건이 모두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2. 판결의 내용과 의의

 

이 글에서 다루어 보려는 것은 위 서울고등법원의 2012. 6. 28.자 가처분 이의 결정이다. 이 결정은 ‘Be the Reds!’를 디자인 한 도안(‘이 사건 도안’)과 그것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을 촬영한 사진(‘이 사건 사진’)에 대해 의미 있는 판단을 하였다.

 

. 이 사건 도안에 대한 판단

 

우선, 이 사건 도안에 대해서는 그것이 디자인적인 요소 때문에 특별한 주목을 끌었다기 보다는, 많은 사람들의 거리응원에 사용된 데에 따른 외부적인 변수로 인해 주목을 끌게 되었다면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2002년 월드컵 이미지를 떠올리도록 하는 반사적 이익을 누리게 되었다고 판단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수많은 국민들이 우리나라 월드컵 축구 대표팀의 서포터 단체인붉은 악마의 이미지를 색상으로 표현한 붉은색 티셔츠나 두건을 착용하고 경기장과 거리 등에서 우리나라 대표팀을 응원하였고, 위와 같은 응원문화가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우리나라 대표팀이 거둔 우수한 성적에 비견될 만큼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화제가 되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전면에 이 사건 도안이 인쇄된 붉은색 티셔츠를 착용하였으나, 그 외에도KOREA’, ‘ALL THE REDS’, ‘한민국’, ‘Reds’, ‘AGAIN DREAM’, ‘Again 2002등이 새겨진 붉은색 티셔츠도 착용하였는데, 당시 위와 같은 응원문구의 의미 내용이나 도안·디자인상의 차이는 붉은색 티셔츠라는 공통된 요소에 가려져 특별한 효과를 나타내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 당시 이 사건 도안은 회화나 서예와 같은 통상의 미술저작물이 갖는 디자인적이고 예술적이며 시각적인 창작적 표현형식의 독특성으로 인하여 특별한 주목을 끌었다거나 그 자체가 예술품으로서 감상의 대상이 될 정도의 예술성이나 독창적인 표현력을 지녔다기보다는, 표현 소재로서 공중의 영역에 있는 문자의 조합인Be the Reds!’라는 다소 선동적이고 호소력 있는 응원문구가 사용되었다는 점(위 응원문구 자체는 이 사건 도안의 저작자가 창안한 것이 아니다)과 여기에 다양한 도안이 인쇄된 붉은색 티셔츠와 그 티셔츠를 착용한 사람들이 군집하여 만들어낸 집단적이고 역동적인 시각적 이미지의 효과가 강렬하였다는 점 등과 같은 ‘이 사건 도안의 표현형식 밖에 있는 외부적인 변수’로 인하여,  주목을 끌게 되었고, 이후 나름의 대표성도 얻게 됨으로써, … 이 사건 도안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2002년 월드컵 이미지를 떠올리도록 하는 반사적 이익 누리게 되었다.

 

따라서, 이 사건 도안의 저작권법상 보호범위 내지 제3자의 자유이용 범위를 정할 때에는 표현력과 가치의 상당 부분이 응원문구 자체의 특성과 우리나라 국민들의 집단적인 활동에 기한 것이라는 사회문화적 배경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 사건 도안이 획득한 표현력과 사회문화적 가치 전부를 저작권자가 배타적으로 독점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저작물의 창작 내지 가치 형성에 저작자가 기여한 것 이상의 것을 부여하는 결과가 되어 정의와 공정의 원리에도 반한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판단에 따라, 이 사건 도안의 저작권자는 권리에 대한 본질적 침해가 아닌 한 공공복리와 문화의 다양성과 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저작권법의 이념상 그 이용을 수인할 의무가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현재에 이르러 위와 같은 역사적이고 사회문화적인 의미내용을 갖는 월드컵에 대한 이미지와 기억을 효과적이고 구체적으로 되살려 표현하기 위해서는 당시에 널리 사용된 도안이 인쇄된 티셔츠와 두건 등의 사물을 이용하는 것이 부득이하거나 필수적이고, 이를 이용하지 않고서는 그에 대한 표현이 어렵게 되는 면이 있으며, 이 사건 도안이 인쇄된 티셔츠 등을 착용한 인물을 표현에 이용하는 경우까지 침해에 해당한다거나 이 사건 도안이 이용된 모든 경우에 이용허락을 받을 것을 요구하게 되면, 이 사건 사진과 같은 사진저작물은 물론이고 미술, 연극, 영상저작물 등에 대한 창작 활동을 통하여 2002년 당시 공중이 집단적으로 형성한 월드컵 이미지를 표현할 자유 내지 표현방법 선택의 자유가 부당하게 제한될 우려도 있으므로, 이 사건 도안의 저작권자로서는 권리에 대한 본질적인 침해가 아닌 한 공공복리와 문화의 다양성과 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저작권법의 이념상 그 이용을 수인할 의무가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

 

. 이 사건 사진에 대한 판단

 

한편, 이 사건 사진에 대해서, 위 가처분이의 판결은 우선 법논리적·형식적인 판단에 따르면 저작권 침해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음을 밝혔다.

 

저작물을 그 목적을 달리하여 사진에 고정하는 것 역시 복제에 해당할 여지가 있으며, 저작물이 인쇄된 티셔츠나 두건에 주된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해당 저작물이 명확하게 특정되도록 촬영된 사진은 당해 저작물 자체에 대한 복제로 인정될 수 있고, 그 사진을 홈페이지에 게시하여 판매, 대여하는 것은 저작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으며, 거리응원 사진이라 하더라도 당해 저작물에 주된 초점이 맞춰져 있어 해당 저작물이 명확히 특정되는 경우에는 복제로 인정될 수 있고, 이와 같은 사진을 다시 복제하거나 판매하는 행위 역시 저작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이어서, 이 사건 사진이 저작권 침해가 되지 않을 수 있는 세 가지근거를 밝혔다. , “① 이 사건 도안을 이 사건 사진에서 이용한 것은 이 사건 도안의 보호범위 밖에 있거나, 앞에서 본 이 사건 도안 자체의 특성, 이 사건 도안이 이 사건 사진에 표시, 이용된 방법과 위치, 이 사건 사진 전체 내지 창작적인 표현 부분과 이에 표시, 이용된 이 사건 도안 사이의 양적, 질적 주종관계 등에 비추어, ② 이 사건 사진은 이 사건 도안을 이용하였으나 이를 완전히 소화하여 작품화함으로써 이 사건 도안과의 실질적 유사성이나 종속적 관계를 인정할 수 없는 별개의 완전히 독립적인 새로운 저작물이 창작된 것으로서 이 사건 도안에 관한 저작권을 침해하였다고 볼 수 없거나, ③ 침해 자체는 일응 인정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저작권법 제28조에서 정한 정당한 범위 내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는 공표된 저작물의 인용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판단의 이유로서 위 판결이 언급한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       이 사건 사진은 월드컵과 관련된 사상 내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하여 이 사건 도안이 갖는 고유한 창작적인 표현형식에 드러난 예술성에 초점을 맞추었다거나 이를 직접 이용하였다기보다 월드컵이나붉은 악마를 상징하는Be the Reds!’라는 응원문구의 ‘문자적 의미’를 사진 영상을 통한 표현력의 극대화를 위하여 간접적이고 부수적으로 포착, 이용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일 뿐이다.”

 

-       이 사건 사진의 주된 피사체 내지 표현 대상은 촬영자 정면을 향하여 다양한 동작을 취하고 있는 인물 내지 그가 취하는 생기발랄한 표정 등으로서 이러한 경우 사람의 동작이나 얼굴의 표정이 갖는 강한 인상 내지 표현력과 이에 수반한 관찰자의 시선에 대한 강력한 흡인력으로 인하여, 필연적으로 이 사건 사진에 대한 전체적인 관념과 느낌에 있어서 이 사건 도안을 포함하여 이 사건 사진의 영상에 촬영, 표현된 배경적 성격의 사물들이 갖는 표현도는 상대적으로 감소되거나 위 인물의 표현 형식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 의도적으로 저작물에 초점을 맞춘 사진의 경우 침해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할 것이나, 사안에 따라 당해 저작물이 주된 피사체로서 이용된 것이 아니라 배경으로 우연히 삽입, 촬영되거나 정당한 범위 내에서 간접적이고 부수적으로 이용된 것에 지나지 않는 경우에는 위법한 저작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런데 앞에서 본 이 사건 사진의 전체적인 구도 속에서 이 사건 도안이 촬영, 표현된 위치와 크기점 등을 고려할 때 (신청인은사진을 예로 들면서 이 사건 도안이 위 사진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 사건 사진의 주된 초점이 이 사건 도안에 있다고 주장하나, 위 사진의 주된 피사체는 인물의 전신이라는 점, 전신 촬영의 경우 사진의 중심부에 사람의 몸이 위치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점, 티셔츠는 일반적으로 몸에 착용하는 것이고 도안은 통상 티셔츠 가운데에 인쇄된다는 점에 비추어 단순히 사진의 중심부에 이 사건 도안이 위치하고 있다는 점만으로 이 사건 도안을 이 사건 사진의 주된 초점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 사건 도안은 정당한 범위 내에서 간접적이고 부수적으로 이용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여지가 있다.”

 

법원의 판단은 형식적이기만 해 보이는 법률의 세계에서 저작물과 사회가 연결된 묵중한 고리를 건져 내어 제시하고 있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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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4. 8. 26. 대법원은 무죄 판결들을 파기하여 원심으로 환송하고, 유죄 판결은 확정하였다. 대법원은이 사건 저작물(Be the Reds의 디자인) ...창작적 요소에 담겨 있는 월드컵 응원문화에 대한 상징성에 비추어볼 때, 이 사건 저작물은 월드컵 분위기를 형상화하고자 하는 위 사진들 속에서 주된 표현력을 발휘하는 중심적인 촬영의 대상 중 하나로 보인다고 하였다. 위와 같은 원심의 판단을 배척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