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명단도 영업비밀로 보호될 수 있나요?
윤복남 변호사
보통 '무엇이 영업비밀일까?'라고 질문하면 특정 제품의 설계도나 회로도, 소프트웨어 소스코드와 같은 중요한 기술상의 정보만을 떠올린다. 그러나, 영업비밀은 이러한 기술정보에 국한되지 않는다. 어떤 제품의 제조원가 정보나 거래처 관련 정보, 고객 관련 정보, 영업계획 등도 영업비밀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고객명단’은 영업비밀로 보호될 수 있을까? 많은 영업관련 종사자들은 거래처 명단의 중요성을 떠올리며, “가능하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국가정보원 산하 산업기밀보호센터에서도 ‘고객명부’를 경영상의 영업비밀로 분류하고 영업지역별 고객 명단, 연령별/직업별 고객 분류표, 대리점/영업점 관련 자료들이 담긴 고객명부는 마케팅, 영업 및 판매전략에 중요한 정보로 활용되므로 영업비밀로 지정해 보호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모든 고객명단이 영업비밀로 보호될 수 있을까?
'고객명단'의 영업비밀성이 논란이 된 사건이 있었다. 해당 사건의 원고는 해외 소재 방직기계 제작 업체인데, 해당 업체의 한국지사에서 영업활동을 하다가 퇴사한 직원이 경쟁사인 다른 방직기계 회사로 옮겨서 기존 고객을 상대로 영업을 한 것이 문제되었다. 해당 사건에서 원고는 피고(퇴직자)가 유출한 대구지역 방직업체 고객명단을 영업비밀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막상 원고(가처분에서는 신청인)가 영업비밀 침해 금지 가처분을 제기하자, 피고(가처분에서는 피신청인) 퇴직자는 방직업체 명단은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다고 하면서 '대구지역 방직업체 명단'이 게재된 방직관련 협회 자료를 증거로 제출하였다. 이 증거자료에 나온 회사명, 주소, 연락처는 누구나 쉽사리 구할 수 있었다. 따라서 단순히 ‘고객명단’ 자체는 영업비밀 요건 중 ‘비공지성’을 갖추지 못한 것이므로 영업비밀로 보기 어려웠다.
필자가 의뢰인(가처분 신청인 회사)과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 보니, 퇴직자(가처분 피신청인)가 유출한 자료(‘고객카드’)는 단순한 고객명단이 아니었다. 해당 고객카드에는 특정 방직업체가 어떤 방직기계를 몇 년도에 도입하여 사용하고 있고, 향후 예상수명이 언제까지 이며, A/S과정에서 알게 된 정보가 무엇인지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해당 퇴직자는 회사 영업담당자라서 이러한 고객카드를 직접 작성하여 관리하고 있었다. 결국 소송 전략을 수정하여 일반적인 고객명단(주소, 연락처, 담당자)이 아니라, ‘해당 고객의 구매제품 관련 히스토리가 담긴 고객카드 정보들’이 영업비밀이므로 이의 사용을 금지해 달라고 청구를 변경하였고, 마침내 인용되었다. 단순한 고객명단과 달리 ‘해당 고객의 구매제품 관련 히스토리가 담긴 고객카드 정보들’은 비공지성, 독립적 경제성, 비밀관리성의 영업비밀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한 것으로 본 것이다.
이와 같이 특정 정보를 영업비밀로 보호하고자 할 경우 보호대상인 특정 정보가 무엇이냐에 따라 자칫 보호하기 어려울 수 있다. 즉 위 사건의 경우 만약 단순한 고객명단만이었다면 그 단순한 고객명단은 영업비밀로 보호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특정 정보를 영업비밀로 보호받기 위해서는 비공지성과 비밀관리성 등 영업비밀의 각 요건을 모두 만족할 수 있도록 영업비밀 보호를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그 계획에 따라 철저히 업무를 수행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