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비서실이 원고가 된 정정보도청구
문건영 변호사
사실관계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전남 진도체육관을 찾았을 때, 울고 있는 다섯살짜리 아이를 위로한 일이 있었다. 이 장면을 촬영한 사진이 여러 신문에서 보도되었는데, A신문은 이 사진에 대해 SNS에서 일었던 논란을 보도했다. 이 기사는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 현장을 찾아…사진이 공개되면서 SNS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박 대통령은...구조 활동을 독려했다. 이 과정에서 울고 있는 권양과 권양의 고모를 위로했는데, 취재진이 이 장면을 촬영했다”라고 하여 앞부분에서 박 대통령의 행적을 먼저 다뤘다. 그리고 뒷부분에서는 “이날 SNS에서는 이 사진을 놓고 논란이 크게 일었다”고 하면서 SNS의 글들을 인용하였다.
이에 대해 대통령비서실과 김기춘 비서실장, 그 외 대통령의 진도체육관 방문을 수행했던 대통령비서실 소속 몇 명의 비서관들은 위 기사로 인해 자신의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A신문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들은 위 기사가 ‘원고 대통령비서실 등이 대통령의 이미지 정치를 위해 쇼크상태에 빠져 있는 권양을 동원하였다’는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원고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이 소송에서 나는 A신문사를 대리하였다.
쟁점
언론중재법은 ‘사실적 주장에 관한 언론보도가 진실하지 아니함으로 인하여 피해를 입은 자’는 그 언론보도에 관한 정정보도를 청구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여기서 ‘사실적 주장에 관한 언론보도가 진실하지 아니함으로 인하여 피해를 입은 자’라고 함은 그 보도내용에서 지명되거나 그 보도내용과 개별적인 연관성이 있음이 명백히 인정되는 자로서 보도내용이 진실하지 아니함으로 인하여 자기의 인격적 법익이 침해된 자를 가리킨다는 것이 기존의 판례이다. 원고 대통령비서실이나 비서관들은 위 보도에서 지명되지 않았으므로, 위 보도와 ‘개별적 연관성’이 명백히 인정되는지가 문제되었다.
한편, 언론보도로 인한 명예훼손이 인정되려면 그 피해자가 특정되어야 한다. 대통령비서실 등 원고들이 기사의 ‘피해자’인지도 문제되었다.
원·피고의 주장
원고들은 스스로가 이 사건 기사의 보도내용과 ‘개별적 연관성’이 명백히 인정된다고 주장했다. 상식 있는 독자라면 기사에서 문제 삼고 있는 행위를 대통령이 아니라 원고 대통령비서실에서 행한 것으로 이해할 것이라 하였다. 기사가 원고 청와대비서실이나 그 구성원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는 통상 대통령을 직접 수행하는 기관은 원고 청와대비서실이라고 인식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피고는, 위 기사는 원고들을 상정하거나 고려하여 작성한 기사가 아니며, 국가의 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에 대한 기사라고 주장하였다. 원고 대통령비서실은 전체 행정부의 공무 중 대통령의 직무를 보좌하는 일부 기능의 공무를 수행하는 기관에 불과하다. 원고들의 논리대로라면 대통령이 업무를 집행하는 모든 사건에 대한 기사는 원고 대통령비서실에 대한 기사라는 논리가 되어 버릴 것이다.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해 대통령비서실이 관련 논란의 피해자라고 나서는 것은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대통령이 책임지지 않고 대통령비서실이 책임진다는 논리라 반박했다.
대법원 판례는 광우병 보도에 관한 사례에서 “비록 그 보도내용에서 성명이나 초상 등을 통하여 특정되지 아니하였고 또한 사전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보도내용 자체로써는 보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 수 없는 경우에도, 언론기관이 당해 보도를 하기 위하여 취재한 내용 등과 당해 보도의 내용을 대조하여 객관적으로 판단할 때에 당해 보도가 그 사람에 관한 것으로 명백히 인정되는 사람 또는 당해 보도를 한 언론기관에서 보도내용이 그 사람에 관한 것임을 인정하는 사람 등은 보도내용과 개별적 연관성이 있음이 명백히 인정되는 자에 해당된다”고 판단하였다. 원고들은 이 판례를 들어 언론중재법상의 ‘개별적 연관성’이 피해자를 확대하는 개념이라 주장했다. 피고는 이에 대해 대통령비서실이 행위의 주체였음에 대한 아무런 언급이 없는 기사에 대해서조차 대통령비서실이 ‘개별적 연관성’이 있는 자라고 하여 소송 제기를 허용한다면, 법원은 엄격한 법리 적용의 장에서 정치적 회피와 언론에 대한 간접적 압박의 수단으로 변질되고 말 것이라 주장하였다.
법원의 판단(1, 2심)
법원은 ① 기사에서 원고 대통령비서실이나 그 소속 공무원인 나머지 원고들을 전혀 언급한 사실이 없는 점, ② 이 사건 기사의 전체적인 취지와 내용상 보도의 대상이 되는 것은 원고들이 아니라 대통령이라고 보이는 점, ③ 수정을 거친 이 사건 기사의 말미에는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참모들’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나, 이 또한 원고들을 직접적으로 지칭하는 표현이 아니고, 이 부분은 반론을 실은 것으로서 ‘참모들’이 권양을 동원하여 만남을 연출하였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내용이 아닌 점 및 기타 다른 이유들을 들면서, 원고들은 이 사건 기사의 내용과 개별적 연관성이 있음이 명백히 인정된다고 보기 어려워 언론중재법에서 말하는 ‘사실적 주장에 관한 언론보도가 진실하지 아니함으로 인하여 피해를 입은 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고, 원고들이 이 사건 기사로 인한 명예훼손의 피해자로 특정되었다고 할 수도 없다고 판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