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체 프로그램저작물에 대한 저작권침해
이지선 변호사
서체 프로그램저작물과 관련하여 (1) 동영상이나 인쇄물을 제작하는 수급자가 저작권침해의 서체파일을 사용한 경우 발주자(도급인)의 책임, (2) 적법하게 구입한 문서작성 프로그램(아래아한글, MS워드 등)의 번들로 제공된 서체파일이 사용자의 컴퓨터에 자동 설치된 경우, 해당 서체파일을 사용한 것이 저작권침해인지에 대한 판결(서울중앙지방법원 2012가합535149 판결)이 있어, 소개한다.
(1) 사실관계
원고는 경마방송 또는 경마와 관련된 영상제작물에 삽입된 자막, 정기간행물, 홈페이지에 피고들(5개의 서체프로그램 제작업체)이 제작한 서체들을 사용하였다. 서체프로그램 저작권 침해에 대한 분쟁이 발생하자, 원고는 피고들을 상대로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을 제기하였다.
(2) 외주업체가 제작한 동영상 등에 대한 발주자(도급업체)의 책임
원고의 동영상 자막에 사용된 서체프로그램이 피고로부터 적법한 라이센스를 받지 않고 사용한 것이어서, 피고의 서체프로그램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원고는 해당 동영상은 다른 업체에 제작을 맡긴 것이므로, 원고는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법원은 “도급인은 도급 또는 지시에 관하여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수급인이 그 일에 관하여 제3자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고(민법 제757조), 여기에서 ‘중대한 과실’이라고 함은 ‘통상인에게 요구되는 정도인 상당한 주의를 하지 않더라도 약간의 주의를 한다면 손쉽게 위법∙유해한 결과를 예견할 수가 있는 경우임에도 만연히 이를 간과함과 같은, 거의 고의에 가까운 현저한 주의를 결여한 상태’를 말하며(대법원 2000. 1. 14. 선고 99다39548 판결 등 참조), 다만 도급인이 수급인의 일의 진행 및 방법에 관하여 구체적인 지휘∙감독권을 유보한 경우, 도급인과 수급인의 관계는 실질적으로 사용자 및 피용자의 관계와 다를 바 없으므로, 수급인이나 하수급인이 고용한 제3자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에 대하여 도급인은 사용자 책임을 면할 수 없다(대법원 1983. 11. 22. 선고 83다카1153 판결 등 참조).”라고 설시하고, 원고가 동영상 제작을 도급함에 있어 도급인으로서 도급 또는 지시에 관하여 중대한 과실이 있었다거나 수급인의 일의 진행 및 방법에 관하여 구체적인 지휘∙감독권을 유보하였다는 점에 관한 피고의 주장, 입증이 없으므로, 해당 동영상에 피고의 서체파일이 사용되었다고 하더라도, 원고가 동영상 제작에 관하여 피고에게 저작권 침해의 책임을 부담한다고는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외주업체가 제작한 홈페이지, 경마정보서비스의 경우에도 같은 판단을 하였다. 비록 피고들의 서체파일이 허락 없이 사용되었다고 하더라도, 원고에게는 저작권 침해의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영상이 아닌 외주제작 인쇄물의 경우 판단을 달리하였다. 원고는 외주업체가 인쇄물을 제작하였으므로 인쇄물에 사용된 서체파일에 관한 저작권 침해의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법원은 외주업체가 제출한 사실조회결과에 따라, 외주업체는 인쇄물에 삽입될 출마표의 경우 원고가 전달받은 파일을 그대로 사용하였고, 홍보 이미지도 원고로부터 전송 받은 ‘AI’, ’JPEG’ 파일을 그대로 인쇄물 제작에 사용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원고가 해당 인쇄물을 공동으로 제작하였거나 적어도 도급인으로서 도급 또는 지시에 관하여 중대한 과실이 있었다고 보아, 원고의 저작권 침해 책임을 인정하였다.
(3) 사용권 계약을 체결한 서체파일의 사용 범위
원고는 피고 중 한 명과 일부 서체에 대한 영구적인 사용권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있었다. 계약상 인정된 범위에서만 서체파일을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원고가 계약상 포함되지 않은 서체를 사용하거나, 계약상 허용된 범위가 아닌 인쇄물 제작 등에 서체파일을 사용한 것은 저작권 침해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4) 자동 설치된 서체파일의 사용
원고가 동영상 등에 피고의 서체를 사용하였는데, 해당 서체는 ‘아래아한글’ 또는 ‘MS워드’ 프로그램에 번들(bundle)로 포함되어 제공되는 서체파일들이었다. 원고가 ‘아래아한글’ 또는 ‘MS워드’ 프로그램을 설치할 때 번들로 제공된 서체파일이 자동으로 원고가 사용하는 컴퓨터의 운영체제인 Windows 폴더의 하위폴더인 Fonts 폴더에 저장되고, 위 저장된 서체파일들은 위 문서작성 프로그램들 이외의 다른 문서작성 프로그램을 사용할 때에도 해당 프로그램을 자동으로 인식하여 사용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법원은 위 사실에 대하여, “이러한 과정은 위 프로그램 개발자에게 서체파일에 관한 라이센스를 부여한 저작권자들이 적어도 이를 묵시적으로 허락하였다고 할 것이므로, 원고가 위와 같은 방식으로 원고의 문자발생기에 저장된 서체들을 사용하였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원고가 해당 서체들을 무단으로 복제∙사용하여 위 피고의 저작권을 침해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다”라고 판단하였다.
즉, 번들로 제공된 서체가 컴퓨터의 폰트 폴더에 자동으로 저장됨으로 인하여, 다른 문서작성 프로그램에서 해당 서체를 자동으로 인식하여 사용하게 된 것은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 이유는 저작권자들이 이를 묵시적으로 허락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위 사건은 항소심에서 조정에 갈음하는 결정으로 종결되었다. 만약 상급심 판단이 있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알 수 없으나, 위 판결에서 언급된 쟁점은 구체적 사례에서도 종종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하급심 판단이라고 하더라도 위 판결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본다.
특히 문서작성 프로그램의 번들로 제공된 서체가 자동 설치됨으로 인하여 해당 서체를 타 문서작성 프로그램에서 사용하게 된 것은 저작권침해라고 볼 수 없다는 법원의 판단에 동의한다. 만약 위와 같은 사용을 금지하려면, 서체프로그램을 제작한 업체 또는 문서작성 프로그램 제작업체가 번들로 제공된 서체를 타 프로그램에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조치를 취해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사용자들이 해당 문서작성 프로그램에서 제공된 서체를 일일이 외우고, 외운 서체만 사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용자에게 과다한 주의의무를 지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