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_지식재산권_11_최신판결]

 

도라산역 벽화 일방적 철거는 인격권 침해

 

 

 

문건영 변호사

 

사실관계

 

통일부는 도라산역 건축공사를 하면서, 2006. 3. 작가 이반(원고)에게 통일문화광장을 도라산역사 내에 조성하려 하는데 이를 위해 도라산역 방문객들에게 남북교류협력의 현실과 통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는 작품을 창작해줄 것을 의뢰했다. 원고는 이에 따라 도라산역사 내에 폭 2.8미터, 길이 100여 미터에 이르는 대형벽화를 제작하여 설치하였고, 소유권은 통일부(피고 대한민국)에 이전하였다.

 

그런데 피고는 도라산역 관광객의 부정적인 여론이 있다는 등의 이유로 2010 5월에 이를 철거하였고, 2011년 초경 이를 소각하였다.

 

사건의 경과

 

원고는 위와 같은 피고의 행위가 저작권법상의 저작인격권 중 동일성유지권 침해에 해당하며, 예술의 자유 또는 인격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였다. 1심 법원은 일반적으로 파괴 행위는 예술가의 동일성유지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포섭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피고가 작품 파괴 전에 설문조사와 간담회를 개최하는 등 일응의 내부 절차를 거친 점 등을 들어 예술의 자유나 인격권이 침해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하였다.

 

항소심 법원도 저작권법상의 동일성유지권의 침해는 부정하였다. 저작권법상 동일성유지권이 보호하는 저작물의 동일성은 저작물이 화체된 유형물 자체의 존재나 귀속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저작물의 내용 등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밖에 없다고 하였다. 다만, “이 사건 벽화를 철거하는 과정에서 손상한 행위, 절단한 행위, 방치하여 추가로 손상한 행위는 개별적으로 나누어 보면 동일성유지권 침해 행위를 구성할 여지도 있으나,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 궁극적인 폐기행위를 저작인격권의 침해로 볼 수 없는 이상, 위 손상, 절단 등의 행위는 폐기를 위한 전 단계 행위로서 그 폐기행위에 흡수되어 별도의 저작인격권 침해를 구성하지 아니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라고 판단하여, 이미 소유권이 이전된 저작물의 손상 행위가 동일성유지권 침해를 구성할 여지는 남겨 두었다. 한편, 항소심 법원은 동일성유지권의 침해를 부인한 것과는 별도로 불법행위의 성립을 인정하면서, 피고가 거친 회의 등의 절차는 공론의 장을 충분히 거쳤다고 볼 수 없는 매우 형식적인 것이었고, 반면, 원고는 작품의 보존에 대해 상당한 이익을 가지고 있었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 판결

 

위 항소심 판결에 대해 피고 대한민국만이 상고하였고, 작가인 원고는 상고하지 않았다. 그러한 이유에서인지 대법원은 저작권법상의 동일성유지권이 침해되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는데, 이에 관한 명확한 언급을 해 주지 않은 점은 아쉽다.

 

다만, 대법원은 동일성유지권과는 별개의 일반적 인격권 침해가 성립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 “저작권법은 공표권, 성명표시권, 동일성유지권 등의 저작인격권을 특별히 규정하고 있으나, 작가가 자신의 저작물에 대해서 가지는 인격적 이익에 대한 권리가 위와 같은 저작권법 규정에 해당하는 경우로만 한정된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저작물의 단순한 변경을 넘어서 폐기 행위로 인하여 저작자의 인격적 법익 침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위와 같은 동일성유지권 침해의 성립 여부와는 별개로 저작자의 일반적 인격권을 침해한 위법한 행위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예술작품이 공공장소에 전시되어 일반대중에게 상당한 인지도를 얻는 등 예술작품의 종류와 성격에 따라서는 저작자로서도 자신의 예술작품이 공공장소에 전시·보존될 것이라는 점에 대하여 정당한 이익을 가질 수 있으므로, 저작물의 종류와 성격, 이용의 목적 및 형태, 저작물의 설치 장소의 개방성과 공공성의 정도, 국가가 이를 선정하여 설치하게 된 경위, 폐기의 이유와 폐기 결정에 이른 과정 및 폐기 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볼 때 국가 소속 공무원의 해당 저작물의 폐기 행위가 현저하게 합리성을 잃고 저작자로서의 명예감정 및 사회적 신용과 명성 등을 침해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객관적 정당성을 결여한 행위로서 위법하다고 하였다. 이러한 전제에서, 이 사건의 경우에도 원고는 특별한 역사적, 시대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도라산역이라는 공공장소에 피고의 의뢰로 설치된 이 사건 벽화가 상당기간 전시되고 보존되리라고 기대하였고, 피고로서도 이 사건 벽화의 가치와 의미에 대하여 홍보까지 하였으므로 단기간에 이를 철거할 경우 원고가 예술창작자로서 갖는 명예감정 및 사회적 신용이나 명성 등이 침해될 것을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피고가 벽화의 설치 이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사유를 들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채 그 철거를 결정하고 원형을 크게 손상시키는 방법으로 철거 후 소각한 행위는 현저하게 합리성을 잃은 행위로서 객관적 정당성을 결여하여 위법하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의 상고는 기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