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차보증금 담보를 목적으로 한 전세권설정등기는 무효인가?
전성우 변호사
1. 관련 대법원 판례
판례는 ‘실제로는 전세권설정계약을 체결하지 아니하였으면서도 임대차계약에 기한 임차보증금반환채권을 담보할 목적 또는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을 융통할 목적으로 임차인과 임대인 사이의 합의에 따라 임차인 명의로 전세권설정등기를 경료한 경우에, 위 전세권설정계약이 통정허위표시에 해당하여 무효라 하더라도 위 전세권설정계약에 의하여 형성된 법률관계에 기초하여 새로이 법률상 이해관계를 가지게 된 제3자에 대하여는 그 제3자가 그와 같은 사정을 알고 있었던 경우에만 그 무효를 주장할 수 있다.’(대법원 2013. 2. 15. 선고 2012다49292 판결, 대법원 2010. 3. 25. 선고 2009다35743 판결, 대법원 2008.3.13.선고 2006다58912판결 등)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위 판례를 근거로, 대법원 판례가 임대차계약에 기한 임차보증금반환채권을 담보할 목적으로 설정된 전세권등기는 통정허위표시로 무효라고 판시하고 있다고 설명하는 견해도 있습니다(조경임, ‘허위표시 제3자의 신뢰보호 범위’, 서울법학 제21권 제3호).
그러나, 위 판례들은 모두 통정허위표시에 해당되어 무효로 전세권설정등기를 말소해야 한다는 결론을 낸 것이 아니라, (가사) 통정허위표시에 해당된다고 하더라도 새로이 법률상 이해관계를 가지게 된 선의의 제3자에 대하여는 무효를 주장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낸 사안들입니다.
따라서, 위 판례를 근거로, 대법원 판례가 통정허위표시로 보아 무효라고 보고 있다고 단정하는 견해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2. 임차보증금 담보를 목적으로 한 전세권설정등기가 유효하다는 근거가 되는 판례
오히려 아래 판례들을 보면, 대법원이 임차보증금 담보를 목적으로 한 전세권설정등기가 유효하다고 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대법원 1998. 9. 4. 선고 98다20981 판결은, 전세권설정계약이 통정허위표시에 해당하여 무효라는 주장에 대하여, ‘전세권설정등기가 원고(임대인)와 위 김삼수(임차인) 사이의 위 임대차계약에 바탕을 두고 이에 기한 임차보증금반환채권을 담보할 목적으로 원고, 위 김삼수, 위 최창호 사이의 합의에 따라 위 최창호 명의로 경료된 사실은 위에서 본 바와 같으므로, 위 전세권설정등기는 유효하다 할 것이고, 비록 원고(임대인)와 위 김삼수(임차인) 또는 위 최창호 사이에 실제로 전세권설정계약이 체결되거나 전세금이 수수된 바 없다거나, 위 전세권설정등기의 피담보채권인 위 임차보증금반환채권의 귀속자는 위 김삼수이고 위 최창호는 원고에 대하여 직접 어떤 채권을 가지고 있지 아니하다 하더라도 달리 볼 것은 아니며(위 김삼수는 위 최창호를 내세워 동인의 명의로 피고로부터 시설자금을 대출한 바 있으므로 적어도 위 김삼수와 위 최창호 사이에는 위 김삼수가 위 대출금을 변제하지 아니하여 위 최창호가 변제할 경우 위 최창호가 위 임차보증금반환채권을 수령하기로 하는 합의가 있다고 볼 여지가 없지 아니하다.), 또한 가사 위에서 본 경위를 사상한 채 위 전세권설정계약만 놓고 보아 그것이 통정허위표시에 해당하여 무효라고 한다 하더라도 이로써 위 전세권설정계약에 의하여 형성된 법률관계를 토대로 별개의 법률원인에 의하여 새로운 법률상 이해관계를 갖게 된 제3자인 피고에게 대항하기 위해서는 피고가 그와 같은 사정을 알고 있었어야 할 것인데 이를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으므로, 원고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위와 같이, 임차보증금을 담보할 목적으로 전세권설정등기를 하였을 경우 그 등기가 유효하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례는, 대법원 2005. 5. 26. 선고 2003다12311 판결 및 대법원 1995. 2. 10. 선고 94다18508 판결에서도 동일합니다.
(2) 대법원 1995. 2. 10. 선고 94다18508 판결은, ‘전세권은 전세금을 지급하고 타인의 부동산을 점유하여 그 부동산의 용도에 좇아 사용·수익하며 그 부동산 전부에 대하여 후순위권리자 기타 채권자보다 전세금의 우선변제를 받을 권리를 내용으로 하는 물권이지만, 임대차는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에게 목적물을 사용, 수익하게 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이 이에 대하여 차임을 지급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그 효력이 발생하는 채권계약으로서, 주택임차인이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 제1항 의 대항요건을 갖추거나 민법 제621조 의 규정에 의한 주택임대차등기를 마치더라도 채권계약이라는 기본적인 성질에 변함이 없습니다. 이러한 차이와 더불어, 주택임차인이 그 지위를 강화하고자 별도로 전세권설정등기를 마치더라도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주택임차인으로서의 우선변제를 받을 수 있는 권리와 전세권자로서 우선변제를 받을 수 있는 권리는 근거 규정 및 성립요건을 달리하는 별개의 것이라는 점(대법원 1993. 12. 24. 선고 93다39676 판결 참조),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의3 제1항에서 규정한 임차권등기명령에 의한 임차권등기와 동법 제3조의4 제2항에서 규정한 주택임대차등기는 공통적으로 주택임대차보호법상의 대항요건인 ‘주민등록일자’, ‘점유개시일자’ 및 ‘확정일자’를 등기사항으로 기재하여 이를 공시하지만 전세권설정등기에는 이러한 대항요건을 공시하는 기능이 없는 점,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의4 제1항에서 임차권등기명령에 의한 임차권등기의 효력에 관한 동법 제3조의3 제5항의 규정은 민법 제621조에 의한 주택임대차등기의 효력에 관하여 이를 준용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의3 제5항 의 규정을 전세권설정등기의 효력에 관하여 준용할 법적 근거가 없는 점 등을 종합하면, 주택임차인이 그 지위를 강화하고자 별도로 전세권설정등기를 마쳤더라도 주택임차인이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 제1항의 대항요건을 상실하면 이미 취득한 주택임대차보호법상의 대항력 및 우선변제권을 상실한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즉, 주택임차인이 전세권설정등기를 경료한 경우, 주택임대차보호법 상의 지위와 전세권자로서의 지위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함으로써, 임차보증금 담보를 위한 전세권설정등기를 유효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3. 임차보증금 담보를 목적으로 한 전세권설정등기는 무효인가?
통정허위표시는 상대방과 통정하여 하는 허위의 의사표시를 말하는데, 허위의 의사표시는 의사표시는 있으되 그에 대응하는 내심의 효과의사가 없는 경우를 말합니다.
그런데, 당사자에게 내심의 효과의사가 있는 한, 의사표시의 법률적 효과와 그것에 의하여 달성하려고 하는 경제적 목적이 서로 모순될지라도 그것이 곧 허위표시로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통설과 판례(대법원 1964. 4. 16. 선고 64다138 판결)입니다. 예를 들어, 신탁행위의 경우, 어떠한 경제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상대방에게 그 목적달성에 필요한 정도를 넘는 권리를 이전하면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 이전받은 권리를 당사자가 달성하려고 하는 경제적 목적의 범위 안에서만 행사하게 하는 행위인데, 동산의 양도담보나 추심을 위한 채권양도가 그에 해당하며, 그러한 행위를 통정허위표시로 무효로 보지는 않습니다(위 조경임 논문에서 인용).
따라서, 임대차계약을 통하여 임차목적물을 실제로 사용 수익하는 임차권자가 임차보증금 담보를 위하여 전세권설정계약을 체결하고 전세권설정등기를 경료하였을 때, 임차인과 임대인은 전세권설정계약 및 그 등기로 임차보증금을 담보하고자 하는 내심의 효과의사가 있고 그 진실한 의사 합치가 존재하는 경우에 해당하여, 통정허위표시로 볼 수 없습니다(위 조경임 논문 또한 같은 의견임).
더 나아가,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면서 임차권등기와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경우도 많지만, 전세권의 담보적 효력을 이용하기 위하여 전세권설정등기를 경료하는 경우 또한 매우 많이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임대차보증금 담보를 위한 전세권설정등기를 무효로 보는 것은 엄청난 사회적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적절하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관련 대법원 판례는 ‘설사 통정허위표시로 무효라고 하더라도’라는 가정적인 판단을 내린 것으로 봐야 할 것이며, 이를 두고 대법원 판례가 ‘임차보증금 담보를 목적으로 한 전세권설정등기가 통정허위표시로 무효’라고 보고 있다고 단정내리는 것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임대차보증금 담보 목적의 전세권설정등기는 통정허위표시에 해당되지 않아 유효하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