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1월 21일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기로 했습니다. 무분별한 차입에 의존하던 기업들의 도산이 이어졌습니다. 그와 함께 수많은 가정도 붕괴했습니다. 그렇게 1997년, 1998년은 IMF 외환위기의 충격이 온 사회를 뒤덮었습니다. IMF의 해였습니다. 자살이 속출하고, 대학을 포기하고, 군입대가 줄을 이었습니다.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는 않아도 대학만 졸업하면 누구나 쉽게 직장을 찾을 수 있었던 시기가 끝난 것은 모두 같았습니다. 양극화, 고용불안, 청년실업 등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위기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절 청년들은 각자의 삶을 안전하게 추스르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그렇게 이들은 이전 세대와는 다른 환경에서, 다른 삶의 길을 걸었습니다. 26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나이 50대 전후의 중년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경제성장의 과실을 일부 누릴 수 있었고, 경제적 안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전 세대와 비교하면 연대보다는 각자도생이 익숙한 세대가 되었습니다.

 

2023년은 우리 청년세대들에게 ‘전세사기의 해’였습니다. 2022년 말부터 여기저기서 터지기 시작하던 전세사기는 2023년 수도권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기승을 부렸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전세사기의 예방도, 피해자 구제도,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 수립도 어느 것 하나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문제가 드러날 때마다 조금씩 땜질식 처방을 한 주택임대차보호법은 결국 대규모 전세사기를 낳았습니다. 전세사기 피해를 위한 대책을 논의하는 상황에서도 또 다른 피해는 계속되었습니다. 전세사기특별법이 시행되었지만 피해자들에게 추가 대출을 하는 방식이어서 실효적인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보완 입법을 하기로 했지만 그 마저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 사이 피해자들의 삶은 가혹하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지난 해 말 피해자들은 기자회견에서 ‘피해자들의 삶이 위태롭다. 지난 9월 민주당이 자체 조사한 강서 전세사기 피해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90%가 정신 건강이 악화됐고 신체 건강의 악화를 겪고 있는 비율도 응답자의 80%를 넘었다. 죽을 용기가 없어서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피해자도 있다.’며 대책을 호소했습니다. 전세사기를 방지할 근본적인 대책은 내놓지 못하였고 여전히 땜질식인 대책조차도 몇 차례 논의가 있는 듯했으나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피해를 야기한 공인중개사들에게 책임을 묻는 소송은 실패했고, 전세사기범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도 못했습니다. 수수방관한 정부여당의 책임을 묻지도 못했습니다. 그렇게 우리 사회는 피해 예방도, 구제도, 재발방지도, 책임을 묻는 데에도 모두 실패한 철저한 무능을 보였습니다.


지난해 여름 피해자 여러 명과 심층면접을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20대~30대의 청년세대가 거의 대부분이었습니다. 당시 민주당의 전세사기 고충접수센터 조사에 의하면 피해자의 70%가 20대~30대, 40대까지 포함하면 89.6%였으니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심층면접에서 피해자들은 직장을 포기하고, 결혼을 포기하고, 출산을 포기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의 삶의 방향이 달라졌습니다. 그 피해의 경험들은 같은 세대들에게 직간접적으로 빠르게 전파되고 있었습니다. 언론을 통해 알려지지 않은 가혹한 피해 경험과 삶의 변화가 지인들을 통해서, SNS를 통해 알려졌습니다. 이들은 전세사기를 통해서 우리 사회의 총체적 무능함을 보았습니다. 2022년 이태원 참사에서 우리 사회가 보여준 무능하고, 무책임한 모습을 이들은 다시 한번 보았습니다.


지금의 중년들이 청년시절 겪은 IMF 외환위기의 충격은 지금의 이태원 참사나 전세사기 사태보다 더 컸을 지 모릅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가 가져온 충격은 빠르게 수습되었습니다. 위기를 초래한 정치세력은 곧 정권교체를 통해 책임을 졌습니다. 우리는 사회 전체가 똘똘 뭉쳐 유능하게, 가장 빨리 IMF의 굴레에서 벗어났습니다. 지금의 중년들은 IMF 외환위기의 아픔을 겪었지만 우리 사회의 유능함과 책임을 묻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 전세사기 사태를 지켜보는 지금의 청년세대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각자도생만이 살길이라는 마음가짐이 이들 세대가 공유하는 의식으로 새겨질지 모를 일입니다.


다시 20여년의 시간이 흘러 지금의 청년 세대들이 중년이 되었을 때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지금보다 더 가혹한 각자도생의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사회 낮은 곳에서 고통받는 이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 것을 이들에게 기대할 수 있을까요?


2024년, 다시 앞으로 4년을 이끌 대표자를 뽑는 총선이 다가왔습니다. 청년세대에게 보다 나은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여줄 기회입니다. 위기를 초래한 이들에게 그 책임을 엄하게 물어야 합니다.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고르듯 쉽고 안전하게 살 집을 찾는 제도를 만들 수 있도록 장애요소들을 제거하고, 근본적인 제도 개혁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2024년은 우리 청년세대의 삶이 더 안전해지는 해가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