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복남 변호사
(장면 #1)
얼마 전 법률 관련 인공지능 모듈을 개발하는 기업의 특강을 들었다. 해당 기업 프리젠테이션의 마지막 장면은 파도 타기하는 사람 사진이다. ‘파도에 먹힐 것인가? 아니면 파도를 타고 나아갈 것인가?’ 의 질문으로 끝을 맺었다. 그런데 왠지 씁쓰레하다. 불가피하게 파도를 타야 한다는 당위는 와닿지만, 그렇다고 진정으로 내켜서 즐거이 개발에 참여해야 할까? 이 인공지능 모듈이 법률종사자 몇 백명을 실직시킬 수 있나 염려되었다.
(장면 #2)
한 시민단체에서 개최한 ‘인공지능 리터러시’ 강좌에 참여했다. 리터러시(literacy)라는 단어가 ‘지식’, ‘교양’을 의미하는 널리 대중화된 단어란 걸 이제 알았다.^^ 인공지능 모듈에 의한 판단으로 채용이나 건강검진 등을 판단하는데 만약 부당한 결정이나 오류가 났을 때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극히 곤란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사람이 판단을 했을 때는 어떤 논리적 근거가 있어서 해당 논리에 대해 다른 반박 논리를 제시하여 분쟁을 하고 해결책을 제시해 온 반면, 인공지능 모듈에서는 그런 논리적 인과관계를 설명하기 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단지 ‘설계자’의 의도만 있을 뿐이다. 참 대응이 막막해질 수 있겠다 싶다.
(장면 #3)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서 개최한 세미나에 참여했다. 4차 산업혁명을 앞두고, 빅데이터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개인정보 보호에서 일정 정도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많은 교수나 실무가들이 주장하였다. 심지어 지식재산권에 비해 개인정보 보호가 너무 과도하다는 식의 대비도 있었다. 그런데 사회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지식재산권을 헌법상 기본권적 성격을 가진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에 직접 대비하는 견해는 정말 동의하기 어려웠다. 법률가들도 기본 소양교육을 잘 받지 않으면 법기술자가 되기 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건 개인정보보호는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서 다양한 측면의 도전을 받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이 도입된 이후에는 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숨은 빅브라더가 과거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개인정보를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며칠 사이에 인공지능에 관련한 3가지의 장면을 후다닥 겪고 나서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온다. 일상에서는 여전히 눈앞에 있는 밀린 소장 작성이 부담을 주고 있고, 뉴스에서는 최순실에 대한 25년 구형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이제 인공지능에 관한 고민에서 벗어나 마음 편하긴 하다. 그러나 3가지 장면에서 꼭 암울하지만은 않았다.
첫째, 기술에 대한 이해가 더 필요하다. 기왕 만들 바에는 오류가 최소화된 좋은 인공지능 법률프로그램을 만들자. 그래서 좀더 접근성 높고, 비용도 저렴하며, 법률전문가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도구를 만들자. 해당 도구가 오류나 편견 없이 작동하도록 최선을 다하자. 인공지능화의 대세는 피할 수 없다.
둘째, 인간에 대한 이해가 더 필요하다. 다양한 방식이 있겠지만, 인문학 공부가 그 주요한 수단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인류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현재의 충돌되는 다양한 가치들에서 어떤 방식으로 기여하는 것이 지금도 좋고, 앞으로도 좋은 일 일지 깊이 숙고하는 태도가 필요해 보인다. 점점 더 복잡하고 어려운 가치충돌의 사회에서 ‘지혜’를 찾아내고, 연마하는 것, 이것은 어느 시대에도 당대 지식인(시민)의 몫이었다.
이제 다섯 살 꼬맹이인 손자가 ‘시리(Siri)’를 나보다 훨씬 더 잘 쓰는 시대이다. 새로운 시대에 맞게, 그러나 고전적 가치를 잊지 않고 다시 세상 속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