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2017. 11. 14. 선고 2016두1066 판결 [요양불승인처분취소]
이상도 변호사
1. 기초사실
가. 대법원 2017. 8. 29. 선고 2015두3867 판결 (제1대상판결)
원고는 2002. 11. 18.부터 2007. 2. 15.까지 삼성전자 LCD공장에서 LCD 패널검사작업을 하였던 근로자였다. 2005년 경 원고에게 다발성 경화증이 발병하였는데, 당시 원고의 나이는 21세였고, 원고나 그 가족들에게 다발성 경화증과 관련된 소인은 없었다.
원고는 2010. 7. 23. 피고(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신청을 하였다. 이에, 피고는 2010. 8. 4.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역학조사를 의뢰하였는데, 산업안전보건 연구원은 ‘‘원고의 작업조건과 업무내용은 충분히 신체적,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만한 조건으로 판단되나, 현재 스트레스와 다발성 경화증에 대한 업무관련성을 판단할 만한 충분한 의학적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업무관련성이 높다고 단언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그런데, 위 역학조사에서는 원고가 검사작업을 하면서 이소프로필알코올을 사용하는 작업을 1일 3∼4회가량 사용하였다는 사실은 확인하였지만, 이소프로필알코올을 사용하는 작업을 할 때 근로자에게 직접 미치는 노출 정도나 그 밖에 인접한 세부공정에서 발생하여 전파ㆍ확산되는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노출 정도를 측정ㆍ조사하지는 않았다. 피고는 위 역학조사 결과를 기초로 2011. 2. 7. 원고에 대하여 원고의 다발성 경화증 발병과 원고의 업무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 사건 요양불승인 처분을 하였다.
이에, 원고는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 사건 소송에서 원고는 위와 같은 LCD 패널 검사작업 과정에서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되었다는 점을 증명하고자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천안지청에 삼성디스플레이 주식회사(삼성전자의 LCD 사업부가 2012년에 분할되어 설립된 회사이다)의 천안ㆍ아산공장에 대한 산업안전ㆍ보건진단 결과에 대한 사실조회와 문서송부촉탁을 신청하였고, 1심법원이 이를 채택하였다.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천안지청은 대한산업보건협회가 2013. 4.경 삼성디스플레이 아산공장에 대하여 산업안전ㆍ보건진단을 실시하여 2013. 5.경 작성한 결과보고서를 가지고 있었는데, 2014. 6. 25. 1심법원에 위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그러나 당시 위 회사가 ‘공정에 따라 취급하는 유해화학물질의 현황 및 개선방안, 작업환경측정 현황 및 개선방안, 안전검사 실시 현황, 누출 시 물질배출처리 시스템 현황, 보호구 지급 현황과 개선방안, 근로자 건강관리 현황과 개선방안 등에 관한 정보’는 영업비밀에 해당하므로 외부에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하여 그에 관한 정보는 삭제되어 있었다.
원심은 원고의 업무와 다발성 경화증 발병ㆍ악화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나. 대법원 2017. 11. 14. 선고 2016 두 1066 판결 (제2대상판결)
망인은 1997. 5. 12. 삼성전자 주식회사에 입사하여 온양사업장 반도체 조립라인에서 근로자로 근무하다가 2003. 7. 15. 퇴사하였다. 2010. 5. 4. 망인에게 뇌종양(교모세포종)이 발병하였고, 이후 항암치료를 받다가 2012. 5. 7. 사망하였다. 원고 및 그 가족들에게 뇌종양과 관련된 소인은 없었다.
망인의 상속인들은 피고(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신청을 하였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2010년 수행한 역학조사 결과 이 사건 사업장의 일부 측정위치에서 낮은 농도의 벤젠이 검출되었으며, 그 무렵 시행된 작업환경 조사에서는 이 사건 사업장의 기계설비에서 높지 않은 수준의 비전리방사선이 측정되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이 사건 역학조사 당시 포름알데히드(Formaldehyde), 에틸렌옥사이드(ethylene oxide), 납 등 일부 발암물질에 대해서는 노출수준을 측정하지 않았으며, 고온테스트를 마친 직후 기계에서 배출되는 고무가 탄 듯한 냄새의 원인물질과 검댕의 성분이나 노출수준에 관해서도 조사하지 않았다. 피고는 위 역학조사 결과를 기초로 2011. 2. 7. 망인의 뇌종양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요양불승인 처분을 하였다.
그 후 반도체사업장의 위험성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지속되자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2012년 반도체사업장의 작업환경과 유해요인을 연구하였고, 2014년경에는 이 사건 사업장에서 근무하다가 퇴사한 후 뇌종양을 진단받은 다른 근로자와 관련한 역학조사를 수행하였다. 그 결과 이 사건 사업장에서 노출기준 이하의 벤젠과 포름알데히드, 비전리방사선이 측정되었고, 고온테스트 후 설비 내부 바닥에 떨어져 있던 고형 먼지에서 납이 검출되었으며, 고온테스트 과정에서 합선이 발생하는 경우 납 성분이 포함된 연기가 발생할 수 있음이 확인되었다.
원심은 망인의 업무와 뇌종양의 발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2. 대상판결들의 판결의 요지
첨단산업분야에서 유해화학물질로 인한 질병에 대해 산업재해보상보험으로 근로자를 보호할 현실적ㆍ규범적 이유가 있는 점,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과 기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근로자에게 발병한 질병이 첨단산업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유형의 이른바 ‘희귀질환’에 해당하고 그에 관한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 특히, 희귀질환의 평균 발병률이나 연령별 평균 발병률보다 특정 산업 종사자 군(群)이나 특정 사업장에서 그 질환의 발병률 또는 일정 연령대의 발병률이 높거나, 사업주의 협조 거부 또는 관련 행정청의 조사 거부나 지연 등으로 그 질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업환경상 유해요소들의 종류와 노출 정도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인정된다면, 이는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단계에서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할 수 있다. 나아가 작업환경에 여러 유해물질이나 유해요소가 존재하는 경우 개별 유해인자들이 특정 질환의 발병이나 악화에 복합적·누적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3. 시사점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조 제1호가 정하는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질병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업무와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그 증명책임은 원칙적으로 근로자에게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의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법적·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면 그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하며, 산업재해의 발생원인에 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더라도 근로자의 취업 당시 건강상태, 질병의 원인, 작업장에 발병원인이 될 만한 물질이 있었는지 아닌지, 발병원인물질이 있는 작업장에서 근무한 기간 등의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경험칙과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인 추론을 통하여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고, 이때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사회 평균인이 아니라 질병이 생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립된 입장이었습니다(대법원 2004. 4. 9. 선고 2003두12530 판결, 대법원 2008. 5. 15. 선고 2008두3821 판결 등 다수).
그런데, 위 대상판결들의 사안과 같이 첨단산업에서 발생하는 희귀질병의 경우, 전통적인 산업분야에서 발생하는 질병 및 재해 등과는 달리, 경험적∙이론적 연구결과가 없거나 상대적으로 부족한 경우가 많으며, 무엇보다 첨단산업에서 사용하는 여러 화학물질과 작업방식 등은 영업비밀에 해당하여 근로자가 이를 확인하기 어려워 근로자의 질병과 업무 간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에 어려운 점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위 대상판결들은, ① 역학조사 시점과 근로자의 근로 시점 간에는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어 근로자의 업무 환경을 파악함에 있어서는 역학조사 자체에 사실상의 한계가 있는 점, ② 유해물질 등에 대한 정보가 영업비밀에 해당하여 유해물질의 종류나 노출 정도를 증명하는 것이 곤란한 점, ③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산업현장의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된 것이라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사업주의 협조 거부 또는 관련 행정청의 조사 거부나 지연 등으로 그 질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업환경상 유해요소들의 종류와 노출 정도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은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단계에서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할 수 있다고 명시적으로 판단하여, 첨단산업현장에서의 업무상 질병과 업무간의 상당인과관계 인정여부에 관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