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토시와 준(準)나비효과
이혁 변호사
1. 시작하는 말
“나비효과”. 나비의 날개 짓과 같은 하나의 작은 변화가 폭풍우와 같은 예기치 못한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이 ‘나비효과’는 1960년대 미국의 에드워드 노턴 로렌즈라는 기상학자가 컴퓨터를 이용하여 기상현상을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에서 초기 조건 값의 미세한 차이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커져서 결국 그 최종 결과에 있어서는 엄청나게 큰 차이가 발생하게 되는 현상을 발견하였는데, 그 후 그가 미국과학협회에서 “예측가능성: 브라질에서의 한 나비의 날개 짓이 텍사스에서 돌풍을 일으킬 수도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면서 대중에 인식되기 시작한 용어라고 한다. 이 ‘나비효과’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는 작은 사건 하나가 나중에 커다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지만, 현재는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등에서도 유사하거나 응용된 의미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비트코인”. 최근 몇 달간 국내에서 가장 핫했던 이슈를 꼽으라면 단연 비트코이이 아닐까 싶다. 과거 몇 달 전과는 달리, 현재는 비트코인 거래의 투명성과 안정성을 강화하는 방식의 제도적 접근이 이루어지면서 그 뜨거웠던 논쟁이 어느 정도 일단락 된 것과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상당히 차분한 상태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시류에 제때 올라타지 못하고 매번 뒤늦게 되돌아보는 필자의 평소 태도가 또 다시 반복되는 느낌이 없지 않으나, 최근 몇 달간 가장 핫한 이슈였던 비트코인에 대하여 다소 분위기가 안정된 현 시점에서 (법률적 검토가 아닌) 필자의 가벼운 생각을 두서 없이 적어보고자 한다.
2. 블록체인과 비트코인
가. 비트코인의 등장
2008년, 실명인지 필명인지 남성인지 여성인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아무도 그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사토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 개인간의 전자 화폐 시스템”이라는 논문을 발표하고 그 이듬해 해당 시스템 프로그램 소스를 배포하면서 비트코인이 세상에 처음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나. 사토시의 기본 목적
사토시는 자신의 위 논문 서론에서 해당 논문을 쓰게 된 가장 핵심적인 목적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즉, 사토시는 위 논문에서 “이 논문에서 우리는, 전자지불 시스템을 이용한 결제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중지불((Double-Spending)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안하고자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논문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님). 한 개의 거래지불 수단을 통하여 복수의 상대방에게 결제를 시도하는 문제에 대한 해법을 마련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그가 제시한 그 해법이 바로 ‘블록체인’ 기술에 따른 ‘분산된 공개장부’(Distributed Public Ledger)’이다.
다. 블록체인: 분산된 공개장부
분산된 공개장부라는 것은, 다소 거칠게 표현하자면 전자시스템을 통하여 거래를 하는 거래 당사자들의 거래 내역이 기재된 장부를 어느 한 곳의 중앙시스템에 집중하여 보관하는 것이 아니고 해당 전자시스템의 작동 내지 운용과 관련된 수 많은 관련자가 해당 전자시스템을 통한 모든 거래 내역을 공개적으로 보유하는 장부라고 할 있다. 예를 들면, A라는 은행을 이용하는 거래 당사자들의 거래 내역은 A은행의 중앙컴퓨터시스템에 모두 집중되어 있는 것이 현재 일반적으로 제도화 되어 있는 시스템이라면 블록체인 기술에 따른 분산된 공개장부는 해당 전자시스템의 여러 관련자가 과거부터 현재시점까지의 모든 거래당사자들의 거래내역을 공동으로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분산장부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을 굳이 “해당 시스템의 여러 관련자”라고 표현한 것은, 본 글은 비트코인과 관련된 글인 점을 고려한 것인데, 비트코인과 관련된 블록체인만을 가지고 이야기 하자면, 비트코인을 사고 파는 모든 거래자가 분산된 공개장부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비트코인 채굴자(Miner)들만이 분산된 공개장부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 등에서는 모든 비트코인 거래당사자들이 공개장부를 갖게 되기 때문에 해킹이나 위변조(이중지불)의 위험이 거의 없다고 표현하고 있으나, 블록체인 시스템은 위변조의 위험이 거의 없다는 설명은 옳을 수 있으나 모든 거래 당사자들이 공개장부를 갖고 있다는 설명은 맞지 않다. 또 하나 부연하자면, 여기서 말하는 해킹은 블록체인 자체(현 시스템으로 말하면 A은행의 중앙컴퓨터시스템)에 대한 해킹을 말하는 것이지 비트코인을 거래하는 개인들의 전자지갑(Electronic Wallet, 은행 계좌로 생각하면 된다)에 대한 해킹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각 개인들의 비트코인이 보관되어 있는 전자지갑에 대한 해킹은 가능하다. 일례로 2015년 슬로베니아의 ‘비트스템프(Bitstamp)’라는 거래소에 대한 해킹으로 해당 사이트가 보유하고 있던 비트코인의 약 12%가 도난 당한 사례가 있었고 최근 일본에서도 천문학적인 금액의 해킹 사고가 발생한 사실이 있는데 이 사례들을 떠올리면 블록체인은 해킹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라. 블록체인과 비트코인의 관계
블록체인 기술(분산된 공개장부 방식)이 해킹이나 위변조의 위험에서 획기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거래 내역이 분산되어 공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해킹이나 위변조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블록체인의 기술적 시스템상, 분산되어 공유되고 있는 장부의 과반수에 해당하는 장부를 모두 공격하여 성공하여야 하는데, 그렇다면 이 분산된 공개장부가 기본적으로 많을수록 해킹이나 위변조로부터 안전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다수의 블록체인이 필요한 사정을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비트코인이다. 사토시는 블록체인을 안전하게 구동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써 비트코인을 만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컴퓨터를 통하여 해쉬함수 문제를 해결하여 1개의 블록을 형성하면 그에 대한 보상으로 일정 수량의 비트코인을 제공한다는 것인데, 쉽게 말하면, 컴퓨터를 이용하여 한 문제의 수학문제를 풀면 1개의 블록이 만들어지는데 이와 같이 만들어진 1개의 블록은 다름 아닌 1개의 분산된(될) 공개장부가 되므로 결과적으로 수학문제를 풀면 블록체인 시스템의 안전성에 기여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보상으로 비트코인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해를 위해 다소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과거 유행하였던 싸이월드의 도토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경우를 생각하면 된다. 무상으로 제공하는 도토리가 비트코인인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1개의 블록은 과거에 만들어진 블록 그리고 향후에 만들어지는 블록과 연결이 되고 이러한 연결된 블록들이 전체적으로 ‘블록체인’을 형성하여 해킹이나 위변조의 위험을 획기적으로 감소시키는 것이다.
참고로 위와 같이 블록을 만드는(만든) 사람을 ‘채굴자’라고 부르는데 블록을 만들면 비트코인을 얻게 되므로 비트코인을 채굴하는 채굴자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 채굴을 빙자삼아 폰지사기 유사의 사기행각이 벌어지곤 하는 것이다.
3. 투자, 투기, 광풍, 인생역전, 대박···: 수 많은 현상들
가. 사토시의 의도 또는 목적
사토시가 핵심적으로 의도한 바는 전자시스템을 통한 거래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해킹을 포함한 이중지불(위변조)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나. 의도하지 않은 현상들
그런데, 사토시가 처음 비트코인을 탄생시킨 목적과 달리 어느 순간 비트코인이 투자 대상이 되기 시작하더니 투자가 아닌 투기라는 우려가 제기되었고 급기야 투기광풍, 비트코인을 통한 인생역전, 대박 등 매우 선정적인 표현이 모든 언론에서 오르내리는 현상까지 오게 되었다. 심지어 정치적인 진영싸움 비슷한 양상까지 초래하였다.
과연, 사토시는 이러한 현상을 예견하거나 의도 하였을까. 사토시 역시 100만개 가량의 비트코인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진 점을 고려하면 사토시가 처음부터 비트코인의 가격 상승을 염두에 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으나, 어찌 되었든 최근 몇 달 사이 국내에서 벌어진 많은 현상들을 직접 의도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필자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비트코인이 남녀노소 구분 없이 묻지마 식의, 인생역전을 꿈꾸며 자신들의 재산과 바꾸는 투자대상이 된 것 자체가 매우 의아할 따름이다. 혹자는 필자의 둔한 투자감각을 지적할 수도 있을 것이고 필자 역시 그에 대하여는 전적으로 동의하나, 비트코인이 (인생역전의 수단으로 생각할 만한) 투자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인지에 여부에 대하여는 여전히 의문을 표할 수 밖에 없다.
투자에는 항상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위험은 보통 체계적 위험(Systematic Risk)과 비체계적 위험(Unsystematic Risk)으로 분류되고 있는데 이러한 분류는 자본시장(증권시장)의 투자위험에 대한 분석도구로 출발하였으나 현재는 대부분의 투자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주식을 예로 들자면, 먼저 비체계적 위험이란 해당 특정 주식 즉 당해 주식을 발행한 회사의 개별적인 위험으로서 포트폴리오 구성을 통한 분산투자로써 그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는 위험을 말하고 체계적 위험이란 특정 기업만이 가지는 위험이 아닌 전 종목에 전반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미치는 위험으로서 2008년 리먼사태에 따른 주가폭락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런데 비트코인과 관련하여서는 체계적 위험과 비체적 위험이 구분이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더리움, 리플, 퀸텀 등 수백 개의 가상화폐 전체 시장을 대상으로 보아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생각된다. 비트코인은 태생적으로 투자에 따르는 위험에 적절히 대응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대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또한 비트코인은 본질적으로 내재가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론상으로나 경험적으로 비트코인의 가격을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으로 봐도 큰 무리는 아니다. 물론 주식에 있어서의 PER, PBR, ROE, ROA 등 가장 기본적인 투자 지표를 통한 주가 예측이 항상 들어 맞는 것은 아니지만 비트코인은 위와 같은 적정가격을 측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척도도 존재하지 않아 투자 여부에 대한 의사결정의 기준 조차 없는 것이다. 혹자는 비트코인이 종국적으로는 현재의 법정 통화를 대체할 것이므로 충분한 투자가치가 있다고 이야기 하고 있지만, 역사적 경험을 통한 필요성 때문에 제도화된 중앙은행제도의 역할과 기능을 고려할 때, 그리고 각국(특히 기축통화인 달러를 발행하는 미국)의 정부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이익인 주조차익(Seigniorage)을 추가적으로 고려할 때 과연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가 법정 통화가 될 수 있을 것인지, 그 가능성은 매우 희박한 것으로 보여진다(블록체인의 혁명성을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한편, 비트코인이 법정 통화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전자화폐로의 기능은 가능하다는 반론은 충분히 그 타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 타당성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화폐의 본질적인 속성인 가치의 안정성이 보장되어야 할 것인데 현재와 같이 거래 수단이 되어야 할 화폐(비트코인) 자체가 투자 내지 투기의 대상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극단적인 예를 들면, 싸이월드의 도토리가 투자 대상이 되어 그 도토리 1개가 수백만원 수천만원이 된다는 것을 두고 단순히 수요공급의 원리에 따른 결과 또는 투자의 본질적 현상이라는 말로 설명이 가능한 것인지, 매우 의문이다.
4. 마치는 말: 준(準)나비효과
사토시는 비트코인을 블록체인의 안정화 수단, 즉 전자결제 시스템상의 이중지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상에 등장시켰는데, 예상치 못한 엄청난 현상들이 발생하였다. 전자결제 시스템의 안정화를 위한 한 번의 날개 짓이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매우 커다란 폭풍우로 다가온 것이다. 부디 그 나비효과가 부작용을 걷어내고 인류의 행복에 큰 보탬이 되는 효과로 자리잡길 기대해 본다.
5. 덧붙이는 말
현재의 국내법상으로는 비트코인을 제도적인 투자대상이나 거래수단으로 포섭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비트코인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상의 금융투자상품으로 볼 수 없고, 비트코인을 「전자금융거래법」상의 전자화폐로 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한편, 최근에 수원지방법원의 형사재판에서 비트코인을 몰수 할 수있는지 여부에 대한 판결이 이루어진 바 있는데 1심에서는, 비트코인은 형법상 몰수하기 적절한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하였으나 2심에서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의 몰수 규정에 따라 몰수를 할 수 있다고 판결을 한 바 있다.
경우에 따라 앞으로 위 각 법률들이 개정되어 비트코인을 금융투자상품 또는 전자화폐로 인정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비트코인이 범죄행위에 악용되는 경우가 많으나 현행 형법에서는 몰수의 대상을 “물건”으로 규정하고 있어 과연 비트코인이 몰수의 대상이 되는 것인지에 대한 논란을 해소하기 위하여 형법의 몰수 규정이 개정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이러한 법개정이 이루어진다면 이 역시 비트코인이 가져온 준(準)나비효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끝.
※ 본 글은 법무법인(유) 한결의 입장과 무관한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