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2018. 2. 2.자 2017마6087 결정
전성우 변호사
1. 사실관계
채무자들이 채권자와의 대규모 발전소 보일러 설치⋅시공 계약을 둘러싼 분쟁에 관하여 대한상사중재원에 중재를 신청하자, 채권자(재항고인)가 중재합의의 부존재나 무효 등을 주장하면서 법원에 중재절차정지가처분을 신청한 사례입니다.
2.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중재법 제6조, 제9조, 제17조의 문언, 내용, 체계 등에 비추어 보면, 중재법이 법원이 중재절차에 관여할 수 있는 경우를 ‘중재법에서 정한 사항’으로 엄격하게 한정하면서 중재절차의 진행을 정지하는 가처분을 허용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는 이상 중재합의의 부존재나 무효 등을 주장하면서 법원에 가처분의 방법으로 중재절차의 진행을 정지해달라고 신청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여, 같은 결론의 원심결정을 정당하다고 보았습니다.
3. 대법원 판시 이유
대법원이 이유로 제시하고 있는 중재법 제6조, 제9조, 제17조 등과 관련한 구체적인 판시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i) 중재법 제6조는 “법원은 이 법에서 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법에 관한 사항에 관여할 수 없다.”라
고 정하여 법원이 중재절차에 관여할 수 있는 범위를 ‘이 법에서 정한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이는 법원 밖에서 이루어지는 분쟁해결절차인 중재절차의 독립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ii) 중재법 제9조 제1항은 ‘중재합의의 대상인 분쟁에 관하여 소가 제기된 경우에 피고가 중재합의가
있다는 항변을 하였을 때에는 법원은 그 소를 각하하여야 한다. 다만, 중재합의가 없거나 무효이거나 효력을 상실하였거나 그 이행이 불가능한 경우(이하 ’중재합의의 부존재나 무효 등‘이라 한다)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정하고, 같은 조 제3항은 ’위와 같은 소가 법원에 계속 중인 경우에도 중재판정부는 중재절차를 개시 또는 진행하거나 중재판정을 내릴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이는 중재합의의 부존재나 무효 등을 주장하는 사람이 중재절차가 계속 중이더라도 중재합의의 대상인 분쟁에 관하여 소를 제기할 수 있고 법원 역시 소송절차에서 중재합의의 부존재나 무효 등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서도, 중재판정부는 법원에 계속 중인 소송절차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중재절차를 개시⋅진행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iii) 한편 중재법 제17조 제6항은 중재판정이 있기 전에 법원이 중재절차에 직접 관여할 수 있는 경우
를 정하고 있다. 즉 당사자가 중재판정부의 권한에 대하여 이의신청을 하면 중재판정부는 선결문제로서 그 권한의 유무를 결정할 수 있고(중재법 제17조 제1항 내지 제5항), 그 결정에 불복하는 당사자가 그 결정을 통지받은 날부터 30일 이내에 법원에 중재판정부의 권한에 대한 심사를 신청한 경우, 법원은 이에 따라 중재판정부의 권한을 심사한다(같은 조 제6항). 중재판정부의 중재판정이 내려진 이후 중재판정에 대한 불복은 법원에 중재판정 취소의 소를 제기하는 방법으로만 할 수 있는데(중재법 제36조 제1항), 법원은 중재합의가 무효이거나 중재판정이 중재합의의 대상이 아닌 분쟁을 다루거나 중재합의의 범위를 벗어난 사항을 다룬 경우에는 중재판정을 취소할 수 있다(같은 조 제2항 제1호 가목, 다목). 중재판정을 받은 당사자가 중재법 제37조에 따라 중재판정에 대한 승인⋅집행결정을 신청하는 경우에도 법원은 그 절차에서 중재합의가 있었는지 여부를 심사할 수 있다(중재법 제37조, 제38조).
(iv) 한편 중재법 제10조는 “중재합의의 당사자는 중재절차의 개시 전 또는 진행 중에 법원에 보전처분
을 신청할 수 있다.“라고 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중재합의를 전제로 중재합의의 대상인 분쟁에 관하여 중재판정이 있기 전에 현상 변경을 막거나 다툼이 있는 권리관계에 끼칠 현저한 손해나 급박한 위험 등을 피하기 위하여 법원에 보전처분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중재판정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중재법 제10조는 중재합의의 부존재나 무효 등을 이유로 법원에 중재절차의 정지를 구하는 가처분신청을 할 수 있다는 근거가 될 수 없다.
4. 이 판결의 의의
중재합의의 부존재나 무효 등 사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법원에 진행되고 있는 중재절차를 정지해달라는 가처분신청은 인정되지 않고, 이러한 경우에는 중재절차에서 해당 사유를 들어 다투는 한편, 법원에 직접 본안소송을 제기하여 중재합의 대상인 분쟁자체를 다투는 방법으로 대응해야 하는 것임을 명시적으로 알려주는 판례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