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우 변호사
1. 검토가 필요한 이유
채무자가 제3자와 사이에 ‘제소전 화해’나 ‘재판상 화해’(민사조정, 임의조정, 강제조정, 화해권고 등)를 통하여 채무자의 유일한 재산을 제3자에게 처분한 경우, 보다 명확히 하면, 채무자가 아무런 채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3자와 통모하여 제3자의 채권을 임의로 작출하여 유일한 재산을 제3자 명의로 처분하는 경우, 민법 제406조에 따른 사해행위 취소(채권자취소) 대상으로 삼아, 채권자의 책임재산으로 복귀시켜야 할 현실적인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현실적인 필요에도 불구하고, 현행 민법 제406조 제1항은 ‘재산권을 목적으로 한 법률행위’만을 사해행위 취소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제소전 화해나 재판상 화해와 같이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이 있어 법률행위라고 보기 어려운 문제점이 있습니다.
2. 재판상 화해의 법률적 성질과 관련한 ‘주석 신민사소송법’의 내용
가. 재판상 화해의 법률적 성질에 대하여 학설은 ① 순수한 사법행위라고 보는 사법행위설(재판상의
화해는 소송행위가 아니라 사법상의 계약으로서 민법상의 화해계약과 다름이 없으나 다만 그것이 법관의 면전에서 이루어지는 한편 법원서기관 등이 조서에 기재하여 확인, 공증이 행하여지는 점에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견해), ② 순수한 소송행위라고 보는 소송행위설(소송상의 화해는 순수한 소송행위로서 민법상의 화해계약과는 그 본질을 달리하고, 따라서 민법상의 화해계약에 관한 규정은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는 견해. 소송행위설은 합의설과 합동행위설로 나누어지는바, 전자는 소송을 종료시키려는 당사자의 합의로 보며, 후자는 당사자 쌍방이 互讓에 의하여 얻은 결과를 일치하여 법원에 진술하는 소송상의 합동행위로 봄), ③ 사법행위와 소송행위가 병존한다고 하는 양행위병존설(소송상의 화해는 민법상의 화해와 소송종료의 합의가 병존하며 따라서 각각 독립, 개별적으로 소송법과 실체법이 적용된다고 함), ④ 사법행위인 동시에 소송행위이기도 하다는 양행위경합설(소송상의 화해는 하나의 행위이지만 민법상의 화해인 동시에 소송행위라는 것임) 등으로 견해가 나뉘고 있습니다.
나. 이 중 판례는 1962. 2. 15. 선고 4294민상914호 전원합의체판결로써 소송행위설로 전환한 이래
소송행위설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고 있고, 다만, 판결문에서 소송상 화해의 본질이 소송행위라고 明言한 예는 적고 대개는 당사자가 재판상 화해에 사법상의 하자 또는 계약해제의 사유가 있다고 하여 화해의 무효 또는 실효를 주장하면서 기일지정신청을 하거나 별소로 화해무효확인청구를 한 사건에서, 그와 같은 신청이나 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면서, 재판상의 화해를 조서에 기재한 때에는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이 있다고 한다든가, 재심의 소에 의하지 아니하고서는 화해의 취지에 반하는 주장을 하지 못한다는 식으로 판시함으로써, 재판상 화해의 본질을 소송행위로 파악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다. 다만, 대법원 판결 중에는 소송행위설 일변도에서 벗어나, ①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절차를
이행한다는 내용의 재판상 화해가 신탁의 방법으로 취해진 것이라면 재판상 화해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신탁관계가 소멸한 것이라 단정할 수 없고, 그 후에 적법한 신탁해제의 의사표시가 있을 때에는 그 해제의 효과를 부정할 수 없다고 한 것(대법원 1966. 2. 28.선고 65다251 판결), ② 소송상 화해는 제220조의 규정에 의하여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을 가질 뿐이고, 그 내용은 당사자 사이의 사법상의 화해계약을 이루는 것이라고 판시한 것(대법원 1971. 1. 26. 선고 70마2535 판결, 1988. 8. 9.선고 88다카2332 판결), ③ 제소전 화해 사건에서 그 화해의 내용이 쌍무계약인 매매로 볼 수 있으면 민법 제536조 이하의 쌍무계약의 효력에 관한 규정과 매매의 효력에 관한 민법 제585조가 적용되어야 한다고 판시한 것(대법원 1972. 3. 28.자 71마155 결정), ④ 재판상 화해는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이 있으나 당사자 간의 사법상의 화해계약이 그 내용을 이루는 것이어서 화해가 이루어지면 그 창설적 효력에 의하여 종전의 권리관계는 소멸한다고 한 것(대법원 1988. 1. 19. 선고 85다카1792 판결, 1992. 5. 26. 선고 91다28528 판결), ⑤ 재판상 화해에서도 제3자의 이의가 있을 때에 화해의 효력을 실효시키기로 하는 약정이 가능하고 그 실효조건의 성취로 화해의 효력은 당연히 소멸되므로, 재판상 화해가 실효조건의 성취로 실효되거나 준재심에 의하여 취소된 경우에는 화해가 없었던 상태로 돌아가므로 화해 성립 전의 법률관계를 다시 주장할 수 있다고 한 것(대법원 1993. 6. 29. 선고 92다56056 판결, 1996. 11. 15. 선고 94다35343 판결)이 있어 주목을 끈다면서, 이처럼 대법원 판례는 재판상 화해에 기판력을 인정함으로써 소송행위설과 기본적 입장을 같이 하지만, 한편 재판상 화해의 내용에 관하여 실체법의 적용을 시인하고, 사법상 화해계약에 특유한 창설적 효력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순수한 소송행위설로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합니다.
(위 가.항부터 다.항 내용은 주석 신민사소송법(V) p.525~528(윤경 판사 집필 부분)에서 인용하였습니다.)
라. 즉, 재판상 화해의 성질을 소송행위로 보면서도, 다만 재판상 화해의 내용에 대하여 실체법의 적용을
인정하고, 사법상 화해계약의 특유한 창설적 효력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순수한 소송행위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순수한 소송행위설에 의하면 실체법적 효력의 하나인 창설적 효력을 재판상 화해에 인정할 수 없으나, 대법원은 재판상 화해에 대하여 사법상의 화해계약에 특유한 창설적 효력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주석 신민사소송법(V) p.538 하단).
마. 나아가, 대법원 2007. 4. 26. 선고 2006다78732 판결이 ‘조정은 당사자 사이에 합의된 사항을
조서에 기재함으로써 성립하고 조정조서는 재판상의 화해조서와 같이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이 있으며 창설적 효력을 가지는 것이어서 당사자 사이에 조정이 성립하면 종전의 다툼있는 법률관계를 바탕으로 한 권리·의무관계는 소멸하고 조정의 내용에 따른 새로운 권리·의무관계가 성립한다.’고 판시하고 있고, 헌법재판소 2003. 4. 24. 선고 2002헌바71 결정이 ‘재판상 화해는 당사자가 권리관계의 주장을 서로 양보하고 분쟁을 종료시키기로 합의하는 데에 그 본질이 있는 것이고 실제에 있어서도 소송당사자의 약속에 의한 분쟁해결을 법원이 받아들인 것에 불과하다’는 취지로 판시하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재판상 화해의 성질을 순수한 소송행위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3. 통설
사해행위취소의 대상은 ‘채무자가 채권자를 해함을 알고 재산권을 목적으로 한 법률행위’입니다(민법 제406조 제1항).
민법 주해(IX) p.816에는 ‘순수한 소송행위는 취소의 대상으로 되지 아니한다는데 이설이 없다. 소송행위가 동시에 실체법상의 법률행위로서의 성질을 가지는 경우, 예컨대 소송상의 상계, 청구의 포기 인락, 재판상의 화해 등은 채권자취소권의 대상이 된다는 견해가 통설이다’고 하고 있습니다.
4. 관련 판례
하급심 판례 중 서울중앙지방법원 2007. 11. 23. 선고 2007가합8261 판결(항소포기로 확정)은 재판상 화해를 사해행위취소 대상인 법률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반면, (i) 서울중앙지방법원 2008. 5. 16. 선고 2007나29545 판결은 ‘재판상 화해, 조정 등과 같은 소송행위가 동시에 실체법상의 법률행위로서의 성질을 가지는 경우에는 채권자취소권의 대상이 된다고 할 것이므로, 이 사건 전소에서 성립된 조정에서 김○♣가 어머니인 피고에게 이 ○○아파트에 관하여 소유권을 이전해주기로 합의한 행위도 채권자취소권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하고, (ii) 서울고등법원 2012. 10. 11. 선고 2011나77575 판결 또한 ‘채권자의 단독행위인 민법상 상계와 달리 상계계약은 상호 채무를 면제시키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계약으로서 채무자의 재산권을 목적으로 한 법률행위에 해당하는 점,조정에 갈음하는 결정에 대하여 소정의 기간 내에 이의신청이 없으면 그 조정에 갈음하는 결정은 재판상의 화해와 동일한 효력이 있는 점, 소송행위가 동시에 실체법상의 법률행위로서의 성질을 가지는 경우, 예컨대 소송상 상계, 청구의 포기.인낙, 재판상 화해 등은 채권자취소권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통설적인 견해인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보면, 상계계약이 조정에 갈음하는 결정의 형식을 빌려 체결된 경우 그 상계계약도 사해행위취소권 행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시한바 있습니다.
다만, 이와 관련한 대법원 판례는 아직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필자가 찾지 못하였습니다.)
5. 재판상 화해와 사해행위취소 소송의 기판력 저촉 여부
가. 재판상 화해의 기판력이 미치는 주관적 범위
재판상 화해를 적은 조서는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이 있고(민사소송법 제220조), 확정판결은 당사자, 변론을 종결한 뒤의 승계인(변론없이 한 판결의 경우에는 판결을 선고한 뒤의 승계인) 또는 그를 위하여 청구의 목적물을 소지한 사람에 대하여 효력이 미치는바(민사소송법 제218조 제1항), 재판상 화해의 기판력이 미치는 주관적 범위는 위와 다르지 않습니다.
즉, 예를 들어 채무자와 수익자(이 사건에서 소외 회사와 피고) 사이의 재판상 화해의 기판력은 당사자인 채무자(소외 회사)와 수익자(피고)에게만 미치고, 채무자의 채권자(원고)에게 그 효력이 미칠 여지가 없습니다.
나. 사해행위 취소 판결의 기판력이 미치는 주관적 범위
판례는, ‘채권자가 채권자취소권을 행사하려면 사해행위로 인하여 이익을 받은 자나 전득한 자를 상대로 그 법률행위의 취소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여야 되는 것으로서 채무자를 상대로 그 소송을 제기할 수는 없고(대법원 1991. 8. 13. 선고 91다13717 판결 등 참조), 채권자가 전득자를 상대로 하여 사해행위의 취소와 함께 책임재산의 회복을 구하는 사해행위취소의 소를 제기한 경우에 그 취소의 효과는 채권자와 전득자 사이의 상대적인 관계에서만 생기는 것이고 채무자 또는 채무자와 수익자 사이의 법률관계에는 미치지 않는 것이므로(대법원 1988. 2. 23. 선고 87다카1989 판결, 2002. 5. 10.자 2002마1156 결정 등 참조), 이 경우 취소의 대상이 되는 사해행위는 채무자와 수익자 사이에서 행하여진 법률행위에 국한되고, 수익자와 전득자 사이의 법률행위는 취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2004. 8.30. 선고 2004다21923 판결)라고 일관되게 판시하고 있습니다.
즉, 사해행위 취소 판결의 기판력은 채권자(이 사건에서 원고)와 수익자 또는 전득자(이 사건에서 피고) 사이에만 그 효력이 미칩니다.
다. 기판력의 객관적 범위
확정판결은 주문에 포함된 것에 한하여 기판력을 가지므로(민사소송법 제216조 제1항), 재판상 화해도 화해조서 내용에 포함되어 있는 것만 기판력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소송물이론 관점에서 보면, 채무자와 수익자 사이의 화해조서 상의 내용은 채무자의 재산처분행위와 관련하여 수익자가 그 이행을 구할 수 있는가라는 이행청구권의 존부이고, 채권자가 수익자를 상대로 한 사해행위 취소 소송의 내용은 채무자의 재산처분행위가 채권자를 해하는 것으로서 취소할 수 있는가 하는 사해행위성 여부인바, 그 소송물 자체가 다릅니다.
라. 재판상 화해와 사해행위 취소 판결의 기판력 충돌 여부
위에서 살펴본 기판력의 주관적, 객관적 범위를 살펴본바와 같이, 채무자와 수익자 사이의 재판상 화해의 기판력은 재판상 화해의 당사자인 채무자와 수익자에게만 미치고 채권자에게 그 효력이 미치지 아니하므로, 그 재판상 화해를 사해행위취소의 대상으로 삼아 이를 취소하더라도 그 취소판결의 효력은 채권자와 피고로 삼은 수익자 또는 전득자 사이에서만 그 효력이 있고, 기판력의 저촉 여부는 전혀 문제될 소지가 없습니다.
한편, 대법원 1975. 5.13. 선고 74다1664 전원합의체 판결은, 채권자가 제3채무자를 상대로 제기한 채권자대위소송의 기판력과 관련하여, ‘채권자가 채권자대위권을 행사하는 방법으로 제3채무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판결을 받은 경우에는 어떠한 사유로 인하였든 적어도 채무자가 채권자 대위권에 의한 소송이 제기된 사실을 알았을 경우에는 그 판결의 효력은 채무자에게 미친다.’라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위 채권자대위소송의 기판력 이론(즉, 채무자가 몰랐다면 채권자의 대위소송 확정판결에도 불구하고 제3채무자를 상대로 다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이론)을 염두에 두면, 채무자와 수익자 사이의 민사조정 또는 제소전 화해 등 재판상 화해 사실을 전혀 알 수 없었던 채권자에게 그 기판력을 확장할 수는 없는 것임은 당연하다 할 것입니다.
따라서, 채무자와 수익자 사이에 재판상 화해가 있었다고 하여, 그 기판력 충돌을 문제삼아 채권자가 수익자를 상대로 그 재판상 화해를 사해행위 취소 대상으로 하여 사해행위 취소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고 할 여지는 없습니다.
6. 재판상 화해 등은 사해행위 취소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고 보아야 함.
위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① 재판상 화해는 순수한 소송행위라고 볼 수 없고, 사법상의 화해계약과 같은 실체법상의 법률행위로서의 성격도 가지고 있으며, ② 채무자와 수익자 사이에 이미 재판상 화해가 있다고 하여 채권자가 수익자를 상대로 제기하는 사해행위 취소 소송과 기판력에 있어서 모순, 충돌될 여지는 없고, ③ 특히 채무자와 수익자 사이에 재판상 화해 등의 방법으로 채권자를 해하는 사해행위가 이루어진 경우(가장 많은 예가 제소전 화해로 재산처분행위를 하는 경우임)에 현행법상 채권자가 그 재판상 화해 등에 대하여 준재심을 청구하여 이를 다툴 수 있는 방법이 없으며, ④ 채권자취소권은 소송 내에서의 공격방어방법으로 주장하는 것은 허용되지 아니하고, 반드시 소에 의하여서만 행사되어야 하는 점에서 소송절차의 명확성과 안정성을 해치는 정도가 일반적인 경우와 다르고, ⑤ 재판상 화해가 사해행위에 해당하여 효력을 상실케 되는 경우는 채무자와 수익자 또는 전득자 모두의 사해의 의사를 전제로 하므로 그 소송행위에 의하여 형성된 상대방의 법률상의 지위를 보호할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크다고 볼 수 없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재판상 화해와 같은 사해행위로부터 채권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채권자가 채무자와 수익자 사이의 재판상 화해를 사해행위 대상으로 삼아 이를 취소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법해석론 측면 뿐만 아니라 법현실과도 부합한다고 할 것입니다.
7. 대법원 판례에 대한 기대
이러한 이유로, 재판상 화해, 제소전 화해 등의 경우, 사해행위 취소의 대상이 되는 법률행위로 포섭하여 해석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는 것이 가장 바람직함은 물론입니다.
만약 이러한 대법원의 판결이 나올 수 없는 경우에는, 사해행위 취소 규정인 민법 제406조를 개정해서라도 법원 절차를 이용한 사해행위를 취소대상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함이 바람직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