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계약직 근로자의 근로조건 차별



이원재 변호사


1. 들어가는 말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및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은 기간제 근로자 및 파견근로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차별적 처우를 받은 경우의 시정절차에 관해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2년을 초과하여 사용되어 고용간주되거나 또는 고용의무가 발생하는 기간제 근로자 또는 파견근로자가 이른바 무기계약직 근로자로 전환되는 경우 이들은 기간제법 또는 파견법의 적용대상이 아니므로 당해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정규직 근로자에 비하여 차별적 처우를 받더라도 기간제법이나 파견법에 따른 시정요구를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따로 무기계약직 근로자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금지하는 명시적인 법조항도 없습니다.

무기계약직 근로자가 당해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정규직 근로자에 비해 차별적 처우를 받는 경우 이런 차별적 처우가 근로기준법 제6조의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하는 차별적 처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지가 문제됩니다.

2. 국가인권위원회의 태도

국가인권위원회는 2000년대 초반부터 '사회적 신분'이라는 용어에 '고용형태'가 포함된다고 해석해 계약직, 정규직 등의 고용형태의 차이를 이유로 한 차별을 시정하라는 권고를 해왔습니다.

일례로 국가인권위원회는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장이 운전직 공무원들에게 지급하는 특수업무수당(계호수당), 정액급식비(식비) 등을 운전직 공무원들과 같은 업무를 번갈아 수행하는 무기계약직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않는 것을 사회적 신분에 의거한 차별행위로 인정해 그 시정를 권고하는 결정을 한 바 있습니다.

3. 법원의 판결

가. 종래의 대법원 판결

종래 대법원은 고용형태를 이유로 한 차별적 처우에 대해 근로기준법 제6조에 따른 차별로 보지 않는 입장을 취해왔습니다.

예를 들면 대법원은 서울특별시 지하철공사의 단체협약이 일반직을 제외한 기능직과 고용직에 한하여 월 33,000원씩 임금을 인상하기로 한 것이어서 일반직을 그 지급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부분은 근로기준법 제5조의 균등처우규정에 위반해 무효이므로 일반직도 그 적용을 받는다고 본 원심판결에 대해 "이 사건 단체협약은 기능직과 고용직의 그동안 불이익을 전보하여 주기 위한 조치로서 그 합리성이 없다고 할 수 없으므로 근로기준법 제5조의 균등처우규정에 위반하여 근로자를 차별하는 것이 된다고는 할 수 없다"고 해 원심판결을 파기하였습니다(대법원 1991. 7. 12. 선고 90다카17009 판결).

유명한 전기통신공사 교환직 정년차별 사건에서도 대법원은 "원고의 교환직렬에서의 인력의 잉여 정도, 연령별 인원구성, 정년 차이의 정도, 차등정년을 실시함에 있어서 노사 간 협의를 거친 점, 신규채용을 하지 못한 기간, 현재의 정년에 대한 교환직렬 직원들의 의견 등에 비춰 원고가 교환직렬에 대해 다른 일반직 직원과 비교해 5년간의 정년차등을 둔 것이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없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1996. 8. 23. 선고 94누13589 판결).

다만 이 대법원 판결들은 고용형태가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서 명시적 판단을 하지 않은 채 단순히 그 차별적 처우에 합리성이 있다고 해, 대법원의 입장이 고용형태가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나. 근래의 하급심 판결

고용형태가 근로기준법 제6조의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명시적 판단을 하지 않았던 종래의 대법원 판결과 달리 근래의 하급심 판결에서는 이를 명시적으로 판단한 사례들이 늘고 있습니다.

(1) 고용형태가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 판결

2010년 서울행정법원은 사무직 근로자의 정년을 55세로 해 기술직 노동조합 조합원에 비해 차별하는 것은 근로기준법 제6조의 균등처우원칙에 반한다는 원고의 주장에 대해, "사무직 근로자의 정년과 기술직 근로자의 정년이 3년의 차이가 나는 것을 들어 근로기준법 제6조에 규정된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하는 차별이라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서울행정법원 2010. 5. 14. 선고 2010구합2203 판결).

2012년 서울고등법원은 비정규직 근로자라는 고용형태가 사회적 신분임을 전제로 이에 따른 차별을 사회적 신분에 의한 차별이라는 원고의 주장에 대해, "비정규직 근로자라는 고용형태가 사회적 신분인지를 보면, '사회적 신분'이란 사회에서 장기간 점하는 지위로서 일정한 사회적 평가를 수반하는 것을 의미하나, 비정규직 근로라는 고용형태 또는 이에 따른 채용경로는 근로계약상 그러한 지위는 변경할 수 없거나 계속적 고정적인 지위로 보기 어렵고, 근로자의 특정한 인격과 관련된 일신전속적인 표지라고 할 수도 없으므로, 근로기준법 제6조에서 규정하는 '사회적 신분'에 포함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12. 12. 7. 선고 2012나3963 판결). 이 사건의 상고심인 대법원 2015년 10월 29일 선고, 2013다1051 판결은 "근로기준법에서 말하는 차별적 처우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을 다르게, 다른 것을 같게 취급하는 것을 말하며, 본질적으로 같지 않은 것을 다르게 취급하는 경우에는 차별 자체가 존재한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근로기준법에서 금지하는 차별적 처우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전제로서 차별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그가 비교대상자로 지목하는 사람이 본질적으로 동일한 비교집단에 속해 있어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따라 비정규직인 계약직에서 일반직으로 전환된 직원과 공개경쟁시험을 통해 일반직으로 임용되거나 정규직 내의 직렬 통합에 따라 일반직으로 자동 전환된 직원들 사이에는 임용경로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동일한 비교집단에 속한다고 볼 수 없어, 근로기준법 제6조 소정의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는지 여부까지 살필 필요 없이, 근로기준법 제6조의 차별금지 조항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함으로써 여전히 고용형태가 사회적 신분인지 여부에 관해서는 명시적인 판단을 하지 않았습니다.

(2) 서울남부지방법원 2016. 6. 10. 선고 2014가합3505 판결

2016년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직업뿐 아니라 사업장 내의 직종, 직위, 직급도 사회적 신분에 해당함을 전제로, 회사가 정규직에게 지급하는 주택수당, 가족수당, 식대 등을 무기계약직에게 지급하지 않는 것은 근로기준법 제6조에 위반해 무효라고 판시하면서 무기계약직에게 미지급 임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하였습니다.

이 판결에서는 "직업 뿐 아니라 사업장 내의 직종, 직위, 직급도 상당한 기간 점하는 지위로서 사회적 평가를 수반하거나 사업장 내에서 근로자 자신의 의사나 능력발휘에 의해서 회피할 수 없는 사회적 분류에 해당하는 경우 이를 사회적 신분이라 할 수 있다"고 전제한 다음, "원고들[업무직(상시계약직)-연봉직]과 일반직은 채용절차나 방법, 임금체계, 보직의 부여 및 직급승진 가능성 등에 있어서 차이가 있는바, 이처럼 채용절차 단계에서부터 각자의 직역이 결정되어 업무직이나 연봉직의 경우 자신의 의사나 능력과 상관없이 일반직처럼 보직을 부여받을 수도 없고 직급승진도 할 수 없는 구조에서는 피고 회사의 업무직 또는 연봉직이라는 고용형태 내지 근로형태는 피고 회사 내에서 자신의 의사나 능력발휘에 의해 회피할 수 없는 사회적 신분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하고, 피고가 일반직 근로자들에게만 이 사건 수당을 지급하고 업무직인 원고들에게는 이 사건 수당을 지급하지 않기로 하는 내용의 업무직 보수규정 부분과 원고들과의 근로계약 부분은 근로기준법 제6조의 균등처우규정을 위반하여 무효라고 판단했습니다.

위 판결은 항소심(서울고등법원 2016나2044835)에서 강제조정에 따라 종결되고, 조정내용은 노사간에 비공개하기로 합의되어, 상급심의 판단으로 이어지지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3) 서울중앙지방법원 2018. 6. 14. 선고 2017가합507736 판결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도 무기계약 근로자라는 지위가 근로기준법 제6조의 사회적 신분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선고했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8. 6. 14. 선고 2017가합507736 판결). 이 판결이 '무기계약직'이라는 지위가 '사회적 신분'에 해당한다고 본 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근로기준법 제6조의 '사회적 신분'이란 '사회에서 장기간 점하는 지위로서 일정한 사회적 평가, 특히 열등하다는 평가를 수반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이 사건을 살핀다. 비정규직 대책의 일환으로서 '무기계약직'이라는 근로계약상의 지위 또는 고용의 형태가 우리 사회에 등장한지 10여 년이 경과하였다. 우리 사회에서 일정 직업을 갖게 되는 경우 일정 기간 이를 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단기간 내에 이를 변경하는 것이 드문 것과 마찬가지로, '무기계약직'이라는 지위는 직업 또는 근로와 결부되었다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한번 취득하는 경우 사회에서 장기간 점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또한, '무기계약직'은 정규직 근로자에 비해 더 낮은 대우나 보수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무기계약직'은 정규직 근로자에 비해 자격이나 능력이 열등하다는 평가가 해당 직장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사건과 같이 '무기계약직 차별'에 해당함을 이유로 한 소송들이 계속하여 증가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사회적 평가에 대한 방증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 원고들의 '무기계약 근로자'라는 지위는 근로기준법 제6조의 '사회적 신분'에 해당한다.”

4. 맺음말

기간제법이나 파견법상 기간제근로자나 파견근로자에 대한 차별 금지 규정과 비교해볼 때, 사업 또는 사업장 내에서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에 대해서 차별적 처우를 금지하는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이를 금지되는 차별로 보지 않는 것은 논리적으로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최근 고용형태의 차이가 근로기준법 제6조의 '사회적 신분'에 해당된다고 본 하급심 판결들이 나오고 있는 것은 이런 점에서 환영할 만합니다. 조만간 상급심의 명확한 판결이 나와 이 문제에 대한 판례가 확립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