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훼손으로 인한 불법행위책임의 성립 여부

- 대법원 2018. 10. 30. 선고 2014다61654 판결



윤세영 변호사




1. 사실관계

원고1은 OOOO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재직하면서 2010. 7.경부터 OOOO당 대표로 활동하였고, 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재직하면서 2011년 12월경부터 △△△△당 대표로 활동하였습니다. 원고 심OO은 원고 이OO의 남편으로서 법무법인(유한) □□의 공동 대표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피고 1은 ‘주간 미디어 워치’를 창간하여 대표로 활동하였고, 2012. 3.21.부터 같은 달 24.까지 사이에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원심판결 별지 9와 같이 원고들을 비판하는 글을 작성・게시하였습니다. 이 글에는 ‘종북 주사파’, ‘종북파의 성골쯤 되는 인물’, ‘경기동부연합의 브레인이자 이데올로그’ 등의 표현이 있습니다.

나머지 피고들은 위 트위터 게시글을 인용하거나 혹은 이와 유사한 내용으로 성명을 발표하거나 기사를 게시・보도하였습니다. 피고 2는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으로서 2012. 3. 25. 새누리당 인터넷 홈페이지에 원심판결 별지 10과 같이 원고들을 비판하는 성명을 작성・게시하였습니다. 피고 뉴데일리 주식회사(이하‘피고 뉴데일리’) 소속 기자인 피고 3, 4는 위 인터넷신문 뉴데일리에 원심판결 별지 11, 12와 같이 원고들을 비판하는 기사를 작성․게재하였습니다. 피고 주식회사 디지털조선일보(이하 ‘피고 디지틀조선’)와 피고 주식회사 조선일보사(이하 ‘피고 조선일보’) 소속 기자인 피고 6, 피고 7, 피고 8, 피고 9는 조선닷컴이나 조선일보에 원심판결 별지 13, 15, 16, 17과 같이 원고들을 비판하는 기사를 작성・게재하였습니다.

2. 사실심의 판단

1심판결은 원고들 청구를 일부 인용하고(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판단함), 다만, 피고 3, 피고6, 피고 7에 대한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하였습니다.

원심판결 역시 원고들 청구를 일부 인용하고, 다만, 1심에서 책임이 인정되지 아니한 피고 3, 피고 7에 대하여는 원고들 청구를 일부 인용하였습니다. 반면, 1심에서 책임이 인정된 피고 2, 피고 8에 대하여는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하였습니다.

3. 판결요지 – 정치적 표현에 의한 명예훼손 등 불법행위의 성립 여부

   가. 다수의견

      (1) 형법상 명예훼손과 민법상 명예훼손

형법은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려면 사실을 적시하여야 하고(형법 제307조 제1항) 사실을 적시하지 않는 경우에는 모욕죄가 성립할 수 있을 뿐이다(형법 제311조). 민법에는 어떠한 경우에 명예훼손이나 모욕으로 인한 불법행위가 성립하는지에 관하여 명시적인 규정은 없지만, 민법상 명예훼손 등을 형법상 명예훼손이나 모욕과 동일하게 보는 것이 법률용어의 일관성과 법체계의 통일성 관점에서 바람직하다.

      (2) 민법상 불법행위가 되는 명예훼손

명예훼손행위가 민법상 불법행위로 되기 위해서는 사실을 적시한 경우이어야 하고 순수하게 의견만을 표명하는 것만으로는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는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여론의 자유로운 형성과 전달에 의하여 다수의견을 집약시켜 민주적 정치질서를 생성·유지시켜 나가야 하므로 표현의 자유, 특히 공적 관심사에 대한 표현의 자유는 중요한 헌법상 권리로서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다만 개인의 사적 법익도 보호되어야 하므로, 표현의 자유 보장과 인격권 보호라는 두 법익이 충돌하였을 때에는 구체적인 경우에 표현의 자유로 얻어지는 가치와 인격권의 보호에 의하여 달성되는 가치를 비교형량하여 그 규제의 폭과 방법을 정하여야 한다. 결국 타인에 대하여 비판적인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사정이 없는 한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

      (3)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명예훼손의 인정 여부

타인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모욕은 허용되지 않지만, 명예훼손과 모욕에 대한 과도한 책임 추궁이 정치적 의견 표명이나 자유로운 토론을 막는 수단으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 정치적 표현에 대하여 명예훼손이나 모욕의 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인정하거나 그 경계가 모호해지면 헌법상 표현의 자유는 공허하고 불안한 기본권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언론에서 공직자 등에 대해 비판하거나 정치적 반대의견을 표명하면서 사실의 적시가 일부 포함된 경우에도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하고, 정치적 이념에 관한 논쟁이나 토론에 법원이 직접 개입하여 사법적 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이념은 사실문제이기는 하지만, 많은 경우 의견과 섞여 있어 논쟁과 평가 없이는 이에 대해 판단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명예훼손으로 인한 책임으로부터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숨 쉴 공간’을 확보해 두어야 하고, 표현의 자유를 위해 법적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운 중립적인 공간을 남겨두어야 한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좌우의 문제가 아니다. 진보든 보수든 표현을 자유롭게 보장해야만 서로 장점을 배우고 단점을 보완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비록 양쪽이 서로에게 벽을 치고 서로 비방하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일반 국민은 그들의 토론과 논쟁을 보면서 누가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정치적·이념적 논쟁 과정에서 통상 있을 수 있는 수사학적인 과장이나 비유적인 표현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까지 금기시하고 법적 책임을 지우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4) 결론

이 사건 표현행위는 의견표명이나 구체적인 정황 제시가 있는 의혹 제기에 불과하여 불법행위가 되지 않거나 원고들이 공인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위법하지 않다고 보아야 한다. ‘종북’, ‘주사파’ 등의 용어가 사용되었으나 이 사건 표현행위의 의미를 객관적으로 확정할 경우 사실 적시가 아니라 의견표명으로 볼 여지가 있다. 이 사건 표현행위 당시 원고 1은 국회의원이자 공당의 대표로서 공인이었다. 그의 남편인 원고 2도 사회활동 경력 등을 보면, 공인이나 이에 준하는 지위에 있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 이 사건 표현행위의 내용을 뒷받침할 만한 관련 언론보도도 적지 않았다.

다만, 종북이나 주사파와 같은 표현에 사실의 적시가 없다고 하여 명예훼손책임을 부정하더라도 모욕이나 인신공격적 표현도 불법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모욕 등을 이유로 하여 불법행위책임이 인정되는지 여부에 관해서는 다시 면밀하게 심리해야 한다. 이때에도 이 사건 표현행위가 정치적·이념적 논쟁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이에 대해 도덕적 또는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을 넘어서 법적 책임까지 인정할 것인지는 표현의 자유를 어느 정도로 보장할 것인지를 고려하여 신중을 기해 판단해야 한다.

   나. 반대의견

      (1) 공통점

다수의견과 반대의견은 모두 민주주의 국가에서 표현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하고, 특히 공적 인물이나 정치적 이념에 대한 비판과 검증은 더욱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하지만, 표현의 자유에도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견을 같이한다.

      (2) 형법상 명예훼손죄와 민법상 명예훼손의 차이점

이 사건은 형벌을 부과하기 위한 형사사건이 아니라 손해배상을 구하는 민사사건이라는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을 구별하는 것은 확립된 법리이기도 하다.

따라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행위를 이유로 형사책임을 묻는 것은 가능한 한 억제되는 것이 바람직하겠으나, 민사책임을 묻는 것은 일방이 위법하게 명예를 훼손당하거나 모욕을 당했다면 인정될 필요가 있다.

      (3)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우리 사회에서 ‘종북’, ‘주사파’, ‘경기동부연합’이라는 용어는 그러한 입장으로 규정된 사람들을 민주적 토론의 대상에서 배제하기 위한 공격의 수단으로 사용되어 온 측면이 있고, 대법원 2002. 12. 24. 선고 2000다14613 판결은 ‘주사파’라는 표현에 대하여 위 표현이 ‘순수 의견’으로 보이는 외관을 가지고 있지만 문제된 기사를 전체적으로 보면 원고가 제작한 프로그램 내용을 들어 원고도 주사파라고 지적한 것으로서, 진위를 가릴 수 있는 사실 적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하였다. 다수의견은 대법원 2002. 12. 24. 선고 2000다14613 판결과 배치된다(이에 대하여 다수의견은 이 판결이 단순히 ‘주사파’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 아니고 기사 전체의 취지, 보도 당시인 1994년을 기준으로 해당표현이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갖는 부정적 의미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피고 1 등이 주사파라는 표현을 사용한 맥락과 글 전체의 취지를 보면, 원고들이 주사파 또는 종북 세력으로 인식되고 있는 경기동부연합에 속해 있음으로써 북한 정권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여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헌법적 기본질서를 부정하는 세력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고, 이 사건 표현행위를 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볼 수도 없다.

      (4) 모욕에 관한 인격권 침해 부분

명예훼손이나 모욕은 형법상으로는 엄밀하게 구분되지만(법 조문 상으로도 명예훼손은 형법 제307조 제1항, 제2항, 모욕은 제311조에서 규정하고 있다), 민법상으로는 모두 인격권 침해로서 불법행위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책임을 발생시킬 수 있고, 어떤 글이 사실 적시가 포함된 명예훼손적인 내용이든, 단순 의견 표명을 넘어서 모욕, 모멸적인 표현이든 이는 모두 민법 제750조, 제751조에 의하여 정신적 손해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으로 하나의 청구권원을 이룬다(즉 소송물이 동일하다). 법원은 표현들이 ‘명예훼손이거나 모욕이어서 사회적인 명예감, 개인의 인격권이 모두 침해되었다’라고 포괄적으로 인정하고 그 전체에 대하여 위자료 금액을 정할 수 있다.

원심이 피고 1, 피고 3, 피고 7의 이 사건 표현행위 중 부부인 원고들이 대등한 관계가 아니고 이데올로그인 원고 2가 원고 1을 조종하고 이용하였다는 인상을 주는 것으로 평가한 부분은 여성비하적인 관점을 전제로 원고 1이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사고능력이 없다고 폄훼하는 것으로서 원고 1의 인격을 침해하는 것이다. 아무리 정치적・이념적 논쟁이라 하더라도 이 사건 표현행위에 나타난것과 같은 여성비하적 관점에서 인격을 침해하는 표현은 그 허용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 보아야 한다.

4. 대법원 판결의 의의

이 판결은 언론인 등이 공인을 상대로 정치적 비판을 하는 경우에 표현의 자유의 보장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가 문제된 사안으로 일반적인 사인들 사이에 아무런 이유없이 ‘종북’, ‘주사파’ 등의 표현을 쓸 경우 여전히 명예훼손이나 모욕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게 될 수 있다고 판단됩니다.

그리고 정치적 표현에 대하여 명예훼손이나 모욕의 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인정하거나 그 경계가 모호해지면 헌법상 표현의 자유는 공허하고 불안한 기본권이 될 수밖에 없으므로 언론에서 공직자 등에 대해 비판하거나 정치적 반대의견을 표명하면서 사실의 적시가 일부 포함된 경우에도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신중하여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입니다. 이 판결은 앞으로 유사한 사례에 대하여 법적 판단의 기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다수의견에서도 보듯이 이 사건에서도 명예훼손은 인정되지 않더라도 모욕으로 인정될 여지가 남아있고 추후 이 부분에 대한 판단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