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도 변호사
1. 들어가며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이하 ‘국가계약법’이라 합니다) 제15조 및 동법 시행령 제59조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정하고 있습니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기간제법’이라고만 합니다)이 시행된지 10년 가령 경과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기간의 정함이 있는 근로계약을 체결하였던 계약직 근로자들 다수가 계약기간의 정함은 없으나 정규직 근로자들에 비하여 승진 및 임금 등과 같은 근로조건에서 일정한 제한을 받는 무기계약직(소위, 중규직) 근로자들로 전환되었습니다. 그런데, 무기계약직들 근로자들은 정규직 근로자들과 사실상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았는바, 정규직 근로자들과 동일한 처우를 요구하는 무기계약직 근로자들의 목소리가 점차 커졌으며, 최근에는 무기계약직 근로자들이 차별적 처우로 인한 손해배상 등을 요구하는 소송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2. 기간제법상 차별처우 금지 규정의 문제점
기간제법 제8조 제1항에서는 “사용자는 기간제근로자임을 이유로 당해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에 비하여 차별적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여, 계약직 근로자들과 무기계약직 근로자들간의 차별을 금지하고 있으나, 무기계약직 근로자들과 정규직 근로자들간의 차별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이에 따라, 무기계약직 근로자들은 차별처우 시정에 관하여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었는바, 기간제법 제8조를 근거로 차별적 처우의 금지 및 차별적 처우로 인한 미지급 임금의 지급을 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3. 근로기준법 제6조의 사회적 신분에 대한 주류적 견해
근로기준법 제6조에서는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하여 남녀의 성을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하고, 국적∙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인 처우를 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바, 위와 같이 기간제법 제8조 제1항에 근거하여 차별처우 금지 및 미지급 임금의 지급을 구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무기계약직 근로자들은 ‘무기계약직’이 근로기준법 제6조 사회적 신분에 해당함을 전제로 차별처우 금지 등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런데, 근로기준법 제6조의 사회적 신분에 관한 주류적인 견해는, ‘근로기준법 제6조의 사회적 신분이란, 선천적 신분과 같이 사실상 쉽게 변경할 수 없는 고정성이나 국적∙신앙 등과 같이 특정한 인격과 관련된 일신전속적 표지일 것을 요하므로, 개인의 노력 여하 등에 따라 변경될 수 있는 고용형태는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무기계약직’과 같은 고용형태가 근로기준법 제6조의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한 대법원의 명시적인 판단은 아직까지 없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4. 무기계약직을 근로기준법 제6조의 사회적 신분으로 인정한 사례
이러한 상황에서, ‘무기계약직’과 같은 고용형태도 근로기준법 제6조의 사회적 신분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하급심 판결이 최근 잇따라 선고되었습니다.
가. 서울남부지방법원 2016. 6. 10. 선고 2014가합3505판결 (이하 ‘제1 대상판결’)
위 사건은, 계약직근로자였다가 무기계약직 근로자들로 전환된 원고들이 정규직 근로자들과 실질적으로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피고 회사가 정규직 근로자들에게만 각종 수당을 지급하자, 이는 근로기준법 제6조를 위반하여 원고들을 차별 처우한 것이므로, 그 동안 미지급된 각종 수당액의 지급을 구한 사안입니다.
위 사건의 재판부는, ‘직업 뿐 아니라 사업장 내의 직종, 직위, 직급도 상당한 기간 점하는 지위로서 사회적 평가를 수반하거나 사업장 내에서 근로자 자신의 의사나 능력발휘에 의해서 회피 할 수 없는 사회적 분류에 해당하는 경우 이를 사회적 신분이라 할 수 있다’고 전제한 뒤, ‘이 사건의 원고들과 정규직 근로자들은 채용절차나 방법, 임금체계, 보직의 부여 및 직급승진 가능성 등에 있어서 차이가 있고, 이처럼 채용절차 단계에서부터 각자의 직역이 결정되어 자신의 의사나 능력과 상관없이 보직을 부여 받을 수도 없고 직급승진도 할 수 없는 구조에서는 무기계약직이라는 고용형태 내지 근로형태는 피고 회사 내에서 자신의 의사나 능력발휘에 의해 회피할 수 없는 사회적 신분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라고 판시하여, 원고들의 청구를 인용하였습니다. 즉, ‘무기계약직’이라는 고용형태가 근로기준법 제6조의 사회적 신분에 해당함을 인정한 것입니다.
다만, 위 사건은 2018. 2. 3. 항소심(서울고등법원 2016나2044835)에서 강제조정으로 종결되었는바, 근로기준법 제6조의 사회적 신분에 ‘무기계약직’이라는 고용형태가 포함되는지 여부에 관한 상급심의 판단은 아직까지 명시적으로 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나. 서울중앙지방법원 2018. 6. 14. 선고 2017가합507736 판결 (이하 ‘제2대상판결’)
위 사건은, 국가기관 등에서 고용직 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일용직을 거쳐 무기계약 근로자로 근무하고 있는 원고들이, 고용직 공무원을 거쳐 기능직 공무원이 된 자들은 고용직 공무원 근무경력이 100% 호봉에 반영되고 있는데도 동일·동종 업무를 수행하는 원고 등의 고용직 공무원 근무경력을 호봉으로 반영하지 않은 단체협약은 근로기준법 제6조 등에 반하여 무효라고 주장하며, 국가를 상대로 고용직 공무원 근무경력이 반영된 보수액과 기존에 지급된 보수액의 차액 상당의 지급을 구한 사안입니다.
위 사건의 재판부는, ‘① 헌법 제11조 제1항1 과 근로기준법 제6조의 규정 취지를 종합하면, 근로기준법 제6조의 사회적 신분은 사회에서 장기간 점하는 지위로서 일정한 사회적 평가, 특히 열등하다는 평가를 수반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고, ② 이와 같은 사회적 신분에 고정성이나 일신전속적인 인격표지성 등을 요구할 경우 사실상 사회적 신분으로 인정될 수 있는 지위는 극소수일 것인데, 이는 신분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오늘날 굳이 ‘사회적’ 요건을 더하여 신분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헌법 제11조의 정신에 반하므로, 근로기준법 제6조의 사회적 신분의 표지로서 고정성이나 인격표지성을 요구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으며, ③ ‘무기계약직’이라는 지위는 직업 또는 근로와 결부되었다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한번 취득하는 경우 사회에서 장기간 점하는 경우가 일반적이고, ‘무기계약직’은 정규직 근로자에 비하여 더 낮은 대우나 보수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무기계약직’은 정규직 근로자에 비하여 자격이나 능력이 열등하다는 평가가 해당 직장 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바, 무기계약직은 근로기준법 제6조의 사회적 신분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여, 원고들의 청구를 인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위 사건은 2018. 7. 4. 확정되었습니다.
4. 결론
제1,2대상판결의 취지에 비춰보면, 법원은 무기계약직 근로자들을 차별적 처우의 사각지대에서 보호해주려는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이에 관하여는 아직까지 고등법원이나 대법원의 명시적인 입장이 없는바, 향후 유사한 소송의 추이를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1헌법 제11조 ①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