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식 변호사
1. 들어가며
산재법에 의한 산재보험은 산업재해에 관해 국가가 보험자로서 재해보상 책임을 져야 할 사업주를 보험가입자로 하고 재해를 당한 근로자 또는 그 유족을 수급권자로 해 재해를 당한 근로자 또는 그 유족에게 재해보상을 실시하는 보험제도다. 이러한 산재보험에는 사용자책임의 실현과 더불어 근로자를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사회보장의 이념이 혼재해 있다. 따라서 보험재정만 충분하다면, 근로자를 가급적 두텁게 보호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의 통계를 살펴보면, 긍정적 측면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해마다 9천 건 가량 이뤄지는 업무상 질병 신청 관련해, 2011년까지는 업무상 질병 인정률이 약 30% 후반 정도 수준에 머물러 있었지만, 2011년 노사정TF를 통한 제도개선을 기점으로는 44~45% 수준으로 인상됐고, 2016년 노사정 논의를 통한 제도 내실화 이후에는 50% 이상 수준으로까지 상승했다. 2018년 고용노동부고시(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 및 근골격계 질병의 업무상 질병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 개정 이후에는 2018년 2분기 뇌심혈관계 질병 인정률이 42%로 상향됐고, 이에 따라 전체적인 업무상 질병 인정률도 62% 정도 수준까지 다다르게 됐다.
이처럼 업무상 질병 인정률이 점차 상승하고 있지만, 간혹 업무상 질병 인정 기준을 잘 알지 못하는 당사자들의 잘못된 신청으로 인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업무상 유해물질의 노출로 인한 질병임에도 불구하고 그와 관련 없는 업무상 과로•스트레스만을 이야기한다거나, 업무상 과로•스트레스를 이야기하면서도 그 주장 내용이 너무나 막연한 경우 등이다. 업무상 질병 인정 기준과 관련해 사전에 조금이라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더라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있었던 사건들도, 결국 이러한 인정기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신청으로 인해 심각한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 이에 여기서는 뇌심혈관계 질병을 중심으로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을 다시 한번 소개하고자 한다.
2. 업무상 질병의 일반적 인정기준
산재법 제37조 제1항은 업무상 질병의 업무상 재해 인정기준과 관련해 '근로자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로 부상•질병 또는 장해가 발생하거나 사망하면 업무상의 재해로 본다. 다만,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없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하고, 다음 각호의 2.는 업무상 질병을 '가. 업무수행 과정에서 물리적 인자(因子), 화학물질, 분진, 병원체, 신체에 부담을 주는 업무 등 근로자의 건강에 장해를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을 취급하거나 그에 노출되어 발생한 질병, 나. 업무상 부상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질병, 다. 그 밖에 업무와 관련하여 발생한 질병'으로 규정하고 있다.
업무상 재해를 그 원인에 따라 구분하면, 사고로 인한 재해와 유해•위험 요인으로 인한 재해로, 그 발생 양태의 측면에 따라 구분하면 업무상 부상, 업무상 질병, 업무상 장해, 업무상 사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중 원인에 따른 구분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산재법 제37조 제1항도 업무상 재해를 1호의 업무상 사고와 2호의 업무상 질병으로 구분하고 있다. 하지만 업무상 사고는 발생 원인 측면에서 구분한 것이고, 업무상 질병은 발생 양태 측면에서 구분한 것이기 때문에, 위와 같은 구분이 반드시 적절하지만은 않다. 업무상 사고로 인해 발생한 부상이 원인이 되어 질병에 걸리는 경우가 있음을 고려하면 업무상 사고와 업무상 질병이 개념적으로 대비돼 사용된 것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업무상 재해는 업무에 기인해 발생한 재해를 말하는데, 산재법은 업무상의 재해를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근로자의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을 말한다'라고 정의한다(산재법 제5조 제1호). 판례는 업무상 재해를 근로자와 사업주 사이의 근로계약에 터 잡아 사업주의 지배•관리 아래 해당 근로 업무의 수행 또는 그에 수반되는 통상적인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업무에 기인해 발생한 재해를 말한다고 한다(대법원 2007.9.28. 선고 2005두12572 전원합의체 판결). 여기서 재해가 업무에 기인해 발생했다고 하는 것은 재해와 업무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됨을 의미하는 것인데, 이러한 인과관계는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을 것을 요구한다.
3. 뇌심혈관계 질환의 세부적 인정 기준
가. 업무상 질병 중 근골격계질병 다음으로 많은 것이 뇌심혈관 질병인데, 뇌심혈관질병은 뇌 또는 심장혈관이 막히거나 터져서 발생하는 질병이다. 뇌심혈관질병은 의학적으로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동맥경화증과 같은 기초 질병이 서서히 진행•악화되는 자연경과적 변화를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나, 산재보험의 무과실책임 원칙 및 최근 판례 태도 등을 고려하면 기초질병이 있더라도 업무상 부담 요인이 인정된다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될 수 있다.
나. 이러한 뇌심혈관 질병의 대상이 되는 것은 뇌실질내출혈, 지주막하 출혈, 뇌경색, 심근경색증, 해리성 대동맥류뿐만 아니라 그 밖에 시행령에 열거되지 않은 뇌졸중, 급성심부전, 청장년급사증후군, 돌연사 등이 그 대상이다. 이와 같은 질병이 업무와 관련되는 위험요인은 스트레스, 과로, 한랭•온도변화•소음 등의 물리적 요인, 일산화탄소•이황화탄소•니트로글리세린 등의 화학적 요인 등이다.
다. 이에 업무와의 관련성을 판단함에 있어서는 발병에 근접한 시기의 사건, 업무 과중성, 장시간에 걸친 피로의 누적, 작업조건을 고려하고, 업무시간을 주요 지표로 하되, 근무 일정, 유해한 작업환경에의 노출, 육체적 강도, 정신적 긴장 등 업무와 관련된 모든 상황을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검토해 종합적으로 판단하게 된다.
라. 이와 관련해 법 시행령 별표 3은 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에 대한 구체적 인정 기준을 따로 마련하고 있는데, 1) 업무와 관련한 돌발적이고 예측 곤란한 정도의 긴장•흥분•공포•놀람 등과 급격한 업무 환경의 변화로 뚜렷한 생리적 변화가 생긴 경우, 2) 업무의 양•시간•강도•책임 및 업무 환경의 변화 등으로 발병한 단기간 업무상 부담이 증가하여 뇌혈관 또는 심장혈관의 정상적인 기능에 뚜렷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육체적•정신적인 과로를 유발한 경우, 3) 업무의 양•시간•강도•책임 및 업무 환경의 변화 등에 따른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로 뇌혈관 또는 심장혈관의 정상적인 기능에 뚜렷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육체적•정신적인 부담을 유발한 경우를 업무상 질병으로 규정한다.
마. 한편 고용노동부 장관은 위 업무상 질병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세부기준을 정해 고시하고 있는바, 우선 돌발적 사건 또는 급격한 업무 환경의 변화와 관련해 이를 증상 발생 전 24시간 이내에 업무와 관련된 돌발적이고 예측 곤란한 사건의 발생과 급격한 업무 환경의 변화로 뇌혈관 또는 심장혈관의 병변 등이 그 자연 경과를 넘어 급격하고 뚜렷하게 악화된 경우를 말한다. 그 판단요령으로는 ① 시간적•장소적으로 돌발적인 사건의 발생상태가 명확해야 하고, 그러한 상황과 발병과의 연관성이 있어야 하며, ② 업무와 관련해 돌발적이고 예측 곤란한 비일상적인 사건으로서 업무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있어야 하고, ③ 돌발 상황 자체가 육체적•정신적인 부담을 초래한 경우로서 돌발사건 발생부터 증상 발생(전구증상 포함)이 일반적으로 24시간 이내에 나타난 경우로 경과 상 개연성이 있어야 하며, ④ 대부분 즉각 발병하는 양상을 보이지만 질병의 특성에 따라 병변의 발생과 그 악화로 인해 자각 증상이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으므로 돌발적이고 예측 곤란한 상황 발생으로부터 증상 발생까지 만 24시간이 넘어가는 경우에도 사건과 발병과의 관련성이 인정되는 경우 업무 관련성을 인정할 수 있으며, ⑤ 돌발적인 사건과 급격한 업무환경의 변화는 뇌혈관 또는 심장혈관의 정상적 기능에 뚜렷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도의 긴장•흥분•공포•놀람 등으로 정신적 부담을 주거나 급격한 신체적 부담을 주는 정도일 것을 제시하고 있다. 다음으로 단기간 업무상 부담과 관련해, 이를 발병 전 1주일 이내의 업무의 양이나 시간이 이전 12주(발병 전 1주일 제외) 간에 1주 평균보다 30% 이상 증가했거나 업무 강도•책임 및 업무환경 등이 적응하기 어려운 정도로 바뀐 경우를 말한다고 하면서, 해당 근로자의 업무가 단기간 업무상 부담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업무의 양•시간•강도•책임, 휴일•휴가 등 휴무시간, 근무형태•업무환경의 변화 및 적응 기간, 그 밖에 그 근로자의 연령, 성별 등을 종합해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와 관련해, 이를 발병 전 3개월 이상 연속적으로 과중한 육체적•정신적 부담을 발생시켰다고 인정되는 업무적 요인이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상태를 말한다고 한다. 이 경우 해당 근로자의 업무가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업무의 양•시간•강도•책임, 휴일•휴가 등 휴무시간, 교대제 및 야간근로 등 근무형태, 정신적 긴장의 정도, 수면시간, 작업 환경, 그 밖에 그 근로자의 연령, 성별 등을 종합하여 판단하되, 1)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발병 전 4주 동안 1주 평균 64시간)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업무와 질병과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평가하고, 2) 발병 전 12주 동안 1주 평균 업무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업무시간이 길어질수록 업무와 질병과의 관련성이 증가하는 것으로 평가하되, 특히 ① 근무 일정 예측이 어려운 업무 ② 교대제 업무 ③ 휴일이 부족한 업무 ④ 유해한 작업환경(한랭, 온도변화, 소음)에 노출되는 업무 ⑤ 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 ⑥ 시차가 큰 출장이 잦은 업무 ⑦ 정신적 긴장이 큰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업무부담 가중요인)에는 업무와 질병과의 관련성이 강한 것으로 평가한다. 3)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52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경우라도 위 업무부담 가중요인에 복합적으로 노출되는 업무의 경우에는 업무와 질병과의 관련성이 증가하는 것으로 평가한다.
바. 결국 뇌심혈관 질병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되는 것은 ① 돌발적 사건 또는 급격한 업무 환경의 변화가 있는 경우, ② 단기간 업무상 부담이 있는 경우, ③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가 있는 경우의 세 가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객관적인 과로의 기준으로서 근로시간이 되겠지만, 각 경우마다 세부적인 인정기준이 다른 것이므로 이러한 업무상 질병을 신청함에 있어서는 그 인정기준의 상이함에 주의할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4. 나가며
근로시간 단축의 영향으로 과로•스트레스에 의한 뇌심혈관계질병이 법원에서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되는 경우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현재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를 경유한 뇌심혈관질병이 소송에서 취소되는 경우는 약 15% 정도라고 한다. 위원회는 관련 법령, 규정, 지침 등에 따라 업무상질병여부를 판단하나, 법원은 소송에 현출된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폭넓게 업무와 업무상 질병의 상당인과관계 여부를 판단하는 점에서 아직 그러한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라 짐작된다.
이처럼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판정 결과가 법원에 의해 취소되는 경우가 아직 있지만, 과거와 비교하면 공단의 업무상 질병 인정 비율이 매우 상승한 것도 사실이다. 그 이유는 고용노동부 장관이 고시한 업무상 질병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세부기준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인데, 이러한 현상은 산재보험을 운용함에 있어서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