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실관계

피고는 불교 단체의 재산 관리를 목적으로 1993. 3. 3.경 소속 사설 사암의 토지, 건물 및 출연금 등을 기본재산으로 하여 설립된 재단법인이고, 원고는 피고의 전임 이사장이 물러나면서 외부에서 영입되어 2021. 1. 19. 피고의 이사로서 취임 등기를 마치고 이사장으로 선임된 자입니다. 원고가 피고의 이사장으로 선임될 당시 피고의 임원은 이사장 원고, 상임이사 D, 이사 E, F, G, H, I 등과 감사 J, K이었고, 위 임원들은 피고 소속사설 사암의 각 주지, 신도회장 등이었습니다.

이후 2021. 10. 경 원고는 감사 K를 횡령혐의로, 다음달에는 상임이사 D를 사문서 위조 및 횡령 교사로 고소하는 등 내부적으로 갈등이 발생하였고, 이후 피고의 이사들이 임시이사회 소집을 요청하여 이에 따라 소집된 이사회에서 원고를 이사에서 해임하고 그 대신 상임이사 D를 이사장으로 선임하고, S를 이사로 선임하는 등의 결의(이하 ‘이 사건 해임결의’라고만 함)를 하였습니다. 해임사유로는 원고의 분쟁초래, 다른 이사들의 명예를 훼손하여 현저히 부당한 행위를 한 점, 정기이사회 의사록에 대한 날인을 거부하여 피고의 업무를 방해한 점 등을 들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원고는 이 사건 해임처분이 절차적 하자가 있어서 무효이고, 설령 절차적 하자가 없다고 하다라도 정관에 기재되어 있는 임원의 해임사유인 현저한 부당행위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이 사건 해임결의는 무효임을 확인한다는 취지로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2. 제1심 및 항소심의 판단

이에 대하여 제1심(청주지방법원 제천지원 2022. 8. 18. 선고 2022가합10111 판결)은 이 사건 해임결의가 무효임을 확인하였고, 위 제1심 판결에 대하여 피고가 항소를 하였는바, 항소심[대전고등법원 2023. 7. 13. 선고 (청주)2022나51288 판결]은 제1심과 같이 이 사건 해임결의가 무효임을 확인하면서 피고의 항소를 모두 기각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항소심은 원고가 주장한 절차적 하자는 없다고 판단하면서, 다만 피고의 정관에 이사의 해임사유를 정하였더라도, 그 해임사유는 이사의 행위로 인하여 법인과 이사 사이의 신뢰관계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울 정도에 이른 경우에만 정당한 해임사유가 될 수 있다고 하면서, 피고와 사이의 신뢰관계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울 정도의 정관 제8조에서 정한 임원 해임사유가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피고의 항소를 모두 기각하였습니다.

 

3.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여 위 항소심판결을 그대로 확정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대법원은,

 

가.법인과 이사의 법률관계는 신뢰를 기초로 하는 위임 유사의 관계인바, 민법 제689조 제1항에 따르면 위임계약은 각 당사자가 언제든지 해지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고 그러므로 법인은 원칙적으로 이사의 임기 만료 전에도 언제든지 이사를 해임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이러한 민법 규정은 임의규정이므로 법인이 자치법규인 정관으로 이사의 해임사유 및 절차 등에 관하여 별도 규정을 둘 수 있고 이러한 규정은 법인과 이사의 관계를 명확히 하는 것 외에 이사의 신분을 보장하는 의미도 아울러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단순히 주의적 규정으로 볼 수는 없으므로 법인의 정관에 이사의 해임사유에 관한 규정이 있는 경우 이사의 중대한 의무위반 또는 정상적인 사무집행 불능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법인은 정관에서 정하지 아니한 사유로 이사를 해임할 수 없다고 하여 법인의 정관에 이사의 해임사유에 관한 규정이 있는 경우 정관에서 정하지 아니한 사유로 이사를 해임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나.그러나 대법원은 항소심 판단과 달리 법인의 정관에서 정한 해임사유가 발생하였다는 요건 외에 이로 인하여 법인과 이사 사이의 신뢰관계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울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는 요건이 추가로 충족되어야 법인이 비로소 이사를 해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해임사유의 유형이나 내용에 따라서는 그 해임사유 자체에 이미 법인과 이사 사이의 신뢰관계 파탄이 당연히 전제되어 있거나 그 해임사유 발생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이를 고려하는 것이 적절한 경우도 있으나, 이 경우에도 궁극적으로는 해임사유에 관한 정관 조항 자체를 해석·적용함으로써 해임사유 발생 여부를 판단하면 충분하고, 법인과 이사 사이의 신뢰관계 파탄을 별도 요건으로 보아 그 충족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다. 이와 같은 판단을 전제로 대법원은 이사의 해임사유에 관한 항소심의 판단 부분이 적절하지 않음을 지적하되, 다만 피고가 정한 정관상 해임사유 자체를 기준으로 보더라도 원고에게 그와 같은 해임사유가 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보아, 원심의 결론을 수긍하여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였습니다.

 

4. 본 판결의 의의

상법 제385조 제1항은 언제든지 주주총회의 특별결의에 의하여 이사를 해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민법에는 상법과 달리 이사의 해임에 관하여 아무런 규정이 없으므로 법인이 이사를 일방적으로 해임할 수 있는지가 그동안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이사에 대한 해임사유 등을 정관에 두고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는 경우를 구분하여 이를 정관에 정하고 있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정관에 정하지 아니한 사유로 이사를 해임할 수 없다고 보았고(대법원 2013. 11. 28. 선고 2011다41741 판결 참조), 정관에 이를 따로 정하고 있지 않는 경우에는 민법상 위임의 법리에 따라 쌍방 누구나 정당한 이유 없이도 언제든지 해지할 수 있으며, 다만 불리한 시기에 부득이한 사유 없이 해지한 경우에 한하여 상대방에게 그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질 뿐이다(대법원 2014. 1. 17.자 2013마1801 결정)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즉 대법원은 기존 대법원의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정관상 해임사유가 정해져 있다면 이로 족한 것이지 그 외에 신뢰관계 파단 등을 따로 살펴볼 이유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이는 법인의 자율성을 존중한 판결로 보이고 타당한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정관에 해임사유 및 절차가 규정되어 있는 경우에도 이사의 중대한 의무위반 또는 정상적인 사무집행 불능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정관의 규정과 상관없이 이사를 해임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는 판단대상이 되지 않았는바, 위 대법원 2013. 11. 28. 선고 2011다41741 판결에서는 “법인으로서는 이사의 중대한 의무위반 또는 정상적인 사무집행 불능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정관에서 정하지 아니한 사유로 이사를 해임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으므로 이를 반대해석하면 정관에 규정된 이사의 해임사유 외에도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이사를 해임할 수 있고 따라서 정관에 규정된 이사의 해임사유는 이사에 대한 해임을 제한하기는 하지만 예시적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1]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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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진우 “사단법인 이사의 해임: 2013. 11. 28. 선고 2011다41741”, 비교사법 Vol.22 No.2(2015), 767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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