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 근로관계의 승계와 관련한 소고
김장식 변호사
1. 들어가며
공동주택 또는 대형 건물의 관리업무뿐만 아니라 각종 산업현장에서의 생산, 제조, 서비스 등의 다양한 업무가 아웃소싱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원청업체는 용역업체와 일정 기간을 정해 용역계약을 체결하고, 그 기간이 만료되면 다시 입찰을 통해 새로운 용역계약을 체결합니다. 이 과정에서 용역업체가 변경되는 것은 다반사인데, 이때 대부분의 경우 종전 용역업체에서 근로하던 근로자들은 종전 용역업체와의 근로관계를 종료한 후 새로운 용역업체와 다시 근로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하지만 일부의 경우에는 새로운 용역업체가 종전 용역업체 근로자의 고용을 거절하면서 근로관계의 승계와 관련해 여러 가지 분쟁들이 야기되고 있습니다.
2. 용역업체 변경 시 새로운 근로관계 형성의 모습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입찰을 통해 새로운 용역업체가 선정되면 새로운 용역업체는 신규 채용의 형태로 종전 용역업체의 근로자를 채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입니다. 그리고 이때 근로기간은 새로운 용역업체의 용역계약 기간과 일치하도록 하고, 그 기간을 명시한 근로계약을 작성합니다. 이 과정에 입찰을 공고한 원청업체는 새로운 용역업체에 종전 용역업체 근로자들에 대한 고용승계 의무를 부과하거나 고용승계에 관한 노력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공공기관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이 "현재 근무하고 있는 종사원에 대하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고용을 승계하도록 한다."라고 규정해 고용승계 의무를 부과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단순하게 고용승계에 관한 노력의무를 부과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새로운 용역업체에 고용승계의무가 부여된 경우에는 원청업체와 새로운 용역업체 사이에 체결된 용역계약 내용을 민법 제539조 제1항의 제3자를 위한 계약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이에 따라 종전 용역업체의 근로자가 새로운 용역업체에 대해 근로관계 계속을 희망하는 경우에는 새로운 용역업체가 종전 용역업체의 근로자를 계속해서 고용할 의무가 발생하고, 이에 반해 근로관계를 승계하지 않게 되면 해고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용승계 의무가 명시적으로 부과돼 있지 않은 경우라고 해서 새로운 용역업체가 신규채용의 형식을 빌려 종전 용역업체의 일부 근로자에 대한 채용을 거절하는 것은 언제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다음 사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라고 보입니다.
3. 용역업체 변경 시 근로관계 승계와 관련한 두 가지 상반되는 사례
대법원 2000.3.10. 선고 98두4146 판결은 공개입찰을 통해 아파트 관리의 수탁업체가 변경된 사안에서, 종전 수탁업체와 입주자대표회의 사이에서 이뤄진 아파트 관리업무 인계인수의 경위와 신규 수탁업체가 입주자대표회의와 새로운 경비 용역 계약을 체결한 점에 비춰 그 경비업무와 종전의 경비업무내용이 동일하다는 점만으로 근로관계를 승계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반면에 서울고등법원 2017.6.14. 선고 2016누62223 판결은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가 매년 공개경쟁입찰을 통해 채탄 및 선탄작업 용역업체를 선정하는 사안에 관해 ① 용역수행 업체가 특별한 물적 시설 없이 장성광업소의 물적 시설을 이용하면서 용역을 수행할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한 점 ② 용역업체가 변경되는 경우 새로이 선정된 용역업체가 종전 용역업체에 고용됐던 근로자들 중 자진퇴사자, 정년퇴직자 등을 제외하고 그대로 고용하는 관행이 있었던 점 ③ 종전 사업체가 신규 사업체에 근로자들의 명부를 교부해 근로자들이 새로 선정된 신규사업체를 위해 용역업무를 그대로 수행한 점 등을 고려해 묵시적 영업양도계약이 성립됐음을 인정했습니다. 대법원 2017.10.12. 선고 2017두51303 판결은 위와 같은 원심의 판단을 지지했습니다.
4. 영업양도 시 근로관계의 승계
가. 위와 같은 판단의 차이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사실 아파트 관리 수탁업체의 경우에도 특별한 물적 시설 없이 입주자대표회의가 제공하는 물적 시설을 이용하고, 용역업체가 변경되는 경우에도 대부분 새로이 선정된 용역업체가 종전 용역업체에 고용됐던 근로자들을 고용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종전 용역업체의 근로자들에 대한 정보가 제공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차이가 크다고 볼 수 없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업양도 인정 여부에 따라 그 결과가 전혀 달라진 것입니다.
나. 영업양도의 개념은 본래 상법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 상법은 영업양도에 관해 주로 제1편 총칙 제7장에서 규정하고 있는데, 제3편 회사 제4장 주식회사 및 제5장 유한회사에서도 일부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상법총칙에서 규정하고 있는 영업양도에 관한 규정은 영업양도의 효과, 즉 영업양도 후의 양수인 지위를 보호하기 위해 양도인의 경업피지의무를 규정하고 있고(상법 제41조), 아울러 영업상의 채권자와 채무자가 영업양도로 인해 뜻하지 않은 손실을 입지 않도록 배려하는 규정(상법 제42조 내지 제45조)을 두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주식회사 및 유한회사에서의 영업양도에 관한 규정은 주주총회사원총회의 특별결의를 받아야 하는 사항(상법 제374조 제1항 제1호, 제576조 제1항)으로서 영업양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 이때의 영업이란 일정한 영업목적에 의해 조직화된 유기적 일체로서의 기능적 재산을 말하고, 여기서 말하는 유기적 일체로서의 기능적 재산이란 영업을 구성하는 유형무형의 재산과 경제적 가치를 갖는 사실관계가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한 수익의 원천으로서의 기능적 재산이 마치 하나의 재화와 같이 거래의 객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며(대법원 2005.7.22. 선고 2005다602 판결 등), 여기서 영업의 양도라 함은 일정한 영업목적에 의해 조직화된 업체, 즉 인적물적 조직의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일체로서 이전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대법원 1991.8.9. 선고 91다15225 판결).
라. 위와 같은 영업양도와 관련해 양도인과 양수인이 그 대상인 영업에 사용하고 있는 근로자들과 양도인 간의 근로관계를 종전과 동일한 조건으로 양도할 것을 약정하고 이에 근로자가 동의한 경우, 근로관계가 영업양도에 수반해 양수인에게 이전하게 되는 것은 사적자치(계약자유)의 원칙에 비춰 당연한 결과입니다. 따라서 노동법상으로 종래 논의돼 왔던 것은 영업이 계약에 의해 양도되는 경우에 근로관계의 이전에 관한 특약이나 근로자 동의 없이도 종전의 근로관계가 그대로 양수인에게 이전되느냐의 여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해 입법적 해결을 시도한 서유럽 각국이나 노사당사자의 자치적 해결을 도모하고 있는 미국과는 달리, 전적으로 해석론에 의한 해결을 시도하고 있는 우리 법제의 경우에는 다양한 견해들이 제시되고 있던 것입니다.
마. 이에 근로관계는 어디까지나 당사자의 의사에 의해 형성되고 이전돼야 한다는 계약설 입장에서 영업양도에 부수해 근로관계가 양수인에게 법률상 당연히 이전되는 것은 아니고, 근로관계의 승계에 관해 영업양도 당사자 사이에 명시적 특약 내지 묵시적 합의가 있고, 근로자 역시 이에 동의해야만 이를 근거로 근로관계가 양수인에게 그대로 이전된다는 특약필요설, 영업양도에서도 근로관계에 관한 한 회사합병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당사자 사이의 약정 여하와 관계없이 종래의 근로관계가 전체로서 당연히 양수인에게 이전되어 자동 인수된다는 당연승계설, 근로관계의 승계 여부를 영업양도 당사자 사이의 의사해석 문제로 보면서도 영업양도 당사자 사이에 반대의 특약이 없는 한 영업의 양도에 관한 합의 속에는 원칙적으로 근로관계를 포괄적으로 승계시키기로 하는 합의가 포함된 것으로 사실상 추정된다는 원칙승계설 등이 근로관계 이전의 근거로 논의됐습니다.
바. 이와 관련해 대법원 1994.6.28. 선고 93다33173 판결이 "영업의 양도라 함은 일정한 영업목적에 의하여 조직화된 업체 즉 인적물적 조직을 그 동일성은 유지하면서 일체로서 이전하는 것을 말하고 영업이 포괄적으로 양도되면 반대의 특약이 없는 한 양도인과 근로자간의 근로관계도 원칙적으로 양수인에게 포괄적으로 승계된다 할 것이고(당원 1992.7.14. 선고 91다40276 판결; 1991.11.12. 선고 91다12806 판결; 1991.8.9. 선고 91다15225 판결 등 참조), 영업양도 당사자 사이에 근로관계의 일부를 승계의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하는 특약이 있는 경우에는 그에 따라 근로관계의 승계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으나, 그러한 특약은 실질적으로 해고나 다름이 없다 할 것이므로, 근로기준법 제27조 제1항 소정의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유효하다 할 것이며, 영업양도 그 자체만을 사유로 삼아 근로자를 해고하는 것은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할 것이다."라고 판시한 이후 그와 같은 취지의 판결이 계속돼 원칙승계설의 입장을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5. 영업의 동일성 유지
가. 영업양도를 통해 근로관계가 승계되려면 당연한 전제로서 우선 영업양도가 인정돼야 할 것인데, 이를 과연 어떤 기준에서 판단할 것인지 여부의 문제가 따릅니다. 이와 관련해 종래 판례는 "영업양도가 있었다고 인정하려면 당사자 사이에 영업양도에 관한 합의가 있거나 영업상의 물적인적 조직이 그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양도인으로부터 양수인에게 일체로서 포괄적으로 이전되어야 한다."(대법원 1995.7.14. 선고 94다20198 판결)라고 하는 일반론만을 설시할 뿐이고, 구체적인 판단기준은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나. 다만 대법원 2001.7.27. 선고 99두2680 판결은 "영업의 동일성 여부는 일반 사회관념에 의하여 결정되어져야 할 사실인정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문제의 행위(양도계약관계)가 영업의 양도로 인정되느냐 안 되느냐는 단지 어떠한 영업재산이 어느 정도로 이전되어 있는가에 의하여 결정되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고 거기에 종래의 영업조직이 유지되어 그 조직이 전부 또는 중요한 일부로서 기능할 수 있는가에 의하여 결정되어져야 하는 것이므로, 예컨대 영업재산의 전부를 양도했어도 그 조직을 해체하여 양도했다면 영업의 양도는 되지 않는 반면에 그 일부를 유보한 채 영업시설을 양도했어도 그 양도한 부분만으로도 종래의 조직이 유지되어 있다고 사회관념상 인정되면 그것을 영업의 양도라 볼 것이다."라고 판시해 영업의 동일성 인정 여부를 사실인정의 문제로 봤습니다.
다. 따라서 영업의 동일성이 존재하는지 여부는 개별적 사건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계약의 형식적인 명칭이나 내용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고, 계약 체결 전후의 사정과 경위, 당사자의 의사, 현실적으로 이전된 물적인적 조직의 범위와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해서 판단해야 하며, 이러한 판단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로서는 사업목적이 동일한지, 기존의 고객관계가 유지되고 있는지, 생산시설이나 생산수단 및 생산목적이 동일한지, 자산 및 부채가 어느 정도 이전됐는지, 지적재산권영업권 등이 이전됐는지, 근로자의 상당수가 양수인에게 계속 고용됐는지, 경영조직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지 여부 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6. 나가며
입찰에 의해 용역업체가 변경되는 과정에서 종전 용역업체와 새로운 용역업체 사이에 영업양도와 관련한 계약이 체결되는 것을 전제하는 것은 그리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위 서울고등법원 2017.6.14. 선고 2016누62223 판결은 묵시적 영업양도계약이 성립됐다고 인정하는 것인지는 모르나, 이것 역시 부자연스러운 옷을 걸치고 있다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일률적으로 재단해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위험하겠지만, 이에 관한 근본적인 모순은 원청업체로부터 제공된다고 봐야 합니다. 용역수행과 관련한 인적 조직은 본래 용역업체가 보유하고 있던 것이 아니라, 원청업체의 용역업무 수행을 위해 구성되고, 활동하다가 소멸됩니다. 따라서 용역업체 근로자의 사용자는 사실 원청업체라고 봐야 할 것인데, 대개의 경우 용역업체가 사용자가 되는 외형을 통해 이를 위탁관리하게 됩니다. 이러한 모순적인 현상이 시정되지 않는 한 일시적으로 용역업체에 고용될 수밖에 없는 근로자의 고용불안은 해소될 수 없습니다. 이에 용역업체 사이의 묵시적 영업양도를 인정하는 판결의 태도 또한 그 타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