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준 변호사
ADR(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other than Adjudication)의 하나인 조정은 중립적인 제3자(조정인)의 도움을 받아 분쟁 당사자들 스스로 양보와 타협에 의하여 자율적으로 분쟁을 해결하는 절차라 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법원에서 폭주하듯 밀려드는 사건들을 처리의 목적으로만 바라보는 것과는 달리, 조정은 법률서비스 수요자인 소송 당사자의 입장에서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재판받을 권리도 중요하지만 시간과 돈에 있어 약자인 일반 국민들은 상대방이 끝까지 가보자면서 소송 만능을 내세우면 좌절하게 되므로, 헌법상 행복추구권 측면에서도 조정 등의 분쟁해결 절차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고 신속하고 저렴하며 합리적인 분쟁해결 절차를 제공하는 것이 오히려 실질적으로 ‘재판받을 권리’를 충족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예링은 ‘권리의 옹호’를 강조하였으나 라드브르후는 권리라는 친우보다 법적 평화라는 애인을 위하여야 한다고 한 것처럼, 조정의 목적에 있어서도 이러한 철학적 면모가 강조되어야 제도가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채이배 의원이 2019. 3. 22. 국회의원회관 제2간담회실에서 개최한 “조정절차 활성화 등을 통한 법원업무부담 경감방안” 주제 정책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여해 계명대학교 이로리 교수의 주제발표에 대하여 밝힌 의견을 정리한 것입니다.)
법원 민사조정제도의 문제점과 개선과제
1. 조정신청의 이용 저조
가. 국민의 입장에서 소송보다 조정이 더 좋은가?
세계은행이 발표한 ‘2017 기업환경평가보고서(Doing Business)’에 따르면 ‘법적 분쟁해결(Enforcing Contracts)’ 분야에서 우리나라 사법부가 처음으로 1위(그 전엔 2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싱가포르는 2위, 중국이 5위, 독일이 17위입니다. 위 발표에 따르면, 소송 1건의 해결 시간이 평균 290일, 소송 가액 대비 소송비용은 12.7%((5위인 중국이 452.8일과 16.2%, 독일은 499일과 14.4%)로 조사되었습니다. 또 ‘대체적 분쟁해결’ 분야에서 만점을 받았다고 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 2011년 전자소송이 도입됨에 따라 소송절차에 소요되는 시간이 단축되고 비용이 절감된 것은 높이 평가받을 만합니다. 그러나, 대체적 분쟁해결 제도가 만점을 받았다고 하지만, 국민들의 시각에서 볼 때 그 제도가 질 높은 소송절차에 비하여 큰 매력을 제공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조정절차는 소송절차에 부속된 서자(庶子) 정도로 취급되고 있는 느낌입니다. 조정신청을 하는 경우(전체 사건 대비 1% 이하)가 극히 적고, 소송절차 진행 중에 조정에 회부되면 왜 동의도 없이 조정에 회부했는지 모르겠다면서 조정위원에게 화를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직도 조정은 하찮은 절차로 인식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소송절차의 질을 떨어뜨리고 지나치게 높은 소송장벽을 쌓을 수는 없을 것이므로, 오히려 소송절차에 비해 조정절차가 더 국민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예산을 투입하고 제도 개선에 힘을 쏟아 매력 있는 제도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송사건을 처리하는 법원 등 사법기관의 부담과 무리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나. 조정 전치 : 제한적 시행에 찬성
2009년 법원 조정센터를 개원한 이래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조정신청의 확대를 위해 애썼으나 현재도 자발적인 조정신청은 저조한 것이 사실입니다. 2002년 접수된 본안사건 대비 조정신청 사건 비율이 0.68%(= 6,918건/1,015,894건)였고, 조정센터가 생긴 2009년 1.05%(= 11,382건/1,074,236건)로 최고를 기록하였습니다. 그 후 한 번도 1%를 넘기지 못하고 2017년에는 0.67%(= 6,822건/1017,707건)을 기록하였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10년부터 한정된 범위이지만 사실상의 조정전치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 후 각급 법원에서 조기조정 시스템에 따라 재판 대기 기간 중에 조정에 회부하는 사실상의 조정전치를 시행하고 있으며, 부산지방법원은 2016. 5. 1.부터 접수된 임대차 관련 단독사건에 관해 원칙적인 조기조정 회부를 함으로써 사건 종류를 특정하여 사실상 조정전치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 및 조기조정과 외부연계기관 조정 등의 시행에 따라 조정회부 사건 중 수소법원 조정 비율이 2008년 최고 97.32%에 이르렀으나 2017년 42.49%로 낮아진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보통 분쟁이 발생하고 8.2개월의 시간이 경과된 후 소를 제기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자발적인 협상이나 합의 노력을 시도하지만 대부분은 실패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 끝에 소를 제기하게 되므로, 이 때 조정신청이 의무화되지 않는 한 조정을 해달라는 신청을 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조정절차를 진행하면 협상의 기회가 열리게 되므로 바람직한 면도 있습니다. 조정절차를 거친 사건의 경우 조정이 불성립되어도 그 후 본안 재판에서 판결까지 가지 않고 종국되는 비율이 2010. 5. 1.부터 1년간 통계가 38.10%에 이르기도 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소송 가액별, 혹은 사건의 종류별로 조정신청을 먼저 거치도록 제도화하는 방안에 대하여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제안합니다. 다만, 조정을 먼저 진행할 사회적 인프라나 예산 지원이 부족하므로 이에 대한 준비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아니면, 소장을 접수받을 때에 “당해 법원은 변론 대기 기간에 사실상 조정을 먼저 진행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는 점을 안내하면서 특별히 반대의 서면을 내지 않는 한 조정절차를 먼저 진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한 안내 없이 조기에 바로 조정을 진행하면 반감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으로 조정적합성에 대한 연구를 시행한 후 이를 기반으로 한정된 범위 내에서 조정전치제도를 시행하는 방안을 모색하여야 할 것입니다.
다. 관할 확대
조정신청 사건은 의무이행지에 관한 민사소송법 제8조의 관할이 인정되지 않고, 대부분 조정신청이 피신청인의 주소지 등에 한정(민사조정법 제3조)되므로 불편한 점이 있습니다. 심지어 지급명령결정에 대해 이의가 들어왔을 때 조정 의사를 밝히면 조정신청사건화되는데(2012. 1. 17. 개정 민사조정법 제5조의 2), 이 때 지급명령사건에서 있었던 관할이 조정사건이 되면서 없어지게 되어 이송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 조정기관은 관할이 없어도 진행할 수 있다고 하는 민사조정법 제4조 제1항에 따라 진행하는 운영의 묘를 발휘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급한 입법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라. 변호사가 조정 제도의 걸림돌인가?
(1) 변호사 업계가 너무 어려운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들이 2013년 1개월에 2건의 평균수임률을 기록했고 2017년에는 약 1.7건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한 건의 사건을 수임하여 상고심까지 가면 3심급을 맡아서 진행하므로 사무실 운영에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변호사의 영업 이익 때문에 변호사가 일부러 조정을 회피하거나 반대하는 악역만을 담당하는가 하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변호사의 입장에서도 한번 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토론회에 앞서 조정에 대한 변호사들의 단상을 수집해본 결과, “명백히 이길 사건을 꼭 조정해야 하나?”, “무조건 조정은 좋은 것인가?”, “조정을 하게 되면 원고나 조정신청인이 투자한 소송비용이나 변호사 보수는 모두 포기하라고 한다. 이런 경우 조정은 왜 누구에게 좋다는 것인가?”, “불성실하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상대방에게 왜 그렇게 호의적이어야 하나?”, “법적 정의를 세우고 당사자의 이익을 위하는 것은 변호사로서의 바람직한 직업윤리인데 무조건적인 양보와 조정을 강요하는 것은 누구의 어떤 입장 때문에 하는 이야기인가?” 등의 의견들이 나왔습니다.
토론자의 경우, 예를 들어 만약 조정을 불이행할 경우 집행권원 금액을 상향하는 페널티를 부과하거나(상향식 2단계 조정), 큰 금액의 지급을 명하고 작은 액수의 조정금을 지급하면 원고가 나머지 채무를 면제하는 방식(하향식 2단계 조정)으로 명분과 실리를 살려주어 양측 변호사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2) 변호사 수가 많고 그들끼리의 경쟁이 치열한 미국에서 오히려 조정이 95% 이상 이루어지고 있습니다(중앙대 전병서 교수). 시간당 보수로 책정되는 변호사 보수나 디스커버리(사전 증거조사)제도 등에 소요되는 소송비용이 너무 높고 승패와 관계없이 각자 부담하는 소송비용제도 때문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변호사들도 적극적으로 조정을 권유한다고 합니다. 이해관계 중심의 실용적인 고객과의 장기적 이익을 고려하면 장기간 소요되고 많은 비용이 드는 소송절차를 권하는 변호사는 도태된다고 합니다. 이처럼 조정이 잘 되고 안 되고는 변호사의 사적인 이익 추구 때문이 아니라 조정을 하는 것이 더 낫고 매력있는 법제도와 문화 차이에 있습니다.
한국의 변호사들도 조정으로 사건이 신속히 끝나면 효율이 좋아서 괜찮다고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조정을 하려고 해도 이제까지의 시간 동안 합의를 위해 양보하고 인내해왔으나 해결이 안 되어 전쟁을 시작한 당사자들의 얘기를 듣고 감정을 완화하거나 불만을 해소(vent)할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주면서 스스로 합리적인 방안을 찾도록 하지 않고 사건 처리만을 목적으로 한 평가적 조정(“서로 조금씩 양보하시죠”) 방식으로 진행되니 거부감이 들어 이뤄지지 못했던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실리나 이해관계를 잃어도 자존심을 잃고서는 살 수 없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입니다. 상호 관계를 중시하고 공동체 문화에 익숙한 만큼 한 번 분쟁이 생기면 관계가 지나치게 악화되고 확대될 수 있는 점을 감안하여 당사자의 감정과 입장을 중시해야 합니다. 조정에 필요한 충분한 자료가 나오도록 돕고 의견을 개진할 기회를 제공하는 등 합의를 위한 분위기와 여건을 만들어 나가는 뜨거운 노력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럴 경우 소송대리인인 변호사들이 오히려 조정을 선도하고 권유하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당사자나 대리인이 원하는 사실조회나 간이 시가감정, 현장검증을 겸한 조정기일 진행, 상담 전문가에 의한 심리주도형 조정기일 진행 등의 경우 성공적인 조정사례가 많습니다.
마. 조정센터의 법제화
2009년 조정신청의 확대를 목적으로 한 법원 조정센터가 생긴 이후에도 현재까지의 10년 동안 조정신청이 확대되지 않은 면은 있으나 굳이 조정신청을 늘리려고 하기보다 조정센터에서 더 많은 사건이 진행되도록 할 필요는 있습니다. 그러나 법원 부속형 조정기관인 법원조정센터가 민사조정법에 하나의 기관으로서 법제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당장 민간형 조정이나 일본과 같은 조정기관 인증제를 시행하여도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지 않으므로 법원조정센터가 법원 부속형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일본의 경우 2016년(평성 28년) 인증 받은 분쟁해결기구 147 곳에 수리된 총 조정 사건수가 1,071건(한 사업자 당 7.29건)밖에 되지 않아 인증조정제도가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법원 부속형인 법원조정센터가 우리나라 민사조정의 허브가 되도록 조정센터를 법제화하고 기구를 확대하여 국민을 위한 자발적 분쟁해결기관으로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조정성공률보다 조정경유률의 개념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조정신청사건을 매년 이동하는 조정담당판사보다는 계속적으로 조정센터에서 근무하는 조정전담판사 또는 상임조정위원이 맡도록 할 필요가 있으며, 조정신청을 먼저 제기하였으나 불성립되어 본안으로 간 경우 처음부터 소장을 낸 사건의 인지대보다 절반 가량 감액하는 인센티브를 주어 조정신청을 먼저 제기하도록 유인을 주는 입법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요점은 법원조정센터에 대한 법제화, 그리고 법원연계형 조정 등에 대한 법적 근거가 필요합니다. 법원 연계형 조정기관에서 합의 후 법원에서 조정담당판사가 조정에 갈음하는 결정을 하였으나 이의신청이 들어온 경우 복잡하고 혼란스럽습니다. 법원 연계형 조정기관 중 많은 사건을 처리하는 서울지방변호사회나 대한상사중재원 등 대표적인 몇 곳을 정하여 상주하면서 조정업무만을 전담하고 조정담당판사의 권한이 부여된 상임조정위원을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제도 확충과 법제화를 통해 소송절차와 조정절차의 준별이라는 조정의 현대적 이념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2. 수소법원 조정
조정은 판단기관이 아닌 제3자의 도움을 받아 당사자 스스로 분쟁을 해결하는 절차이므로 판단기관인 수소법원 판사에 의한 조정은 그 본질에 맞지 않습니다. 조정실에서 만난 당해 재판부의 판사가 조정 불성립시 판결문을 쓸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참 껄끄럽고 곤란한 상황입니다. 이렇게 저렇게 조정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사의 권유는 이미 다 결론을 내린 상태에서 봐주는 듯이 하는 말로 들려 무엇보다 당사자의 자존심이 상할 수 있습니다. 법리의 뒷받침이나 증거가 부족할지 몰라도 질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사자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재판부가 사건을 오래 진행하여 쟁점을 잘 알고 있고, 당사자의 적극적인 반대가 없거나 당사자 양측이 조정을 원할 경우, 또는 당사자가 어느 정도 합의에 이르렀으나 사소한 문제로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조정위원회에 사건을 보내고 지정된 조정위원이 쟁점을 파악하려면 너무 시간이 걸리고 힘든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신속하게 수소법원이 조정기일을 정하여 운용하는 것이 필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조정은 제3자에 의해 진행하는 것이 옳습니다.
3. 권위주의적 조정에 관하여
가. 일방통행식 의사소통과 조정 강요의 지양
조정위원 중 건축사, 의사 등 전문가나 교장, 공무원 등의 경우 나이가 많고 전문지식과 경험 및 사회생활의 연륜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문가가 연륜과 경험만 믿고 기록과 사안의 내용을 잘 모를 경우 답답하게 됩니다. 또한, 기록과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였고 경험이 많다고 하더라도 당사자나 대리인에게 너무나 긴 시간 동안 조정을 진행하면서 자기의 관념과 경험을 장시간 동안 설파하면서 자기 생각대로 조정할 것을 강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정권유가 아니라 훈계를 하는 경우입니다. 전문 영역의 사건으로서 조정위원이 아무리 사실관계나 업계의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어도 당사자의 말을 잘 듣고 서로 합의를 촉진토록 하는 쌍방향적 의사소통 방식을 교육받거나 경험하지 못하고 일방통행식으로 의견을 강요하는 조정위원들의 경우 조정절차 진행에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특히, 어떤 경우라도 조정을 강요하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나. 관계 속에 해답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의 경우 이해관계보다는 사람과 그 소속된 집단, 사회와의 관계를 중시하고 체면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인내천 사상으로 사람이 곧 하늘, 따라서 자기 자신에 대한 자긍심이 높은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분쟁이 생겨 조정을 한다면 이러한 측면을 고려하여 대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어야 합니다. 증거가 없다거나 법리가 부실하다고 힐난하는 태도여서는 안 됩니다. 건물임대차 사건에서 예전에 교장이었던 당사자(임대인)와 그 상대방에게 조정위원이 호칭을 ‘선생님’으로 통일해 부르자 임대인이 아주 큰 양보를 하여 조정이 되었다고 하며(조정마당 열린대화 6호, 서울중앙지방법원·조정위원협의회, 조정사례), 조정담당 판사가 더운 여름날 물 한잔 마시고 기일을 진행하자고 했던 한 마디에 감동받아 큰 양보를 하고 조정을 성립시킨 실제 사례도 있습니다.
다. 조정 교육이 필수
이러한 측면에서 조정 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에 백분 공감합니다. 조정은 커뮤니케이션(경청, 공감, 반사, 설득, 질문하고 말하기 등), 협상 등의 의사소통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법률가로서의 지식은 당연히 중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전문 영역의 지식과 경험이 필수적입니다. 이처럼 조정 교육은 종합예술과 같은 것이므로 오랜 시간 동안 교육받고 실습하고 연마하여야 합니다. 독일은 연간 120시간의 조정교육을 받아야만 조정을 진행할 수 있고 이것은 판사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4. 조정에 갈음하는 결정 : 적극적인 동의를 요하자는 주장에는 반대
가. 조정은 당사자 스스로 분쟁을 해결하는 자발적 절차이므로 조정에 갈음하는 결정을 하는 것은 일종의 ‘재정’으로서 조정의 본질에 반한다는 전문가들의 비판에 공감하는 바가 있습니다.
다만, 어느 정도 합의가 되었으나 서로의 입장 차이, 또는 조정기일에 참석한 대리인의 입장, 회사나 단체가 당사자인 경우 특별한 입장 때문에 합의(임의조정)를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에 한하여 조정에 갈음하는 결정을 하는 것은 유용할 때가 있습니다. 다만, 조정위원은 조정이 어렵고 다른 대안도 잘 떠오르지 않으며 당사자 스스로 조정을 바라지 않는다고 하는 경우, 인내심을 가지고 합의를 시도하기 보다는 상투적으로 조정에 갈음하는 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장의 사건 처리나 조정 성공률에는 좋겠지만 장기적인 조정제도의 발전을 위하여는 임의조정을 위한 노력을 더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나. 다만, 조정갈음결정에 대하여 적극적인 동의가 있어야만 조정합의의 효력이 발생하는 것으로 개정하자는 의견은 아직은 채택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하여 조정불성립시 부담할 소송비용액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고 자발적으로 이해관계에 집중한 협상이 잘 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는 조정갈음결정이라는 제3자적 권유가 있으면 이를 명분 삼아 “상대방이 이의하지 않으면 나도 그 결정에 불만은 있지만 그냥 끝내겠다”라고 하면서 종결하는 경우가 제법 많습니다. 이의할 수 있는 2주라는 기간 동안 상대방이 먼저 이의했는지 여부에 대하여 매일같이 검색해보는 경우도 많습니다. 불만이 있을 경우 2주라는 나름 충분한 기간 동안 이의신청을 할 수 있으므로 적극적 동의를 요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5. 조정인의 전문성과 조정인에 대한 교육
가. 조정인의 전문성과 전문 조정위원 풀 운영
상당히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요하는 사건이 있습니다. 특허나 저작권, 해사(海事) 사건, 증권에 관한 사건, 화재 사건, 자동차 사건, 환경사건, 공해사건 등 특수하고 다양한 사건 등이 그 예가 될 것입니다. 이런 사건들의 경우 법원이 나름 분야별로 조정위원을 정해놓은 것으로 압니다. 다만, 그러한 전문분야보다는 더 높은 등급의 전문 조정위원을 분류하여 관리하면서 이들로 하여금 조정을 진행하도록 하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필자의 경우 해상에서 대형선박이 어구를 손상한 사건에서 해사 전문 변호사를 조정위원으로 위촉하여 조정을 성공한 사례가 있습니다. 이러한 전문 조정위원의 경우 조정 수당을 상당히 높게 정하여 지급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나. 조정인에 대한 의무적 조정 교육
법원 조정위원들의 경우 ADR과 민사조정법, 커뮤니케이션과 조정 기법(경청, 설득, mirroring, reflection, reparaphrase, reframing 등), 심리학, 뇌과학, 행동과학 등 조정에 필요한 체계적인 조정교육을 더 꾸준히, 더 많이 받으면 좋을 것이고, 나아가 일종의 의무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대신 조정위원의 처우를 확충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또한, 기록을 보고 증거를 검토하여 평가적 조정을 하기가 쉽지 당사자 스스로 합의하게끔 하는 촉진적 조정을 하는 경우가 많이 없습니다.
따라서, 법원에서 조정위원에 대하여 의무적으로 조정 교육을 이수하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독일의 경우 2012. 7. 21. 제정되어 같은 달 26.부터 시행되고 있는 조정법 제5조 제2항 및 제3항에서 ‘인증조정인 제도’를 두고 연간 120시간의 조정교육을 받게 하는 등 조정전치와 조정인 양성에 관한 명문의 규정을 두었습니다.
II. 조정제도 활성화를 위한 실천적 과제
1. 조정 친화적 분쟁해결문화 조성을 위한 국가적 로드맵 : 공감
법원에서의 민사 및 가사 조정 부분을 포함하여 행정심판 조정(2018. 5. 1.부터 행정심판법에서 시행됨), 행정사건에서의 조정, 형사사건에서의 치유적 조정 등의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사회적 기구를 만들어 공론화와 실천 과제를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공감합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하여 사회 및 공공에서의 다툼이나 갈등을 해결하는 역량을 축적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국가나 지자체의 조정 장려 책무 : 법제화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통일 ADR법에서 국가 등의 조정 장려 의무를 입법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전 행정기관의 소송 업무에 있어 ADR 절차 이용을 장려하는 행정명령을 내린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국가에서 민사조정법을 만들어 법적 분쟁을 조정으로 해결하자고 하여 놓고 정작 국가나 지자체는 조정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국민들은 이러한 이중성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국가 등이 조정을 하지 않는 이유를 물어 보면 합의한 것이 나중에 감사에 걸릴 수 있다고 합니다. 결과가 좋지 않아도 판결로 하면 괜찮고 결과가 더 좋아도 조정을 하면 문제라는 인식이 사회 전체적으로, 그리고 특히 공공 분야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국가나 지자체의 조정장려 의무를 입법화하면 이러한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합리적인 조정을 하지 않아 국가나 지자체가 경제적으로 더 많은 지출을 하여 국민들이나 시민들의 세금 부담이 커지는 것에 대하여는 왜 아무도 걱정하지 않는가. 조정제도의 경시에서 비롯된 이러한 무책임한 모습은 우리의 발전을 더디게 하는 원인입니다.
어떤 전문가는 “민사조정법에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 관련 분쟁의 경우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적극적 당사자인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조정신청을 취하여야 하는 것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피력한 바도 있습니다.
3. 비법관 조정의 확대 및 사적 조정 도입
사적 조정 도입은 시기상조라고 봅니다. 분쟁이 생기면 자체적인 협의를 시도하다가 법원으로 가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입니다. 그 과정에서 사적 조정기관으로 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법원조정센터가 개원한 이후에도 조정신청이 저조한 점을 참고하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법원에 온 사건을 조정기관에 분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조정신청을 먼저 하여 생기는 어떤 이익을 제공해야 합니다(인지대의 대폭 감소 등의 확실한 인센티브).
한편, 상당한 정도로 체계화되고 질 높은 비법관 조정을 하려면 공간적, 인력적, 예산적 측면의 준비가 필요한데, 우리 사회는 이러한 준비를 하였는가 하는 점에서 늘어난 조정 사건을 감당할 준비는 부족하다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조정 관련 국가 예산의 지원, 조정센터 법제화와 함께 상임조정위원과 같은 조정 전문가에게 좀 더 오랜 기간 동안 조정을 계속 진행하도록 기회를 부여하여 전문성과 경험을 축적하고 조정 사건 관리와 조정 교육을 담당하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4. 조정 전문가 과정 양성 교육과 조정기관의 연계
2012년부터 시작한 대한상사중재원과 한국조정학회의 공동 주관 ‘조정전문가 과정’은 기초와 심화 과정으로 각 21시간의 집중 교육과 조정진행 실습, 피드백을 거치면서 심도 깊은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과한 사람은 조정전문가 인증 평가 시험 과정을 거쳐 상임조정위원 등 전문가의 평가에 의한 실습을 진행한 후 합격시 인증평가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나름 교육받은 많은 예비 조정인이 있으나 이들을 법원이나 공공기관에서는 잘 쓰지 않습니다. 조정위원은 한번 위촉되면 평생 명예직으로 국가와 법원에 봉사 하는 좋은 기회이지만 조정위원으로서 있으면서 조정에 대하여 전문적인 교육을 받으려고 하거나 전문 서적을 읽는 경우는 거의 없이 오로지 감에 의하여 성공한 조정 사례를 무용담을 펼치듯이 얘기합니다. 조정은 자기가 잘 안다고 하면서 배울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조정은 치밀하게 준비되지 않은 조정위원들의 소일거리나 봉사의 기회로 삼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업무입니다. 사실상 상당한 수준의 조정 전문가나 해당 분야 전문가들은 바쁜데다가 조정 수당이 너무 낮아 봉사하려는 맘이 옅어지고 시간을 내기 힘들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조정의 생태계에 양화(良貨)가 넘쳐 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조정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합당한 대우를 제공하며 현실적인 조정 수당을 지급해야 합니다.
아울러, 국회는 협상을 통하여 갈등을 해결하는 전문가들이 모인 곳인 만큼, 국회의원, 보좌관, 전문위원이나 직원들도 조정과 협상에 대한 강의와 공부를 통하여 그러한 능력을 함양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첨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