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재 변호사
1. 연차휴가의 시기변경권
근로기준법 제60조 제5항은 "사용자는 (연차유급) 휴가를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주어야 하고, 그 기간에 대하여는 취업규칙 등에서 정하는 통상임금 또는 평균임금을 지급하여야 한다. 다만,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휴가를 주는 것이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에는 그 시기를 변경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연차휴가의 사용 시기를 지정할 권리는 원칙적으로 근로자에게 있으며, 사용자의 시기변경권은 근로자의 연차휴가 사용으로 인해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발생하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인정됩니다.
2. 연차휴가 시기변경권의 인정 요건
가. 근로자의 적법한 시기지정권의 행사
연차휴가권이 근로기준법상의 성립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 당연히 발생하는 것이라고 해도 그와 같이 발생한 휴가권을 구체화하려면 근로자가 자신에게 맡겨진 시기지정권을 행사해 어떤 휴가를, 언제부터 언제까지 사용할 것인지에 관해 특정해야 합니다. 근로자가 이와 같은 특정을 하지 않은 채 시기지정권을 행사하더라도 이는 적법한 시기지정이라고 할 수 없어 그 효력이 발생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경우에는 적법한 휴가시기 지정이 있음을 전제로 하는 사용자의 시기변경권의 행사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연차휴가의 시기지정권을 행사하는 방법은 취업규칙에 정한 바가 있으면 그에 따르면 됩니다. 취업규칙에 연차휴가를 청구하는 절차에 관한 정함이 없는 회사에서는 문서뿐만 아니라 구두로 연차휴가를 청구하는 것도 적법한 시기지정권의 행사로 볼 수 있습니다.
근로기준법 제60조에 의한 근로자의 연차유급휴가권은 사용자가 휴가를 부여한다고 하는 적극적 작위가 요구되는 것이 아닙니다. 근로자가 연차유급휴가에 대해 시기를 지정해 그 청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자가 적법한 시기변경권을 행사하지도 않은 채 근로자의 연차유급휴가를 방해한 경우는 물론, 사용자가 근로자의 연차유급휴가 자체를 인정하지 않아 그 시기지정권의 행사를 사전에 방해하는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에 이르면 근로자가 시기지정권을 행사하지 않고 그 청구를 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위 조항 위반죄는 성립합니다.
나. 연차휴가의 목적과 동기는 시기변경권 행사의 요건이 아님.
연차휴가의 목적과 동기는 연차휴가의 시기변경권을 행사할 수 있는 요건과 무관합니다. 근로자가 최초 연차유급휴가 신청 이유(이사준비)와 다르게 집회에 참석하자 사용자가 해당 연차유급휴가를 무단결근으로 처리한 사안에서, 법원은 사용자가 근로자가 신청한 일시에 별다른 이의나 유보 없이 연차휴가를 승인했다가 원고가 신청사유와 달리 위 연차휴가 중 집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만으로 무단결근처리를 한 것은 법에서 정한 연차휴가의 시기변경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유에 해당하지 않음이 명백하고 그와 같이 정당한 시기변경권에 근거하지 않은 무단결근처리는 위법하다고 판결했습니다(서울행정법원 1999. 7. 16. 선고 99구2832 판결).
근로자들이 휴가 중에 쟁의행위에 참가하고자 연차휴가를 신청한 사안에 대해서도, 법원은 회사 업무의 정상적 운영을 저해하고 그 주장을 관철할 목적으로 집단적으로 일제히 같은 시기를 지정해 연차휴가를 신청하는 경우와 같이 연차휴가의 신청 자체가 부당한 쟁의행위에 해당한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휴가의 목적과 동기는 근로자의 자유에 맡겨져 있으므로 근로자들이 연차휴가의 시기를 지정해 휴가를 신청한 후 그 휴가 중에 쟁의행위에 참가하고자 한다는 사정만으로 연차휴가의 신청이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습니다(서울행정법원 2012. 8. 23. 선고 2012구합2634 판결).
다만 필수공익사업장의 필수유지업무 근로자에 대해서, 공익상 필요에 의해 그 쟁의행위를 제한하고 있는 노조법의 제도적 취지에 비춰 근로자가 쟁의행위에 참가하기 위한 목적으로 연차휴가를 신청하고 그 시기지정권을 행사한 사정이 있다면, 사용자의 시기변경권의 범위는 다소 넓게 인정될 수 있다고 한 판례도 있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13. 5. 31. 선고 2012누28522 판결).
다. 사업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을 것
연차휴가의 시기변경권은 사업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에 정당한 것으로 인정됩니다.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란 근로자가 지정한 시기에 휴가를 준다면 그 사업장의 업무 능률이나 성과가 평상시보다 현저하게 저하돼 상당한 영업상의 불이익을 가져올 것이 염려되거나 그러한 개연성이 엿보이는 사정이 있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를 판단할 때에는 근로자가 담당하는 업무의 성질, 남은 근로자들의 업무량, 사용자의 대체 근로자 확보 노력, 다른 근로자들의 연차휴가 신청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최근 하급심에서는 '사업운영의 막대한 지장'의 의미에 관해 단순히 남은 근로자들의 업무량이 상대적으로 많아진다는 일반적 가능성만으로는 시기변경권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해 시기변경권 행사 요건을 다소 엄격하게 해석한 판결이 선고된 바 있습니다.
(1) 서울행정법원 2016. 8. 19. 선고 2015구합73392 판결
인가받은 버스노선이 결행될 경우 1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게 되고, 나아가 참가인들이 운전하는 준공영제 노선이 결행될 경우에는 시내버스 수입금공동관리위원회로부터 운송원가 2배의 제재를 받게 되므로, 참가인들이 신청한 기간에 휴가를 부여함으로써 버스노선에 결행이 발생하는 것은 버스여객운송업체인 원고의 사업운영에 대한 중대한 지장이라는 원고의 주장에 대해 "근로자의 연차휴가는 통상 예견되는 것이고 평상시에도 늘 행하여지는 것이므로 원고로서는 통상적인 근로자의 결원을 예상하여 그 범위 내에서 대체 근로자를 충분히 확보하여야 할 것인데, 원고는 운영버스의 수 및 운행방식에 비하여 근로자들이 연차휴가를 사용할 수 있도록 대체 근로자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점, 원고가 휴가 부여에 필요한 대체인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인가차량의 2.35배를 초과하는 운전기사를 고용하는 것이 불가능하였다고 볼 수 없는 점, 원고가 노선별-조별 단위 휴무 제도를 도입하고, 휴무신청을 제도화하며, 근로자들의 합의에 따른 휴무일 교환 관행을 승인하였다는 사정만으로 근로자들에게 연차휴가를 보장하기 위한 충분한 노력을 하였다고 볼 수 없는 점 등을 종합하면, 위와 같은 사업운영의 지장은 휴가 실시 및 그로 인한 인원 대체 방법을 제대로 강구하지 아니한 원고의 잘못에 의하여 발생한 것으로 보이므로, 이를 이유로 참가인들의 휴가신청을 불허한 원고의 행위는 정당한 시기변경권의 행사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따라서 참가인들이 위 각 휴가신청일에 출근하지 아니한 것은 무단결근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판단했습니다.
(2) 서울고등법원 2019. 4. 4. 선고 2018누57171 판결
근로자는 석가탄신일(5월 3일), 어린이날(5월 5일), 토요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연휴 사이에 5월 2일과 5월 4일 연차휴가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했으나, 사용자가 연휴기간 업무량이 폭증하는 업무 특성을 이유로 연차휴가 신청을 반려했습니다. 그러나 근로자는 별다른 보고 없이 2일부터 결근했고 관리자가 전화, 문자메시지 등을 보냈으나 응답하지 않았기에, 사용자는 5월 8일 비로소 출근을 한 근로자에게 24일의 정직 징계처분을 내렸습니다.
이에 대해 1심은 "회사의 취업규칙은 휴가가 업무에 지장이 있거나 집단으로 실시해 업무방해가 예상될 때에는 휴가 시기를 변경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회사는 징검다리 연휴에 가전제품 수리요청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해 연차휴가 실시를 일정 부분 제한하기로 한 것임에도, 근로자가 연차휴가 신청의 반려조치에도 불구하고 무단으로 결근하였고 해당 기간 회사 측의 연락도 일절 받지 않아 징계가 타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2심은 "근로기준법과 회사의 취업규칙은 근로자에게 연차휴가를 신청하면서 그 사유를 구체적으로 기재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 않으며 취업규칙도 불가피한 사정이 있어야만 연차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석되지 않는다"고 하며 '휴가 사용의 사유'는 시기변경권 행사의 정당성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없음을 지적하고, "근로기준법상 연차휴가 시기변경권은 '사업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에 한해 행사할 수 있으며, 이는 사업장의 업무능률이나 성과가 평상시보다 현저하게 저하되는 경우를 말하고, 인력이 부족해 단순히 남아 있는 근로자들의 업무량이 상대적으로 많아진다는 가능성만으로는 시기변경권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며 회사의 시기변경권 행사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3. 위법한 시기변경권 행사의 효과
사용자가 위법하게 시기변경권을 행사해, 근로자의 연차휴가 사용을 결근으로 처리하거나, 징계 등 불이익 처분을 내렸다면, 이는 사용자의 부당행위로 무효가 될 것입니다.
한편 사용자의 연차휴가 시기변경권 행사가 위법한 경우, 이는 근로기준법 제60조 제5항을 위반한 것이므로 근로기준법 제110조 제1호에 따른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4. 연차유급휴가 대체 제도
연차유급휴가 대체 제도란 사용자가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를 통해 연차유급휴가일에 갈음해 특정한 근로일에 근로자를 휴무시키는 제도를 말합니다(근로기준법 제62조). 앞서 든 판결과 같이, 법원이 연차휴가 시기변경권 행사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하는 입장을 유지한다면 기업으로서는 연차유급휴가 대체 제도의 활용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