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주식은 주식회사가 자신이 발행한 주식을 자기의 계산으로 취득해서 보유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주식을 취득하면 그 취득대금 상당액이 외부로 유출되어 회사의 자본충실을 해하고, 자기주식이 많으면 적은 출자만으로도 회사 지배가 가능해서 지배구조를 왜곡시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종래 상법은 자기주식 취득을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취득하면 바로 소각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1994년 상장회사에 한해 배당가능이익으로 자기주식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한 후, 2011년 상법 개정으로 그러한 제한이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특히 자기주식을 취득하더라도 이를 소각해야 하는 의무가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취득은 자유로워지고 소각 의무는 사라지면서 많은 상장회사들이 자기주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자기주식 비율이 20%를 넘어 40%에 이르는 회사도 여럿입니다. 자기주식은 회사가 스스로를 소유하는 꼴이기 때문에, 혹은 제도상 허점을 악용해 여러 문제를 낳고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회계처리할 것인지를 두고 그 본질에 관한 논의가 있어 왔습니다. 자기주식을 매각하면 현금 등 자산이 증가하므로 자산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자산설’이 있습니다. 자기주식을 취득하면 실질적으로는 자본금을 환급하는 효과가 발생하므로 미발행주식(자본감소)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미발행주식설’이 있습니다. ‘자산설’에 의하면 자기주식의 취득이나 처분은 손익거래로 인식하고, ‘미발행주식설’에 의하면 자본환급이므로 자본거래로 인식합니다.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는 이를 자본의 차감항목으로 처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소액주주를 축출하기 위해 지배주주 주식매도청구권을 행사하거나 주식병합을 하는 과정에서 소액주주에게 지급할 돈을 줄이기 위해 이러한 특성을 악용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1주당 자산가치를 산정할 때 미발행주식설에 의하면 자산이 아니고 미발행주식이므로 자기주식을 분모와 분자에서 모두 제외해야 합니다. 자산설에 의하면 발행된 주식이고 자산이므로 분모와 분자에 모두 포함해야 합니다. 어느 경우든 분모와 분자에서 모두 제외하거나 포함하여야지 분모에는 자기주식을 포함하고, 분자에서는 자기주식을 제외하면 1주당 가치가 축소 왜곡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러나 소액주주에게 지급할 주식가치를 산정하는 과정에서 자기주식을 분모에만 포함하고 분자에서는 제외하여 터무니없이 가치를 축소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경우 자기주식의 비율에 해당하는 소액주주의 자산가치가 남아 있는 지배주주에게 무상으로 이전하는 효과가 발생합니다. 매우 부정의한 결과이지만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위와 같은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 법원은 그것이 정당한 조치라고 판단을 하기도 합니다.
지배주주가 인적분할을 통해 지주회사를 설립하면서 회사 돈으로 지배주주의 지분을 늘리거나, 의결권이 없던 주식의 의결권을 되살리는 소위 ‘자기주식의 마법’도 가능하게 됩니다. 인적분할 과정에서 존속회사에 신설회사의 신주를 배정함으로써 추가 출자 없이 존속회사 지배주주의 신설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할 수도 있습니다. 자기주식을 활용하면 지배주주는 회사 돈으로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고, 그 효과는 자기주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커집니다. 자기주식이 회사의 지배구조를 왜곡시키는 결과가 됩니다.
자기주식을 소각하지 않고 계속 보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의 논거로는 경영권 방어의 수단으로 필요하다는 것이 대표적으로 언급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 특단의 수단이 필요할 정도의 적대적 M&A 시도 사례를 찾기 어렵고, 성공한 사례는 아예 없습니다.
자기주식이 재무관리를 위해 필요하다는 등 다른 이유도 제시되지만 결국 우리 현실에서는 자기주식이 지배주주의 이익을 위해 회삿돈을 이용하는 수단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기업들의 자사주 악용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대표적 원인으로 줄곧 언급돼 왔습니다. 금융위원회 자문기구인 금융발전심의위원회가 자기주식 소각 의무화를 권고한 이유기도 합니다.
정부는 2024. 2. 26. 한국 증시의 저평가 현상을 해소하겠다며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했습니다. 상장사 스스로 기업가치 제고 계획에 관한 자율 공시를 하도록 하고, 주식소각 등으로 주가를 올린 기업에 법인세 감면 혜택을 주는 방안 등이 제시되었습니다. 하지만 계속 문제가 되어온 '자기주식 소각 의무화'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밸류업 방안의 실체는 기업의 자율에 맡기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현실에 비추어 보면 자기주식을 악용하는 수준의 기업들이 정부 방안을 이유로 온갖 마법을 부리는 자기주식을 소각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주식 거래가격을 낮추어 상속세·증여세를 줄이거나, 회삿돈으로 자기주식을 늘려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이 더 이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밸류업 프로그램의 성공은 자율이 아니라 제도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주식 소각을 의무화 하는 것이 그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