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실관계
가. 피고들은 서울 강남구 소재 빌딩(이하 ‘이 사건 건물’)의 공유자들로, 이 사건 건물 외벽에 건물을 임대한다는 문구와 건물 관리소장의 연락처가 기재된 광고물을 설치하였습니다.
나. 공인중개사인 원고는 2021. 3.경 자신의 의뢰인으로부터 모델하우스 용도로 사용할 건물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았는데, 원고는 이 사건 건물 관리소장에게 전화하여 공인중개사임을 밝히고, 이 사건 건물의 임대가 가능한지 문의하여, 이 사건 건물 1층과 지하 1층이 임대 가능하다는 답변을 듣기는 하였으나, 당시 이 사건 건물에 관한 임대차계약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다. 원고는 2021. 4.경 다른 의뢰인에게 이 사건 건물을 소개하였고, 2021. 4. 28. 이 사건 건물의 관리소장을 만나 원고의 명함을 주고 이 사건 건물의 현장답사를 하였으며, 그 다음 날인 2021. 4. 29.부터 같은 해 5. 17.까지 관리소장과 수 차례 통화하면서 이 사건 건물의 임대차계약 조건에 관한 내용을 협의하였습니다. 그 결과 원고의 의뢰인은 2021. 5. 25. 피고들로부터 이 사건 건물을 임차하기로 하는 임대차계약(이하 ‘이 사건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라. 한편, 이 사건 임대차계약 체결 시, 원고는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를 작성하여 원고의 의뢰인과 피고들에게 교부하였는데, 위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에는 “중개보수 61,200,000원(부가세별도), 67,320,000원(부가세포함), 중개보수: 700,000,000원 + (61,000,000원 × 100) = 6,800,000,000 × 0.9% = 61,200,000원 *0.9% 이내에서 협의하여 결정함*”이라고 기재되고, 그 아래에 피고들과 원고의 의뢰인 및 원고의 각 도장이 날인되어 있었습니다.
마. 원고는 위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 기재 내용을 근거로, 피고들에게 이 사건 임대차계약에 따른 중개보수 61,200,000원을 청구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피고들은, 피고들이 원고에게 직접 위 임대차의 중개를 의뢰한 적이 없고, 원고가 피고들이 이 사건 건물 외벽에 직접 설치한 임대광고물을 통해 이 사건 건물 관리소장 연락처로 전화하여 연락한 것을 계기로 이 사건 임대차계약이 체결된 것이므로, 피고들에게는 위 중개보수의 지급책임이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2. 원심의 판단
이 사건의 원심(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6. 15. 선고 2022나67014 판결)은, 원고가 피고들로부터 중개의뢰를 받았다고 인정할 직접적 증거는 없으나, (i) 계약당사자 한 쪽으로부터만 중개의뢰를 받았더라도 중개업무의 특성상 부분적으로는 중개의뢰를 받지 않은 쪽의 중개업무도 간접적으로 수행하여야 하므로, 중개를 명시적으로 의뢰하지 않은 거래당사자라 할지라도 중개수수료를 지급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명백히 표시하지 않는 한 중개수수료 지급의무를 부담하고, (ii) 원고와 피고들 사이에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의 ‘중개보수 등에 관한 사항’란에 기재된 바와 같이, 원고에게 중개수수료를 지급하기로 하는 약정이 성립하였다고 보아, 피고들의 원고에 대한 중개보수 지급책임을 인정하였습니다.
다만 원심은, (i) 위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에 ‘중개수수료는 0.9% 이내에서 협의하여 결정함’이라 기대되어 있어, 이미 감액을 예정하고 있었다고 보이는 점, (ii) 중개수수료율은 원래 일방만을 중개하는 경우를 상정하여 정해진 것이므로 원고와 같이 사실상 쌍방을 모두 중개하는 경우 위 중개수수료율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부동산중개업자에게 과다한 이익을 가져다주는 결과가 되는 점, (iii) 원고가 피고측에게 4,000만 원의 중개수수료를 제시한 적이 있는 점, (iv) 원고가 원고의 의뢰인으로부터 이미 4,000만 원의 중개수수료를 지급받은 점 등을 고려하여, 피고들이 지급하여야 할 중개수수료의 액수는 3,000만 원으로 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3. 대법원의 판단
그러나 대법원은, 아래와 같이 판시하면서, 원심판결 중 피고들 패소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환송하였습니다.
가. 관련 법리
공인중개사법 제2조 제1호는 ‘중개’에 관하여 “제3조의 규정에 의한 중개대상물에 대하여 거래당사자 간의 매매ㆍ교환ㆍ임대차 기타 권리의 득실ㆍ변경에 관한 행위를 알선하는 것”이라고 정하였다. 이러한 ‘중개’에는 중개업자가 거래의 쌍방 당사자로부터 중개의뢰를 받은 경우뿐만 아니라 일방 당사자의 의뢰로 중개대상물의 매매 등을 알선하는 경우도 포함된다(대법원 1995. 9. 29. 선고 94다47261 판결, 대법원 2021. 7. 29. 선고 2017다243723 판결 등 참조). 공인중개사법 제32조 제1항 본문은 “개업 공인중개사는 중개업무에 관하여 중개의뢰인으로부터 소정의 보수를 받는다.”라고 정하였으므로, 공인중개사가 중개대상물에 대하여 거래당사자 간의 매매ㆍ교환ㆍ임대차 기타 권리의 득실ㆍ변경을 알선하는 행위를 하였더라도, 해당 중개업무를 의뢰하지 않은 거래당사자로부터는 별도의 지급 약정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칙적으로 중개보수를 지급받을 수 없다.
공인중개사법 제25조 제1항에서 정한 공인중개사의 중개대상물에 관한 확인․설명의무는 해당 중개대상물에 관한 권리를 취득하고자 하는 중개의뢰인에 대하여 인정되는 것이므로, 공인중개사가 공인중개사법 제25조 및 공인중개사법 시행령 제21조에 따라 작성한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의 직접적인 대상자 역시 해당 중개대상물에 관한 권리를 취득하고자 하는 중개의뢰인에 한정된다. 따라서 공인중개사법 시행령 제21조 제1항 제3호에서 공인중개사가 공인중개사법 제25조 제1항에 따라 확인․설명할 사항 중 ‘중개보수 및 산출내역’을 명시한 것도 중개의뢰인과의 관계에서만 의미를 가지고, 비록 공인중개사법 시행령 제21조 제3항이 공인중개사로 하여금 중개의뢰인이 아닌 거래당사자에게도 위 서면을 교부할 의무를 부과하였지만, 이는 행정적 목적을 위해 공인중개사에게 부과한 의무일 뿐 공인중개사의 중개대상물에 관한 확인․설명의무의 대상을 중개의뢰인이 아닌 거래당사자에 대해서까지 확대하는 취지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므로 중개의뢰인이 아닌 거래당사자가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에 기명․날인을 하였더라도, 이는 공인중개사로부터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를 수령한 사실을 확인하는 의미에 불과할 뿐 ‘중개보수 등에 관한 사항’ 란에 기재된 바와 같이 중개수수료를 지급하기로 하는 약정에 관한 의사표시라고 단정할 수 없다.
나. 이 사건의 경우
원심판결 이유를 위 법리 및 적법하게 채택한 증거에 비추어 살펴보면, 피고들의 중개수수료 지급 의무를 인정한 원심의 판단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수긍할 수 없다.
(1) 공인중개사인 원고의 중개행위는 이 사건 건물에 관한 임대차계약의 체결에 관한 알선 행위인데, 그 과정에서 임차인으로부터 중개의뢰를 받은 사실에 관하여는 다툼이 없다. 즉, 원고가 임차인으로부터 중개의뢰를 받아 이 사건 임대차계약의 체결에 관한 알선 행위를 하게 된 것으로, 그 과정에서 거래당사자 쌍방의 의사를 조정․전달하는 행위를 하였다고 하여 그것만으로 임대인인 피고들의 중개의뢰 또는 중개수수료 지급약정의 성립을 당연히 긍정하여야 하는 사정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2) 원심도 원고가 피고들로부터 중개의뢰를 받지 않았거나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하였는바, 이러한 상황에서 피고들의 원고에 대한 중개수수료 지급의무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피고들이 원고에 대하여 중개수수료를 지급하기로 하는 별도의 약정이 존재하였어야 한다. 그런데 이에 관하여는 원고에게 주장․증명책임이 있음에도 앞서 본 바와 같이 별다른 증거가 없다.
(3) 이 사건 임대차계약 체결 과정에서 원고가 작성한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에 피고들의 기명․날인도 포함되어 있으나, 피고들의 원고에 대한 중개의뢰 사실 자체를 인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그와 같은 기명․날인이 해당 서면을 영수하였다는 의미를 넘어 중개의뢰 또는 중개수수료 지급 약정의 성립에 관하여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4) 피고 3이 2021. 6. 7. 원고로부터 중개수수료 지급 요청을 받게 되었을 때 지급거부의 의사를 고지하지 않은 채 원고에게 희망하는 금액을 알려 달라고 한 적은 있으나, 이는 이 사건 임대차계약 체결 여부 등 대부분의 의사결정을 피고 1이 행사하였던 상황에서 원고의 의사를 피고 1에게 전달하거나 피고 1과 상의해보겠다는 취지에 불과하였던 것으로 보이고, 원고도 이 사건 임대차계약 체결 이후부터 위 시점까지 피고들에게 중개수수료 지급에 관하여 별다른 언급을 한 적이 없었던 점까지 더하여 보면, 피고 3의 위와 같은 단편적인 발언이 중개수수료 지급 약정의 성립을 뒷받침하는 간접사실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5) 원고는 이 사건 임대차계약이 체결되기 불과 5일 전인 2021. 5. 20. 피고들 중 1명을 처음으로 만났을 뿐 그 전까지는 피고들과 직접 의사교환을 한 적이 없고, 피고들은 이 사건 임대차계약 체결 과정에서 주로 이 사건 건물의 관리소장을 통하여 원고와 상호간 의사를 나누었을 뿐인데다가 앞서 본 것처럼 중개수수료 지급에 관한 별도의 언급이나 협상도 없었다는 것으로, 이러한 정황은 피고들과 원고 사이에 중개의뢰 및 중개수수료 지급 약정의 성립을 인정하기에는 상당히 이례적인 정황이다.
4. 판결의 의의
이상에서 살핀 바와 같이, 본 판결은 공인중개사가 해당 중개업무를 의뢰하지 않은 거래당사자로부터는 원칙적으로 중개보수를 지급받을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중개의뢰인이 아닌 거래당사자가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에 기명·날인을 하였다고 하여 이를 곧바로 중개수수료를 지급하기로 하는 약정에 관한 의사표시라고 해석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시하였다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공인중개사는 양측의 의견을 조율하고 구체적 계약조건을 협의하는 등의 업무를 통해, 명시적인 중개의뢰를 하지 아니한 거래당사자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경우가 상당한바, 이 경우 직접 중개의뢰를 하지 않은 거래당사자로부터 중개보수를 지급받고자 하는 공인중개사는, 위 당사자와의 사이에 중개보수에 관한 별도의 약정을 체결하여 두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