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실관계
원고는 2020. 11. 3. 피고로부터 이 사건 아파트의 분양권을 매매대금 401,400,000원에 매수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같은 날 피고에게 계약금 20,000,000원을 지급하였습니다. 이 사건 계약은 중도금 지급에 대하여 별다른 정함이 없고, 잔금 지급방법에 관하여는 원고가 ① 2021. 1. 4. 91,230,000원을 지급하고, ② 시공사에 잔존 분양금액 및 확장비 합계 102,790,000원을 지급하며, ③ 금융기관 중도금 대출 관련 187,380,000원 상당을 자기 책임 아래 승계하여 상환하도록 정하였습니다.
한편 계약해제와 관련하여 이 사건 계약 제2조는 '매수인이 매도인에게 중도금(중도금이 없으면 잔금)을 지불하기 전까지는 매도인은 계약금액의 배액을 상환하고 매수인은 계약금을 포기하고이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정하였고, 특약사항으로 '잔금일은 2021. 1. 4.로 정하고 ○○건설 본사 일정 및 상호협의 하에 앞당겨질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었습니다.
이 사건 계약 제2조는 '매수인이 매도인에게 중도금(중도금이 없으면 잔금)을 지불하기 전까지는 매도인은 계약금액의 배액을 상환하고 매수인은 계약금을 포기하고이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정하였고, 특약사항으로 '잔금일은 2021. 1. 4.로 정하고 ○○건설 본사 일정 및 상호협의 하에 앞당겨질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원고는 2020. 11. 9. 피고 명의 계좌로 거래 명목을 '축 생신'으로 기재하여 총 4회에 걸쳐 합계 20,000,000원을 송금하였으나, 그 전후에 피고 또는 피고 측 대리인에게 송금사실을 고지한 적은 없었습니다. 피고는 2020. 11. 13.경 원고의 송금사실을 알고서 그 직후부터 수차례에 걸쳐 원고 측에게 반환하겠다고 고지하였으나, 원고는 이를 거부하였고 피고는 2020. 11. 23. 원고에게 이 사건 계약을 해제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고 2020. 12. 1. 피공탁자를 원고로 하여 계약금의 배액을 포함한 60,000,000원을 공탁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원고는 피고에 대하여 자신에게 매매를 원인으로 한 수분양자대장상의 수분양자 명의변경절차를 이행하라는 청구를 하였습니다.
2. 제1심 및 항소심의 판단
제1심(의정부지방법원 2022. 1. 19. 선고 2021가합50123 판결)은 고로 하여금 잔금 지급기일 전에 잔금을 지급할 수 없도록 특약을 하였다고 볼 만한 기재가 전혀 없고, 오히려 상호 협의 하에 잔금지급기일을 앞당길 수 있다고 약정한 사실이 인정될 뿐이며, 이 사건 부동산의 시가가 상승하였다는 사정 외에는 이 사건 계약의 존속을 위협하는 불가피한 사정도 없는 것으로 보면서 원고가 사전 약속 없이 잔금 지급기일로부터 약 두 달 전에 피고 계좌로 20,000,000원을 송금한 것이 다소 이례적이기는 하나, 계약을 유지하고자 하는 원고로서는 적극적으로 이행에 나아가는 것만이 당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고 볼 수 있고, 달리 이행기 전의 이행의 착수가 허용되어서는 안 될 만한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하여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피고가 항소를 하였는바(서울고등법원 2022. 6. 30. 선고 2022나2005213 판결), 항소심은 제1심과 달리 원고가 2020. 11. 9. 피고에게 위 20,000,000원을 송금하였는데, 이를 전후하여 피고 또는 피고측 대리인에게 이 사건 계약에 따른 잔금 등 지급의무를 이행한다는 취지를 전혀 고지한 바 없고, 위 송금 당시 거래 명목란에도 '축 생신'이라고만 입력하였을 뿐인라는 점, 원고가 지급한 금액은 원고가 피고에게 실질적으로 지급하여야 하는 금액의 5.2%에 불과한 점, 이 사건 아파트의 시세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상황이이어서 시세 상승 정도에 따라서는 매도인인 피고가 보다 수월하게 약정해제권을 행사할 가능성 또한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 '상호협의 하에 잔금일을 앞당길 수 있다'는 약정 조항은 문언상으로도 매수인이 일방적으로 잔금일을 앞당길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점 등을 종합하여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고, 피고의 공탁으로 계약이 해제되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3.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원고의 상고를 기각하여 위 항소심판결을 그대로 확정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대법원은 부동산 매매계약에서 중도금 또는 잔금 지급기일은 일반적으로 계약금에 의한 해제권의 유보기간의 의미를 가진다고 이해되고 있으므로, 계약에서 정한 매매대금의 이행기가 매도인을 위해서도 기한의 이익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면, 채무자가 이행기 전에 이행에 착수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이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채무 내용, 이행기가 정하여진 목적, 이행기까지 기간의 장단 및 그에 관한 부수적인 약정의 존재와 내용, 채무 이행행위를 비롯하여 당사자들이 계약 이행과정에서 보인 행위의 태양, 이행기 전 이행행위가 통상적인 계약의 이행에 해당하기보다 상대방의 해제권의 행사를 부당하게 방해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채권자가 채무자의 이행의 착수에도 불구하고 계약을 해제하는 것이 신의칙에 반한다고 볼 수 있는지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하여 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 사건 계약의 내용, 잔금 지급기일을 정하는 외에 사전 지급에 관한 특약까지 명시한 점, 원고가 잔금 지급기일에 앞서 송금한 액수 및 명목, 이에 대한 피고의 반응과 조치, 그러한 상황 하에서 피고의 계약해제권 행사가 계약의 구속력의 본질을 침해하는 등 신의칙에 반하거나 원고에게 예측하지 못한 손해를 가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등을 종합하여, 이 사건에서는 잔금 지급기일과 관련하여 매도인인 피고에게도 기한의 이익이 인정되므로 원고가 잔금 지급기일 전에 이행에 착수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아,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판결을 수긍하여 상고를 기각하였습니다.
4. 본 판결의 의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을 지급한 후 이행에 착수가 있으면 매도인이 계약금의 배액을 상환(매수인의 경우 계약금 포기)하고 계약을 자유롭게 해제할 수 있는 것은 당사자의 일방이 이미 이행에 착수한 때에는 그 당사자는 그에 필요한 비용을 지출하였을 것이고, 또 그 당사자는 계약이 이행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데 만일 이러한 단계에서 상대방으로부터 계약이 해제된다면 예측하지 못한 손해를 입게 될 우려가 있으므로 이를 방지하고자 함에 있습니다(대법원 1993. 1. 19. 선고 92다31323 판결 참조).
그런데 이와 같은 규정을 악용하여 일방적으로 이행을 착수하는 경우 그 착수의 상대방이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여러 의견이 있었으나 금번 대법원 판결을 통하여 예외적으로 이행의 착수 상대방이 여전히 계약해제권을 가질 수 있는 경우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본 건의 경우 시세상승 등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하여 구체적인 타당성에도 부합하는 매우 합리적인 판결이라고 판단됩니다. 더불어 일방적인 계약이행착수로 인하여 계약해제권이 제한받는 상황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판결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