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 10. 23.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지선 변호사
1. 친생자 부인에 대한 법리
혼인 중 아내가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자녀로 추정됩니다. 이렇게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된 것을 번복하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친생부인의 소에 의하여야 합니다. 친생부인의 소는 남편 또는 아내가 다른 일방 또는 자녀를 상대로 그 사유가 있음을 안 날부터 2년 내에 이를 제기해야만 합니다. 안 날로부터 2년 내에 소를 제기하지 않으면 친생추정 자녀에 대해서는 친생자 관계를 부인할 수 없게 됩니다. 그 결과 (예를 들어 유전자검사 결과상) 명백하게 친생자가 아닌 경우에도 친생자 관계는 그대로 확정됩니다.
다만, 우리 대법원은 종래 부부가 동거하지 않은 경우라는 외관상 명백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한해 민법 제844조의 친생추정을 배제하고 있습니다('외관설'). "민법 제844조는 부부가 동거하여 처가 부의 자를 포태할 수 있는 상태에서 자를 포태한 경우에 적용되는 것이고 부부의 한쪽이 장기간에 걸쳐 해외에 나가 있거나 사실상의 이혼으로 부부가 별거하고 있는 경우 등 동거의 결여로 처가 부의 자를 포태할 수 없는 것이 외관상 명백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 추정이 미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친생추정을 받지 않는 자녀에 대해서는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의 소를 통해 친생자 관계를 부인할 수 있습니다. 이 소는 제소기간의 제한이 없습니다. 또한 남편이나 아내 외에도 이해관계인은 소를 제기할 수 있다는 점도 차이가 있습니다.
즉, 친생추정의 예외가 인정되면, 남편은 자녀가 친생자가 아님을 안 날로부터 2년이 경과한 후에도 친생자 관계를 부인하고 부자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2. 대법원 판례의 사실관계
A(남자)와 ○A(여자)는 법률상 부부입니다. A는 병원으로부터 무정자증 진단을 받아 자연적인 성적 교섭으로는 자녀를 출산할 수 없습니다. 두 사람은 제3자의 정자를 제공받아 첫째 아이를 출산하였고, 이후 ○A는 남편이 아닌 남자의 아이인 B(둘째 아이)를 임신하여 출산하였습니다. A는 자신과 ○A의 자녀로 B를 출생신고 하였습니다. A는 늦어도 B가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인 2008년경에는 병원 검사를 통하여 자신의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A는 2014년경까지 출생신고를 문제삼지 않고, B와 동거하면서 아버지로서 B를 보호하고 교육시켰습니다. 이후 A는 B를 상대로 친생자관계부존재 확인의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부부의 한쪽이 해외에 나가 있거나 별거하는 경우 등 동거의 결여가 명백한 경우에 친생추정의 예외가 인정되는 것처럼, 유전자검사 결과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이 밝혀진 경우에도 친행추정의 예외를 인정하여 달라는 것, 즉 비록 친생자가 아님을 안 날로부터 2년이 경과한 후에도 친생자관계를 부인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 A의 청구였습니다.
3. 법원의 판단
(1) 1심, 2심의 판단
이 사건 1심은 친생부인의 예외 사유(부인이 남편의 자식을 임신할 수 없는 외관상 명백한 사정)를 인정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2심 역시 A 패소판결을 했는데, 이유는 달랐습니다. 2심 법원은 A와 B는 친생자 관계가 인정되지 않으나, 입양의 실질적 요건을 갖추어 양친자관계가 성립했다고 보았습니다. 2심 법원은 이 사건이 친생부인의 예외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2)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은 혈연관계 유무는 친생부인 예외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혼인 중 아내가 출산한 자녀가 유전자 검사로 남편과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이 밝혀졌더라도 친생자로 추정된다고 한 것입니다.
대법원이 이처럼 판단한 이유는, 첫째로 혈연관계 유무를 기준으로 친생추정 규정이 미치는 범위를 정하는 것은 민법 규정의 문언에 배치될 뿐 아니라 친생추정 규정을 사실상 사문화하는 것이고, 둘째로 가족관계는 반드시 혈연관계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고 가족공동생활을 하면서 오랜 기간 유지되어 견고해진 경우 이와 같이 형성된 자녀의 지위에 대해서는 누구든 쉽게 침범할 수 없도록 하여 자녀의 지위를 안정적으로 보장할 사회적 필요도 있는데, 실질적으로 형성된 혈연관계의 유무를 기준으로 친생추정 규정이 효력이 미치는 범위를 정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가족관계의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가족관계 등 가정 내부의 내밀한 영역에 깊숙이 관여하게 되며, 셋째로 법리적으로 보아도 혈연관계의 유무는 친생추정을 번복할 수 있는 사유에는 해당할 수 있지만 친생추정이 미치지 않는 범위를 정하는 사유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4. 판결의 의의
부는 자녀가 자신의 친생자가 아닌 것을 안 날로부터 2년내에 친생부인의 소라는 방법을 통해서만 부자관계를 정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안 날로부터 2년이 지나면, 혈연관계보다는 가족공동생활로 형성된 자녀의 지위를 안정적으로 보호하고자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