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법인격 남용 법리의 확장

- 대법원 2019. 12. 13. 선고 2017다271643 판결



조범석 변호사




1. 채무면탈 목적의 법인격 남용에 대한 판례

기존회사가 채무를 면탈할 의도로 기업의 형태ㆍ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신설회사를 설립한 경우 이는 기존회사의 채무면탈이라는 위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회사제도를 남용한 것에 해당하고, 기존회사의 채권자에 대하여 위 두 회사가 별개의 법인격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상 허용되지 않으며, 이 경우 기존회사의 채권자는 위 두 회사 어느 쪽에 대해서도 채무의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의 태도입니다(대법원 2004. 11. 12. 선고 2002다66892 판결 등 참조).

이러한 법리는 어느 회사가 이미 설립되어 있는 다른 회사 가운데 기업의 형태ㆍ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회사를 채무를 면탈할 의도로 이용한 경우에도 적용되는데, 여기에서 기존회사의 채무를 면탈할 의도로 다른 회사의 법인격을 이용하였는지는 (i) 기존회사의 폐업 당시 경영상태나 자산상황, (ii) 기존회사에서 다른 회사로 유용된 자산의 유무와 그 정도, (iii) 기존회사에서 다른 회사로 자산이 이전된 경우 그 정당한 대가가 지급되었는지 여부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합니다(대법원 2008. 8. 21. 선고 2006다24438 판결, 대법원 2011. 5. 13. 선고 2010다94472 판결 등 참조).

2. 대법원 2017다271643 판결 - 법인격 남용 법리의 확장

대법원 2019. 12. 13. 선고 2017다271643 판결은 이러한 채무 면탈 목적의 신설회사 설립에 관한 법인격 남용의 법리를 확장하여 적용하였습니다.

위 판례의 사안은, 채무자 A사가 B사와 함께 건축주 명의를 가지고 있다가, C사가 A사를 상대로 건축주 명의변경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여 건축주 명의가 B와 C로 변경되었는데, 그 후 건축주 명의가 B와 피고로, 다시 피고 단독 명의로 이전된 사안입니다. A와 피고는 모두 소외인이 설립하여 실질적으로 운영하였습니다.

원심(서울고등법원 2017. 9. 13. 선고 (춘천)2017나105 판결)은 이와 같은 사실관계를 토대로 다음과 같이 판단하여 법인격 남용을 전제로 한 원고의 청구를 배척하였습니다.

“소외인이 A와 피고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었고, A는 이 사건 건물의 건축주 지위 외에는 별다른 자산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나, B는 소외인이 사실상 지배하고 있었던 회사라고 볼 증거가 없다. 2012. 4. 30. 이 사건 건물의 건축주가 A서 B로 변경된 것은 A가 B로부터 차용한 돈을 변제하지 못하여 각서를 기초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일 뿐 A가 아무런 대가 없이 B에 건축주 지위를 양도한 것으로 볼 수 없다. 따라서 이 사건 건물의 건축주가 위와 같이 변경되었다는 사정만으로 소외인이 채무를 면탈할 목적으로 피고를 이용하였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회사제도 남용의 법리에 따라 피고가 A의 원고들에 대한 공사대금채무를 부담한다는 원고들의 주장은 이유 없다.”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 대하여 대법원은, “기존회사의 자산이 기업의 형태ㆍ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다른 회사로 바로 이전되지 않고, 기존회사에 정당한 대가를 지급한 제3자에게 이전되었다가 다시 다른 회사로 이전되었다고 하더라도, 다른 회사가 제3자로부터 자산을 이전받는 대가로 기존회사의 다른 자산을 이용하고도 기존회사에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았다면, 이는 기존회사에서 다른 회사로 직접 자산이 유용되거나 정당한 대가 없이 자산이 이전된 경우와 다르지 않다. 이러한 경우에도 기존회사의 채무를 면탈할 의도나 목적, 기존회사의 경영상태, 자산상황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회사제도를 남용한 것으로 판단된다면, 기존회사의 채권자는 다른 회사에 채무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고 법리를 전개한 후, “A와 피고는 그 설립목적과 형태ㆍ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회사이다. A의 유일한 자산은 이 사건 건물의 건축주 지위였는데, 확정판결에 따라 건축주 지위가 B에 이전되었다가 다시 피고에게 이전되었다. 그런데 피고는 B로부터 이 사건 건물의 건축주 지위를 양수할 무렵 별다른 자산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고, A와 마찬가지로 소외인이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A로부터 B에 이 사건 건물의 건축주 지위가 이전된 것이 B의 정당한 권원에 기초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후 B로부터 피고에게 다시 이 사건 건물의 건축주 지위가 이전되는 과정에서 A가 차용한 자금이 사용되는 등 A의 자산이 정당한 대가 없이 이전되었거나 유용되었다면, A의 채무면탈이라는 위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피고를 이용하여 회사제도를 남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A의 채권자는 A뿐만 아니라 피고에 대해서도 채무의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 그런데도 원심은 B가 소외인이 사실상 지배하고 있었던 회사가 아니고, A가 아무런 대가 없이 B에 이 사건 건물의 건축주 지위를 양도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채무면탈의 목적으로 피고를 이용하였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나아가 B로부터 피고에게 건축주 지위가 이전되는 과정에서 B의 자산이 정당한 대가 없이 이전되었거나 유용되었는지 여부 등을 심리하지 않은 채 원고들의 이 부분 청구를 배척하였다. 원심 판단에는 법인격 남용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단하여 이와 결론을 달리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였습니다.

3. 대법원 판결의 의미

채무 면탈 목적의 신설 회사 설립 유형의 법인격 남용 사례에서 기존 판결들은, 기존회사의 자산이 기업의 형태ㆍ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다른 회사로 바로 이전된 경우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위 2017다271643 판결에서 대법원은, 기존회사의 자산이 기존회사에 정당한 대가를 지급한 제3자에게 이전되었다가 다시 다른 회사로 이전된 경우에도, 다른 회사가 제3자로부터 자산을 이전받는 대가로 기존회사의 다른 자산을 이용하고도 기존회사에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았다면, 이는 기존회사에서 다른 회사로 직접 자산이 유용되거나 정당한 대가 없이 자산이 이전된 경우와 다르지 않다고 보아, 법인격 남용 법리가 적용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