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상 범죄자가 북한으로 도주한 경우를 보며
도종호, 홍종기 변호사
1. 들어가며
최근 유행하고 있는 드라마의 주인공 중 한 명은 “수사망을 피해 도망가다 대한민국 경찰이 절대 따라오지 못할 곳, 북한까지 가게 된다. 공소시효 끝날 때까지 북한에 조용히 숨어 있으려 한다”라는 설정의 역할입니다. 거액의 돈을 횡령하고 수사를 피하다가 북한의 브로커들에게 뇌물을 주고 공소시효가 끝날 때까지 북한에 숨어 있으려고 한다는 설정입니다(위 주인공이 영국국적이라는 점도 추가적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공소제기를 피하기 위해서 외국으로 도주하면 공소시효가 정지되는지, 특히 북한으로 도피하는 경우 공소시효가 정지되는지에 대하여 형사소송법상 규정에 비추어 보면 여러 가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2. 형사소송법상 공소시효의 정지 규정
가. 공소시효의 의의와 존재이유
판결확정 전에 일정한 시간의 경과에 따라 형벌권이 소멸하는 것인 공소의 시효를 형사소송법 제249조 내지 제253조에서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검사가 일정한 기간 동안 공소를 제기하지 않고 방치하는 경우에 국가의 소추권을 소멸시키는 제도를 의미합니다. 공소시효가 완성된 때에는 면소의 판결을 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공소시효를 두는 이유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발생한 사실상태를 존중하여 사회와 개인생활의 안정을 도모하고 형벌부과의 적정을 기하려는 데에 그 의의가 있습니다. 즉 범인이 범죄 후 일정한 기간 동안 기소되지 아니하고 사회생활을 영위하였다는 상태를 보호하고, 시간의 경과에 따른 가벌성 감소 및 피해자 내지 사회적 감정의 냉각 내지 소멸, 국가의 태만으로 인한 책임을 범인에게만 돌려서는 아니 된다는 점, 일정한 기간 경과로 증거가 멸실되었을 가능성이 큰데 이 경우 적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 등 여러 가지 요소가 공소시효제도의 존재 근거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나. 공소시효 정지사유-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공소시효의 정지사유는 공소의 제기, 재정신청 등이 있습니다. 한편 형사소송법 제253조 제3항은 “범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그 기간 동안 공소시효는 정지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에는 공소시효가 정지되고, 따라서 공소시효가 완성될 수 없습니다. 이는 범인이 우리나라 사법권이 실질적으로 미치지 못하는 국외에 체류한 것이 도피의 수단으로 이용된 경우에 그 체류기간 동안은 공소시효가 진행되는 것을 저지하여 범인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해서 형벌권의 적정한 실현을 구현하고자 함에 있는 것입니다.
1989년 본격적인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범죄를 저지른 다음 외국으로 도피하는 범인이 늘어났고 국가간 형사사법공조가 원활하지 않는 경우 국외도피사범에 대한 수사 및 공소제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등의 이유로 위 규정은 1995년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하여 신설되었습니다.
위 규정과 관련하여 대법원은 “국외 체류의 유일한 목적으로 되는 것에 한정되지 않고 범인이 가지는 여러 국외 체류 목적 중에 포함되어 있으면 족하고, 범인이 국외에 있는 것이 형사처분을 면하기 위한 방편이었다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 있으며,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과 양립할 수 없는 범인의 주관적 의사가 명백히 드러나는 객관적 사정이 존재하지 않는 한 국외 체류기간 동안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은 계속 유지된다(대법원 2012. 7. 26. 선고 2011도8462)”라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범인에게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이 계속 존재하였는지가 의심스러운 사정이 발생한 경우, 그 기간 동안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이 있었는지는 당해 범죄의 공소시효기간, 범인이 귀국할 수 없는 사정이 초래된 경위, 그러한 사정이 존속한 기간이 당해 범죄의 공소시효기간과 비교하여 도피 의사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기에 충분할 만큼 연속적인 장기인지, 귀국 의사가 수사기관이나 영사관에 통보되었는지, 피고인의 생활근거지가 어느 곳인지 등의 제반 사정을 참작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그리고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이 유지되지 않았다고 볼 사정이 있는 경우 그럼에도 그러한 목적이 유지되고 있었다는 점은 검사가 증명하여야 한다(대법원 2012. 7. 26. 선고 2011도8462)”라고 하여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에 대하여 여러 정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위 규정은 수사개시 전이나 불구속수사가 진행되는 중에 범인이 국외로 도피한 경우가 적용대상이 됩니다. 즉 범인에 대한 수사가 종결되어 불구속기소된 상태에서 국외로 도피하였다면 공소제기가 있는 경우이므로 공소시효가 정지된 것이고 따라서 본 규정과는 무관한 것입니다. 또한 이 규정은 국외에 있는 경우만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어 국내에서의 도피의 경우에는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되지 않습니다.
3. 북한으로 범인이 도피한 경우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에 해당이 되는 것인지
가. 북한이 형사소송법 제253조 제3항의 국외에 해당하는지 여부
다시 드라마로 돌아가서 보면, 드라마의 주인공은 수사기관의 수사를 받던 도중 중국으로 도피하였다가 좁혀오는 수사망을 피하기 위하여 북한으로 도피하였습니다. 과연 이와 같은 경우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에 해당이 되는 것인지, 즉 북한이 형사소송법 제253조 제3항에서 정하고 있는 “국외”에 해당하는지가 문제될 것입니다.
이에 관하여는 현재까지도 대법원의 명확한 판결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규정 등을 통하여 이를 합목적적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일 뿐만 아니라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영토조항 등과 관련하여 중대한 문제라고 볼 수 있는 사안입니다.
먼저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라고 하여 북한 역시 우리나라의 영토임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법원도 이와 같은 헌법조항에 근거하여 “우리 헌법이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영토조항을 두고 있는 이상 대한민국 헌법은 북한 지역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에 효력이 미치므로 북한 지역도 당연히 대한민국의 영토가 되고(대법원 2016. 1. 28. 선고 2011두24675 판결)”라고 하여 대한민국 헌법은 북한지역에도 효력이 미친다고 판시하고 있고, “저작재산권의 존속기간을 규정한 저작권법 제36조 제1항, 제41조, 제42조, 제47조 제1항의 효력은 대한민국 헌법 제3조에 의하여 여전히 대한민국의 주권범위내에 있는 북한지역에도 미치는 것이므로(대법원 1990. 9. 28. 선고 89누6396 판결)”라고 하여 헌법에 따라 우리나라 저작권법 역시 북한지역에 미친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입장을 종합하면 북한 역시 우리나라의 영토의 일부이고, 다만 실질적인 국가권력행사가 제한이 되는 것일 뿐이며, 이는 최상위법인 헌법에서 정한 문제이므로 당연히 북한을 형사소송법 제253조 제3항에서 정한 국외라고는 볼 수 없는 것이라는 견해가 있을 것입니다.
반면 범인이 우리나라 사법권이 실질적으로 미치지 못하는 국외에 체류한 것이 도피의 수단으로 이용된 경우에 그 체류기간 동안은 공소시효가 진행되는 것을 저지하여 범인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해서 형벌권의 적정한 실현을 구현하고자 하는 입법목적에 비추어 보면, 사실상 수사권이나 사법권이 미치지 않는 북한의 경우 형사소송법 제253조 제3항의 국외도피에 대한 공소시효정지 규정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1995년 형사소송법 개정당시 위 규정의 신설이유를 보면 형벌권의 적정한 실현이라는 표제 하에 “범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그 기간 동안 공소시효를 정지하여 국외도피사범의 처벌모면을 방지하도록 함”이라고 되어 있는바, 그 입법목적에 비추어 본다면 북한 역시 형사소송법 제253조 제3항의 국외라고 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존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 입법적 해결을 위한 시도
한편 이와 관련하여 “북한(군사분계선 이북지역)은 대한민국의 미수복지역으로서 국외가 아니므로 이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어 북한에 체류하고 있는 범인들의 공소시효가 정지되는지 여부가 불분명함. 이에 범인이 군사분계선 이북지역에 있는 경우 그 기간 동안 공소시효가 정지되도록 규정”(2015. 7. 법제사법위원회 수석전문위원 남궁석의 검토보고서 참조)하고자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2015. 3. 함진규 의원의 대표발의로 발의된 바가 있습니다(위 개정안은 국회의원 임기만료로 자동폐기되었습니다). 위 개정안을 보면 현행 형사소송법 제253조에 제4항을 신설하여 “범인이 군사분계선 이북지역에 있는 경우 그 기간 동안 공소시효는 정지된다”라는 규정을 두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즉 북한이 형사소송법 제253조에서 정하는 국외인지 여부에 대하여 의견이 나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를 입법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위 개정법률안에 대한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를 보면 “범인이 군사분계선 이북지역에 있다는 사유만으로 모든 범죄에 대하여 장기간 공소시효를 정지하게 될 경우 불안정한 법률 상태가 장기화될 수 있으므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봄”이라고 하면서 “통일 이후에 기존에 북한에서 이루어진 범죄행위를 처벌할 것인지 여부, 처벌 시 대상범죄의 범위 및 공소시효 정지 여부 등에 대하여는 별도의 특별법을 마련하여 논의할 필요가 있음”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습니다(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위 개정법률안은 임기만료로 폐기되었습니다).
4. 마무리하며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북한에 10년간 머무르면 공소시효가 완성되어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수차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과연 그와 같은 주인공의 생각대로 처벌을 받지 않을 것인지는 의문이 있습니다. 아마도 주인공이 영국국적이라 우리나라 헌법을 알지 못하였거나 그렇지 않으면 헌법상 영토조항에 따라 북한 역시 대한민국의 영토이므로 결국 국외가 아니라는 주장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비록 드라마에서는 범인인 주인공이 북한으로 도피하는 설정으로 된 부분이기는 하나, 단순히 드라마상 설정으로 넘기기에는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중요한 문제라고 할 것입니다. 특히 추후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따라 사회적인 문제로 실현될 수도 있는 사안인바, 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