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직권남용죄에 있어 공무원의 업무 수행이 의무 없는 일인지에 대한 판단기준

- 대법원 2020. 1. 30. 선고 2018도2236 전원합의체 판결



양문식 변호사




1. 전원합의체 판결의 개요

가. 판결 사안

대통령비서실장이 대통령의 뜻에 따라 정무수석비서관실과 교육문화수석비서관실 등 수석비서관실과 문체부에 문화예술진흥기금 등 정부의 지원을 신청한 개인ㆍ단체의 이념적 성향이나 정치적 견해 등을 이유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ㆍ영화진흥위원회ㆍ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수행한 각종 사업에서 좌파 등에 대한 지원배제, 예술위 책임심의위원 선정과정 개입을 지시한 것(예컨대, 직권남용에 해당하는 지원배제 지시로써 예술위ㆍ영진위ㆍ출판진흥원 직원들로 하여금 지원배제 방침이 관철될 때까지 사업진행 절차를 중단하는 행위, 지원배제 대상자에게 불리한 사정을 부각시켜 심의위원에게 전달하는 행위 등을 하게 한 것)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에서 말하는 직권을 남용한 경우에는 해당한다는 원심의 판단을 수긍하였으나, 피고인들이 문체부에 각종 명단을 송부하는 행위, 공모사업 진행 중 수시로 심의 진행 상황을 보고하는 행위를 하게 한 부분에 대하여는 종전에도 문체부에 업무협조나 의견 교환 등의 차원에서 명단을 송부하고 사업 진행 상황을 보고하였는지, 그 근거는 무엇인지, 이 사건 공소사실에서 의무 없는 일로 특정한 각 명단 송부 행위와 심의 진행 상황 보고 행위가 종전에 한 행위와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등을 살피는 방법으로 법령 등의 위반 여부를 심리하여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원심판결을 파기한 사례입니다.

나. 판결의 의의

공무원이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하여 직권을 행사하는 모습으로 실질적, 구체적으로 위법·부당한 행위를 해야 한다는 기존의 법리를 재확인하면서, 이전 대법원 판결에서 직권남용죄를 설시할 때 사용하던 표현들을 일부 수정하였고, 직권이 남용된 경우에도 상대방의 행위가 의무 없는 일인지 여부에 대하여는 상대방이 사인인 경우와 공무원인 경우를 달리 판단하여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하였습니다.

2. 직권행사의 모습

종래 대법원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는 공무원이 그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하여 직권의 행사에 가탁하여 실질적, 구체적으로 위법·부당한 행위를 한 경우에 성립한다.”(대법원 2019. 3. 14. 선고 2018도18646 판결 등)라고 판시하여 “직권의 행사에 가탁하여”라고 표현을 사용하였는데, 위 전원합의체 판결에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는 공무원이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하여 ‘직권을 행사하는 모습으로’ 실질적, 구체적으로 위법ㆍ부당한 행위를 한 경우에 성립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이는 직권행사의 “외관”이 직권남용죄의 구성요건요소임을 명확히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직권행사의 형식이나 외형은 직권의 인식근거가 되는 것으로 해석되며1, 대법원 2019. 8. 29. 선고 2018도13792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도 직권행사의 형식과 외관은 직권의 존부 자체를 판단하는 요소일 뿐만 아니라 직권을 행사한 것인가의 여부를 판단하는 요소임을 분명히 하였는데, 2018도2236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직권을 행사하는 모습으로’라는 판시를 통하여 직권행사의 외관이 직권남용죄의 독립한 구성요건요소로서의 의미를 보다 명확히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1박대준「직권남용죄의 성립요건」대법원판례해설 통권 제53호 법원도서관(2005) 407쪽

3. 침해범으로서의 직권남용죄

위 전원합의체 판결은 직권남용죄가 침해범이라는 점 및 직권남용과 의무 없는 일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함을 명확하게 확인하였습니다.

대법원은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과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것’은 형법 제123조가 규정하고 있는 객관적 구성요건요소인 ‘결과로서’ 둘 중 어느 하나가 충족되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가 성립하며, 이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와 구별되는 별개의 범죄성립요건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그리고 행위가 위헌적이고 부당하다는 이유로 직권을 남용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평가하더라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직권을 남용하여 ‘현실적으로’ 다른 사람이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였거나 다른 사람의 구체적인 권리행사가 방해되는 결과가 발생하여야 하고 그 결과의 발생은 직권남용 행위로 인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하였습니다.

4. 의무 없는 일

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공무원이 한 행위가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하여 그러한 이유만으로 상대방이 한 일이 ‘의무 없는 일’에 해당한다고 인정할 수는 없고, ‘의무 없는 일’에 해당하는지는 직권을 남용하였는지와는 별도로 상대방이 그러한 일을 할 법령상 의무가 있는지를 살펴 개별적으로 판단하여야 하며,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어떠한 일을 하게 한 때에 상대방이 공무원 또는 유관기관의 임직원인 경우에는 그가 한 일이 형식과 내용 등에 있어 직무범위 내에 속하는 사항으로서 법령 그 밖의 관련 규정에 따라 직무수행 과정에서 준수하여야 할 원칙이나 기준, 절차 등을 위반하지 않는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이는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란 사람으로 하여금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는 때를 의미하므로, 직무집행의 기준과 절차가 법령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고 실무 담당자에게도 직무집행의 기준을 적용하고 절차에 관여할 고유한 권한과 역할이 부여되어 있다면 실무 담당자로 하여금 그러한 기준과 절차를 위반하여 직무집행을 보조하게 한 경우에는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하나, 공무원이 자신의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하여 실무 담당자로 하여금 그 직무집행을 보조하는 사실행위를 하도록 하더라도 이는 공무원 자신의 직무집행으로 귀결될 뿐이므로 원칙적으로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는 종래의 해석원칙(대법원 2019. 3. 14. 선고 2018도18646 판결 등)과 동일한 취지로 해석됩니다.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은 “행정의 영역 내부에서 공무원 또는 공공기관의 임직원 등 행정조직의 구성원은 일반 사인과 달리 일정한 범위에서 직무를 수행할 법령상 의무를 부담하고 있다. 그러한 법령상 의무의 범위 내에서 어떠한 일을 한 것이라면 설령 그 행위를 지시하거나 요구한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였다 하더라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의 또 다른 성립요건인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고 보아서는 안 되며, 상대방인 공무원 또는 관련 공공기관의 임직원 등이 법령에서 정한 직무의 범위를 벗어나거나 법령 그 밖의 관련 규정에 따라 직무수행 과정에서 준수하여야 할 원칙이나 기준, 절차 등을 위반하게 한 경우에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여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을 경계하였습니다.

5. 기타

위 전원합의체 판결 중 대법관 박상옥의 별개의견,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안철상·노정희의 보충의견 등은 과정의 행위를 한 사람은 최종행위에 대해서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의 공범이 될 수 있고 과정의 행위와 관련해서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의 상대방이 될 수 있다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으며, 수사기관이 수사협조 여부에 따라 자의적으로 관여자를 공범 또는 상대방으로 정하여 기소할 수 있다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