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식 변호사
1. 들어가며
A는 2019. 1. 1. 근로계약 기간을 2019. 1. 1.부터 2019. 12. 31.까지로 B기업에 입사했습니다. B기업은 정당한 이유 없이 A를 2019. 10. 1. 해고했고, 이에 A는 2019. 10. 21.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습니다. 지방노동위원회는 2019. 12. 13. 심문회의를 개최해 A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인용한 구제명령을 내렸습니다. 이에 대해 B기업은 2020. 1. 3.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신청을 했습니다(사례 1).
C는 2018. 6. 1. D기업에 정규직으로 입사했는데, D기업은 2019. 10. 4. 정당한 이유 없이 C를 해고했습니다. 이에 C는 2019. 10. 18.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습니다. 지방노동위원회는 2019. 12. 12. C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인용해 구제명령을 했습니다. 이후 D기업은 2019. 12. 30.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신청을 했고 2020. 1. 15. 폐업했습니다(사례 2).
위 두 가지 사례는 약간의 각색을 통해 사안을 매우 단순화했지만, 실제 있었던 사례이고 흔히 볼 수 있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노동법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필자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이미 그 의도를 짐작하고 있을 것입니다. 사실 그러합니다. 본고에서는 그 진행된 결과의 허망함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2. 부당해고 구제신청제도와 구제이익
가. 부당해고를 당한 근로자는 통상 법원에 해고무효확인 및 부당해고 기간의 임금지급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해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1989. 3. 2. 법률 4099호로 개정된 근로기준법은 제27조의 3을 신설해 노동위원회를 통한 별도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제도를 마련했습니다. 이는 사용자의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 등에 대해 일반 법원에 의한 사법적인 구제방법 외에 노동위원회에 의한 행정적인 구제제도를 따로 마련해 불이익처분을 받은 당해 근로자가 보다 간편하고, 신속하며, 저렴한 비용으로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 등에 대한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데 그 취지가 있습니다(대법원 1992. 11. 13. 선고 92누11114 판결). 즉 소송을 통한 부당해고 구제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들며 그 엄격한 절차로 인해 근로자들이 이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행정적 구제절차를 통해 보다 쉽게 근로자가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나. 이와 같이 부당해고구제를 신청한 근로자가 노동위원회에서 구제를 받기 위해서는 구제명령을 발할 당시에 구제와 관련한 구체적 이익인 '구제이익'이 있어야 합니다. 이는 부당해고의 구제신청인이 자신의 구제신청 당부에 관해 노동위원회의 공권적 판단을 구할 수 있는 구체적 이익 내지 필요를 뜻하며, 소송에서의 소의 이익 개념이 부당해고 구제절차에 도입된 것으로서 소송요건에 대응하는 신청요건입니다. 따라서 노동위원회는 구제명령을 발하는 시점에 신청인에게 구제이익이 없는 경우라면 해고가 부당한 것으로 인정되더라도 구제명령을 발하지 않고 구제신청을 각하하게 됩니다.
다. 노동위원회 규칙 제60조 제1항은 ① 관계 법령의 규정에 따른 신청기간을 지나서 신청한 경우(1호) ② 신청인이 신청서의 보정요구에 2회 이상 불응한 경우(2호) ③ 당사자적격이 없는 경우(3호) ④ 구제신청의 내용이 노동위원회의 구제명령 대상이 아닌 경우(4호) ⑤ 같은 당사자가 같은 취지의 구제 신청을 거듭해 제기한 경우나 같은 당사자가 같은 취지의 확정된 판정이 있음에도 구제 신청을 제기하거나 판정 이후 신청을 취하했다가 다시 제기한 경우(5호) ⑥ 신청하는 구제의 내용이 법령상이나 사실상 실현할 수 없거나 신청의 이익이 없음이 명백한 경우(6호) ⑦ 신청인이 2회 이상 출석에 불응하거나 주소불명이나 소재불명으로 2회 이상 출석통지서가 반송되거나 그 밖의 사유로 신청 의사를 포기한 것으로 인정될 경우(7호)를 각하 사유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중 6호 사유인 '신청하는 구제의 내용이 법령상이나 사실상 실현할 수 없거나 신청의 이익이 없음이 명백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3. 사례에 대한 판결의 태도
가. 앞의 두 가지 사례에서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방노동위원회의 초심 판정을 취소하고, 근로자의 구제신청을 각하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는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법원이 원칙적으로 노동위원회의 구제명령 이후 사업장이 소멸한 경우나 계약기간이 만료된 경우 등의 사정변경이 있는 때에는 행정소송 중 취소소송에서의 소의 이익 일반론에 따라 소의 이익이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나. 노동위원회의 구제명령 이후 소의 이익이 문제 된 사례에서, 대법원 2001. 4. 24. 선고 2000두7988 판결은 "근로자가 부당해고구제신청을 하여 해고의 효력을 다투던 중 근로계약기간의 만료로 근로관계가 종료하였다면 근로자로서는 비록 이미 지급받은 해고기간 중의 임금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하여야 하는 의무를 면하기 위한 필요가 있거나 퇴직금 산정 시 재직기간에 해고기간을 합산할 실익이 있다고 하여도, 그러한 이익은 민사소송절차를 통하여 해결될 수 있어 더 이상 구제절차를 유지할 필요가 없게 되었으므로 구제이익은 소멸한다고 보아야 한다."라고 판시했습니다. 또한 사업장 소멸과 관련해 대법원 1991. 12. 24. 선고 91누2762 판결은 "소외 회사는 실질적으로 폐업하여 법인격까지 소멸되었고, 위 소외인이 소외 회사와 노동조합의 노사분규가 본격화되기 전에 이미 설립, 경영하고 있는 주식회사 우림이나 소외 회사의 일부 관리자들이 독자적으로 경영하고 있는 ○○전자가 소외 회사와 실질적으로 동일한 사업체라고 할 수 없어 원고가 복귀할 사업체의 실체가 없어진 지금에 와서는 구제신청의 이익이 없다는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여 수긍이 가고, 거기에 소론과 같은 부당노동행위에 관한 법리오해나 구제이익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라고 판시했습니다.
반면에, 근로계약 기간이 만료하더라도 근로계약 갱신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구제이익을 인정하고 있고(대법원 2005. 7. 8. 선고 2002두8640 판결), 사업장을 폐업한 경우에도 위장폐업의 경우에는 구제이익을 인정(서울고등법원 2007.11.27. 선고 2007누6009 판결)하는 등 예외를 인정하기도 합니다.
다. 위와 같은 판결의 태도에서 알 수 있듯이 사례 1의 A에게 근로계약의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 사례 2의 D기업 폐업이 위장폐업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 경우라면 A와 C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은 구제이익을 인정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4. 판결에 대한 이견
가. 소송법에서 소의 이익이라고 하는 것은 국가적ㆍ공익적 입장에서 무익한 소송제도의 이용을 통제하는 원리이고, 당사자의 입장에서 소송제도를 이용할 정당한 이익 또는 필요성을 말합니다. 행정소송에서 소의 이익이 문제 되는 경우는 주로 처분이 취소돼도 원상회복이 불가능한 경우, 처분 후의 사정에 의해 이익침해가 해소된 경우, 처분의 효력이 기간의 경과 등으로 실효된 경우 등입니다. 사례 1과 2에서 소의 이익이 문제 되는 이유는 노동위원회의 구제명령이 있다 하더라도 근로계약의 만료 또는 사업장의 소멸에 따라 주로 원직복직(원상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사정에 기초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는 노동위원회의 구제명령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여부에 따라 충분히 다르게 볼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나. 노동위원회는 사용자의 행위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게 되면 그러한 행위를 부당해고로 인정하고 이를 시정하기 위한 조치로서 구제명령을 발하게 됩니다. 이 중 부당해고가 성립하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은 구제명령의 전제로서 확인행위에 속하는 것으로 봐야 하며, 사용자에게 일정한 행위를 명하는 부분이 결국 형성적 효력이 있는 하명으로서 행정처분에 해당할 것입니다. 이러한 구제명령의 내용에 대해서는 근로기준법 제30조에 특별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노동위원회가 합리적 재량에 의해 정할 수 있으며, 근로자의 구제신청 취지에 반드시 구속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근로자가 구제를 신청한 범위 안에서 판정해야 하므로 신청취지에 반하거나 신청하지 않은 사실을 인정해 구제명령을 발할 수는 없습니다. 이에 통상적으로 노동위원회는 사용자의 해고가 부당해고임을 인정하고, 원직복직과 함께 해고기간 동안 근로했더라면 받을 수 있었던 임금상당액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구제명령을 내리고 있습니다.
다. 그런데, 2007. 1. 26. 개정된 근로기준법은 근로자가 복직을 원하지 않는 경우 노동위원회가 금전보상 구제명령을 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부당해고 구제절차의 도입 취지와 운영 형태, 금전보상제도의 도입 경위 등을 종합하면, 노동위원회의 임금지급명령이 반드시 원직복직명령을 전제해 이에 수반하는 종속적인 구제명령에 불과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특히 기간의 정함이 있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가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통해 해고의 효력을 다투던 중 근로계약기간이 만료되거나 사업장의 폐쇄로 근로관계가 종료했더라도, 그 근로자에게 비록 원직복직명령을 구할 구제이익은 없을지언정 적어도 부당해고 구제절차를 통해 노동위원회로부터 해고일로부터 근로계약기간의 만료일까지의 임금지급명령을 받을 실익은 있는 것이어서 이를 구할 구제이익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물론 금전보상제도가 노동위원회의 구제명령의 하나로서 공법상의 구제조치이기에 근로자와 사용자 간 사법상의 권리ㆍ의무관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어서(대법원 1996. 4. 23. 선고 95다53102 판결), 노동위원회의 금전보상 지급명령을 사용자가 이행하지 않았다면 근로자가 금전보상명령에 기해 민사집행법에 따라 직접 집행을 할 수는 없고, 다시 그 임금 상당액을 민사소송절차를 통해 소구해야 하지만, 그러한 사정을 이유로 구제이익 자체가 없다고 보는 것은 부당합니다.
5. 나가며
사례 1의 경우, 지방노동위원회는 2019. 12. 13. 심문회의를 개최해 A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에 대한 판정을 했는데, A의 근로계약 기간은 2019. 12. 31.까지로 돼 있습니다. 따라서 18일 경과 후에는 근로계약기간 만료에 따라 구제이익을 상실하게 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초심 판정 당시에는 구제이익이 인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부당해고를 인정해 구제명령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사용자가 재심신청을 하게 되면 바로 구제이익이 문제 돼 초심 판정이 취소될 사정인바, 구제를 신청한 근로자와 구제를 명령하는 노동위원회에 이러한 심판절차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사례 2의 경우에도, 지방노동위원회는 2019. 12. 12. C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인용해 구제명령을 했는데, 사용자가 이후 폐업을 했다는 이유로 기존에 진행된 절차를 전부 무위에 돌리면서 C로 하여금 다시 민사소송을 제기하게 한다면, 이는 근로자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것은 아닐까요? 이러한 점들에서 소의 이익을 좁게 보는 판례의 태도는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본 글은 2020. 2. 18.자 노동법률에서 발표된 것인데, 얼마 후 선고된 대법원 2020. 2. 20. 선고 2019두52386 전원합의체 판결은 정년이 도과하여 근로계약이 종료된 근로자의 부당해고 구제신청과 관련한 소의 이익을 인정하고, 이와 반대되는 종전 대법원 판결을 모두 변경하였습니다. 따라서 근로계약이 종료하더라도 앞으로는 부당해고 구제신청에 대한 구제이익이 인정되게 되었음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