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 코로나19와 불가항력



윤복남 변호사




온통 코로나19 뉴스다. 대구와 경북 지역의 확진자 증가세가 꺽이는 상황에서 1천만 인구의 서울과 수도권에 코로나19가 다시 번지지는 않을까 우려되는 시점이다.

우리 사무실 건물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엘리베이터를 탈 수 없다는 공지가 붙고, 아직도 매일 증가하고 있는 확진자 수를 보며 ‘위험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거의 모든 미팅을 취소한 채 혼자 하루 종일 틀어박혀 컴퓨터로만 일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고객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제조업을 하는 고객사인데 중국과의 거래가 잦은 곳이다 보니 코로나19로 인해 원료 수급이나 중국업체와의 거래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채무불이행 문제를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를 묻는다. 혹시 이런 질문이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불가항력’ 이슈가 실무적으로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계약서를 작성할 때, 노동쟁의나 운송업체의 파업 등으로 인한 운송곤란 등을 불가항력 사유에 포함시킬지 여부를 검토하는 정도였다. 불가항력에 대한 판례도 많지 않다.

미룰 수 없게 된 김에 여러 자료들을 찾아 보았더니 역시 예상대로다. 내가 고객에게 전화로 설명해 준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간추려 정리해 보겠다.

첫째, 불가항력은 쉽사리 인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정말 해당 채무불이행이 불가피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충분한 입증이 되어야 한다. 즉, 중국으로부터의 원료수급이 어려워서 계약을 불이행하게 된 사정이 있다면, 실제 해당 중국공장(원료 공급처)의 가동중단으로 인한 것인지, 다른 대체 공급처는 없었는지 등을 모두 검토해야 한다. 따라서 만약 불가항력을 주장해야 할 상황이 발생하면 이를 입증할 충분한 증거를 수집해 둘 필요가 있다(참고로 중국에서는 중국국제무역촉진위원회에서 불가항력 사실증명서를 발급해 준다고 한다. 해당 증명서가 100% 효력을 인정받지는 못하더라도 분쟁에서 중요한 증거자료 중 하나는 될 수 있다고 본다).

둘째, 불가항력 상황이 발생할 경우 소송에 의하기 보다는 최대한 협상에 의해 해결할 필요가 있다. 소송에서 불가항력을 인정받기는 쉽지 않고 많은 입증이 필요하므로 최대한 상대방과의 협상을 통해 계약변경(또는 합의해제, 해지)을 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만, 불가피하게 소송을 하게 된다면, 입증정도에 따라 일정한 비율의 책임감경을 기대할 수는 있을 것이다(우리 판례에서도 과거 IMF 사태 때 수입자재 가격폭등으로 인한 채무불이행 사건에서 지체상금의 40% 감액을 인정한 예가 있다).

셋째, 향후 계약체결시 우리(고객사)가 불가항력을 적용받아야 유리한 입장이라면 ‘감염병’ 등과 같은 사유를 최대한 명시해 놓는 것이 향후 분쟁시 유리할 수 있다. 다만, 반대로 우리(고객사)가 불가항력 적용을 꺼리는 입장이라면 불가항력 사유를 최소화하고, 절차를 까다롭게 해서 그 범위를 축소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넷째, 만약 공장에서 코로나19로 인한 확진자가 발생한 경우, 가급적이면 방역당국의 조치에 의해 공장폐쇄 등을 하는 것이 불가항력을 인정받는데 유리할 것이다. 다만, 이는 계약책임에 국한하여 논의하는 것이다. 방역적 측면이나 사회적 책임의 면에서 선제적으로 조치할 필요성을 부인하는 취지는 전혀 아니다. 오해 마시길…

고객과의 통화에선 실제 상황이 벌어질 경우 자세한 상의를 하기로 했는데, 자료 정리를 마치고나니 미루었던 숙제를 이제야 끝낸 느낌이다. 그나저나 코로나 광풍이 어서 지나갔으면 좋겠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간절한 마음으로 자꾸 되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