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식 변호사
1. 들어가며
2019년 1월 15일 신설된 근로기준법 제76조의2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이 2019년 7월 16일부터 시행되고 있습니다. 위와 같은 금지 규정의 대상이 되는 직장 내 괴롭힘 행위는 직장 내에서 발생하는 신체적, 정신적, 언어적 폭력이 당사자에게 직접적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일상적 생활과 사회적 관계에 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던 것입니다. 종전에 가지고 있었던 규정들만으로는 이러한 직장 내 괴롭힘 행위를 방지하고 관리하는데 한계가 지적됐고, 이에 2019년 1월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산업재해보상법을 개정하면서 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와 구제, 예방 및 산재인정을 입법화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이 시행된 지 이제 막 1년이 돼 가는 시점인데, 물론 다른 경우에도 마찬가지겠지만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과 같은 새로운 법률 규정이 신설되거나 변경되면 초기의 법률 해석⋅적용에 있어 어느 정도 혼란이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한 현실입니다. 다수의 사업장들이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의 내용을 오해하거나 판단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특히 아래에서 언급하는 직장 내 괴롭힘의 적용 범위와 직장 내 괴롭힘을 이유로 근로자를 징계하는 경우 적정한 징계 수준을 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지 아니했을까 짐작합니다.
2. 직장 내 괴롭힘의 적용범위
다소 의외이기는 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직장이 동일한 것을 전제로 적용되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경우가 다수 존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법 자체에서'직장 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인지 알 수 없으나,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은 동일한 직장의 근로자 사이에만 적용되는 규정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법이 직장 내라고 표현하는 것은 장소라는 물리적 공간을 한정해 괴롭힘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즉 근로기준법 제76조의2가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는 것과 같이, 법이 규제하는 직장 내 괴롭힘 행위는 직장에서 지위 또는 관계 등 우위를 이용해 이뤄지는 것을 말합니다. 괴롭힘 행위에는 업무와 관련성이 있고, 행위 결과 피해자의 고통이나 근무환경의 악화가 있으면 됩니다. 따라서 '직장 내'라고 하는 것은 금지 대상인 괴롭힘 행위를 단순히 장소적 개념을 통해 한정짓는 것으로 볼 수 없습니다. 괴롭힘 행위가 직장에서 지위나 관계 등 우위를 통해 사업상 또는 업무상 연관돼 있는 관계라고 인정되는 경우라면 모두 적용 대상이 된다고 봐야 합니다.
이러한 경우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은 사업장 밖으로 확장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동일한 직장 소속의 업무관계에서는 직장 외 장소, 근무시간 외에 이뤄지는 괴롭힘 행위라도 괴롭힘 금지 규정이 적용되리라는 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직장이 다른 경우라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직장 내 괴롭힘 행위는 대등한 거래 관계에 있는 직장 사이에도 서로 다른 직장 소속 근로자들 간 업무 처리 과정에서 충분히 발생할 수 있습니다. 소위 직장 내 갑질 문화가 그런 사례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법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을 뿐, 괴롭힘 행위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일한 직장 소속일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도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이 적용 된다고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직장 내 괴롭힘이 성립되는지 여부는 지위나 관계 등의 우위성을 통해 살펴봐야 하는데, 이와 같은 직장 내 괴롭힘의 피해자는 다른 근로자일 뿐이고 고용형태나 근로계약 기간의 장⋅단 또는 유⋅무를 불문하며, 반드시 가해자인 사용자나 근로자와 동일한 직장에 속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때문에 근로자파견관계나 하청근로관계와 같이 동일한 직장이 아닌 경우라 하더라도 업무를 통해 상호 연결돼 있는 구조에서라면 실질적인 사용⋅지시 등으로 지위나 관계의 우위성을 인정할 수 있으면 당연히 직장 내 괴롭힘 규정의 적용대상이 된다고 할 것입니다.
3.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 위반자에 대한 징계의 정도
근로기준법 제76조의3 제5항은 직장 내 괴롭힘 행위 발생 사실이 확인된 때는 사용자로 하여금 지체 없이 행위자에 대하여 징계, 근무 장소의 변경 등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징계는 근로기준법 제23조가 규정하는 징벌과 동일한 의미로 해석될 것이므로 사안이 중한 경우 징계 해고까지 가능하게 됩니다.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이 확인된 경우 사용자는 그 행위를 한 가해자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할 의무가 있는데, 이러한 사용자의 조치는 가해자의 사업장 질서문란행위를 제재할 의무일 뿐만 아니라 사용자의 피해근로자에 대한 보호의무 중 하나로 피해근로자에 대한 향후 직장 내 괴롭힘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위와 같은 의무의 이행으로 가해 근로자에 대한 징계가 이루어지는 경우, 사용자가 행할 적정한 징계 수준은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물론 사전에 이에 대한 기준을 일의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실제 발생한 괴롭힘 행위의 내용과 정도, 사업장이 처한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므로, 결국 사안에 따라 다르게 처리돼야 합니다. 반면에 우리 대법원은 징계양정의 정도에 관해서 이미 일관된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만 징계해고와 이를 제외한 일반징계에 대해 그 판단기준을 달리 표현하고 있습니다. 일반징계와 관해서는 "어떠한 처분을 할 것인가는 원칙적으로 징계권자의 재량에 맡겨져 있는 것이므로 그 징계처분이 위법하다고 하기 위해서는 징계처분이 사회통념상 현저하게 타당성을 잃어 징계권자에게 맡겨진 재량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인정돼야 합니다. 그리고 징계처분이 사회통념상 현저하게 타당성을 잃은 처분이라고 하려면 구체적인 사례에 따라 직무의 특성, 징계의 사유가 된 비위 사실의 내용과 성질, 징계에 의해 달성하려는 목적과 그에 수반되는 제반 사정을 참작하여 객관적으로 명백히 부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여야 한다."는 일반 법리를 형성해 오고 있습니다. 징계해고의 경우 "사회통념상 근로관계를 계속시킬 수 없을 정도로 근로자에게 책임 있는 사유가 있어야 하고, 사회통념상 당해 근로자와의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인지의 여부는 당해 사용자의 사업의 목적과 성격, 사업장의 여건, 당해 근로자의 지위 및 담당직무의 내용, 비위행위의 동기와 경위, 이로 인하여 기업의 위계질서가 문란하게 될 위험성 등 기업질서에 미칠 영향, 과거의 근무태도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직장 내 괴롭힘 행위에 대한 징계도 결국 위와 같은 대법원 판례의 법리를 따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위의 대법원의 판례 법리를 따른다 해도 직장 내 괴롭힘 행위에 있어서 적정한 징계 수준을 파악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다뤘거나 다루고 있는 사건들을 통해 살펴보면,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 시행 이전이었다면 징계조차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사안들임에도 불구하고 징계 해고사유로 삼은 경우가 다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행위를 무겁게 취급하는 것이 어떤 근거에서 가능한 것일까? 이념적으로 그런 취급이 피해 근로자의 인격권 보호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법의 입법취지 자체가 바로 그렇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법률 규정 신설로 인해 사용자의 노동인권 존중 의식이 갑자기 고양됐다고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만, 직장 내 괴롭힘 행위의 구제절차가 남녀고용평등법상 직장 내 성희롱 금지 규정과 유사한 구조로 돼 있다는 점은 사용자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입니다. 즉 직장 내 괴롭힘 행위 구제절차는 남녀고용평등법에서 성희롱 구제절차 내용 중 일부를 참조해 입법화됐는데, 괴롭힘 신고가 접수되거나 그 발생사실을 인지한 경우 사용자에게는 사실 확인을 위한 조사의무가 발생하고, 피해근로자의 의견을 들어 가해자에게 징계, 근무 장소 변경 등 필요한 조치를 할 의무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러한 의무의 부과는 직장 내 성희롱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용자에게 상당히 무겁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 결과 가해근로자에 대한 징계에 있어 사용자가 보다 중한 징계를 선택하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이러한 경우, 근로자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이 다른 측면에서 근로자의 고용안정을 위협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특히 법은 직장 내 괴롭힘 행위 금지 의무자로서 사용자와 근로자를 대등하게 규정하고 있지만, 직장 내의 징계는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므로 결국 징계를 받게 되는 것은 가해 근로자에 한정될 뿐입니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의 실질은 이제까지 없었던 근로자에 대한 징계사유를 한 가지 더 추가했다고 생각할 여지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직장 내 괴롭힘 행위 신고는 상하 관계를 막론하고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근로자를 공격하기 위한 의도로도 사용될 수 있는 점에서, 근로자 사이의 갈등을 유발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법 자체가 원래 의도하지 않았던 부작용도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에서 괴롭힘 행위에 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할 뿐만 아니라 발생한 괴롭힘의 정도에 상응하는 적정한 징계를 결정하는 것도 매우 중요해 보입니다.
하지만, 과연 어느 정도의 징계 수준을 적정하다고 평가할 것인지 여부는 결국 관련 사례가 축적되면서 어느 정도의 구별 기준을 마련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형법상 범죄 수준에 이르지 않는 정도의 괴롭힘 행위로 징계해고까지 하는 것은 개인적 입장에서 다소 과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행위의 금지는 사전에 괴롭힘을 방지하고자 하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지 사후의 징계를 통해 가해근로자를 무겁게 징벌하고자 함에 주된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4. 나가며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의 입법취지는 누구라도 공감하는 부분이 많겠지만, 새로이 시행되는 법 규정으로 인해 발생하는 혼란도 실제 상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위 규정이 시행된 기간은 이제 막 1년이 지나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향후 이와 관련된 분쟁 사례가 충분히 축적된다면 현장에서의 혼란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입니다. 다만, 선한 취지에서 시작된 법률 규정으로 인해 근로자가 쉽게 직장에서 축출돼서는 안 될 것이고, 그 주된 역할은 결국 직장에서 실제 근로를 제공하고 있는 근로자들 상호 간의 몫이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