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부당노동행위 양벌규정과 책임주의 원칙



이원재 변호사




1. 서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은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금지하면서(제81조), 이를 위반한 자에 대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제90조). 또한 법인 또는 단체의 대표자, 법인-단체 또는 개인의 대리인-사용인 기타의 종업원이 그 법인-단체 또는 개인의 업무에 관해 부당노동행위를 한 때에는 행위자를 벌하는 외에 그 법인-단체 또는 개인에 대해서도 각 해당 조의 벌금형을 과하는 이른바 양벌규정을 두고 있습니다(제94조).

2. 부당노동행위 양벌규정에 대한 위헌 결정

지난해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위 노동조합법상 양벌규정 중 법인의 대리인-사용인 기타의 종업원이 그 법인의 업무에 관해 제90조의 위반행위를 한 때에는 그 법인에 대해서도 해당 조의 벌금형을 과한다는 부분 가운데, 제81조 제4호 본문 전단에 관한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선고(2017헌가30)한 바 있습니다. 이어서 지난 4월 23일 헌법재판소는 위 양벌규정 중 법인의 대리인 사용인 기타의 종업원이 그 법인의 업무에 관해 제90조의 위반행위 가운데 제81조 제1호, 제2호 단서 후단, 제5호를 위반한 경우에 관한 부분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선고했습니다(2019헌가25). 2019헌가25 위헌 결정은 앞선 2017헌가30 결정의 취지에 따른 것인데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심판대상조항 중 법인의 종업원 관련 부분은 법인의 대리인 사용인 기타의 종업원(이하 '종업원 등')이 법인의 업무에 관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81조 제1호, 제2호 단서 후단, 제5호가 정한 부당노동행위를 한 사실이 인정되면 곧바로 법인에게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90조가 정한 벌금형을 과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종업원 등의 범죄행위에 대한 법인의 가담 여부나 이를 감독할 주의의무 위반 여부를 법인에 대한 처벌요건으로 규정하지 아니하고, 달리 법인이 면책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정하지 아니한 채, 곧바로 법인을 종업원 등과 같이 처벌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법인은 선임-감독상의 주의의무를 다해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경우에도 이 부분 심판대상조항에 따라 종업원 등의 범죄행위에 대한 형벌을 부과받게 됩니다.

이 부분 심판대상조항은 종업원 등의 범죄행위에 관해 비난할 근거가 되는 법인의 의사결정 및 행위구조, 즉 종업원 등이 저지른 행위의 결과에 대한 법인의 독자적인 책임에 관해 전혀 규정하지 않은 채, 단순히 법인이 고용한 종업원 등이 업무에 관해 범죄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법인에 형벌을 부과하도록 정하고 있는바, 이는 다른 사람의 범죄에 대해 그 책임 유무를 묻지 않고 형사처벌 하는 것이므로 헌법상 법치국가원리로부터 도출되는 책임주의원칙에 위배됩니다.

한편 위 2019헌가25 결정에서는 법 제94조 중 법인 또는 단체의 대표자 관련 부분의 위헌 여부도 다음과 같은 이유로 책임주의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심판대상조항 중 법인의 대표자 관련 부분도 종업원 관련 부분과 마찬가지로, 법인의 대표자가 일정한 부당노동행위를 한 사실이 인정되면 곧바로 법인에게도 대표자에 대한 처벌조항에 규정된 벌금형을 과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법인 대표자의 행위는 종업원 등의 행위와 달리 봐야 합니다. 법인의 행위는 법인을 대표하는 자연인인 대표기관의 의사결정에 따른 행위에 의해 실현되므로, 자연인인 대표기관의 의사결정 및 행위에 따라 법인의 책임 유무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즉, 법인은 기관을 통해 행위하므로 법인이 대표자를 선임한 이상 그의 행위로 인한 법률효과는 법인에게 귀속돼야 하고, 법인 대표자의 범죄행위는 법인 자신이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부담하는 것입니다.

결국 법인 대표자의 법규위반행위에 대한 법인의 책임은 법인 자신의 법규위반행위로 평가될 수 있는 행위에 대한 법인의 직접책임이므로, 대표자의 고의에 의한 위반행위에 대해서는 법인이 고의 책임을, 대표자의 과실에 의한 위반행위에 대해서는 법인이 과실 책임을 부담합니다. 따라서 심판대상조항 중 법인의 대표자 관련 부분은 법인의 직접책임을 근거로 해서 법인을 처벌하므로 책임주의원칙에 위배되지 않습니다.

3. 양벌규정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일관된 입장

헌법재판소는 2007.11.29. 2005헌가10 결정에서 양벌규정에서 위반행위의 자연인 주체가 종업원 등인 경우 종업원 위반행위 외에 추가적인 처벌근거 없이 영업주를 처벌하고 있는 양벌규정은 형사법의 기본원리인 책임주의에 반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고, 2009.7.30. 2008헌가14 결정에서는 면책사유를 정하지 않은 법인의 양벌규정에 대해 위헌결정을 했습니다. 그 이후 헌법재판소는 면책사유를 정하지 않은 양벌규정에 대해 일관되게 위헌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부당노동행위 처벌조항과 관련한 위 위헌 결정들은 이런 선례의 취지에 따라, 종업원 등의 부당노동행위로 처벌되는 경우라 해도 그를 고용한 법인에 아무런 면책사유 없이 형사처벌 하도록 한 것은 헌법상 법치국가원리로부터 도출되는 책임주의원칙에 반해 헌법에 위반됨을 확인한 결정입니다.

4. 위헌 결정에 따른 법령의 정비

위 2007년 및 2009년의 위헌 결정 이후 우리나라 양벌규정은 법인에 대한 추가적-독자적 처벌근거를 마련하는 방향으로 대대적인 개정작업이 이뤄졌습니다. 그 내용은 대부분 단서조항으로 "법인 또는 개인이 그 위반행위를 방지하기 위하여 해당 업무에 관하여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는 면책조항을 신설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근로기준법의 경우 양벌규정에 관한 제115조가 2009년 5월 21일 개정됐는데, 개정 전후의 조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개정 전

제115조 (양벌규정)
① 해당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위하는 대리인, 사용인, 그 밖의 종업원이 이 법의 위반행위를 하면 그 행위자를 벌할 뿐만 아니라 그 사업주에게도 각 해당 조문의 벌금형을 과(科)한다. 다만, 사업주(사업주가 법인인 경우에는 그 대표자, 사업주가 영업에 관하여 성년자와 동일한 능력을 갖지 아니하는 미성년자 또는 금치산자인 경우에는 그 법정대리인을 사업주로 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가 위반 방지에 필요한 조치를 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 사업주가 대리인, 사용인, 그 밖의 종업원의 이 법의 위반행위와 관련하여 그 계획을 알고 그 방지에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아니하는 경우, 위반행위를 알고 그 시정에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아니하는 경우 또는 위반을 교사(敎唆)한 경우에는 사업주도 행위자로 처벌한다.

개정 후 제115조 (양벌규정)
사업주의 대리인, 사용인, 그 밖의 종업원이 해당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제107조, 제109조부터 제111조까지, 제113조 또는 제114조의 위반행위를 하면 그 행위자를 벌하는 외에 그 사업주에게도 해당 조문의 벌금형을 과(科)한다. 다만, 사업주가 그 위반행위를 방지하기 위하여 해당 업무에 관하여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전문개정 2009.5.21.]

개정 전 조항은 대리인, 사용인 등이 위반행위 방지에 필요한 조치를 한 경우를 면책요건으로 했지만, 개정 후 조항은 사업주가 그 위반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해당 업무에 관한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하지 않은 경우를 면책요건으로 규정했습니다. 이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취지를 충실히 반영한 것입니다. 한편 개정 전 조항에 있었던, 사업주가 위반행위와 관련한 계획을 알고 그 방지에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거나, 위반행위를 알고 그 시정에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는 경우 사업주도 행위자로 처벌한다는 제2항을 개정 시 삭제한 것도 사업주의 책임을 보다 완화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2019헌가25 위헌 결정의 심판대상이 됐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도 위 2017헌가30 결정 다음 날인 2019년 4월 12일 법인-단체 또는 개인이 종업원 등의 위반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해당 업무에 관한 주의와 감독을 다한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도록 면책규정을 신설함으로써 제94조의 양벌규정 전체를 한꺼번에 정비하는 법률안(신보라 의원 대표발의, 의안번호 2019788)이 발의되기도 했으나, 법개정이 이뤄지지 않는 사이에 제94조 중 다른 부분에 대해 위헌심판이 제청됐습니다.

5. 위헌결정에 대한 비판

양벌규정에 대한 2007년 이래의 위헌 결정에 대해 학계에서는 법인의 범죄능력을 부정하고 범죄 주체가 자연인(또는 개인)이라는 전통적인 사고의 틀 아래서 '종업원 관련' 부분과 '대표자 관련' 부분을 구분하는 것은 이중잣대이며, 양벌규정에 면책조항을 신설하는 정도로는 책임주의원칙에 철저하다고 볼 수 없으므로, 법인의 범죄능력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함께 양벌규정의 철저한 개정 등으로 법인에 직접 형사책임을 귀속시키는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비판 의견이 있습니다.

한편 노동계는 부당노동행위 양벌규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 노사관계 현실을 도외시한 결정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산업현장에서 부당노동행위는 회사와 대표자의 지시를 받은 노무담당자나 대리인에 의해, 개인의 일탈 행위라기보다는 법인의 이익을 위해 이뤄지고, 관리자의 묵인-방조하에 벌어지므로, 해당 종업원을 채용하고, 그 종업원을 관리자로 선임한 사업주의 과실을 외면해서는 안 되고, 법인-단체 등의 업무에 관해 부당노동행위를 한 행위자를 처벌하는 외에 그 법인-단체 등에 대해서도 벌금형을 부과하는 양벌규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 직후 한국노총은 부당노동행위의 행위자만 처벌한다면 부당노동행위 금지 조항의 법적 실효성을 거두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위헌 결정을 이유로 부당노동행위 등 노조법 위반행위가 더욱 많아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6. 결론

양벌규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일관된 입장과 이에 따라 관련 법령들이 정비돼 온 추세에 비춰볼 때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양벌규정은 위헌 결정의 취지에 따라 면책조항이 신설되는 것으로 법 개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게 됐을 때 노동계의 우려처럼 부당노동행위가 더욱 늘어날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노동계 우려대로 부당노동행위 금지 조항의 실효성을 훼손되거나 노동3권이 위축되는 결과가 되지 않도록 해당 조항을 엄격하게 해석함으로써 사용자가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주의와 감독을 다하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