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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 2020. 8. 27. 선고 2019도11294 판결 (전원합의체)
전성우 변호사
1. 사실관계
피해자A는 갑 조합(이하 ‘이 사건 조합’)의 발기인이자 금융자문 제공자로서 이 사건 조합의 자금 20억 원을 업무상 보관하던 중 2016. 7. 7.부터 2016. 11. 30.까지 35회에 걸쳐 합계 11억 4,908만 원을 횡령하여 2017. 8. 17. 전주지방법원에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정경제범죄법 ’) 위반(횡령)죄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등을 받은 사실이 있습니다.
피고인은 임시총회에 참석하는 이 사건 조합의 조합원 60여 명에게 “이거 보아라, A가 B와 같이 회삿돈을 다 해먹었다.”라고 말하면서(이하 ‘이 사건 발언’) 위 특정경제범죄법 위반(횡령) 사건의 판결문 사본(이하 ‘횡령 사건 판결서’)을 배포하였습니다.
이에 피고인은 피해자A에 대하여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명예를 훼손하고, 피해자B에 대하여는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명예를 훼손하였다는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2. 원심(2심)의 판단
원심은, (i) 피해자A 명예훼손죄에 대하여, 횡령 사건 판결서에 인적사항 등 개인정보까지 기재되어 있었고, ‘다 해먹었다’는 식의 표현은 피해액이 반환되었다는 횡령 사건 판결서 내용과 부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ii) 피해자B 명예훼손죄에 대하여, 횡령 사건 판결서에는 피해자A가 단독으로 이 사건 조합 소유의 돈을 횡령하였다고 기재되어 있고, 피해자B는 관련 수사에서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으며, 피해자A와 B가 실제로 횡령행위에 가담하였는지 여부를 제대로 파악하지 아니한 채 이 사건 발언을 하였다는 이유로, 모두 유죄로 판단하였습니다.
3. 대법원의 판단 – 파기환송
가. 관련 법리
대법원은 아래와 같이 기존 법리를 먼저 확인하였습니다.
(i)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형법 제310조에 따라 처벌할 수 없다. 여기서 ‘진실한 사실’이란 그 내용 전체의 취지를 살펴볼 때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는 사실이라는 의미로서 세부에 있어 진실과 약간 차이가 나거나 다소 과장된 표현이 있더라도 무방하다.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라 함은 적시된 사실이 객관적으로 볼 때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서 행위자도 주관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그 사실을 적시한 것이어야 한다. 여기의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에는 널리 국가·사회 기타 일반 다수인의 이익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특정한 사회집단이나 그 구성원 전체의 관심과 이익에 관한 것도 포함한다. 적시된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지 여부는 당해 적시 사실의 내용과 성질, 당해 사실의 공표가 이루어진 상대방의 범위, 그 표현의 방법 등 그 표현 자체에 관한 제반 사정을 감안함과 동시에 그 표현에 의하여 훼손되거나 훼손될 수 있는 명예의 침해 정도 등을 비교·고려하여 결정하여야 하며, 행위자의 주요한 동기 내지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부수적으로 다른 사익적 목적이나 동기가 내포되어 있더라도 형법 제310조의 적용을 배제할 수 없다(대법원 1997. 4. 11. 선고 97도88 판결, 대법원 1998. 10. 9. 선고 97도158 판결, 대법원 2001. 10. 9. 선고 2001도3594 판결 등 참조).
(ii) 형법 제310조의 규정은 인격권으로서의 개인의 명예의 보호와 헌법 제21조에 의한 정당한 표현의 자유의 보장이라는 상충되는 두 법익의 조화를 꾀한 것이므로, 두 법익간의 조화와 균형을 고려한다면 적시된 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증명이 없더라도 행위자가 진실한 것으로 믿었고 또 그렇게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위법성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07. 12. 14. 선고 2006도2074 판결 등 참조).
(iii) 한편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피고인이 공연히 사실의 적시를 하여야 하고, 그 적시한 사실이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것으로서 허위이어야 하며, 피고인이 그와 같은 사실이 허위라고 인식하였어야 한다. 적시된 사실이 허위의 사실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적시된 사실의 내용 전체의 취지를 살펴볼 때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는 경우에는 세부적으로 진실과 약간 차이가 나거나 다소 과장된 표현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허위의 사실이라고 볼 수는 없다(대법원 2000. 2. 25. 선고 99도4757 판결 등 참조). 나아가 형사재판에서 공소가 제기된 범죄의 구성요건을 이루는 사실은 그것이 주관적 요건이든 객관적 요건이든 그 증명책임이 검사에게 있으므로,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로 기소된 사건에서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리는 사실이 적시되었다는 점, 그 적시된 사실이 객관적으로 진실에 부합하지 아니하여 허위일 뿐만 아니라 그 적시된 사실이 허위라는 것을 피고인이 인식하고서 이를 적시하였다는 점은 모두 검사가 증명하여야 한다. 그런데 위 증명책임을 다하였는지 여부를 결정할 때에는, 어느 사실이 적극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의 증명은 물론, 그 사실의 부존재의 증명이라도 특정 기간과 특정 장소에서의 특정행위의 부존재에 관한 것이라면 적극적 당사자인 검사가 이를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이 증명하여야 한다(대법원 2010. 11. 25. 선고 2009도12132 판결 등 참조).
나. 피해자A에 대한 명예훼손 부분에 대하여
대법원은, 아래와 같은 이유로, 피고인이 피해자A에 대한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행위는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 해당하므로, 형법 제310조에 따라 그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i) 피고인이 이 사건 발언과 횡령 사건 판결서 배포를 통해 적시한 사실 중 중요한 부분은 피해자A가 조합의 재산을 횡령하여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것인데, 이는 객관적 사실과 합치된다.
(ii) ‘다 해먹었다’는 표현으로 이 사건 조합 재산 ‘전부’를 횡령하였다거나 횡령 피해액을 ‘반환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적시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iii) 횡령 사건 판결서에 기재된 피해자A의 횡령 방법, 기간, 액수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으로서는 이 사건 조합 대표자인 피해자B의 관여 내지 묵인이 없이는 피해자A의 범행이 일어날 수 없었으리라 생각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iv) 이 사건 조합은 협동조합기본법이 적용되는 협동조합으로서, 조합의 재산관리 방식이나 재무상태는 조합원들에게 중요한 관심사이다.
(v) 이 사건 조합의 이사장인 피해자B가 임무를 게을리하여 피해자A의 횡령행위가 발생한 경우 법적 책임이 발생하는데, 이 또한 조합원들 전체의 관심과 이익에 관한 사항이다.
(vi) 피해자A가 수개월에 걸쳐 11억원이 넘는 조합 재산을 횡령하였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피해자B가 임무를 게을리한 것이 아닌지 의심케 하므로, 이러한 사실은 조합원들 전체의 관심과 이익에 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vii) 피고인은 임시총회를 앞두고 조합원들만을 상대로 피해자A의 횡령 사실을 알렸다. ‘해먹었다’와 같은 속된 표현을 사용하였다거나 횡령 사건 판결서에 피해자A의 인적사항과 처벌전력이 기재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A를 비방할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
다. 피해자B에 대한 명예훼손 부분에 대하여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피고인이 이 사건 발언을 통해 피해자B에 대해 적시한 사실(피해자B가 피해자A의 횡령 범행에 가담하였다는 취지)이 허위이고, 나아가 피고인이 그와 같은 사실이 허위임을 인식하였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i) 피해자B는 이 사건 조합의 총회나 이사회의 승인을 받지 않은 채 자신이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던 회사에 자산양도양수계약에 따른 자산양수 대금 14억원 외에 6억원을 추가로 지급하였는데, 이러한 사실만으로도 피해자B가 이 사건 조합 재산관리자로서의 임무위배가 인정될 여지가 있다.
(ii) 제반 사정을 보면, 피해자A와 B가 업무상횡령 혐의로 수사를 받으면서 ‘피해자B도 A가 이 사건 대출금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다는 사실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취지로 한 진술이 허위라고 쉽사리 단정할 수 없다.
(iii) 피해자B의 업무상횡령 혐의에 대하여 검사의 혐의없음 처분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위 혐의 사실의 ‘부존재’가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는데,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에서 이를 인정할 추가적인 사정을 찾을 수 없다.
라. 파기환송
대법원은 위와 같은 이유로, 원심이 유죄로 판단한 명예훼손 부분에 대하여 다시 심리, 판단하도록 하기 위하여 파기환송하였습니다.
4. 이 판결의 의의
실무적으로 단체 내부 구성원들에게 단체 임원과 관련한 판결서를 제공하면서 임원교체를 요구할 경우 괜찮은지 질문하는 사례가 자주 있었습니다.
이번 판례는, 이러한 행위가 명예훼손에 해당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명확한 일응의 기준을 제공해준 측면에서 상당한 의의가 있는 판결로 판단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