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실관계
가. 원고는 2019. 6. 20. 피고 1로부터 서울 광진구 소재 2층 주택(이하 ‘이 사건 주택’) 중 101호(이하 ‘이 사건 임차목적물’)를 임대차보증금 2,000만 원, 차임 월 60만 원, 임대차 기간 2019. 9. 20.부터 2021. 9. 19.까지로 정하여 임차하였고, 이 사건 임차목적물을 인도받은 뒤 전입신고를 마쳤습니다.
나. 피고 1은 임대차 기간 중인 2020. 7. 8.경, 피고 1이 소유하는 이 사건 주택 및 부지를 이와 인접한 3필지와 함께 매수하여 그 지상에 다세대 주택을 신축하려는 계획을 가진 소외 2 회사에 이 사건 주택 및 부지를 15억 6,000만 원에 매도하였는데(이하 ‘이 사건 매매계약’), 이 사건 매매계약에는 피고 1이 다세대주택 신축을 위하여 이 사건 주택의 임차인들을 퇴거시켜야 하고, 잔금 지급일까지 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으면 이 사건 매매계약의 위약금뿐만 아니라 소외 2 회사가 이와 함께 체결한 다른 부동산 매매계약의 위약금(합계 약 6억 8,400만 원 상당)도 모두 책임진다는 취지의 특약(이하 ‘이 사건 특약’)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다. 피고 1은 원고에게 임대차계약을 합의해지하고 이 사건 임차목적물을 인도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원고는 이에 응하지 않다가, 쌍방이 협의를 거쳐 2020. 11. 26.에 이르러, 원고는 2020. 11. 28.까지 피고 1에게 이 사건 임차목적물을 인도하고, 피고 1은 소외 2 회사로부터 매매대금 잔금을 수령하면 원고에게 합계 2억 2,500만 원(인도 합의금 2억 원 + 이사비용 500만 원 + 임차보증금 2,000만 원)을 지급하기로 약정하였으며, 피고 1의 아들인 피고 2는 피고 1의 채무를 보증하였습니다(이하 ‘이 사건 합의’).
라. 원고는 이 사건 합의에 따라 2020. 11. 27. 피고 1에게 이 사건 임차목적물을 인도하였고, 소외 2 회사는 2020. 11. 30. 피고 1에게 매매대금 잔금을 지급하고 이 사건 주택 및 부지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습니다. 그러나 피고 1은 원고에게 임차보증금 2,000만 원 및 이사비용 500만 원만 지급하고 나머지 2억 원을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마. 이에 원고는 피고1, 2를 상대로 이 사건 합의에 따른 약정금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하여, 피고들이 채무자 또는 보증인으로서 원고에게 2억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바. 위 원고의 주장에 대하여 피고들은, 원고가 이 사건 합의로 포기하는 임차권 가치는 약 500만 원에 불과한데, 이에 비해 피고들은 41배에 달하는 2억 500만 원(임차보증금 2,000만 원 제외)을 원고에게 대가로 지급하도록 되어 있어, 원고의 급부와 피고들의 반대급부 사이에 현저한 불균형이 존재하고, 이러한 합의는 원고가 소외 2 회사에 거액의 위약금을 부담하는 등의 위험에 처한 피고 1의 경제적 궁박을 이용하여 체결한 것으로 민법 제104조의 불공정한 법률행위 등에 해당하므로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항변하였습니다.
2. 원심의 판단
이 사건의 원심(서울동부지방법원 2023. 10. 25. 선고 2022나20308 판결)은, (i) 이 사건 합의에서 정한 원고의 급부에는 원고가 포기한 임차권의 가치뿐만 아니라 원고가 피고 1에게 이 사건 임차목적물을 인도하지 않을 경우 피고 1이 소외 2 회사에 부담할 위약금 6억 8,400만 원 상당의 손해를 면하게 된 것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원고의 급부와 피고들의 반대급부 사이에 현저한 불균형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ii) 이 사건에 나타난 여러 사정에 비추어 보면 피고들의 궁박을 인정하기도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피고들의 주장을 모두 배척하고 원고의 청구를 인용한 제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하였습니다.
3.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피고들이 이 사건 합의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피고 1이 소외 2 회사에 부담하게 되는 위약금 상당의 손해를 면하게 된다는 이유로 원고의 급부와 피고들의 반대급부 사이에 현저한 불균형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원심의 판단에 대하여, (i) 이 사건 합의에 따른 피고들의 반대급부는 원고가 대항력 있는 임차권을 포기하고 임대차 기간 만료 전에 이 사건 임차목적물을 인도하는 대가로 약정금을 지급하는 것일 뿐이고, (ii) 피고 1이 위약금 지급을 면하게 되는 것은 원고의 급부 이행에 따라 소외 2 회사와의 계약관계에 후속적으로 발생하는 결과일 뿐 이 사건 합의에 따른 원고의 급부 그 자체를 구성하는 것은 아니므로, 원심이 이러한 위약금 상당액을 원고의 급부에 포함시킨 뒤, 원고의 급부의 객관적 가치가 피고들의 반대급부의 객관적 가치보다 오히려 높으므로 급부와 반대급부 사이에 현저한 불균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은 잘못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i) 피고 1이 소외 2 회사와의 이 사건 매매계약으로 자신이 얻을 경제적 이익을 고려하여 원고와의 임대차계약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자신의 법적․경제적 위험을 예측하면서도 이를 기꺼이 감수하고 이 사건 매매계약을 체결한 결과 원고와의 관계에서 다소 곤궁한 상태에 빠졌더라도, 이와 같이 그가 자초한 상태를 민법 제104조의 궁박이라고 쉽사리 인정하여서는 안 되며, (ii) 피고들이 곤궁한 상태에 이르게 된 원인과 배경을 비롯하여 당사자의 신분 및 상호관계, 이 사건 매매계약에 따른 경제적 이익, 이 사건 합의의 경위 및 내용, 이 사건 합의 이후의 상황, 이 사건 매매계약의 해제와 같이 피고 1에게 존재하였던 다른 대안 등 모든 사정을 고려할 때 이 사건 합의가 피고들의 궁박 상태에서 체결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
결국, 대법원은 이 사건 합의가 유효하다(즉, 이 사건 합의가 민법 제104조에서 정한 불공정한 법률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원심의 결론이 정당하다고 판단하며, 피고들의 상고를 전부 기각하였습니다.
4. 판결의 의의
이 판결은 민법 제104조에서 정한 불공정한 법률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급부와 반대급부의 판단 기준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시하였다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대법원은 민법 제104조에서의 급부와 반대급부는 해당 법률행위에서 정한 급부와 반대급부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궁박때문에 법률행위를 하였다고 주장하는 당사자가 그 법률행위의 결과 제3자와의 계약관계에서 입었을 불이익을 면하게 되었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러한 불이익의 면제를 곧바로 해당 법률행위에서 정한 상대방의 급부로 평가해서는 안 되며, 이를 상대방의 급부로 평가한다면, 당사자가 그 불이익을 입는 것보다 해당 법률행위에서 정한 반대급부를 이행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유리하다고 보아 그 법률행위를 한 대부분의 경우에 그 불이익을 포함한 급부의 객관적 가치가 반대급부의 객관적 가치를 초과하여, 그 이유만으로 당사자의 궁박 여부와 관계없이 법률행위의 불공정성이 부정되는 부당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판시하였습니다.
이처럼, 불공정한 법률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경우, 일방 당사자가 제3자와의 계약관계에서 입게 될 불이익이 아닌, 해당 법률행위에서 정한 급부와 반대급부를 원칙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는 점에 유의하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