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이행보증계약의 보증책임
- 대법원 2020. 11. 26. 선고 2017다271995 판결
박건률∙도종호 변호사
1. 사실관계
가. 공동수급체 구성 및 공사도급계약의 체결
원고(한국토지주택공사 LH)는 2012. 2.경 주한 미군 기지 이전시설사업의 일부인 숙소공사에 대하여 입찰을 실시하였고, 울트라건설, 경남기업, J기업, H종합건설은 공동이행방식의 공동수급체를 구성하였습니다. 출자비율은 울트라건설 38%, 경남기업 37%, J기업 15%, H종합건설 10%이었습니다.
원고와 공동수급체는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하였는데, 공사도급계약에 따라 공동수급체 구성원들은 원고에게 계약보증금이나 공사이행보증서를 제출할 의무를 지게 되었고, 계약보증금은 공동수급체 구성원들이 정당한 이유 없이 이 사건 도급계약상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에 원고에게 귀속된다는 것으로 하였습니다.
또한 공동수급체의 공동수급협정은 도급계약 내용으로 편입되었는데, 공동수급체 구성원은 원고에 대한 계약상의 의무이행에 대하여 연대하여 책임을 지고, 선급금이나 기성대가는 공동수급체 구성원들에게 개별적으로 지급되며, 공동수급체 구성원 중 1인이 파산, 해산, 부도 기타 정당한 이유 없이 계약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 해당 구성원 외의 구성원이 원고의 동의를 얻어 탈퇴조치를 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잔존 구성원이 연대하여 계약을 이행하고, 탈퇴 구성원의 출자지분은 잔존 구성원의 출자비율에 따라 분할하여 잔존 구성원의 기존 출자지분에 가산하는 것으로 정하였습니다.
나. 보증계약의 체결
위와 같은 도급계약에 따라 공동수급체 구성원들은 도급계약에서 정한 계약보증금 중 각자의 출자비율에 따른 금액을 보증금액으로 하여 각자 피고(건설공제조합)와 계약이행보증계약을 체결한 다음 피고 건설공제조합로부터 공사이행보증서를 발급받아 원고 LH에 제출하였습니다.
위 보증계약상 공사이행보증약관의 주요 내용은, 피고 건설공제조합은 계약자가 이 사건 도급계약상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원고에게 계약상의 의무를 대신 이행하거나 해당 보증금을 지급하고, 계약자의 귀책사유로 보증사고가 발생하였을 경우 보증시공을 원칙으로 하고 보증시공을 할 수 없는 때에는 보증서에 기재된 보증금액을 한도로 하여 이 사건 도급계약 또는 관련 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해당 보증금의 지급으로 보증채무를 이행하는 것으로 정하였습니다. 한편 공동이행방식으로 체결된 이 사건 도급계약에서는 이 사건 공동수급체 구성원 중 일부가 부도 등의 사유로 계약을 이행할 수 없는 경우 원고 LH는 잔존 구성원이 계약 이행에 필요한 자격요건을 갖추고 있지 않거나 계약이행요건을 갖추었더라도 계약을 이행하지 않는 때에 한하여 피고 건설공제조합에게 보증채무의 이행을 청구할 수 있는 것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다. 구성원 일부의 공동수급체 탈퇴 및 도급계약의 종료
그런데 울트라건설은 이 사건 공사가 진행 중이던 2014. 10.경 회생절차개시결정을 받았고, 울트라건설의 관리인은 법원의 허가를 받아 2014. 11.경 원고 LH에게 채무자회생법 제119조 제1항(쌍방미이행 쌍무계약에 관한 선택)을 근거로 이 사건 도급계약의 해지를 통보하였습니다. 이에 울트라건설을 제외한 공동수급체의 나머지 구성원들은 2014. 11.경 원고 LH의 승인을 받아 울트라건설을 이 사건 공동수급체에서 탈퇴시키고, 출자비율을 경남기업 60%, J기업 24%, H종합건설 16%로 변경하고 위와 같은 출자비율 변경을 반영하여 도급계약을 다시 체결하였습니다.
그 후 이 사건 공사가 다시 진행되던 중 경남기업도 2015. 4.경 회생절차개시결정을 받았고, 경남기업의 관리인은 2015. 5.경 원고 LH에게 채무자회생법 제119조 제1항에 따라 이 사건 도급계약의 해지를 통보하였습니다. 원고 LH는 나머지 공동수급체 구성원인 J기업, H종합건설에 공사 이행을 촉구하였으나 이를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라. 원고 LH의 피고 건설공제조합에 대한 보증금 청구
원고는 2015. 6.경 J기업, H종합건설 등 나머지 공동수급체 구성원들에게 도급계약의 해지를 통보하고 피고 건설공제조합에게 공동수급체 구성원들의 각 보증계약에 따른 보증채무의 이행을 청구하였습니다. 그러나 피고 건설공제조합은 울트라건설과의 보증계약을 제외한 나머지 보증계약에 따른 보증금만 원고에게 지급하였고 이에 원고 LH는 피고 건설공제조합을 상대로 울트라건설이 제출한 보증서에 따른 계약이행보증금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2. 1심(서울중앙지방법원 2016가합514409) 및 항소심(서울고등법원 2017나2014947)의 판단
이에 대하여 1심 및 항소심은 모두 원고 LH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하였습니다.
그 이유를 보면 이 사건과 같은 공동이행방식의 도급계약에서는 공동수급체 구성원 전원이 연대하여 공사이행의무를 부담하므로 일부 구성원이 공사를 포기하더라도 잔존 구성원들만으로도 공사이행이 가능하다면 공동수급체가 계약상 의무를 불이행한 것이라고 볼 수 없고, 보증약관에서 공동수급체 구성원 전원이 도급계약을 이행할 수 없는 경우를 보증금지급 청구요건으로 정하고 있는 점 등을 종합하면, 각 보증계약에서 정한 보증사고는 이 사건 공동수급체 구성원 전원이 이 사건 도급계약상 의무를 이행할 수 없게 된 경우를 의미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울트라건설이 회생으로 인하여 도급계약을 해지하고 공사의 이행을 포기한 시점에는 보증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1심 및 항소심은 판단하였습니다.
그리고 울트라건설이 공사를 포기한 이후 잔존 구성원들은 잔여공사를 완공하기 위해 출자지분을 증가시킬 필요가 있어 울트라건설을 이 사건 공동수급체에서 탈퇴시키고 이 사건 변경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울트라건설의 이 사건 도급계약상 채무를 면책적으로 인수하였고 원고 LH도 이를 승인하였는바, 이에 따라 보증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주채무인 울트라건설의 이 사건 도급계약상 채무가 소멸하였고 민법 제459조 본문1에 따라 피고 건설공제조합의 보증채무도 소멸하였다고 판단하여 원고 LH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 것입니다.
1전채무자의 채무에 대한 보증이나 제삼자가 제공한 담보는 채무인수로 인하여 소멸한다. |
3. 대법원의 판단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과 달리 피고 건설공제조합이 원고 LH에 대하여 울트라건설과의 계약이행보증계약에 따른 보증의무를 이행하여야 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계약이행보증계약에서 보증사고란 보증인의 계약이행보증책임을 구체화하는 불확정한 사고를 가리키는데, 보증사고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보증계약의 약관과 약관이 인용하고 있는 이행보증서와 주계약의 구체적인 내용 등을 종합하여 결정하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본 건 보증약관에서는 해당 보증계약의 계약자인 수급인이 도급계약상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을 보증사고 정하고 있고, 공동이행방식으로 체결된 공사도급계약의 경우 보증계약의 계약자인 수급인의 의무불이행과 공동수급체의 다른 구성원인 수급인의 의무불이행을 구분한 다음 보증채무의 이행청구 요건을 별도로 정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이와 같은 점을 종합하여 약관에서 보증사고로 정한 ‘수급인의 의무불이행’은 보증계약의 계약자인 수급인의 의무불이행을 가리키므로 공동이행방식의 공동수급체 구성원 중 보증계약의 계약자인 수급인이 주채무인 공사계약상 의무를 불이행함으로써 보증사고가 발생하였다고 볼 수 있고 다만 이 사건 약관에 따라 보증채권자인 도급인은 그 이후 공동수급체의 다른 구성원들 전원의 의무불이행이 있을 경우에 보증인을 상대로 보증채무의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본 건의 경우 울트라건설이 해지의 의사표시를 함으로써 이 사건 도급계약은 원고와 울트라건설 사이에서 장래를 향하여 소멸하였고, 한편 잔존 구성원들은 계속해서 원고에 대한 공사의무를 연대하여 이행하여야 하므로, 울트라건설이 이 사건 도급계약을 해지한 이후에는 원고의 동의를 얻어 울트라건설을 이 사건 공동수급체에서 탈퇴시킨 다음 자신들의 출자비율에 따라 울트라건설의 출자지분을 분배받을 필요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에 잔존 구성원들(경남기업, J기업, H종합건설)은 원고 LH와 변경계약을 체결하여 이 사건 도급계약의 내용 중 공동수급체 구성원의 출자비율 부분만 수정하였다고 하면서, 변경계약에는 울트라건설이 이 사건 도급계약 해지로 원고에 대하여 부담하게 되는 각종 채무와 관련하여 잔존 구성원들이 이를 승계하는 것으로 명시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와 같은 채무는 통상 잔존 구성원들이 승계하여 부담할 성질의 것도 아니고, 객관적으로 잔존 구성원들이 이를 승계할 이유도 없으므로 변경계약은 도급계약에서 정한 바에 따라 원고 LH와 잔존 구성원들 사이에서 장래 공사에 대한 출자지분을 외부적으로 확정하기 위하여 체결된 것에 불과하고, 이와 달리 원고와 이 사건 변경계약을 체결하면서 울트라건설의 출자지분을 분할하여 가산하였다는 사정만으로는 잔존 구성원들이 울트라건설의 원고 LH에 대한 채무를 면책적으로 승계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결국 울트라건설이 도급계약을 해지한 때에 보증계약의 보증사고가 발생하였고 이후 잔존 구성원들이 도급계약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으므로 원고 LH는 피고 건설공제조합에게 보증채무의 이행으로 보증계약에 따른 보증금의 지급을 청구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여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이를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하였습니다.
4. 판결의 의의
본 건은 원고(도급인)와 공동이행방식의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한 공동수급체 구성원들이 각자 자기의 분담비율에 따라 피고 보증사와 각각 공사이행보증계약을 체결하였는데, 공사 도중에 구성원 중 1인에 대해 회생절차가 개시된 후 관리인이 채무자회생법에 근거하여 도급계약을 해지하였고, 이에 잔존 구성원들이 도급계약을 해지한 구성원의 지분을 승계하여 공사를 계속하였으나 결국 공사를 완료하지 못한 사안입니다.
1심과 항소심은 공동수급체 구성원 중 1인이 도급계약을 해지하고 탈퇴한 경우 잔존 구성원들이 지분 조정을 통하여 변경계약을 체결하였다면 이는 잔존구성원들이 면책적으로 채무를 인수하였다고 보아 보증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보았습니다.
이에 반해 대법원은 보증계약에 의하면 공동수급체 구성원 중 1인이 공사계약을 해지한 때에 보증사고가 발생하였고, 이후 원고인 보증채권자의 동의 하에 공동수급체 구성원 중 1인이 공동수급체에서 탈퇴하고 잔존 구성원들이 탈퇴한 공동수급체 구성원의 지분을 승계한 것만으로는 공사계약상 채무가 잔존 공동수급체 구성원에게 면책적으로 인수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최종적으로 피고 보증사의 원고 보증채권자에 대한 보증책임을 긍정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대법원 판결에 따라 발주자는 공동이행방식의 공사도급계약에서 공동수급체 구성원 중 1인이 탈퇴하고 잔존 구성원들이 지분변경을 하는 변경계약을 체결하였다는 사실만으로 보증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고, 따라서 좀 더 폭넓게 보증사에 대하여 보증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길이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보증사의 경우 이와 같은 대법원 판결에 따라 약관 개정을 통하여 공동수급체의 구성원 탈퇴에 대한 대비를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