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 주식회사의 대표이사가 이사회 결의 없이 거래행위를 한 경우
거래 상대방인 제3자의 보호 범위


- 대법원 2021. 2. 18. 선고 2015다45451 전원합의체 판결



이승훈 변호사




1. 사안의 개요

원고는 피고 대표이사의 소개로 A에게 30억원을 대여하면서 피고 대표이사로부터 피고 명의의 확인서(이하 ‘이 사건 확인서’)를 받았는데, 원고가 피고를 상대로 보증인으로서 A의 대여금채무를 변제할 것을 청구하자 피고가 피고의 정관상 이 사건 확인서 작성을 위해서는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 함에도 피고의 대표이사가 이를 거치지 않았고, 원고는 이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으므로 이 사건 확인서 작성은 피고에 대해 효력이 없다고 다툰 사안입니다.

2. 이 사건의 주요쟁점

이 사건에서는 주식회사의 대표이사가 이사회 결의에 따라 일정한 거래행위를 하도록 되어 있는데도 이사회 결의 없이 거래행위를 한 경우에 거래 상대방인 제3자는 어떠한 범위에서 보호되는지 여부가 문제되었습니다.

3. 관련 상법 조문

제209조(대표사원의 권한)
① 회사를 대표하는 사원은 회사의 영업에 관하여 재판상 또는 재판외의 모든 행위를 할 권한이 있다.
② 전항의 권한에 대한 제한은 선의의 제삼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제389조(대표이사)
③ 제208조제2항, 제209조, 제210조와 제386조의 규정은 대표이사에 준용한다.

제393조(이사회의 권한)
① 중요한 자산의 처분 및 양도, 대규모 재산의 차입, 지배인의 선임 또는 해임과 지점의 설치·이전 또는 폐지 등 회사의 업무집행은 이사회의 결의로 한다.


4. 원심의 판단

원심은, 이사회 결의 없이 이루어진 대표이사의 행위에 관하여 ‘상대방이 이사회 결의가 없었음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가 아니라면 그 거래행위는 유효’라는 기존 대법원 판결(대법원 2003. 1. 24. 선고 2000다20670 판결 등)의 법리에 따라, 원고가 피고 대표이사로부터 이 사건 확인서를 작성받을 당시 피고의 이사회 결의가 없었음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하여, 이 사건 확인서에 따른 원고의 피고에 대한 청구를 인용하였습니다.

5. 대법원의 판단

가. 대법원 판단의 요지

대법원은, 주식회사의 대표이사가 회사 정관 등 내부 규정에 위반하여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은 경우는 물론이고 상법 제393조 제1항에 따라 요구되는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은 경우에도 그 거래 상대방은 상법 제209조 제2항에 따라 보호되고, 다만 거래 상대방에게 중과실이 있다면 그 신뢰를 보호할 가치가 없으므로 거래행위가 무효라고 해석함이 타당하다고 보아 선의∙무과실의 거래상대방만을 보호하였던 기존 대법원 판결을 모두 변경하고, 이 사건에서 원고가 이사회 결의가 없었음을 알았다고 보기 어렵고 알지 못한 데에 중과실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여, 원심 판결에 대한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였습니다.

나. 다수의견(9명)

대법원 다수의견은, 아래와 같은 이유에서 주식회사의 대표이사가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고 한 거래행위에 대해 거래상대방이 선의∙무중과실인 경우 그 거래행위가 유효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i) 상법은 대표이사의 대표권 제한에 대하여 선의의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정하고 있다(상법 제389조 제3항, 제209조 제2항). 대표권이 제한된 경우에 대표이사는 그 범위에서만 대표권을 갖는다. 그러나 그러한 제한을 위반한 행위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회사의 권리능력을 벗어난 것이 아니라면 대표권의 제한을 알지 못하는 제3자는 그 행위를 회사의 대표행위라고 믿는 것이 당연하고 이러한 신뢰는 보호되어야 한다(대법원 1997. 8. 29. 선고 97다18059 판결 참조). 일정한 대외적 거래행위에 관하여 이사회 결의를 거치도록 대표이사의 권한을 제한한 경우에도 이사회 결의는 회사의 내부적 의사결정절차에 불과하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거래 상대방으로서는 회사의 대표자가 거래에 필요한 회사의 내부절차를 마쳤을 것으로 신뢰하였다고 보는 것이 경험칙에 부합한다(대법원 2005. 5. 27. 선고 2005다480 판결, 대법원 2009. 3. 26. 선고 2006다47677 판결 참조).

(ii) 주식회사 대표이사의 대표권을 제한하는 상법 제393조 제1항은 그 규정의 존재를 모르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에게도 일률적으로 적용된다. 법률의 부지나 법적 평가에 관한 착오를 이유로 그 적용을 피할 수는 없으므로, 이 조항에 따른 제한은 내부적 제한과 달리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주식회사의 대표이사가 이 조항에 정한 ‘중요한 자산의 처분 및 양도, 대규모 재산의 차입 등의 행위’에 관하여 이사회의 결의를 거치지 않고 거래행위를 한 경우에도 거래행위의 효력에 관해서는 내부적 제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보아야 한다.

다. 반대의견 (4명)

한편, 이러한 다수의견에 대해서, (i) 상법 제209조 제2항은 합명사회의 대표사원에 관한 규정으로서 주식회사의 대표이사가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 하는 경우’가 모두 대표이사의 대표권에 대한 제한에 해당한다는 전제 하에 상법 제209조 제2항이 전면적으로 적용된다고 보는 것은 부당하고, (ii) 거래 상대방을 보호하는 기준을 ‘선의∙무중과실’로 변경하는 것은 거래안전 보호만을 중시하여 다른 보호가치를 도외시하는 것일 뿐더러 개별 사건을 해결할 때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타당성을 기하기 어렵다는 대법관 박상옥 외 3인의 반대의견이 있었습니다.

6. 이 판결의 의의

종래 대법원은 주식회사의 대표이사가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 함에도 이를 거치지 않고 행위한 경우 거래 상대방이 이사회 결의가 없었음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가 아니라면 그 거래행위는 유효하다고 판단하면서도, 이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밝히지는 아니하였습니다.

이 판결은 대표이사의 대표권이 회사 정관 등 내부 규정에 따라 제한된 경우, 상법 제209조 제2항에 따라 선의의 제3자가 보호되고 다만 중과실이 있는 제3자는 보호가치가 없으므로 거래행위가 무효가 되며, 나아가 대표이사가 상법 제393조 제1항에 따라 요구되는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은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보아야 한다고 판단함으로써, 대표이사의 대표권이 제한된 경우 거래 상대방이 보호되는 근거를 상법 제209조 제2항을 통해 마련하고, 선의∙무과실의 상대방만을 보호하였던 기존 판례의 변경하여 거래 안전의 측면에서 거래 상대방의 보호범위를 넓혔다는 점에 의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