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식 변호사
1. 들어가며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이 지난 1월 26일 제정⋅공포돼 내년 1월 27일부터 시행됩니다. 이에 대해 노동계와 경영계 양쪽에서 동시에 우려와 아쉬움의 뜻을 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으로만 본다면 큰 진전을 이룬 것 같습니다.
반면, 개인적으로는 중대재해처벌법이 과연 마지막까지 입법 완료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 입장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최초 제안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의 원안에 근대형법의 기본 원칙인 책임주의와 조화될 수 없는 부분들이 상당히 포함돼 있었고, 다양한 주체들의 이해관계를 고려하면 이러한 내용들을 새로 제정될 법률안 속에 원만하게 녹여내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원안을 통해서는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범위와 이들의 주의의무 위반(책임) 내용에 대하여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우려를 감안했던 탓인지는 몰라도, 실제로 제정⋅공포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어느 정도 그와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려고 한 노력이 엿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노력은 미봉책에 불과해 앞으로도 그 핵심을 규정하기 위한 다툼과 논란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2. 중대산업재해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
가.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주의의무 위반의 내용
중대재해처벌법 제6조 제1항은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제4조)와 도급, 용역, 위탁 등 관계에서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제5조)를 위반해 중대재해를 발생하게 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을 형사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의무 위반은 법 제4조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와 법 제5조 도급, 용역, 위탁 등 관계에서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로 구분돼 있지만, 제5조의 주의의무를 제4조의 주의의무와 동일하게 규정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므로, 결국 중대산업재해로 인한 처벌 대상이 되는 의무 위반 내용은 제4조의 의무 위반으로 한정됐습니다.
그런데 중대재해처벌법 제4조 제1항은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이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행해야 하는 조치의 내용으로 ①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제1호), ② 재해 발생 시 재발방지 대책의 수립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제2호), ③ 중앙행정기관⋅지방자치단체가 관계 법령에 따라 개선, 시정 등을 명한 사항의 이행에 관한 조치(제3호), ④ 안전⋅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제4호)를 한정적으로 열거했고, 제2항에서 제1호 및 제4호의 조치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은 대통령령에서 정하는 것으로 규정했습니다. 따라서 제2호 및 제3호의 조치 내용은 법률의 해석 자체를 통해서 확정되지만, 제1호 및 제4호의 조치 내용은 시행령의 제정을 기다려 확정될 상황에 처했습니다.
이에 우선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제1호)에 관하여 살펴보자면, 비록 그 세부 내용이 향후 시행령의 제정을 통해 구체화될 것이기는 하나, 여기에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사업주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는 여러 가지 안전⋅보건 조치의무들 중 일부를 선별적으로 담을 수 있을 것이라 예상됩니다. 법안 제정 과정에서 나타난 일부 입법 관여자의 발언 내용을 참고하면, 제1호의 조치에는 산안법이 규정하고 있는 대표이사 또는 안전보건관리책임자의 의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이고, 따라서 산안법 제15조 제1항이 규정하고 있는 ① 사업장의 산업재해 예방계획의 수립에 관한 사항, ② 안전보건관리규정의 작성 및 변경에 관한 사항, ③ 안전보건교육에 관한 사항, ④ 작업환경측정 등 작업환경의 점검 및 개선에 관한 사항, ⑤ 근로자의 건강진단 등 건강관리에 관한 사항, ⑥ 산업재해의 원인 조사 및 재발 방지대책 수립에 관한 사항, ⑦ 산업재해에 관한 통계의 기록 및 유지에 관한 사항, ⑧ 안전장치 및 보호구 구입 시 적격품 여부 확인에 관한 사항, ⑨ 그 밖에 근로자의 유해ㆍ위험 방지조치에 관한 사항으로서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사항 및 산안법 제14조 대표이사의 이사회 보고 및 승인의무 등이 포함될 것이라 예상됩니다.
다음으로 재해 발생 시 재발방지 대책의 수립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제2호)의 경우에는 자칫 재발방지 대책의 수립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의 내용을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단순히 제6조 제3항의 형벌 가중사유와 같이 기능하는 외에 별다른 해석상의 지침을 제공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법적 안정성을 해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산안법 제56조 제2항은 고용노동부장관이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의 사업주에게 안전보건개선계획의 수립⋅시행, 그 밖에 필요한 조치를 명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고, 제57조 제3항은 사업주가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산업재해에 대해 재발방지 계획 등을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고용노동부장관에게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재해 발생 시 재발방지 대책의 수립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의 내용과 정도는 아직 규범적으로 합의된 바 없고, 새로이 만들어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제3호의 중앙행정기관⋅지방자치단체가 관계 법령에 따라 개선, 시정 등을 명한 사항의 이행에 관한 조치와는 달리 재발방지 대책의 수립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의 내용은 다소 불분명한 것이고, 만약 제3호와 같은 취지를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었다면 입법적으로 미진하며 보완이 필요합니다.
반면에 중앙행정기관⋅지방자치단체가 관계 법령에 따라 개선, 시정 등을 명한 사항의 이행에 관한 조치(제3호)의 경우에는 중대재해처벌법의 형벌 예방적 기능을 수행하기에 특별한 어려움이 없어 보입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중앙행정기관⋅지방자치단체의 시정 등 조치 내용이 불분명하거나 불가능한 것을 대상으로 하게 되는 경우라면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의 법적 안정성을 해할 우려가 언제든지 있어 보이지만, 구성요건의 대상이 되는 형식적 의무 위반의 내용은 분명하게 확인이 됐습니다. 마지막으로 안전⋅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제4호)는 제1호 의무 외에 시행령에 규정할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의 안전 및 보건확보 조치의무를 포괄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입법 기술상의 규정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시행령의 제정을 기다려보아야 합니다.
이처럼 중대재해처벌법 제4조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의 의무 내용은 입법 과정에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시행령, 중앙행정기관⋅지방자치단체, 법률의 해석 등에 위임돼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이를 명확하게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데, 사용자의 경각심을 고취시킴과 동시에 산안법의 규범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경영책임자 등의 의무 범위와 내용을 보다 구체화하고 한정해야 합니다. 가령, 제1호와 마찬가지로 제4호의 의무를 시행령에 규정하는 경우에도, 만연히 산안법 제38조 안전조치 의무나 제39조 보건조치 의무 내용을 그대로 옮겨 오는 방식이라면 법치주의 원칙에서 문제가 있다고 보이는데, 이와 같이 시행령에서 구체적인 사항을 정하는 경우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취지상 형사처벌의 전제가 되는 의무위반의 내용이 막연하거나 포괄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여지를 가급적 배제해야 할 것이고, 중대재해발생의 예방을 위해 국가가 반드시 사업주의 준수를 요구하고자 하는 산안법의 해당 법률 규정에 대해서만 특정해 규정하는 것이 중대재해처벌법 및 산안법의 규범력 제고 측면에서도 바람직합니다.
나.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사업경영자 등
중대재해처벌법 제6조에 의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법 제4조의 의무를 위반해 중대산업재해에 이르게 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입니다. 여기서 법은 사업주를 "자신의 사업을 영위하는 자, 타인의 노무를 제공받아 사업을 하는 자"라고 정의하고, 경영책임자 등을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 및 "중앙행정기관의 장, 지방자치단체의 장, 지방공기업법에 따른 지방공기업의 장,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4조부터 제6조까지의 규정에 따라 지정된 공공기관의 장"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법인에 있어서의 경영책임자는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해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나, 막상 현실에서 누가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에 해당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것인지 여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의 의미와 관련해, 종전 법원은 산안법상 안전보건관리책임자에 대해 "공장장이나 작업소장 등 명칭의 여하를 묻지 아니하고 당해 사업장에서 사업의 실시를 실질적으로 총괄⋅관리하는 권한과 책임을 가지는 자"로 표현한 경우가 있었는데,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의 정의는 위 판시상의 안전보건관리책임자와 비교할 때"사업을 대표"한다는 부분이 추가된 반면에 "당해 사업장"이라는 장소적 한계가 제외돼 있습니다. 여기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된 배경을 더하면,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는 종전 산안법상 형사처벌 대상이었던 안전보건관리책임자와 달리 사업의 안전 및 보건과 관련해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을 가진 자로서 안전보건관리책임자 이상의 상위관리자(예컨대 주식회사의 대표이사)를 대상으로 하려 했던 것이라 이해됩니다. 따라서 명목상으로만 대표이사로 등기돼 있고 실제로는 관련 업무를 집행한 사실이 없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중대재해처벌법상 형사처벌의 대상인 경영책임자가 될 가능성이 낮아 보이는 반면에, 그룹 오너에 해당하고 회장과 같은 직위를 가지면서 실질적으로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경우라면 비록 등기된 대표이사가 아니더라도 경영책임자에 해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중대재해처벌법은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도 경영책임자로 규정하고 있는데, 법이 그 표현의 방법상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을 수식하는 방법으로 "이에 준하여"라는 요건을 부여한 취지는 단순히 예전의 공장장과 같이 안전보건관리책임자로 선정돼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경영책임자로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이고, 따라서 비록 산안법상 안전보건관리책임자로 선정돼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실제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없는 경우라면 다른 경영책임자를 발견하여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겠다는 의미라 해석됩니다.
한편,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 등을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는바, 만약 그에 해당하는 경영책임자가 복수로 존재하는 경우라면 그 중 누가 형사처벌을 받게 될지의 문제가 생깁니다. 법률 문언의 해석상으로는 경영책임자에 해당하는 이상 누구라도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형벌권의 과잉현상을 낳을 것이고, 책임주의 원칙에도 부합할 수 없습니다. 종국적으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경영책임자는 복수의 경영책임자 가운데 실질적이면서 가장 밀접하게 해당 조치와 관련한 권한과 의무를 가진 자에 한정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3. 나가며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시민과 종사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는 반면에, 형벌에 관한 규정은 일반적으로 국가의 형벌권의 한계를 명백히 해 자의적인 형벌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기능도 수행해야 합니다. 누구라서 중대재해처벌법이 가지는 본래의 입법목적을 반대할 사람이 있을 것인가? 다만 그와 같은 입법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형벌규정의 보장적 기능을 충실하게 도모하기 위한 노력 역시 병행돼야 할 것인바, 이는 우리 사회가 법치주의 원칙을 기본 구성 원리로 채택하고 있는 이상 불가피한 현상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