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중 변호사
모두가 애타게 기다리는 ‘코로나19 없는 세상’은 아직 더디게 오고 있지만, 봄은 어느새 성큼 다가와 있습니다. 지난 1년 코로나19는 우리 사회 곳곳에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금융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대형 금융사고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습니다.
겨우내 쌓인 눈이 녹으면서 감춰졌던 오물이 드러나듯 우리 금융시장의 문제점을 코로나19가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금융상품들에 잠재되어 있던 위험들이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 현실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증권회사가 판매한 해외 무역금융펀드는 글로벌신용등급 A- 이상을 보유한 보험사의 보장이 들어간 자산에 대해서만 투자하는 것이어서 안전 상품으로 소개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만기가 지났음에도 수개월 째 투자금을 돌려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가 계속되어 대규모 손실 발생이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상품 판매 당시에는 기초자산이 보험사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라고 하였지만 지금은 판매사도, 상품을 만든 증권사도 해외 현지운영사의 입만 쳐다볼 뿐 실제로 보험사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 얼마인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합니다. 판매사는 소비자들에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무역 둔화가 손실의 원인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대규모 리조트 개발에 투자한다는 한 펀드상품은 투자자들이 가입 당시 알지 못한 조항이 문제가 되어 원금 전액 손실을 입을 위기에 처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규모 손실이 명확해진 뒤 투자자들에게 제공된 자료에 의하면 판매사도 상품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이 경우도 판매사에 의하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리조트 건설에 차질이 생긴 것이 손실의 원인이라고 합니다.
두 경우 모두 코로나19 사태가 없었더라면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상품 자체에 이미 위험이 잠재되어 있었고, 코로나19는 일종의 방아쇠 역할을 한 정도에 불과합니다. 잠재되어 있던 위험이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현실화한 것입니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형체가 있는 물건인 상품은 그 위험성이 잠재되어 있더라도 소비자가 이를 알아채는 것이 비교적 어렵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노트북을 구매한다면 판매자 만큼 소비자도 그 노트북 상품이 가지는 사양을 파악하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위험성을 파악하는 것도 대개의 경우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금융상품은 소비자가 그 사양을 파악하기도 어렵고, 위험성을 제대로 인지하기도 어렵다는 데 특징이 있습니다. 게다가 그에 관한 정보도 상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금융사에만 구조적으로 편재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법은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장치들을 두고 있습니다. 금융회사들의 선관의무, 충실의무, 불건전영업행위금지의무, 설명의무, 적합성의 원칙 등이 그것입니다. 한 마디로 금융상품을 만들 때에는 그 상품의 위험성 등에 관해서 성실하게 조사를 하고, 판매를 하는 과정에서는 그 위험성을 감수할 수 있는 투자자에게 투자권유를 하고, 위험성을 소비자가 제대로 인지할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본시장법의 장치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그래서 금융회사들이 그러한 의무를 충실히 수행한다면 소비자들이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하게 되므로 투자를 하지 않거나 투자금액을 줄이는 방법으로 위험을 회피할 수 있습니다. 그 위험성을 충분히 알고 투자를 하였다면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스스로 감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위험성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조사에는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하며, 위험성을 제대로 설명하면 소비자들이 투자를 꺼리므로 의무를 불이행할 유인들이 많습니다. 많은 경우는 금융회사가 그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더라도 잠재 되어 있던 위험이 현실화되지 않으므로 별 문제 없이 지나갑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금융사는 계속 의무이행을 소홀히 하고, 가끔씩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일이 터지면 잠재되어 있던 위험이 현실화 되어 대규모 피해를 초래하게 됩니다. 마치 러시안 룰렛(Russian roulette) 게임을 하는 상황처럼 되는 것입니다.
앞서 본 예 외에도 지난 해 여러 유사한 사건들이 발생하였습니다. 그 중 일부는 이미 법정소송으로 진행되었고, 곧 소송으로 진행될 사건들도 여럿입니다. 본격적인 소송전이 벌어지면 금융회사들은 손실이 발생한 것은 코로나19 사태 때문이라는 주장으로 책임을 벗으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는 원래 금융상품에 잠재되어 있던 위험을 현실화 하는 계기가 된 것이지,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기존에는 없던 위험이 새로 만들어진 것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러시안 룰렛을 하면 그 자체에 이미 위험이 있는 것이지 자신의 차례에 총알이 들어 있어서 새로 위험이 생긴 것은 아닙니다. 러시안 룰렛 게임을 하도록 만들었다면 그 자체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지, 하필 자신의 차례에 총알이 들어 있었다며 책임을 미룰 일이 아닙니다.
코로나19 사태는 우리 사회에 많은 상처와 피해를 안겼지만, 이처럼 우리 금융시장에 잠재되어 있던 문제들을 드러내 주는 계기가 되고 있기도 합니다. 문제가 발생한 개별 사안에 대해 적절한 징계와 책임을 묻는 것이 필요하지만, 금융회사들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제도 개선을 할 지점은 없는지 모색하는 것도 필요한 시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