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도 변호사
1. 들어가며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6조에서는 '통상임금이란, 근로자에게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소정(所定)근로 또는 총 근로에 대해 지급하기로 정한 시간급 금액, 일급 금액, 주급 금액, 월급 금액 또는 도급 금액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2013. 12. 18. 선고 2012다89399 전원합의체 판결(이하 '전원합의체 판결'이라 함)은 '어떠한 임금이 통상임금에 속하는지 여부는 그 임금이 소정근로의 대가로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금품으로서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되는 것인지를 기준으로 객관적인 성질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해 통상임금의 요건으로서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을 제시했습니다.
위 전원합의체 판결은 고정성의 의미에 관해, '고정성이라 함은 '근로자가 제공한 근로에 대해서는 업적, 성과 기타의 추가적인 조건과 관계없이 당연히 지급될 것이 확정돼 있는 성질'을 말하고, '고정적인 임금'은 '임금의 명칭 여하를 불문하고 임의의 날에 소정근로시간을 근무한 근로자가 그 다음 날 퇴직한다 하더라도 그 하루의 근로에 대한 대가로 당연하고도 확정적으로 지급받게 되는 최소한의 임금'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고정성을 갖춘 임금은 근로자가 임의의 날에 소정근로를 제공하면 추가적인 조건의 충족 여부와 관계없이 당연히 지급될 것이 예정된 임금이므로, 지급 여부나 지급액이 사전에 확정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근로자가 소정근로를 제공하더라도 추가적인 조건을 충족해야 지급되는 임금이나 조건 충족 여부에 따라 지급액이 변동되는 임금 부분은 고정성을 갖춘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고, 위와 같은 법리에 근거해 '재직자에게만 지급하는 임금은 고정성을 결하여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습니다.
위 전원합의체 판결이 있은 후, 다수의 사용자들은 재직자 요건을 정기상여금 등 지급 요건으로 부가했고, 하급심들은 위 전원합의체 판결의 법리에 따라 재직자 요건이 붙은 상여금 등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해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재직자 요건이 붙어 있음에도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판결이 있었는바, 이를 소개하고, '재직자 요건'이 통상임금성을 부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2.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한 비판적 견해
'재직자 요건이 붙은 임금은 고정성을 결하여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위 전원합의체 판결에 관한 비판적 견해로는 ① '재직자 요건'은 임금전액지급 원칙이나 임금사전포기 금지 원칙에 반해 무효라는 견해와 ② '재직자 요건'의 유효성을 인정하더라도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이하에서 소개할 제1 대상판결은 '재직자 요건'의 효력 자체를 부정한 것으로서 위 ①의 견해에 해당하는 판결이고, 제2 대상판결은 '재직자 요건'의 유효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통상임금성을 인정한 것으로서 위 ②의 견해에 해당하는 판결입니다.
3. 서울고등법원 2019. 5. 14. 선고 2016나2087702 판결 (이하 '제1 대상판결')
가. 기초사실
원고들은 피고 A에서 근로했던 근로자들이었습니다. 피고는 원고들에게 '기본성과연봉', '내부평가성과연봉'을 지급했는데, 피고의 보수규정에서는 ''기본성과연봉' ,'내부평가성과연봉'은 지급일 현재 재직 중인 직원에게만 지급한다'고 규정해 '재직자 요건'을 부가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피고는 통상임금을 산정함에 있어서 '기본성과연봉', '내부평가성과연봉'을 제외한 후 시간외근무수당 및 연차휴가수당을 지급했습니다. 원고들은, '기본성과연봉', '내부평가성과연봉'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재산정한 시간외근무수당 및 연차휴가수당과 기지급 받은 시간외근무수당 및 연차휴가수당의 차액의 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했습니다.
1심은 위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재직자 요건'이 붙어있는 '기본성과연봉', '내부평가성과연봉'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나. 2심의 판단
(1) 2심은, '평가결과와 무관하게 차등 없이 지급되는 고정급 내지 최소보장 부분이 있는 정기적 임금 내지 급여(이하 '정기 고정급'이라 함)에 부가된 '지급일 기준 재직자조건'은 지급일 전에 퇴직하는 근로자에 대해 이미 제공한 근로에 상응하는 부분까지도 지급하지 아니한다는 취지로 해석되는 한 무효라고 봄이 타당하고, 재직자조건이 무효인 이상, 피고의 기본성과연봉과 내부평가성과연봉 중 최소보장 부분은 소정근로를 제공하기만 하면 확정적으로 지급되므로, 정기적 -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고정적인 임금으로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시해 1심 판결을 취소했습니다. 즉, 2심은 '재직자 요건'의 효력 자체를 부정한 것인데, 그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2) 2심은, '고정적 금액이 계속적‧정기적으로 지급되는 형태의 정기 고정급은 근로의 대가인 임금에 해당하고 그 지급기간이 수개월 단위인 경우에도 이는 근로의 대가를 수개월간 누적해 후불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정기 고정금 지급일 이전에 퇴직하는 근로자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실제로 제공한 근로에 상응하는 정기 고정급에 대해서는 당연히 그 지급을 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즉, 2심은, 원고들이 지급받았던 '기본성과연봉' ,'내부평가성과연봉'은 후불적 임금에 해당하고, 이것이 후불적 임금에 해당하는 이상 원고들은 퇴직 전에 자신들이 실제로 제공한 근로에 상응하는 '기본성과연봉' ,'내부평가성과연봉'을 지급받을 권리가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런데, '재직자 요건'을 이유로 후불적 임금에 해당하는 '기본성과연봉' ,'내부평가성과연봉'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이미 제공한 근로에 대한 대가(즉, 기발생된 임금)에 대한 부지급을 일방적으로 선언하는 것으로서 그 유효성을 인정하기 어렵고, 이는 기발생된 임금을 사전에 포기하도록 하는 것으로서 그 효력을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2심 역시 이와 같은 이유로 '재직자 요건'의 효력을 부정했습니다.
(3) 2심은, ① '기본성과연봉' ,'내부평가성과연봉'이 격월 주기로 교차로 지급되는 점, ② 그 액수가 월봉의 50% 이상에 이르는 점, ② '기본성과연봉' ,'내부평가성과연봉'이 평가결과에 상관없이 지급됐던 이상, 근로자로서는 근로를 제공하기만 하면 그에 대한 기본적이고 확정적인 대가로서 '기본성과연봉' ,'내부평가성과연봉'의 수령을 기대할 수 있는 점 등에 비춰보면, '기본성과연봉' ,'내부평가성과연봉'은 근로자의 생활유지로 지급되는 기본급과 그 성격이 다르지 아니한데, 기본급에 '재직자 요건'을 부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본성과연봉' ,'내부평가성과연봉'에 '재직자 요건'을 부가하는 것 또한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4) 2심은, '재직자 요건'을 두는 이유로 일반적으로 주장되는 것은 '근로자의 계속근로 장려'인데, '재직자 요건'에 근거해 후불적 임금에 해당하는 '기본성과연봉' ,'내부평가성과연봉'을 지급하지 않는 방법으로 근로자의 계속근로를 확보하려고 하는 것은, 계속근로 확보를 위한 합리적인 수단이라고 볼 수 없고, 근로자의 자유의사에 어긋나는 근로를 강요하지 못하도록 한 근로기준법 제7조 등에도 반하는 것으로서 효력이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4. 서울고등법원 2020. 12. 2. 선고 2016나2032917 판결 (이하 '제2 대상판결')
가. 기초사실
원고들은 피고 B에서 근로했던 근로자들이었습니다. 피고는 원고들에게 월 기본급의 800%에 해당하는 금액을 8회에 나누어 지급했는데(이하 '이 사건 상여금'이라 함), 단체협약 및 취업규칙에서는 '이 사건 상여금은 지급일에 재직 중인 직원에 한해 지급하며, 중도 퇴직자에게는 일할로도 지급하지 않는다'는 '재직자 요건'이 부가돼 있었습니다. 이에 피고는 통상임금을 산정함에 있어서 이 사건 상여금을 제외한 후 시간외근무수당 및 연차휴가수당을 지급했습니다. 원고들은, 이 사건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재산정한 시간외근무수당 및 연차휴가수당과 기지급 받은 시간외근무수당 및 연차휴가수당의 차액의 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했습니다.
1심은 위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재직자 요건'이 붙어있는 이 사건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나. 2심의 판단
(1) 제1 대상판결과 달리 제2 대상판결은 '재직자 요건'의 유효성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제2 대상판결은 '재직자 요건'이 부가된 이 사건 상여금의 통상임금성을 인정했고, 1심 판결을 취소했습니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2) 2심은, '이 사건 상여금의 연간 지급액이 월 기본급의 800%로 확정돼 있고, 위와 같은 지급액은 연간 소정근로의 대가인바, 이 사건 상여금은 근로자가 연간 소정근로를 제공하기만 하면 추가적인 조건의 성취 여부와 관계없이 당연히 지급되는 임금으로서 고정적인 임금에 해당한다'고 판시했습니다.
(3) 2심은, '이 사건 '재직자 요건'은, 근로자가 1년의 소정근로를 제공하지 못한 채 중도 퇴직하는 경우, 계산상 편의를 위해 일할 계산해 정산하는 경우와 비교해 미지급 또는 초과지급 금액에 있더라도 추가로 정산하지 않기로 한 것에 불과해, 이 사건 상여금이 갖고 있는 고정적인 임금으로서의 성질을 부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4) 2심은, '통상임금의 개념적 징표인 일률성을 판단함에 있어 휴직자, 복직자, 징계대상자 등 근로자의 개인적인 특수성이 일률성을 부정하는 요인에 해당하지 않는 것과 같이 고정성을 판단함에 있어서도 근로기간 중 단 한번 발생하는 '퇴직'이라는 예외적인 사정을 근거로 고정성을 부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5. 나가며
가. '재직자 요건'에 대한 하급심의 판단 경향
제1 대상판결과 제2 대상판결은 위 전원합의체 판결에 반하는 판결입니다. 그리고, 위 각 대상판결 외에도 재직자 요건이 붙은 임금의 통상임금성을 인정한 하급심 판결도 있으며(서울고등법원 2018. 12. 18. 선고 2017나2025282 판결, 부산고등법원 2019. 9. 18. 선고 2018나55282 판결), 현재 대법원 계류 중입니다.
대법원이 위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통상임금의 개념적 징표 중 고정성에 관한 기준을 제시한지 10년이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급심에서 이에 반하는 판결이 계속적으로 나오고 있는 이유는, 어찌 보면 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설시하고 있는 기준이 구체적인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 못한 것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나. '재직자 요건'을 유효한 것으로 보는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
(1) 먼저, '재직자 요건'을 유효한 것으로 보는 경우에는 아래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가 발생합니다.
'재직자 조건'이 붙은 금품은 특정일에 재직하기만 하면 지급되고, 재직하지 않으면 비록 근로를 제공했어도 지급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소정근로 대가성이 부정될 것인데, 근로에 대한 대가성이 부정된다는 것은 결국 임금성이 부정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됩니다. 그런데, 실무에서는 '재직자 조건'이 붙은 금품(가령, 정기상여금 등)도 평균임금의 산정 기초가 되는 임금으로 보고 있는바, 현실과 모순이 발생하게 됩니다.
나아가, 기본급의 수백%에 해당하는 금액을 수회에 걸쳐 나눠 지급하는 정기상여금 등의 경우, 이는 본래 의미의 상여금이라는 측면보다는 낮은 기본급을 보전하기 위한 차원에서 지급되는 경우가 상당합니다. 제1 대상판결에서 '기본성과연봉' ,'내부평가성과연봉'의 현실적인 의미 및 그 성질을 생계유지를 위해 지급되는 기본급과 동일하게 본 이유도 이와 같은 현실을 반영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재직자 요건'을 유효한 것으로 보고, '재직자 요건'이 붙은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성을 부정하는 것은, 사실상 기본급과 같은 취지로 지급된 금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지 않는 꼴이 돼 현실과 괴리가 발생하게 됩니다.
(2) '재직자 요건'을 유효한 것으로 보는 경우, 제1 대상판결이 설시하고 있는 바와 같은 임금전액지급 원칙 위반 또는 임금사전포기금지 원칙 위반 등과 같은 법률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특정 항목 임금 지급일에 재직 또는 일정 근무일수를 충족했는가에 따라 임금 지급 여부가 달라지는 것은, 근로 제공이나 성과 여부에 관계없이 임금 지급 자체를 전부 인정하거나 전부 부정하게끔 해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은 금지된다'는 근로기준법 상의 대원칙에도 위반될 여지가 있습니다.
다. '재직자 요건'을 유효한 것으로 보는 경우, '재직자 요건'을 붙인 임금의 통상임금성
(1) 위 전원합의체 판결은 '어떠한 임금이 통상임금에 속하는지 여부는 그 임금이 소정근로의 대가로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금품으로서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되는 것인지를 기준으로 객관적인 성질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그런데, '재직자 요건'은 근로의 성과에 관련된 기준이 아니고, 지급액은 고정돼 있으며, 지급기준도 오로지 '재직'이라는 단순한 사실로 설정돼 있는바, '재직자 요건'이 부가된 금품의 객관적인 성질이 '유동성'을 갖는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재직' 여부에 따라 변동되는 것은 그 지급 여부 자체이지, 소정근로에 대한 대가로서 사전에 확정돼 있는 금액 자체가 '재직' 여부에 따라 변동된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2) 또한, 제2 대상판결이 설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재직자 요건'에서 말하는 '퇴직'이 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일률성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본 휴직, 복직, 징계와 다르다고 볼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재직 근로자 모두에게 지급된다는 것은 임금의 지급요건 중 가장 고정적이고 확정적이라고 봄이 합리적입니다.
(3) 통상임금은 단순히 특정일에 근로를 제공한 것에 대한 일당 임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가산임금 등 산정의 법정하한선을 설정하기 위한 도구개념으로서 규범적 성격을 가지는바, '재직자 요건'을 해석함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통상임금의 개념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런데, '재직자 요건'을 통상임금성을 부정할 수 있는 요건으로 보게 되면, 사용자는 '재직자 요건'을 부가해 통상임금에 관한 규율을 회피할 수 있게 될 것인데, 이는 도구개념으로서 규범적 성질을 갖는 통상임금을 사용자의 의사에 따라 임의로 변경할 수 있도록 하는 꼴이 돼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즉, 제2 대상판결이 설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재직자 요건'은 해당 금품의 지급 조건 혹은 정산 방식으로 해석될 수는 있어도, 해당 금품이 소정근로에 대한 대가로서 지급된 것이고, 그 금액이 확정돼 있는 이상, '고정성'을 부정할 수 있는 요건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통상임금의 도구개념으로서의 규범적 성질을 고려할 때 통상임금은 소정근로에 대해 지급할 것이 사전에 확정된 금액이면 족하기 때문입니다.
라. 결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통상임금의 개념적 징표 중 '고정성'에 관한 전원합의체 판결이 있은지 채 10년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다수의 하급심들은 '고정성'에 관한 전원합의체 판결의 법리와는 다른 법리를 근거로 '재직자 요건'이 붙은 금품의 통상임금성을 판단하고 있으며, 이를 통상임금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현재 계류 중인 사건들에 대해 대법원이 어떠한 판단을 할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종전 전원합의체 판결이 갖고 있던 위와 같은 맹점을 해결할 수 있는 판단이 이루어지길 기대하며, 이를 통해 실무상 발생하고 있는 혼선이 정리될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