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2021. 3. 25. 선고 2020다275942 판결
- 대법원 2021. 4. 15. 선고 2019다293449 판결
김윤기 변호사
1. 법인격 부인론
‘법인격 부인론(法人格 否認論)’이란, 회사가 사원으로부터 독립된 실체를 갖지 못한 경우에 회사와 특정의 제3자간의 문제된 법률관계에 한하여 회사의 법인격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회사와 사원을 동일시하여 회사의 책임을 사원에게 묻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나라 대법원도 1988년에 최초로 ‘선박회사인 갑, 을, 병이 외형상 별개의 회사로 되어 있지만 갑회사 및 을회사는 선박의 실제상 소유자인 병회사가 자신에 소속된 국가와는 별도의 국가에 해운기업상의 편의를 위하여 형식적으로 설립한 회사들로서 그 명의로 선박의 적을 두고 있고(이른바 편의치적), 실제로는 사무실과 경영진 등이 동일하다면 이러한 지위에 있는 갑회사가 법률의 적용을 회피하기 위하여 병회사가 갑회사와는 별개의 법인격을 가지는 회사라는 주장을 내세우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하거나 법인격을 남용하는 것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대법원 1988. 11. 22. 선고 87다카1671 판결)한 이래로, 법인격 부인론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법원은, 법인격 부인론이 적용되기 위한 요건으로, ‘회사가 그 법인격의 배후에 있는 타인의 개인기업에 불과하다고 보려면, ① 원칙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법률행위나 사실행위를 한 시점을 기준으로 하여, (i) 회사와 배후자 사이에 재산과 업무가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혼용되었는지, (ii) 주주총회나 이사회를 개최하지 아니하는 등 법률이나 정관에 규정된 의사결정절차를 밟지 아니하였는지, (iii) 회사 자본의 부실 정도, 영업의 규모 및 직원의 수 등에 비추어 볼 때, 회사가 이름뿐이고 실질적으로는 개인 영업에 지나지 아니하는 상태로 될 정도로 형해화되어야 한다. 또한 ② 이와 같이 법인격이 형해화될 정도에 이르지 아니하더라도 회사의 배후에 있는 자가 회사의 법인격을 남용한 경우 회사는 물론 그 배후자인 타인에 대하여도 회사의 행위에 관한 책임을 물을 수 있으나, 이 경우 채무면탈 등의 남용행위를 한 시점을 기준으로 하여, (i) 회사의 배후에 있는 자가 회사를 자기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지배적 지위에 있고 그와 같은 지위를 이용하여 법인제도를 남용하는 행위를 할 것이 요구되며, (ii) 이와 같이 배후자가 법인제도를 남용하였는지는 앞서 본 법인격 형해화의 정도 및 거래 상대방의 인식이나 신뢰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개별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고 판시한바 있습니다(대법원 2016. 4. 28. 선고 2015다13690 판결).
2. 최근 선고된 법인격 부인론을 적용한 사례(대법원 2021. 3. 25. 선고 2020다275942 판결)
최근 대법원은, 기존회사가 채무를 면탈할 의도로 기업의 형태∙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신설회사를 설립한 경우 기존회사의 채무면탈이라는 위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회사제도를 남용한 것이어서 기존회사의 채권자가 신설회사에 채무 이행을 청구할 수 있음을 전제로 그 판단기준에 관한 대법원 2016. 4. 28. 선고 2015다13690 판결의 법리를 원용하며,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기존회사가 기업의 형태∙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피고회사(신설회사)를 설립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① 기존회사와 신설회사인 피고회사 사이에 탄화코르크를 이용하여 벽면녹화 사업을 하는 사업목적의 동일성이 인정되는 점,
② 신설 상시 기존회사의 본점소재지가 피고회사의 본점소재지인 ‘파주시 소재 건물 1층’의 일부분으로 되어 있는 점,
③ 피고회사의 설립 당시 발기인으로 기존회사의 대표 소외인과 그 친형이 포함되어 피고회사 발행 주식 중 절반 이상을 인수하였고, 소외인의 동생은 감사로 재직하였으며, 소외인을 포함한 기존회사의 임직원 전부가 일정기간 피고회사의 피용자로 근무하는 등 인정 구성이 동일∙유사한 점,
④ 포르투갈에서 개최된 컨퍼런스에서 피고회사를 대표하여 소외인이 탄화코르크보드를 이용한 벽면녹화에 대하여 발표를 한바 있고, 피고회사가 기존회사가 진행한 벽면녹화 사업을 자신의 시공실적으로 홍보하였으며, 특히 기존회사가 주된 거래처를 피고회사에게 이전한 사정도 알 수 있는 등 사업의 연결성이 뚜렷한 점
나아가 대법원은, 아래와 같은 사정에 비추어 볼 때 기존회사는 채무면탈의 목적을 가지고 피고회사를 신설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하였습니다.
① 피고회사가 2016. 2.경 설립된 후, 기존회사는 2016. 5.경 대출금 연체로 채무초과에 빠지게 되었고, 2016. 11.경 폐업한 점,
② 기존회사는 이미 피고회사 설립 준비 당시 채무현황이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악화된 것으로 보이고, 폐업 당시 약 8억 4,500만원이 넘는 채무를 부담하고 있었으며, 위 채무는 상당 부분 중소기업진흥공단이나 금융기관으로부터 받았던 기업지원자금 채무로 보이는 점,
③ 벽면녹화 사업에 있어 중요한 무형자산인 영업노하우와 영업기술, 이를 이용한 거래선 등이 아무런 대가 없이 그대로 피고회사에게 이전된 것으로 보이는 사정이 어느 정도 드러나 있는 점
이에 대법원은, 기존회사가 채무면탈이라는 위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회사제도를 남용한 이상 피고회사가 기존회사의 채권자인 원고에 대해 기존회사와 별개의 법인격을 가지고 있음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상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3. 법인격 부인론의 역적용을 인정한 사례(대법원 2021. 4. 15. 선고 2019다293449 판결)
최근 대법원은, ‘개인과 회사의 주주들이 경제적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등 개인이 새로 설립한 회사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지배적 지위에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로서, 회사 설립과 관련된 개인의 자산 변동 내역, 특히 개인의 자산이 설립된 회사에 이전되었다면 그에 대하여 정당한 대가가 지급되었는지 여부, 개인의 자산이 회사에 유용되었는지 여부와 그 정도 및 제3자에 대한 회사의 채무 부담 여부와 그 부담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아 회사와 개인이 별개의 인격체임을 내세워 설립 전 개인의 채무 부담행위에 대한 회사의 책임을 부인하는 것인 심히 정의와 형평에 반한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회사에 대하여 회사 설립 전에 개인이 부담한 채무의 이행을 청구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여, 이른바 ‘법인격 부인론의 역적용’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판단과 관련하여서도, 대법원은 ‘소외 3은 이 사건 채무를 면탈하기 위한 목적으로 자신의 개인사업체인 A와 영업목적이나 물적 설비, 인적 구성원 등이 동일한 피고(회사)를 설립한 것이고, 소외 3이 50%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소외 3을 제외한 피고의 주주들도 소외 3과 경제적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등 소외 3이 피고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면서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지배적 지위에 있었다. 여기에 피고 설립 당시 소외 3의 소유였던 이 사건 부동산을 포함하여 A의 모든 자산이 피고에게 이전된 반면, 소외 3은 자본금 3억원으로 설립된 피고 주식 중 50%를 취득한 외에 아무런 대가를 지급받지 않은 점까지 더하여 보면, 주식회사인 피고가 그 주주인 소외 3과 독립된 인격체라는 이유로 원고가 소외 3의 이 사건 채무 부담행위에 대하여 피고의 책임을 추궁하지 못하는 것은 심히 정의와 형평에 반한다. 따라서 원고는 소외 3 뿐만 아니라 피고에 대해서도 이 사건 채무의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여, 법인격 부인론 역적용에 따른 청구를 인용하였습니다.
4. 판결의 의의 및 전망
학계에서는 법인격 부인론의 역적용에 대하여, ‘주주가 소유하는 주식 자체가 회사재산의 간접적 표현이므로 주주의 채권자는 주주의 소유주식에 대해 강제집행을 하면 족하고, 그 이상 법인격을 부인하여 회사재산에 대해 강제집행을 할 필요성은 크지 않다’는 이유로 부정하는 견해가 있고, 독일의 경우 법인격 부인론의 역적용을 부정하는 견해가 통설적 견해이자 판례의 입장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대법원은 법인격 부인론의 역적용이 가능함을 분명히 하였는바,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 주주 개인에 대한 채권을 회사에 대해서도 청구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법인격 부인론 및 그 역적용의 요건을 충족하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이 더욱 중요할 것으로 보이며, 실무상으로는 ‘회사의 자산이 그 배후자에게 이전되었다면 그에 대하여 정당한 대가가 지급되었는지 여부(법인격 부인론의 경우)’ 또는 ‘개인의 자산이 설립된 회사에 이전되었다면 그에 대하여 정당한 대가가 지급되었는지 여부(법인격 부인론 역적용의 경우)’가 상당히 중요한 판단요소가 되는바, 그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