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협약 해지 가능한가
- 대법원 2021. 5. 6. 선고 2017다273441 판결 (전원합의체 판결)
전성우∙유기성 변호사
1. 사건의 개요
ㅇ 피고(대전광역시)는 A와 사이에 피고로부터 제공받은 토지에 지하주차장과 부대시설(이하 ‘이 사건 주차장’)을 건설하여 피고에게 기부채납하면 피고는 A에게 시설관리운영권(이하 ‘관리운영권’)을 설정해주는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이하 ‘민간투자법’)에 따른 실시협약을 체결함.
ㅇ A는 이 사건 주차장을 건축하여 피고에게 기부채납하고, 피고로부터 관리운영권을 설정받음.
ㅇ A는 관리운영권에 근저당권을 설정하고 보험회사인 원고로부터 145억원을 대출받음.
ㅇ A는 관리운영권에 기해 주차장 영업을 하던 중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하 ‘채무자회생법’)에 따른 파산선고를 받고 파산관재인이 선임되었고, A의 파산관재인(이하 ‘파산관재인’이라고만 함)은 파산법원 허가를 받아 피고에게 실시협약 해지통지를 함.
ㅇ 원고는 실시협약에서 정한 106억원의 해지시 지급금 채권에 대하여 근저당권에 기한 물상대위에 의한 채권압류 및 전부명령을 받았고, 이 명령은 피고에게 송달되고 확정됨.
ㅇ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위 전부명령에 따른 전부금 청구 소송을 제기함.
(이상 ‘사건의 개요’는, 실제 사건은 관리운영권 등 추가 사실관계가 있지만, 이 사건을 이해하는데 불필요한 것은 삭제하고 매우 단순화시킨 것입니다.)
2. 이 사건의 쟁점
파산관재인은 채무자회생법 제335조 제1항(‘쌍무계약에 관하여 채무자 및 그 상대방이 모두 파산선고 당시 아직 이행을 완료하지 아니한 때에는 파산관재인은 계약을 해제 또는 해지하거나 채무자의 채무를 이행하고 상대방의 채무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의 해지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하는바, 이 사건의 쟁점은 실시협약에 따라 A가 이 사건 지하주차장을 운영하고 있는 단계를 위 규정에서 정하고 있는 해지권의 대상인 ‘쌍방미이행 상태’로 볼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3. 대법원 다수의견 (9인) - 쌍방미이행 상태에 해당하지 않음.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로,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 사건은 쌍방미이행 상태에 해당하지 않아, A는 채무자회생법 제335조 제1항에 따른 해지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보고, 같은 취지의 원심 판단에 잘못이 없어 상고기각하였습니다.
(1) 쌍방미이행 쌍무계약에 해당하기 위하여는 미이행된 쌍방의 채무 사이에 성립∙이행∙존속상 법률적∙경제적으로 견련성을 갖고 있어서 서로 담보로서 기능하는 서로 대등한 대가관계에 있을 것을 요구하고, 미이행 부분이 ‘부수적 채무’에 불과하다면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2) 사업시행자와 국가 등이 민간투자법에 따른 실시협약에 의하여 각기 취득하는 권리의무는 사법상 대등한 당사자 사이에서 체결되는 계약에 의하여 계약당사자가 취득하는 권리의무와는 내용과 성질을 달리한다. 다만, 쌍무계약의 특질을 가진 공법적 법률관계에도 쌍방미이행 쌍무계약의 해지에 관한 채무자회생법 제335조 제1항이 적용 또는 유추적용될 수 있다.
(3) 파산 당시 A와 피고 사이의 법률관계가 상호 대등한 대가관계에 있는 법률관계라고 할 수 없다.
(i) A가 준공한 시설물의 소유권 귀속에 관한 법률관계 : A가 시설물의 소유권을 피고에게 이전하고, 피고가 A에게 관리운영권을 부여하는 법률관계는 ‘채무의 이행’이라기보다 민간투자법에서 정한 법규정에 따른 것일 뿐, 서로 대등한 대가관계로 평가할 것은 아니다.
(ii) 관리운영권 설정 후 법률관계 : A는 물권인 관리운영권자이고, 피고는 관리운영권을 방해하지 않을 소극적 의무를 부담하는데, 이 부분 의무는 실시협약에 따른 별도 채무가 아니라 물권인 관리운영권에 따라 발생하는 법률효과일 뿐이다.
(iii) 관리운영단계에서의 법률관계 : A의 운영기간 동안의 무상사용은 민간투자법 규정에 근거한 것이고, 이 사건 주차장 유지관리의무는 A와 피고가 함께 일반 국민에 대하여 부담하는 의무로, 어느 일방이 상대방에게 부담하는 대가관계를 구성하지 않는다. 실시협약의 관리운영 단계에서 쌍방이 부담하는 의무는 민간투자법이 법률상 부과하는 것이거나 관리운영권이라는 물권이 부여됨에 따라 이를 방해하지 않아야 할 소극적 의무를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거나, 가정적 상황에서 발생하는 부수적인 채무에 해당하여 그 의무들 사이에 ‘대등한 대가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
(4) 파산 당시 A와 피고 사이의 법률관계가 ‘서로 성립∙이행∙존속상 법률적∙경제적으로 견련성’을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i) 계속적 계약이라는 이유만으로 계약의 어느 단계에서 파산선고를 받았는지를 가리지 않고 동일하게 취급하여 무조건 미이행 쌍무계약으로 판단하여서는 안 된다.
(ii) 관리운영단계에서는, 시행 단계에서 예정된 A와 피고의 각 의무 이행은 모두 완료되었으므로, 시행 단계의 법률관계를 들어 관리운영단계의 법률관계와 견련성이 존재한다고 판단할 수 없다.
(iii) 앞서 본 바와 같이 관리운영단계에서 쌍방이 부담하는 의무가 존재하더라도 이를 대등한 대가관계가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5) 이 사건 실시협약에서는 최소수입 미달분을 보전하기 위한 피고측의 재정지원에 관한 조항이 없다. 피고의 법률관계는 사업시설에 관리운영권을 설정함으로써 원칙적으로 종결된다. 실시협약에 피고의 의무로 열거되어 있는 것은 관리운영권을 방해하지 않을 소극적인 의무에 불과하므로, 파산 당시 피고의 의무이행은 이미 완료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6) 파산관재인이 이 사건 해지 규정에 따라 해지할 수 있다면, 파산절차를 통해 사회기반시설의 운영 위험이 사업시행자에서 국가 등으로 이전되는 부당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4. 대법원 소수의견 (3인) - 쌍방미이행 상태에 해당함.
위 다수의견에 대하여, 아래와 같은 논거를 이유로 한 반대의견이 있었습니다.
(1)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사업시행자가 주무관청이 해지하기 전까지 실시협약에 계속 구속되어 있도록 할 것인가, 아니면 실시협약의 구속력에서 벗어나 재산을 청산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2) 실시협약에 따라 사회기반시설을 준공하여 소유권을 주무관청에 귀속시키고 이를 운영할 사업시행자의 의무와 사업시행자에게 관리운영권을 설정해 주고 이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해줄 주무관청의 의무는 건설기간과 운영기간을 통틀어 목적적 의존관계에 있는 채무를 부담한다는 점에서 쌍무계약의 특질을 가지고 있다. 전체 존속기간을 일부 기간 또는 단계별로 쪼개어 그것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실시협약의 내용과 당사자 의사에 비추어 타당하지 않다.
(3) 파산 당시 사업시행자가 주차장을 유지∙관리하며 운영할 의무, 그리고 주무관청이 사업시행자로 하여금 부지를 무상으로 사용하고 주차요금 조정 등에 협력하며 주차단속 등을 실시할 의무는 모두 실시협약에 따른 의무로서 이행이 완료되지 않았다.
(4) 민간투자법에 따른 실시협약은 사회기반시설을 설치하여 운영하기 위한 것으로서, 사회기반시설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의무가 이행되지 않았다면 계약의 주요 부분이 이행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 사업시행자가 운영기간 동안 주차장을 유지관리하면서 운영할 의무, 주무관청이 사업시행자의 사용수익에 협력할 의무는 실시협약의 본질적 내용 또는 주된 채무에 해당한다.
(5) 더구나 채무자회생법 제335조 제1항은 부수적 채무라는 이유로 계약의 이행 또는 해제∙해지에 관한 선택권을 배제하고 있지 않다.
(6) 피고는 실시협약 조문에 따라 사업시행자의 파산을 이유로 실시협약을 해지할 수 있는데도 사업시행자의 파산관재인은 파산을 이유로 해지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은 공정의 원칙 및 형평에 부합하지 않는다.
5. 이 판결의 의의
파산에 관한 채무자회생법 제335조 제1항이나 채무자회생에 관한 채무자회생법 제119조 제1항에 의하여, 파산관재인이나 회생회사의 관리인이 해제, 해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쌍방미이행채무’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은 실무에서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위에서 다수의견 뿐만 아니라 소수의견의 논거도 비교적 상세히 소개해드린 이유는, 쌍방의 주장 논거 모두 매우 설득력이 있어,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위 다수, 소수 의견 외에 별개의견(1인)으로, 이 사건 실시협약은 쌍방미이행 쌍무계약에 해당하지만 파산을 이유로 이를 해지하는 것은 행정목적 달성을 어렵게 하여 공익에 대한 중대한 침해를 초래하므로, 이 사건 실시협약에 대해서는 채무자회생법 제335조 제1항이 적용될 수 없다는 견해도 상당한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 판결은, 채무자회생법 상의 ‘쌍방미이행채무’ 여부를 판단하는 일응의 기준점을 제시하였다는 점 뿐만 아니라, 민간투자법에 따른 실시협약의 성격에 대해도 자세한 판단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큰 것으로 판단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