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고등법원 2021. 5. 13. 선고 2019누34045 판결
박영동 변호사
1. 들어가며
이 판결은 제가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라 합니다)를 대리한 사건으로, 하도급대금 및 지연이자 미지급이 있고, 이에 대한 공정위의 시정명령이 있은 후에 관련 민사소송에서 상계 주장을 하여 인정된 경우에, 상계의 소급효로 인해 공정위의 시정명령이 위법한지 여부에 대하여 명시적으로 다룬 최초의 판결(이하 ‘대상판결’이라 합니다)입니다.1
2. 사실관계 요지
건물신축공사 중 도장공사에 관하여 원고는 A수급사업자에게 목적물을 인수한 후 60일이 경과하였음에도 전체 하도급대금 중 51,500,000원은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목적물 인수일로부터 60일을 초과하여 하도급대금 중 일부인 74,174,000원을 지급하면서 그 초과기간에 대한 지연이자 472,000원을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는 위 각 행위가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하도급법’이라 합니다) 제13조 제1항과 같은 조 제8항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하도급법 제25조 제1항에 따라 재발방지명령과 지급명령을 내용으로 하는 시정명령하였습니다(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 합니다).
1 대상판결은 원고의 상고 포기로 확정되었습니다. |
3. 주요쟁점 및 판결 요지
가. 원사업자가 시공상 하자를 이유로 하도급대금 지급을 거부할 수 있는지 여부(소극)
원고는 공사 목적물 인수 당시 옥상 우레탄 과소 시공으로 하자가 있었고, 하자로 인한 손해배상채권 액수가 하도급대금에서 공제되어야 하는데, 하자가 반영되지 않은 이상 하도급대금 지급의무가 확정적으로 발생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법원은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에게 그 대금을 하도급법이 정한 바에 따라 지급하지 아니하였다면, 달리 그 대금채무가 발생하지 아니하였음이 밝혀지지 않는 한 공정위는 제25조 제1항에서 정하고 있는 시정명령 등을 부과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나. 시정명령 후 상계로 하도급대금 지급의무가 소급적으로 소멸하는지 여부(소극)
원고는, 설령 원고의 위 하도급대금 지급의무가 발생하였다고 보더라도, 위 하도급대금 중 남은 51,500,000원과 이에 대한 지연이자는 원고가 A수급사업자에 대하여 가지는 위 손해배상채권과 반대채권 관계에 있었는데, 원고가 이 사건 처분 이전에 A수급사업자에 한 상계 의사표시에 따라 양 채권은 대등액의 범위에서 상계되어 이 사건 처분 당시 원고의 하도급대금 미지급이라는 위반행위의 결과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음에도 원고에게 시정명령을 한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하면서 원고의 상계로 인한 하도급대금 지급채무 소멸 주장을 배척하였습니다. i) 원고가 2017. 8. 31. A수급사업자에 보낸 내용증명에는 ‘옥상우레탄보수공사 및 이로 인한 누수세대에 대해 당사가 선시공 후 귀사에 청구하겠다’는 내용만 기재되어 있을 뿐 원고가 위 하자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을 자동채권으로 A수급사업자의 하도급대금채권과 상계하겠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지는 않고, 이 사건 처분 전에 손해배상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면서 제출한 소장에도 상계하겠다는 내용은 기재되어 있지 않으며, 달리 원고가 이 사건 처분 이전에 A수급사업자에 대하여 서면으로 상계의 의사표시를 하였다고 인정할 자료가 없고, 상계의 의사표시를 구두로 하였다고 주장하나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ii) 원고는 이 사건 처분 이후인 2020. 9. 16. 관련 민사사건에서 위 하자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을 자동채권으로 하여 A수급사업자의 하도급대금채권과 상계하여 하도급대금 지급채무가 모두 소멸하였다고 판단한 사실은 인정된다. iii) 그러나 행정소송에서 행정처분의 위법 여부는 행정처분이 있을 때의 법령과 사실상태를 기준으로 하여 판단하여야 하고, 상계의 의사표시에 의하여 각 채무는 상계할 수 있는 때에 대등액에 관하여 소멸한 것으로 보게 되지만, 상계의 소급효는 양 채권 및 이에 관한 이자나 지연손해금 등을 정산하는 기준시기를 소급하는 것일 뿐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상계의 의사표시 전에 이미 발생한 사실을 복멸시키지는 않으므로, 이 사건 처분 당시까지 원고의 상계 의사표시가 없었던 이상 위와 같은 사실만으로 이 사건 처분 당시 이미 원고의 하도급대금 지급채무가 소멸된 상태였다고 볼 수는 없다.
4. 이 사건의 의미
대법원은 일관되게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원사업자가 대금지급기일에 하도급대금의 지급을 거절하거나 그 지급을 미루고 있는 사실 자체에 의하여 하도급법 위반행위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면 되는 것이지 원사업자가 하도급대금의 지급을 거절하거나 그 지급을 미룰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지 여부에 대하여 까지 나아가 판단할 필요는 없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다만, 비록 법위반행위가 있었더라도 하도급대금 채무의 불발생 또는 변제, 상계, 정산 등 사유 여하를 불문하고 위반행위의 결과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아니한다면, 그 결과의 시정을 명하는 내용의 시정명령을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원사업자가 지급기일에 하도급대금의 지급을 하지 않고 있는 경우, 시정명령 당시까지 대금미지급 상태가 해소되지 않는 한 하도급대금 미지급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공정위 처분 이후에 상계를 한 경우에 공정위 처분의 적법성에 어떠한 영향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는 상계의 소급효(민법 제493조 제2항)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대상판결은 상계의 소급효는 양 채권을 정산하는 기준시기를 소급하는 것일 뿐이고 상계의 의사표시 전에 이미 발생한 사실을 복멸시키지는 않으므로, 처분 당시까지 원고의 상계 의사표시가 없었던 이상 원고의 하도급대금 지급채무가 소멸된 상태였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는 하도급대금 지급명령 이후 상계 주장을 하여 인정된 경우에도 공정위 처분은 적법하다고 명시적으로 판단한 최초 판결입니다.
따라서 실무상 원사업자를 대리하는 경우에는, 하도급대금을 지급하지 않으면서 수급사업자로부터 받을 채권이 있다는 주장만으로는 부족하고, 공정위 처분이 있기 전에 수급사업자에게 문서로 상계 의사표시를 하고 이를 공정위에 제출하여야 시정명령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조언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