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중 변호사
요즘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ESG이고, 하나는 쿠팡입니다.
작년에만 해도 낯설었던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라는 단어가 연일 회자되면서 이제는 ESG를 모르면 대화도 하기 힘들 정도가 되었습니다. ESG는 투자 의사 결정을 할 때 환경, 사회, 지배구조로 대표되는 비재무적 요소를 재무적 요소들과 함께 고려하여 사회책임투자, 지속가능투자를 하는 것입니다. 재무적 성과만을 고려하던 기존의 방식에서 나아가 기업 가치와 지속가능성에 영향을 주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의 비재무적 요소를 함께 반영해 투자함으로써 장기적 수익을 추구하는 한편, 기업의 행동도 사회적 이익에 부합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투자자들은 ESG로 대표되는 비재무적 지표를 투자판단에서 중요하게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기업들은 그에 맞추기 위해 애를 쓰고 있습니다. 투자의 관점에서도, 사회적 이익 관점에서도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쿠팡은 덕평 물류창고 화재로 인한 책임 문제로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화재 진압 과정에서 한 소방관이 안타깝게 순직했고, 주변 지역의 환경에도 큰 피해를 안겼습니다. 그 원인을 보면 수년 전부터 아르바이트생 등 근로자들의 반복된 경고가 있었지만 쿠팡은 이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미 문제를 잘 알면서도 이익을 위해 경고를 묵살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렇게 큰 사회적 피해를 안긴 쿠팡의 김범석 의장이 국내법인 의장직 및 등기이사직에서 사임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쿠팡을 향한 비난 여론이 더욱 거세졌습니다.
서로 무관한 듯 보이는 ESG와 쿠팡 두 단어는 지금 시점에서는 ‘책임경영’이라는 말로 연결이 됩니다. ESG 투자가 추가하는 가치는 이사들이 책임경영을 할 때 비로소 실현되고, 쿠팡의 화재는 책임경영을 하지 못해 빚어진 일이고, 김범석 의장의 행위는 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비난을 받기 때문입니다.
즉, ESG의 비재무적 지표는 기업의 이사들이 이사로서, 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할 때 실현되는 것이고, 쿠팡의 문제도 결국 이사들이 그 주어진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김범석 의장은 이사직에서 사임하면 쿠팡을 더 이상 경영하기 어려워질 텐데 왜 사임하는 걸까요? 그러나 이는 기우입니다. 아니 이는 우리 사회에서의 기업 경영 관행을 알지 못해서 갖는 의문입니다. 이사에서 사임하더라도 ‘회장’ 등 여러 호칭으로 아니면 그러한 호칭도 필요 없이 이사 또는 그 이상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 우리 기업문화이기 때문입니다.
권한을 행사하면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합니다. 권한은 행사하면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그 권한은 남용되고, 그 권한을 부여한 의도에 반하는 행위를 하게 되고, 결국엔 그 권한을 부여한 자를 해하는 결과가 초래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권한을 행사하면 그에 따른 책임을 지도록 여러 장치들을 두고 있습니다. 주식회사의 경우 업무집행지시자의 책임 제도가 그 예입니다.
이사가 아님에도 명예회장ㆍ회장ㆍ사장ㆍ부사장ㆍ전무ㆍ상무ㆍ이사 기타 회사의 업무를 집행할 권한이 있는 것으로 인정될 만한 명칭을 사용하여 회사의 업무를 집행한 자로 하여금 이사와 동일하게 회사나 제3자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위 제도는 1998년 12월 상법 개정으로 도입되었습니다. 벌써 20년 이상 시행되어온 제도입니다. 그렇지만 위 규정이 도입된 이후에도 등기이사가 아니면서 회장 등의 이름으로 기업경영을 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위 규정으로 책임을 졌다는 소식도 듣기 어렵습니다.
지금의 제도로는 문제를 바로잡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 드러난 셈입니다. 그래서 필자는 쿠팡과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 기업들이 진정으로 ESG 가치를 실현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책임 없이는 기업경영을 할 수 없도록 위 제도를 손보아야 한다고 봅니다.
먼저 위와 같은 책임이 문제가 되는 사안에서는 일반적인 이사의 책임과는 달리 그러한 행위를 한 자가 스스로 본인의 책임이 없다는 것을 소송에서 입증하도록 하고, 그러한 입증을 하지 못하면 책임을 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미 이사가 아니면서도 그와 유사한 호칭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것에서부터 책임을 면탈하려는 시도가 있는 것이므로 이를 막을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책임이 인정되면 실제로 손해배상을 하도록 집행제도를 개선해야 합니다. 지금의 제도는 아무리 큰 책임을 부담하더라도 재산을 배우자의 명의로만 돌려 놓아도 실제로는 손해배상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권한을 행사하면 그에 따른 책임을 지도록 해야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습니다.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회피하려는 시도가 있으면 그러한 노력이 무용해지도록 그 회피의 수단과 길을 봉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