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유병민 변호사

1. 기초 사실

가. 관련 법령

근로기준법은 ① 건설업에서 사업이 2차례 이상 「건설산업기본법」 제2조제11호에 따른 도급(이하 ‘공사도급’이라 합니다)이 이루어진 경우에 같은 법 제2조제7호에 따른 건설사업자(이하 ‘건설사업자’라고 합니다)가 아닌 하수급인이 그가 사용한 근로자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못한 경우에는 그 직상수급인은 하수급인과 연대하여 하수급인이 사용한 근로자의 임금을 지급할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고(근로기준법 제44조의2 제1항) ② 이에 따라 직상수급인이 하수급인의 근로자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못했을 경우 직상수급인을 형사 처벌 하는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나.  문제된 사실관계 

1) 피고인이 A 회사(이하 ‘이 사건 회사’라고 합니다)의 대표이사입니다. 이 사건 회사는 ① B로부터 근린생활시설 신축공사(이하 ‘이 사건 공사’라고 합니다)를 도급 받아 ② 그 중 철근콘크리트 공사를 건설사업자 아닌 C(이하 ‘이 사건 하수급인’이라 합니다)에게 하도급 하였습니다.

2) 한편 피고인은 이 사건 공사와 관련하여 ① 이 사건 하수급인 등으로부터 (ⅰ) 근로자들의 임금 수령권한을 이 사건 하수급인 또는 하수급인이 지정하는 자(이하 ‘이 사건 하수급인 등’이라 합니다)에게 위임한다’는 취지의 근로자들 명의 위임장 및 신분증 사본과 (ⅱ) 해당 월의 임금을 수령하는 즉시 수령권한을 위임한 근로자들에게 이를 지급한다는 취지의 이 사건 하수급인 등의 지급 각성 및 인감증명서(이하 ‘이 사건 위임장 및 지급각서’라고 합니다)를 제출 받고 ② 그에 따라 이 사건 하수급인 소속 근로자들의 임금을 이 사건 하수급인 등에게 전액 지급하였습니다. 

3) 그런데 이 사건 하수급인 등은 위와 같이 지급받은 임금 중 근로자 D, E, F, G, H의 2018년 10월 내지 12월분 임금을 당사자 사이에 지급 기일 연장에 관한 합의 없이 위 근로자들의 각 퇴직일로부터 14일 이내에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4) 이에 피고인은 위 미지급 임금 상당액에 관하여 근로기준법 제44조의2을 위반하였다는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2. 원심 판단

원심은, 다음과 같은 사정을 볼 때, 피고인은 ① 근로자들의 임금이 이 사건 하수급인 등을 통하여 전액 지급되었다고 인식하였고 ② 따라서 근로자들이 받지 못한 임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므로, 피고인에게 임금 미지급에 대한 근로기준법 위반의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보아, 이 부분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제1심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가. 피고인은 '일부 근로자들은 불법 체류 중인 외국인이거나 신용불량자인 관계로 본인 명의 계좌가 아닌 이 사건 하수급인 등의 계좌로 임금을 수령하기를 희망하였다'고 주장하고, 이 사건 공사 현장소장인 I 역시 '이 사건 하수급인으로부터 근로자의 약 80% 정도가 외국인이다 보니 직접 수령은 어렵다고 이야기 들었다'고 진술하였다.

나. 피고인은 이 사건 하수급인 등으로부터 이 사건 위임장 및 지급각서를 제출 받은 사정 등을 볼 때, 피고인으로서는 임금의 대리 수령을 희망하는 근로자들의 의사가 진실한지 확인하고, 이 사건 하수급인 등에게 지급한 임금이 근로자에게 전달되는 것을 담보하기 위하여 나름의 조치를 취하였다고 볼 수 있다.

다. 피고인은 이 사건 위임장 및 지급각서에 따른 임금액을 이 사건 하수급인 등에게 전액 지급하였는데, 피고인으로서는 위 임금 상당액이 근로자들에게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정을 알았더라면 위 돈을 이 사건 하수급인 등에게 지급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3. 대법원 판단 

그러나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본 사안에서 피고인에게 임금 미지급에 대한 근로기준법 위반의 고의가 인정된다고 보아 이와 달리 판단한 원심 판결에는 근로기준법 제44조의 2 위반의 고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가. ① 근로기준법 제44조의2의 입법 취지와 문언을 보면 건설업에서 2차례 이상 도급이 이루어지고 건설업자가 아닌 하수급인이 그가 사용한 근로자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였다면, 그 하수급인의 직상 수급인은 자신에게 귀책사유가 있는지 여부 또는 하수급인에게 대금을 지급하였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하수급인과 연대하여 하수급인이 사용한 근로자의 임금을 지급할 책임을 부담한다고 봄이 타당하고(대법원 2021. 11. 25. 선고 2021도10938 판결 참조) ② 해당 조항은 근로자 보호를 위하여 마련된 조항으로서 개인의 의사에 의하여 그 적용을 배제할 수 없는 강행규정으로, 근로자가 임금 수령권한을 하수급인에게 위임하였다는 이유로 직상 수급인이 임금 상당액을 하수급인에게 지급했는데 나중에 하수급인은 근로자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을 때, 직상 수급인이 이미 근로자에게 임금을 지급하였다고 보아 구 근로기준법 제44조의2에 따른 책임을 면하는 것은 근로자가 현실적으로 임금을 지급받도록 확실히 담보하고자 하는 위 조항의 취지에 반한다(대법원 2021. 6. 10. 선고 2021다217370 판결 참조). 

따라서 피고인이 이 사건 위임장 및 지급각서에 근거해 이 사건 하수급인 등에게 근로자들의 임금을 전액 지급했다고 하여 근로기준법 제44조의2에 의한 임금지급 의무를 이행했다고 볼 수는 없다. 

나. 피고인이 이 사건 위임장 및 지급각서를 제출 받았다는 점만으로 임금이 근로자들에게 실제로 지급되도록 하는 충분한 조치를 취하였다거나 실제로 지급되리라고 의심 없이 믿을 만한 충분한 사정이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렵고, 근로기준법 제44조의2의 입법 취지에 비추어 볼 때, 그러한 사정을 쉽사리 인정해서는 안 된다.

다. 이 사건 공사 현장에는 이 사건 회사 직원인 I가 현장소장으로 상주했고, 현장에 근무한 근로자는 월별로 20명, 1일 15명이 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보면, 피고인은 이 사건 하수급인 등에게 지급된 임금이 실제 근로자들에게 지급되었는지 등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확인 결과 어떠한 문제가 발견되었을 경우 임금이 근로자에게 실제 지급되는 것을 더욱 확실히 담보할 지위에 있었다. 그런데도 피고인은 이러한 조치 없이 계속하여 이 사건 위임장 및 지급각서만을 근거로 모든 근로자들에 대한 임금을 이 사건 하수급인 등에게 지급하여 왔다. 

4. 판결의 의의 

해당 판결로 인해, 건설사업자 아닌 하수급인에게 공사하도급을 함에 있어서, 직상수급인이 해당 하수급인의 근로자들에게 임금을 직접 지급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어 하수급인으로부터 임금 수령 권한 위임장을 제출 받은 경우라고 할지라도 근로기준법 제44조의2에 따른 임금지급 연대 책임이 엄격하게 적용된다는 점이 확실시 되었습니다. 

따라서 향후 유사 사례에서 하수급인의 근로자들의 임금을 해당 근로자들에게 직접 지불하지 않고, 하수급인에게 지급해야 하는 사정이 있는 경우, 대상 판결의 법리에 따라 ① 하수급인에게 지급된 임금이 실제 근로자들에게 지급되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② 만약 문제가 발견되었을 경우 임금이 실제로 근로자에게 지급되도록 하는 등 추가적인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