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2024. 6. 13. 선고 2024다213157 판결


작성자: 김윤기 변호사


1. 사실관계 및 원심의 판단


가. 甲은 乙과 각 1/2의 지분비율로 건물(이하 ‘이 사건 건물’이라 합니다)을 공유하고 있었는데, 乙은 2023. 6. 1. 甲의 동의 없이 이 사건 건물의 3층 부분을 독점적∙배타적으로 점유하기 시작했습니다.

나. 이에 甲은 乙을 상대로 이 사건 건물의 3층 부분에서 퇴거할 것과 2023. 6. 1.부터 퇴거완료일까지의 차임 상당의 부당이득반환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다. 그런데 원심(부산지방법원 2024. 1. 12. 선고 2022나52324 판결)은 乙에 대하여 이 사건 건물 중 3층 부분의 ‘인도’ 및 2023. 6. 1.부터 ‘인도완료일’까지의 차임 상당 부당이득금의 지급을 명하는 판결을 선고하였습니다.

2.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아래와 같이 판시하면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지방법원에 환송하였습니다(대법원 2024. 6. 13. 선고 2024다213157 판결).

가. 민사소송법 제203조는 ‘처분권주의’ 라는 제목으로 “법원은 당사자가 신청하지 아니한 사항에 대하여는 판결하지 못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민사소송에서 심판 대상은 원고의 의사에 따라 특정되고, 법원은 당사자가 신청한 사항에 대하여 신청 범위 내에서만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20. 1. 30. 선고 2015다49422 판결 참조).

나. 건물의 ‘인도’는 건물에 대한 현실적∙사실적 지배를 완전히 이전하는 것을 의미하고, 민사집행법상 인도 청구의 집행은 집행관이 채무자로부터 물건의 점유를 빼앗아 이를 채권자에게 인도하는 방법으로 한다(대법원 2020. 5. 21. 선고 2018다287522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한편 건물에서의 ‘퇴거’는 건물에 대한 채무자의 점유를 해제하는 것을 의미할 뿐, 더 나아가 채권자에게 그 점유를 이전할 것까지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건물의 ‘인도’와 구별된다. 그러므로 채권자가 소로써 채무자가 건물에서 퇴거할 것을 구하고 있는데 법원이 채무자의 건물 인도를 명하는 것은 처분권주의에 반하여 허용되지 않는다.

다.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이 사건 건물 중 3층에 관하여, 퇴거 및 2023. 6. 1.부터 퇴거완료일까지의 차임 상당 부당이득금 지급을 구하였다. 그럼에도 원심은 피고에 대하여 이 사건 건물 중 3층의 인도 및 2023. 6. 1.부터 인도완료일까지의 차임 상당 부당이득금 지급을 명하였다. 원심의 판단에는 원고가 신청하지 않은 사항에 대하여 판결함으로써 처분권주의를 위반한 잘못이 있다.

라. 원심과 같이 원고의 청구를 이 사건 건물 중 3층의 인도 및 인도완료일까지의 부당이득금 지급을 구하는 것으로 선해하여도 원심판결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공유물의 소수지분권자인 피고가 다른 공유자와 협의하지 않고 공유물의 전부 또는 일부를 독점적으로 점유하는 경우 소수지분권자인 원고가 피고를 상대로 공유물의 인도를 청구할 수는 없다(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원고와 피고는 이 사건 건물을 1/2의 지분 비율로 공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피고가 이 사건 건물 중 3층을 독점적으로 점유하고 있다고 하여도 소수지분권자인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그 인도를 청구할 수 없다. 그럼에도 원심은 이 사건 건물 중 3층의 인도 및 인도완료일까지의 부당이득금 지급을 명하였다. 원심의 판단에는 공유물 인도청구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

3. 판결의 의의

대법원이 설시한 것과 같이, ‘퇴거’는 퇴거청구자의 점유 취득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점유의 해제’에 해당하는 반면, ‘인도’는 인도청구자의 점유 취득을 포함한다는 점, 즉 ‘점유의 해제’에 더하여 ‘(특정한 상대방에 대한) 점유의 이전’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갖습니다. 즉, ‘퇴거’가 ‘인도’에 비하여 더 광의(廣義)의 개념에 해당하는 것이고, ‘인도’는 ‘퇴거’의 가중적인 형태에 해당합니다.

원고가 피고에 대하여 1,000만원의 지급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경우, 법원이 1,000만원을 초과하는 1,200만원의 지급을 명하는 판결을 선고할 수 없다는 것은 ‘처분권주의’(민사소송법 제203조) 원칙의 쉬운 예시입니다. 마찬가지로, ‘퇴거’를 구하는 소송에서 ‘인도’를 명하는 판결을 선고할 수 없다는 것은 처분권주의 원칙의 당연한 귀결입니다. 반대로, (그러한 예시를 상정하기는 쉽지 아니하나) ‘인도’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을 경우, 법원이 ‘퇴거’를 명하는 판결을 선고한다고 하더라도 처분권주의에 반하지는 않는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원고에게 인도청구권이 인정되지 아니할 경우 실무상 대부분 청구기각 판결이 선고될 것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이번 대법원 판결은 처분권주의 원칙에 입각한 타당한 판결이라고 할 것입니다.

한편, ‘인도’라는 용어 외에도 ‘명도’라는 용어도 흔히 사용되고 있는데, 양자는 동일한 의미로 해석되므로 특별한 구별 실익은 없습니다. 다만, ‘명도(明渡)’는 ‘비워서 넘겨 주다’는 의미의 일본식 표현으로 개정 민사집행법에는 사용되고 있지 아니합니다. 따라서, ‘인도’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더 정확하고, 적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