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최슬기 변호사
1. 사실관계
가. 원고는 A대학교 자연과학대학 화학부 소속 교수이고, 피고는 국내 주요대학의 이공계 대학원 교수와 그 연구실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인터넷 사이트 ‘B’를 운영하는 회사입니다.
나. 피고는 B사이트를 통해, 각 대학의 재학생 및 졸업생들로부터 해당 대학 소속 교수와 그 연구실에 관한 정보를 입력 받고, 해당 정보를 B사이트 방문자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운영하였습니다.
다. 피고가 B사이트를 통해 학생들로부터 수집·제공하는 정보는, (i) 교수에 대한 학생들의 한줄평, (ii) 연구실에 대한 등급점수이고, 그 중 등급점수는 ‘교수인품’, ‘실질인건비’, ‘논문지도력’, ‘강의 전달력’, ‘연구실분위기’ 등 5개 지표로 구성되며, 각 지표 마다 A+부터 F까지의 등급으로 평가되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입력한 위 정보는 피고의 관여 없이 기계적으로 취합된 뒤, 오각형 모양의 ‘평가 그래프’ 형태로 B사이트에 제공되었습니다.
라. 원고는 피고에게 B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자신에 대한 정보를 삭제해줄 것을 요청하였고, 이에 피고는 원고의 이름, 이메일, 사진을 삭제하고, 원고에 대한 한줄평 전체를 블락(차단)처리 하였으나, 원고의 연구실에 대한 ‘평가 그래프’의 삭제는 거부하였습니다.
마. 이에 원고는, (i) 피고가 B사이트를 운영함으로써 불특정 다수인이 원고에 대한 평가를 게시할 수 있도록 한 행위, (ii) 피고가 원고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원고의 연구실에 대한 ‘평가 그래프’의 삭제를 거부한 행위, (iii) 피고가 원고의 요청에 따라 원고에 대한 한줄평을 삭제하기는 하였으나, ‘이 한줄평은 해당 교수의 요청으로 블락처리되었습니다’라는 문구를 게시한 행위’가 원고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원고를 모욕하여 원고의 인격권을 침해한 불법행위에 해당하고, 특히 (ii) 피고가 원고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원고의 연구실에 대한 ‘평가 그래프’의 삭제를 거부한 행위의 경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2 제2항을 위반하여 원고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한 불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피고 회사에게 위 각 불법행위에 따른 위자료 및 지연손해금을 청구하는 동시에, 민법 제764조 소정의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으로서 B사이트 중 원고의 정보가 게재된 부분을 삭제하라는 내용의 간접강제를 청구하였습니다.
2. 사건의 경과
이 사건의 제1심(서울중앙지방법원 2019. 8. 21. 선고 2018가합583126 판결)은, 아래와 같이 판시하며 원고의 청구를 전부 기각하였습니다.
• 피고는 원고에 대한 한줄평 및 평가 그래프의 작성자가 아닌 게시 공간 관리자에 불과한바, 피고가 A대학교 재학생 및 졸업생들로부터 제공받은 원고에 대한 평가정보를 자신의 자료저장 설비에 보관하면서 스스로 그 가운데 일부를 선별하여 B사이트에 게재하였음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고, 피고의 역할은 단순히 제3자의 표현물에 대한 검색 접근 기능을 제공하는 것에 그쳤다고 볼 수밖에 없으므로, 피고의 B사이트 운영행위가 그 자체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볼 수 없다.
• 피고가 ‘평가 그래프’의 삭제를 거부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를 통해 원고에 관한 어떠한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하였다고 볼 여지가 없고, 또한 모욕이란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피고가 ‘평가 그래프’의 삭제를 거부함으로써 원고에 대한 어떠한 추상적 판단이나 감정을 표현하였다고 볼 수도 없으므로, 피고의 ‘평가 그래프’ 삭제거부 행위가 명예훼손 내지 모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2 제2항 제2문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권리가 침해되었음을 주장하는 자의 요청에 따라 해당 정보의 삭제·임시조치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한 경우, 그 사실을 서비스 이용자가 알 수 있도록 공시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바, 피고가 '이 한줄평은 해당 교수의 요청으로 블락처리되었습니다'라는 문구를 게시한 행위는 정보통신망법이 정한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로서의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보아야 하고, 그 실행방법 또한 법률이 예정하고 있는 것이므로, 위 행위가 원고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킨다거나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볼 수 없다.
그리고 이 사건의 원심(서울고등법원 2020. 5. 29. 선고 2019나2040377 판결)은, 위와 같은 제1심 법원의 판단을 인용함과 동시에, ‘피고가 B사이트에서 교수의 인품 등에 대한 평가항목을 만들어 게시하게 한 행위 및 원고의 평가 그래프 삭제나 익명처리 요청을 거부한 행위는 원고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는 원고의 추가적 항소이유에 대하여, (i) 국립대학법인 교수인 원고의 공적인 존재로서의 지위, (ii) 교수평가 정보의 공공성 및 공익성과 그 이용 필요성, (iii) 이를 제공하는 피고의 이익과 그 이용으로 인하여 원고의 이익이 침해될 우려의 정도 등을 고려할 때, 피고가 B사이트에서 평가 그래프를 통하여 원고에 대한 교수평가결과를 제공한 행위가 원고의 주관적 명예감정을 다소 침해할 수는 있더라도, 이러한 행위가 원고의 인격권을 위법하게 침해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하며, 원고의 항소를 전부 기각하였습니다.
3.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아래와 같은 법리를 설시하며, 원고의 공적인 존재로서의 지위, 개인정보의 공공성과 공익성, 피고가 정보처리로 얻은 이익과 처리절차 및 이용형태, 정보처리로 인하여 원고의 이익이 침해될 우려의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살피건대, 피고가 원고의 개인정보 등을 수집ㆍ제공한 행위를 원고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하는 위법한 행위로 평가할 수 없고, B사이트에서 교수 평가 결과를 제공한 행위를 두고 원고의 인격권을 위법하게 침해하였다고 볼 수도 없다고 판시하며, 원고의 상고를 기각하였습니다.
•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이라는 인격적 법익을 침해ㆍ제한한다고 주장되는 행위의 내용이 이미 정보주체의 의사에 따라 공개된 개인정보를 그의 별도의 동의 없이 영리 목적으로 수집ㆍ제공하였다는 것인 경우에는, 정보처리 행위로 침해될 수 있는 정보주체의 인격적 법익과 그 행위로 보호받을 수 있는 정보처리자 등의 법적 이익이 하나의 법률관계를 둘러싸고 충돌하게 된다. 이때는 정보주체가 공적인 존재인지, 개인정보의 공공성과 공익성, 원래 공개한 대상 범위, 개인정보 처리의 목적ㆍ절차ㆍ이용형태의 상당성과 필요성, 개인정보 처리로 침해될 수 있는 이익의 성질과 내용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개인정보에 관한 인격권 보호에 의하여 얻을 수 있는 이익과 정보처리 행위로 얻을 수 있는 이익 즉 정보처리자의 ‘알 권리’와 이를 기반으로 한 정보수용자의 ‘알 권리’ 및 표현의 자유, 정보처리자의 영업의 자유, 사회 전체의 경제적 효율성 등의 가치를 구체적으로 비교 형량하여 어느 쪽 이익이 더 우월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에 따라 정보처리 행위의 최종적인 위법성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6. 8. 17. 선고 2014다235080 판결 등 참조).
•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여론의 자유로운 형성과 전달에 의하여 다수의견을 집약시켜 민주적 정치질서를 생성ㆍ유지시켜 나가야 하므로 표현의 자유, 특히 공적 관심사에 대한 표현의 자유는 중요한 헌법상 권리로서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다만 개인의 사적 법익도 보호되어야 하므로, 표현의 자유 보장과 인격권 보호라는 두 법익이 충돌하였을 때에는 구체적인 경우에 표현의 자유로 얻어지는 가치와 인격권의 보호에 의하여 달성되는 가치를 비교 형량하여 그 규제의 폭과 방법을 정하여야 한다.
• 타인에 대하여 비판적인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사정이 없는 한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표현행위의 형식과 내용이 모욕적이고 경멸적인 인신공격에 해당하거나 타인의 신상에 관하여 다소간의 과장을 넘어서 사실을 왜곡하는 공표행위를 하는 등으로 인격권을 침해한 경우에는 의견 표명으로서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서 불법행위가 될 수 있다(대법원 2018. 10. 30. 선고 2014다61654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4. 판결의 의의
본 판결은, 이미 공개된 개인정보를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 처리한 행위의 위법 여부 및 비판적 의견 표명 행위의 위법 여부에 관한 판단기준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는데 의의가 있으며, 정보주체가 정보처리자 등을 상대로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및 인격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하고자 하는 경우, 개인정보에 관한 인격권 보호에 의하여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정보처리자의 알 권리 및 표현의 자유보다 더 우월하다는 점을 주장ㆍ입증하는데 주력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