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이나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은 사람이 권한을 앞세워 상대방을 괴롭히는 행위 '갑질'의 양상이 통상적인 범주에서 벗어날 정도로 수위가 높고 상대방이 받은 피해가 크다면 그것은 법의 심판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나마 요새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질에 대해 대중언론이 많이 다루고 있는 데다가 가해자들에게 쏟아지는 질타와 명예추락 같은 사회적 단죄도 많아진 요즘은 갑질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한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같은 사회적 법망도 생겨 조금은 과거보다 촘촘히 갑질을 거를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질은 더 지능적으로 진화한 모습으로 우리 사회 곳곳에 여전히 만연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쩔 수 없는 갑질'은 이 세상에 있을 수 없다. 갑질을 노골적으로, 습관적으로 일삼는 이들을 보면 사실 조금은 성격적으로 장애나 이상을 가진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문제는 누구에게 성격적 태도가 그 상대방에게 심각한 침해를 일으킬 때다.
권력관계에서 발생하는 갑질은 피해자에게 긴장과 불안증, 분노에 빠트리고 심지어 심각한 트라우마로 작용하기도 한다. 갑질이 반복될 경우, 피해자는 일상생활이 힘들어지고 심한 경우 생을 포기하기도 한다. 이런 갑질을 방관하면 그 피해본인 자신, 가정과 사회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갑질 가해자들은 자신들이 벌인 그 추악한 갑질에 상응하는 불이익을 당해야 마땅하다. 이들을 치죄할 뚜렷한 법적 근거도 있다. 직장내 괴롭힘 금지 관련 근로기준법 위반(76조의 2)와 개별 갑질행위별 형법상 강요, 폭행, 협박, 모욕죄 등이다.
더불어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질병은 업무상재해(산재)에 해당하여 보상을 받을 수 있다(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남녀고용평등법상 직장내 성희롱, 육아휴직, 배우자 출산휴가, 난임휴가, 유아기 근로시간 단축 등 모성보호에 관한 괴롭힘의 경우에도 과태료 처벌을 받는다.
민법상으로 괴롭힘 행위를 방조한 사용자에 대해 안전배려의무 위반 관련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도 있다.
한 팀장이 있다. 그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투입된 신입직원에게 많이 어려운 보고서를 쓰라고 지시하고 아무 이유 없이 직원이 제출한 보고서를 반려하면서 폭언을 하고 계속 보완을 요구했다. 그 바람에 직원이 다른 업무는 하지도 못하고 매일 남아서 밀린 업무를 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았다. 결국 그는 몇 달 간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를 받아야 하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았다. 이 직장상사의 폭언으로 인한 정신과 치료를 법원이 상해죄로 인정한 판례가 있다.
"네가 스스로 나가지 않으면 내가 할 수 있는 걸 동원해 제발로 기어나가게 만들겠다. 내가 너한테 어떤 식으로 극한까지 몰아붙일 수 있는지 지켜봐. 우리 끝까지 한번 같이 가보자!" 이처럼 퇴사하지 않으면 계속 폭언하고 괴롭힐 것처럼 피해자를 겁박하면 협박죄도 성립한다.
직장상사가 다른 팀원들이 보는 앞에서 피해자를 지칭하여 "바보 같은 놈!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어!"라고 말하면 모욕죄가 성립할 수 있다.
그런데 아는가? 갑질만큼 무서운 을질도 있다는 사실을. 아이러니한 것은 갑질과 다르게 을질로 인해 가해자로 비난받는 이들은 가해자를 쉽게 신고조차 할 수도 없다. 또 다른 갑질을 한다고 손가락질을 받을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 이후, 상대적 약자인 을이 무고한 갑에게 갑질 프레임을 부당하게 씌우는 ‘을(乙)질’도 심심찮게 증가하고 있다. 원래 이 법은 괴롭힘 피해 직원을 보호하기 위하여 시행된 것이지만 오히려 한편으로 다른 근로자를 위협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는 여지도 존재한다.
무고한 사업주나 동료직원들을 괴롭힘 가해자로 지목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지키거나 의도를 관철시키려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어떻게 구별해낼 수 있을까? 가해 행위인 갑질을 판별하기도 어려울 판에 더 교묘하고 위장되기 쉬운 을질을 명확하게 짚어내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을질을 파악해보면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을질은 노골적이지 않고 은근하다. 직접적인 괴롭힘이 아니라 간접적인 괴롭힘이나 수동적인 공격성으로 인해 상급자가 오히려 문제제기를 하기 어렵게 만든다.
을질은 혼자 하는 일이 드물며 여럿이 연합해 같이 한다. 게다가 성격이 강한 상사보다는 유순하거나 온건한 상사, 여성 상사를 타깃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본인에게 명백한 잘못이 있으면서도, 그 점을 질책한 선임을 무작정 가해자로 몰아가는 후임들의 사례에서 잘못된 입장을 취하는 조직이 이 문제를 악화시킬 때도 있다.
신고당한 상사를 오히려 후임 관리를 잘 못하는 관리자로 매도하는 한국 조직문화도 을질을 부추기는 데에 한 몫 한다. 원래 이런 경우 회사는 면밀한 조사를 거쳐 사실이 아니라고 판명되면 후임 가해자들을 가만히 방치해서는 절대 안 된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선임 피해자에게 사과하거나 화해하도록 종용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갑질 신고를 상사를 괴롭히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을질 인간을 처벌할 수 있는 법률조항으로 형법상 무고죄가 있다. 제156조항에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 대하여 허위의 사실을 신고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무고를 처벌하는 이유는 국가의 형사사법권 적정권 행사를 그르치게 할 위험과 부당하게 처벌받지 않을 개인의 법적안정성이 침해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무고죄로 구속되는 경우도 있고 무고죄는 무고의 대상 범죄혐의에 따라 양형이 결정된다.
이 세상에는 영원한 갑도, 영원한 을도 있을 수 없다. 자신의 사회적, 조직내 포지션에 따라 한 때는 갑이 되기도 하고, 을의 자리에 머무를 수도 있다는 것을 늘 명심해야 한다. 국가가 정한 법률에 의한 엄정한 치료를 호되게 받기 전에 먼저 인간으로서의 도덕과 양심, 사회통념상의 상식부터 제대로 지키면 이 세상은 정말 아름답고, 평온하며, 공정해질 것이다.
갑이 을이 될 수도 있고 을이 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영원한 갑도 을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