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2021. 5. 7. 선고 2017다220416 판결
- 대법원 2021. 5. 7. 선고 2020다300176 판결
강동호 변호사
1. 합의해제∙해지 관련 기존 판결
대법원은 여러 판결에서 ‘계약의 합의해제 또는 해제계약이라 함은 해제권의 유무를 불문하고 계약당사자 쌍방이 합의에 의하여 기존의 계약의 효력을 소멸시켜 당초부터 계약이 체결되지 않았던 것과 같은 상태로 복귀시킬 것을 내용으로 하는 새로운 계약으로서, 계약이 합의해제되기 위하여는 일반적으로 계약이 성립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계약의 청약과 승낙이라는 서로 대립하는 의사표시가 합치될 것(합의)을 그 요건으로 하는바, 이와 같은 합의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쌍방당사자의 표시행위에 나타난 의사의 내용이 객관적으로 일치하여야 되는 것이다.’라고 판시하며, 새로운 계약으로서 당사자들의 합의에 의한 해제∙해지를 인정하였습니다(대법원 1992. 6. 23. 선고 92다4130, 92다4147 판결, 대법원 2007. 11. 29. 선고 2006다2490, 2506 판결 등 참조).
대법원이 2021. 5. 7.자로 위 판결들을 기초로 하여, 합의해지에 관한 당사자의 의사표시 해석 및 합의해제의 경우에도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는지 여부에 관한 판결들을 선고하였는바, 아래에서 소개 드립니다.
2. 계약의 해지에 관한 원고와 피고 사이의 객관적 의사가 일치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사례 (대법원 2021. 5. 7. 선고 2020다300176 판결)
가. 사안의 개요
이 사건은 원고가 피고 회사에 버스를 양도하고 그 매매대금액을 수령하는 대신 피고 회사에 매매대금액을 투자하되, 원고가 위 버스를 운행하여 얻은 수익에서 운영비 등을 공제한 금액을 투자수익금 명목으로 지급받기로 하는 계약(이하 ‘이 사건 계약’)을 체결하였는데, 피고 회사가 위 버스를 임의로 제3자에게 매도한 사안입니다.
원고는 피고 회사 등을 상대로 주위적으로 피고들에 대한 공동불법행위 또는 채무불이행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를 하고, 예비적으로 이 사건 계약을 해지하고 원상회복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나. 대법원의 판단
원심은 이 사건 계약의 합의해지가 성립하였고 그 해지로 피고 회사는 원고에게 버스 매매대금을 반환하여야 한다면서 원고의 예비적 청구 중 일부를 인용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 사건 계약의 합의해지가 성립하였다는 점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원심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
(1) 계약의 합의해지는 계속적 채권채무관계에서 당사자가 이미 체결한 계약의 효력을 장래에 향하여 소멸시킬 것을 내용으로 하는 새로운 계약으로서, 이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계약이 성립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기존 계약의 효력을 장래에 향하여 소멸시키기로 하는 내용의 청약과 승낙이라는 서로 대립하는 의사표시가 합치될 것을 요건으로 한다(대법원 2000. 3. 10. 선고 99다70884 판결 등 참조).
(2) 이와 같은 합의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쌍방 당사자의 표시행위에 나타난 의사의 내용이 객관적으로 일치하여야 하므로 계약당사자 일방이 계약해지에 관한 조건을 제시한 경우 그 조건에 관한 합의까지 이루어져야 한다(대법원 1996. 2. 27. 선고 95다43044 판결, 대법원 2018. 12. 27. 선고 2016다274270, 274287 판결 등 참조).
(3) 원고는 이 사건 버스에 관한 매매계약을 해제하고 원상회복으로서 피고 회사에게 원고가 지급한 매매대금의 반환을 구하고 있는데 반하여, 피고 회사는 이 사건 매매계약 해제 주장을 거부하고 이 사건 버스에 관한 매매계약만이 아닌 이를 포함한 이 사건 계약의 해지를 주장하면서 원상회복으로서 원고에게 미지급 할부금 등의 지급을 구하고 있다.
(4) 이 사건 계약을 합의해지하는 경우 그 청산관계의 문제가 당사자들의 주된 관심사인데 앞서 본 바와 같이 이에 관하여 당사자들 사이에 심하게 다투는 상황에서 이 사건 계약을 종료시키는 합의만 한다는 것은 쉽사리 납득하기 어렵다. 그와 같은 사정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계약의 해지에 관한 원고와 피고 회사 사이의 객관적인 의사가 일치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3. 합의해제의 경우에도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는지 여부 (대법원 2021. 5. 7. 선고 2020다300176 판결)
가. 사안의 개요
피고들은 이 사건 상가건물을 건축하여 분양하는 사업(이하 ‘이 사건 분양사업’)을 하는 자들로 이 사건 토지를 매수한 후 위 상가건물을 신축하는 공사를 소외인에게 도급하였고, 원고는 피고들로부터 이 사건 토지를 매수하고 피고들의 도급인의 지위를 인수하는 계약(이하 ‘이 사건 사업인수계약’)을 체결한 자입니다. 이후 이 사건 사업인수계약은 원고 등과 피고들의 합의에 따라 해제되었고, 원고는 피고들을 상대로 이 사건 분양계약 해제를 원인으로 원상회복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원심은, 이 사건 사업인수계약이 합의해제 되었으므로 원고에게 위 사업인수계약에 따라 지급한 돈을 반환받을 채권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 채권은 이 사건 사업인수계약에 관한 원고 등의 채무불이행에 따라 피고들이 원고 등에 대해 취득한 손해배상채권과 상계되어 모두 소멸하였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나.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원심판결에 합의해제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의 성립요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인정되고, 합의해제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할 때 기존의 위약금 약정을 합의해제시에도 적용되는 손해배상 특약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1) 계약이 합의에 따라 해제되거나 해지된 경우에는 상대방에게 손해배상을 하기로 특약하거나 손해배상 청구를 유보하는 의사표시를 하는 등 다른 사정이 없는 한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대법원 1989. 4. 25. 선고 86다카1147, 1148 판결 참조). 그와 같은 손해배상의 특약이 있었다거나 손해배상 청구를 유보하였다는 점은 이를 주장하는 당사자가 증명할 책임이 있다(대법원 2013. 11. 28. 선고 2013다8755 판결 참조).
(2) 법률행위의 해석은 당사자가 그 표시행위에 부여한 의미를 명백하게 확정하는 것으로서, 당사자가 표시한 문언에서 그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경우에는 문언의 내용, 법률행위가 이루어진 동기와 경위, 당사자가 법률행위로 달성하려는 목적과 진정한 의사, 거래의 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 그리고 사회일반의 상식과 거래의 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대법원 1996. 10. 25. 선고 96다16049 판결, 대법원 2020. 5. 14. 선고 2016다12175 판결 참조).
계약을 합의하여 해제하거나 해지하면서 상대방에게 손해배상을 하기로 하는 특약이나 손해배상 청구를 유보하는 의사표시를 하였는지를 판단할 때에도 위와 같은 법률행위 해석에 관한 법리가 적용된다.
(3) 위와 같은 특약이나 의사표시가 있었는지는 합의해제ㆍ해지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는데, 원래의 계약에 있는 위약금이나 손해배상에 관한 약정은 그것이 계약 내용이나 당사자의 의사표시 등에 비추어 합의해제ㆍ해지의 경우에도 적용된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합의해제ㆍ해지의 경우에까지 적용되지는 않는다.
이 사건 사업인수계약의 내용, 그 이행과 해제에 이르게 된 과정, 선행 소송의 확정판결 내용 등을 종합하면, 위 사업인수계약은 피고들이 약정해제권 또는 법정해제권을 일방적으로 행사함에 따라 해제된 것이 아니라 원심이 인정한 것과 같이 원고 등과 피고들의 합의로 해제되었다고 볼 수 있다.
4. 판결의 의의
첫번째 사례는 합의해지는 청약과 승낙이라는 서로 대립하는 의사표시가 합치될 것을 요건으로 하고, 일방이 조건을 제시한 경우 그 조건에 관한 합의까지 이루어져야 한다는 기존 판례의 입장을 다시 확인하면서, 계약해지의 경우 그 청산이 당사자들의 목적임에 비추어 그에 관한 합의가 되지 않을 경우, 합의해지가 되었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을 명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두번째 사례는 합의해제시 상대방에게 손해배상을 하기로 하는 특약이나 손해배상 청구를 유보하는 의사표시를 하였는지를 판단할 때에도 법률행위 해석에 관한 기존 판례의 법리가 적용된다고 해석하면서, 원래의 계약에 있는 위약금이나 손해배상에 관한 약정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합의해제ㆍ해지의 경우에까지 적용되지는 않는다고 판시한바, 합의해지에 따른 원상회복청구 소송에서 계약의 내용 및 당사자의 의사표시 해석에 유의하여 대응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