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징계권 행사 시 징계사유
김장식 변호사
1. 들어가며
근로관계에 있어서 사용자가 근로자를 징계할 수 있다는 점은 별다른 이론의 여지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근로기준법 제23조에서 사용된 '징벌', 제93조와 제95조에 사용된 '제재'라는 표현이 이와 같은 징계제도를 예정하는 것으로 설명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사용자가 근로자를 징계하는 것은 우리 사회 일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인데, 그럼에도 실무에서 마주하는 여러 현실을 살펴보면 사용자의 징계권 행사에 다소 이해가 부족해 보이는 부분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2. 징계대상 행위는 '기업질서 위반행위'로 한정
어느 정도 노동관계법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회사라면 그렇지 않겠지만, 많은 경우 징계대상이 되는 근로자의 비위행위를 잘못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경향들이 존재합니다. 가령 반드시 징계한다는 결론을 전제하고 기업 내부의 문제와 관련이 없는 사생활의 비위를 문제 삼거나 비록 기업 내에서 발생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사용자의 감정을 상하게 했다는 것을 이유로 하는 경우 등입니다.
하지만 사용자에게 징계권이 인정된다고 해서 근로자의 아무 행위를 대상으로 징계할 수는 없습니다. 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이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등의 징벌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는 이상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범죄와 형벌을 규정하고 있는 형법과는 달리 근로기준법은 징계대상이 되는 근로자의 행위에 대해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이에 근로자의 어떤 행위가 징계대상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대두될 여지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논의는 별로 없어 보입니다. 학설로서 징계권의 법적 근거에 대한 논의는 다수 있지만, 주로 단체협약·취업규칙 등에 징계에 관한 규정이 없는 경우에도 징계할 수 있는지 또는 취업규칙 등에 징계 사유나 수단을 열거하고 있는 경우에 그 열거는 한정적인지 아니면 예시적인지 등에 관한 관심이었습니다.
판례도 사용자가 징계의 사유로 한 징계대상 행위가 사후적으로 정당한지 여부를 판단해줄 뿐 처음부터 어떤 행위가 징계대상 행위인지를 정의하지 않아 정당성이 인정된 행위들을 유형화해 볼 수 있을 따름입니다.
사정이 그렇더라도 어떤 행위를 징계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지 여부는 결국 징계권이 인정되는 근거 또는 징계권의 본질에서부터 그 단서를 발견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징계권의 법적 근거에 관해서는 다양한 견해들이 제기되고 있는데, 사용자의 고유권 내지 경영권에서 찾는 견해는 경영질서의 형성 및 유지와 그 위반에 대한 제재는 본래 사용자의 고유 권한에 속한다고 합니다.
반면 징계권의 근거를 노사 합의에서 구하는 견해는 사용자의 고유한 징계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근로자가 근로계약을 체결하면 징계규정이 포함된 취업규칙에 따라 계약을 할 경우 이를 매개로 사용자의 징계권이 인정된다고 봅니다.
그 외 징계권의 근거를 법규범에서 구하는 견해는 취업규칙을 자치법, 관습법 등의 법규범으로 보고 취업규칙에 징계에 관한 규정이 있어야 근로자에 대한 징계가 인정된다고 합니다.
본래 이 논쟁들은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대등한 근로관계의 일방당사자인 사용자에게 징계권이 인정되는 근거를 다루는 것이어서, 어떤 행위를 징계대상으로 할 수 있는지 여부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에 계약설이나 법규범설 등은 노사관계의 양 당사자가 후발적으로 징계사유의 내용을 채울 수 있다는 입장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은 반면에 징계권의 근거를 사용자의 고유권 내지 경영권에서 찾는 견해는 경영질서의 형성 및 유지와 그 위반에 대한 제재라는 측면에서 징계대상이 되는 행위의 실체에 대한 어느 정도의 단서를 제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법원은 "근로자의 상벌 등에 관한 인사권은 사용자의 고유권한으로서 그 범위에 속하는 징계권 역시 기업운영 또는 근로계약의 본질상 당연히 사용자에게 인정되는 권한이기 때문에 그 징계규정의 내용이 강행법규나 단체협약의 내용에 반하지 않는 한 사용자는 그 구체적 내용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대법원 1994. 9. 30. 선고 94다21337 판결)라거나 "기업 질서는 기업의 존립과 사업의 원활한 운영을 위하여 필요 불가결한 것이고, 따라서 사용자는 이러한 기업질서를 확립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하고도 합리적인 것으로 인정되는 한 근로자의 기업질서 위반행위에 대해 근로기준법 등의 관련 법령에 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를 규율하는 취업규칙을 제정할 수 있다"(대법원 1999. 3. 26. 선고 98두4672 판결)고 판시합니다. 이러한 판례의 입장은 학설 견해 중 고유권설에 가까운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와 같은 사용자의 고유권설은 근로관계를 전근대적 시각에서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론의 여지없이 수긍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징계권을 기업운영 또는 근로계약의 본질상 당연히 사용자에게 인정되는 권한이라고 인정하고 있는 이상 징계대상 행위의 본질 역시 결국에는 기업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인정될 수 있는지 여부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실제로 어떠한 행위가 기업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에 해당할 것인지 여부는 기업들이 처한 개별적인 사정에 따라 달라질 여지가 있고, 사용자는 그와 같은 사정들을 반영해 취업규칙에 징계사유를 규정할 수 있을 것인데, 그와 같이 규정된 징계사유에 해당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결국에는 근로기준법 제23조에 의한 통제를 다시 받게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 있어서는 아무런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즉 취업규칙상 징계사유는 기본적으로 기업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어야 함과 동시에 전체 법규범에 비춰 적법한 것이어야 할 필요가 있는데, 가령 취업규칙상의 징계사유에 해당하는 것을 이유로 징계하는 것이 신의칙에 위반한다거나 권리남용에 해당하는 경우 또는 강행법규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하는 경우에는 취업규칙상 징계사유에 해당한다는 사정만으로 그 징계행위의 정당성이 인정될 수 없다는 점을 주의해야 합니다.
3. 징계대상 행위, '징계처분 당시 거론된 행위'여야
사용자가 성급하게 징계처분을 하다 보니, 징계처분 당시에는 미처 확인되지 않던 사유가 나중에 밝혀지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사용자가 징계처분 이후 확인된 사안들까지 징계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하지만 사용자가 일정한 사유로 근로자에 대한 징계처분을 했다면 그 징계 처분의 정당성은 그 사유만으로 한정해서 판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떠한 행위가 징계사유로 됐는지 여부는 징계위원회 등에서 그것을 징계사유로 삼았는지 여부에 의해 결정돼야 하고, 징계위원회에서 어떤 사유를 징계사유로 삼았는지 여부는 징계의결서나 징계처분서에 기재된 취업규칙이나 징계규정 소정의 징계 근거사유만으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고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판단해야 합니다.
물론 직접 징계사유로 삼지 않은 징계처분 전후의 사정은 원징계처분이나 재심절차에서 징계 양정의 참작사유로 삼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징계양정의 적정성을 판단함에 있어서 가장 본질적인 징계양정 판단의 기준은 징계대상 행위 자체가 될 것인바, 징계대상 행위가 되는 것과 징계양정의 참작 대상이 되는 것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근로자에 대한 징계를 하는 경우 사용자가 징계대상 행위에 대한 충분한 사전 조사 없이 성급하게 징계처분을 진행하는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또 다른 문제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비록 시간이 지체되는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조사해 징계처분에 모두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4. 징계대상 행위는 3단 논법으로 구성해야
형사처벌이 되는 범죄행위는 형법에 규정된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들입니다. 반면에 민법에서 불법행위가 성립하는 행위는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한 행위입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근로관계에서 징계대상인 행위도 규범의 적용이라는 측면에서 동일한 구조를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징계사유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징계사유와 관련해 취업규칙·단체협약 등에 징계사유에 대한 규정이 존재해야 하고, 해당 비위행위가 징계사유에 해당해야 합니다.
이러한 논리적 구조 하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는 것은 취업규칙입니다. 대부분 사용자는 징계사유를 취업규칙에 정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와 같은 징계사유가 제한적으로 열거돼 있는 경우에는 취업규칙에 열거돼 있는 사유 이외의 사유로는 징계를 할 수 없습니다. 이와 달리 취업규칙에 구체적인 징계사유를 정하고 있지 않다면, 징계사유를 한정해 뒀다고 판단되지 않고, 이러한 경우에는 징계권 행사의 본질로 돌아가 기업질서 위반행위인지 여부를 판단해 징계하게 될 것입니다.
이에 사용자는 징계대상이 되는 근로자의 행위를 육하원칙에 따라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이러한 행위가 취업규칙 어느 규정을 위반한다는 이유로, 또는 취업규정이 없는 경우에는 일반적인 기업질서 위반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징계해야 합니다.
특히 이러한 필요성이 있는 것은 징계해고의 경우입니다. 근로기준법 제490조는 해고사유와 해고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법원은 해고의 실질적 사유가 되는 구체적 사실 또는 비위 내용을 기재하지 않고 징계대상자가 위반한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의 조문만 나열하는 것은 해고사유를 전혀 기재하지 않은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대법원 2021. 2. 25. 선고 2017다226605 판결 등 참고).
그럼에도 징계의 정당성을 다투고 있는 사건들에서 징계의 근거 규정인 취업규칙 조문만 나열하고 있는 경우들이 빈번하게 발견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취업규칙에서 마련하고 있는 징계처분 통보 양식 자체에 취업규칙 조문만 나열하도록 돼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아무리 생각해도 3단 논법에 따라 글쓰기 하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는 선입견과 다르지 않습니다. 징계대상 행위를 3단 논법에 따라 구성한다는 것은 그 표현만 어려워 보일 뿐 실제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가령 "A는 2021. 12. 31. 사전에 아무런 연락 없이 출근하지 않아(징계 대상행위 기재), 취업규칙 제50조 제10호가 징계사유로 규정한 무단결근에 해당함"과 같이 기재하더라도 충분한 것입니다.
5. 나가며
이상에서 말한 세 가지 징계사유 관련한 사항은 근로자의 적절한 방어권 행사를 위한 측면에서도 필요한 내용이겠지만, 사용자의 징계권 행사가 정당한 징계권 행사로 인정받기 위해서도 가장 기본적인 사안이라 생각됩니다. 이러한 점들을 징계처분에 앞서 한 번 더 고려해 보는 것이 그리 어려운 사정도 아니라고 생각되는 바, 가장 기본이 되는 사안들을 한 번 더 점검함으로써 징계권 행사에 신중을 기하고, 동시에 적정한 징계권 행사가 이뤄지기를 바랍니다.